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시인 김삿갓/김삿갓

동기 유지를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오토산 2022. 2. 6. 06:41

김삿갓 100 -
[율곡, 童妓(동기) 柳枝(유지)를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술집 무하향을 나온 김삿갓은

구월산을 향해 가면서 웬일인지 마음이 지극히 허전하였다.

그런 탓 인지 주위의 산천 경계를 아무리 살펴보아도 감흥이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왜 이럴까.

호주머니에 돈이 한 푼도 없다고 마음이 이토록 심란해 진 것일까?)

​돌아보건데 어제 보던 산천 초목이 하룻밤 사이에 달라졌을 리가 만무하다.
산도 어제 보던 그 산이요, 물도 어제 흐르던 그 물이다.

​어제만 해도 그처럼 아름다워 보이던 산천 초목이었지만,

오늘따라 아무런 감흥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오직 호주머니가 비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었다.

​김삿갓은 몇 푼 안 되는 돈 때문에

심리적으로 위축을 느낀 자신의 인격이 치사스럽게 여겨져 견딜 수 없었다.

 

(아, 김삿갓이라는 자가 이렇게 치사스러운 인간이던가?

그런 주제에 어떻게 방랑 걸인으로 주유 천하를 하겠다고

장담하고 나섰더란 말인가?)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길가에 앉아 한참을 궁리하던 김삿갓은

마침내 자리에서 툴툴 털고 일어섰다.

 

​(그래! 

무하향을 떠나올 때 주모에게 말을 한 것처럼

전대에 들었던 돈은 내 돈이 아니었어!

돈이란 본디, 돌고 도는 것 아니던가?

영원한 내 것도 없고, 영원한 남의 것도 아니지...)

​김삿갓의 생각이 이에 이르자 마침내 마음이 가벼워졌다.

김삿갓이 黃州. 鳳山. 信川. 安岳 등을 거쳐, 九月山이 있는

은률 땅으로 접어들었을 때는 계절은 어느새 봄과 여름을 지나 가을이었다.

​황해도는 워낙 가는 곳마다 山紫水明(산자수명)하여

이를 두루 살펴보다 보니 걸음이 더뎠던 것이다.

​구월산은 황해도의 주봉을 이루는 명산이다.

그 주변에는 신천, 안악, 은률, 文化, 豊川, 松禾, 長淵, 長連 등 등...
많은 고을이 산재하여 있는 것만 보더라도

구월산이 황해도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산이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어디 그뿐이랴?

史書에는 우리 배달의 민족의 시조인 桓因, 桓雄, 檀君 등은

구월산에서 태어나셨다는 설도 전해 온다.

 

[보탬: 이는 사실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이 지역에 이런 전설이나, 유물 유적들이 많이 나타나는 이유는

황하중류 중심의 아시아 대륙의 정세가 내부적으로 통일되어 안정이 될 때마다,

특히 한나라 무정기에 들면서 북방민족들에 대한 대대적인 정벌이 시작되었고,

​그 정벌전쟁에서 쫓긴 무장세력인 북방민족들이

한민족(환인, 환웅, 단군 등) 발생지인 요하지역으로 넘어 들어오면서

단군조선의 주력들이 동쪽으로 동쪽으로 이동(4천리)해 오게 되는데

​이때 만주를 거쳐 한반도의 중부지역인 황해도 일대에

환인, 환웅, 단군으로 이어지는 우리의 조상들의 주력이 정착하면서

그곳에 우리 민족의 독특한 문화유적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고
​환인, 환웅, 단군의 탄생설화나 단군릉 등 유적들도

후손들에 의해 만들어 졌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처럼 우리 민족의 시작과 관련이 있다고 전해오는

구월산에는 많은 巨石문화 유적들이 널려 있다.

 

김삿갓은 구월 산성에 올라가 보았다.

성의 형태와 구조가 여간 절묘하지 않다.
거석으로 쌓아 올린 성의 모양은 커다란 배와 같은데,

둘레가 1만 5천 척에 높이가 15척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산성이었다.

​성안에는 수목이 울창하고,

여러 갈래의 물이 성밖으로 흘러 나갈 때에는

물줄기 가 하나로 모여서 거창한 폭포를 이루고 있는 것은 장관이 아닐 수 없다.

​단풍이 무성한 산길을 걸어 성안으로 들어와 보니,

구월산 상상봉이 아득한 하늘가에 높이 솟아 있어 보인다.

그리고 산 꼭대기에는 단군 시대의 天祭檀도 있었다.

​김삿갓은 다행하게도 구월산이 가장 아름다운 계절,

가을철에 찾아왔기 때문에 실감나는 구월산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황해도 땅에 발을 들여놓았으니 海州를 구경하지 않을 수 없어,

이번에는 발길을 해주 쪽으로 돌렸다.

​해주 고을에 발을 들여놓자,

무엇보다도 김삿갓의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巨儒 李栗谷과 童妓 柳枝와의 戀情 설화였다.

​이율곡이 말년에 황해 감사로 와 있을 때,

유지라는 동기를 사랑한 일이 있었다.
​유지는 열세 살밖에 안 되는 동기였지만,

그녀 역시 율곡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사모하였다.

​그러나 율곡은 몸이 몹시 쇠약한데다가,

유지의 나이가 너무 어려 두 사람은 서로 사랑을 하면서도 몸은 범하지 않았다.
​사랑하면서도 범하지 못할 형편이었으니 율곡의 심정은 어떠했을 것인가?
율곡이 유지를 두고 읊은 시를 보면 그간의 심정을 족히 가름