김삿갓 99 -
[부처님 같은 김삿갓, 보살 같은 주모]
김삿갓과 주모는 그 말을 듣자 배꼽을 움켜잡고 웃었다.
"하하하,
두 마누라를 한 집에서 거느린다는 것은 보통 예삿일이 아닌가 보구려."
주모도 웃어가며 덩달아 말한다.
"호호호,
이왕이면 공평 무사하게 큰마누라도 죽여 주지 그랬어요?"
"에이 여보시오,
내가 물개인 줄 아시오?"
그 소리에 방안에는 또다시 웃음판이 벌어졌다.
김삿갓이 백종원에게 물었다.
"그래, 작은 마누라 배 위에 엎어져 있던 노형의 뒷 덜미를 낚아 채
자기 먼저 죽여 달라는 큰마누라는 어찌 하셨소?"
그러자 백종원은 손을 휘휘 내 저으며 대답한다.
"다 늙어빠진 마누라를 무슨 재미로 죽여 주오?
큰마누라한테 도대체 흥미가 없어,
부득이 작은마누라를 얻어 오게 된걸요."
그러자 주모가 정색을 하며 백종원을 나무란다.
"그건 너무 하시우.
작은마누라만 죽여 주고 큰마누라는 돌아보지도 않게 되면
큰마누라가 얼마나 원통 하겠어요?"
"워낙 많이 써먹어서 온통 닳고 닳아
더는 못 쓰게 되어 버린 걸 어떡하냐는 말이오."
주모가 화를 내며 말한다.
"모르는 소리 그만 하시오.
여자는 화로와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해요.
화로는 평소에는 냉랭하지만 숯불을 활짝 피워 주기만 하면
언제든지 뜨겁게 달아 오르는 법이에요."
김삿갓은 주모의 말을 듣고 손뼉을 치며 웃었다.
"하하하, 주모!..
남자가 화로와 같다는 소리는 들어 보았으나,
여자가 화로 같다는 말은 생전 처음 듣는 말이오."
그러자 주모와 백종원이 거의 동시에 김삿갓에게 물었다.
"남자를 어떻게 화로에 비교한다는 말이오?"
김삿갓은 빙글빙글 웃으며 대답했다.
"지금 부터 내가 남자의 性情을
연령별로 불에 비유해 볼 테니 잘 들어 보시오."
그러면서 김삿갓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20대 남자는,
"장작불" 경험이 많지 않아 빨리 타고 쉽게 꺼진다.
30대 남자는,
"연탄불" 경험도 적당히 쌓여서 제법 오래 탄다.
40대 남자는, "담뱃불"
불은 불인데, "쪽쪽" 빨아 줘야 겨우 불 같이 보인다.
50대 남자는, "화롯불"
속을 헤쳐서 찾아 보아야 겨우, 불을 발견 할 수 있다.
60대 남자는, "번갯불"
불은 불인데, 쓸 수 없는 불 이다.
70대 남자는, "반딧불"
불도 아닌 것이 불 인 척 한다.
"하하하하...
호호호호..."
김삿갓의 말이 끝나자 백종원은 대굴대룰 구르며 배를 움켜 잡았다.
주모 또한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허리를 굽혀 배꼽을 잡았다.
"노형도 대단하시오!
자! 내 술 한 잔 받으시오."
백종원은 기분 좋게 웃으며 김삿갓에게 술잔을 내밀었다.
이렇게 잡담을 한없이 주고 받다 보니 어느덧 날이 저물었다.
잠자리가 걱정 된 김삿갓이 주모에게 부탁을 했다.
"주모!
나 오늘밤 이 집에서 좀 자고 갈 수 없겠소?"
그러자 주모가 대답한다.
"방은 하나밖에 없어서 안 되겠고,
술청이라도 괜찮다면 자고 가시구료."
김삿갓은 좋은 방 나쁜 방을 가릴 형편이 못된다.
"술청이라도 좋으니 재워 주기만 하시오.
그런데 술값은 얼마죠?
우선 술값부터 치루고 봅시다."
김삿갓은 주모의 말대로 전대 속에서 돈을 꺼내 주었다.
백종원은 김삿갓의 전대 속에 돈이 두둑이 들어 있는 것을 보는 순간,
눈 빛이 이상하게 희번덕 거렸다.
그러나 김삿갓은 그런 눈치를 채지 못하고 백종원에게 말을 건넨다.
"노형도 집에 돌아가 보았자 어느 마누라도 환영해 줄 것 같지 않으니,
오늘밤은 차라리 여기서 나하고 같이 자는 것이 어떻겠소?"
백종원은 그 말을 듣기 무섭게 뒤로 훌렁 자빠져 버린다.
"아닌게 아니라,
마누라 등쌀에 나도 갈 데가 없는 몸이오."
"마누라가 둘씩이나 있으면서 갈 데가 없다니,
그야말로 졸지에 처량한 신세가 되었구료."
"그러니까
나도 여기서 자고 가야 되겠소."
"잘 생각하셨소.
서방 귀한 줄을 알게 하려면 가끔 외박도 필요한 것이라오."
김삿갓은 그런 농담까지 해가며 등잔을 끄고 누워 버렸다.
새벽 어스름한 시각에 김삿갓은 웬지 몸이 서늘해 오는 기분이 들어 눈을 떠보니,
옆에서 자고 있던 백종원이 보이지 않았다.
"응?
이 사람이 어딜 갔을까?"
이상한 예감이 들어 허리를 만져 보니,
간밤에 분명히 허리에 차고 있던 전대가 없어졌다.
(앗! 이 사람이 돈을 훔쳐 가지고 달아났단 말인가?)
그러나 김삿갓은 백종원이라는 친구가
전대를 훔쳐 갔으리라고는 믿고 싶지 않았다.
(어젯밤 술까지 나눠 먹은 그 친구가
설마 돈을 훔쳐 가기야 했을라구!)
김삿갓은 그런 생각이 들어 이 구석 저 구석으로 전대를 찾아 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도 전대는 보이지 않았다. 더우기 의심스러운 것은
백종원이 새벽에 감쪽같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제 알고 보니 ,
그 친구는 아주 몹쓸 사람이구나.)
혼잣말로 투덜거리고 있노라니, 주모가 방문을 열고 내다 보며 묻는다.
"손님은 아까부터 무엇을 찾고 있어요?
무언가 없어진 게 있어요?"
"허리에 차고 있던 전대가
간밤에 감쪽같이 없어졌군요."
그 소리에 주모는 깜짝 놀라며,
"에구머니 !
전대가 없어지다뇨?"
그리고 사방을 두루 둘러보다
"같이 자던 백씨라는 사람은 어디 갔어요?"하고
묻는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없어졌군요."
"옛?
그렇다면 전대는 그 사람이 훔쳐 간 것이 분명해요.
어쩐지 인상이 좋지 않은데다,
큰마누라가 어쩌니 작은마누라가 어쩌니 하면서
씨가 먹히지 않는 허풍을 떠는 것이 수상하다 싶더니
역시 그 놈이 도둑놈이었군요.
그런 놈을 내 집에서 재웠으니 아이 무서워라."하면서
주모는 몸서리 조차 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이러나 저러나 돈을 몽땅 도둑맞았으니 어떡하죠?"하고
걱정의 말을한다.
"돈 좀 없다고 죽기야 하겠어요.
본디 사람이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인생일진데,
그 친구가 그런 것을 모르고 인정머리 없이 도둑질을 했으니
나는 잃어 버린 돈이 아쉽다기 보다도
인정을 배반한 그 친구의 소행이 슬프기만 할 뿐이오."
"돈을 몽땅 잃어버리고 나서도 부처님 같은 소리만 하고 계시네요..
빨리 관가에 가서 고발을 하세요
. 그런 놈은 당장에 잡아다가 물고를 내야 해요."
"고발을 한다고 그 친구가 쉽게 잡히리오?
또, 잡아서 물고를 내게 한들 뭐 하겠소?"
그러자 주모가 한마디 더하는데
"관가에 고발도 안 하겠다.
돈은 한 푼도 없겠다.
앞으로 어떡하실 생각이에요?"
"어떡하긴 무얼 어떡하오.
그 돈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그 친구였어요.
그러니까 그 친구가 가져가 버린 것이 아니겠어요?"
"이 양반 듣자 하니,
계속 부처님 같은 소리만 하고 있네!"
주모가 은근히 비아냥거리는 소리를 한다.
김삿갓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부처님 이고 보살님이고 간에,
주모에게 부탁이 하나 있소이다."
"무슨 부탁인데요?"
"내가 돈은 없어도 길을 떠나기 전에 아침을 먹어야 하겠소.
도와주는 셈치고 아침이나 한 그릇 공짜로 먹여 주시오."
"손님은 참말로 딱한 양반이시네.
내 집에서 자고 난 손님을 설마 굶겨서 보낼까 봐 걱정이세요?
곧 아침을 지어 올 테니 편히 앉아 기다리세요."
이렇게 아침을 얻어먹은 김삿갓이 다시 길을 떠나게 되자,
주모가 얼마간의 돈을 내밀며 말한다.
"이거 몇 푼 되지 않지만 가지고 떠나세요.
길을 떠나려면 돈이 전혀 없어서는 안되는 것이에요."
김삿갓은 주모의 인정에 눈시울이 후끈 달아올랐다.
남의 돈을 훔쳐간 친구에 비하면 얼마나 고마운 인정인가.
김삿갓은 감격어린 어조로 이렇게 말을 하였다.
"돈은 못 받겠고,
보살같은 아주머니의 인정만은 고맙게 받아 가지고 떠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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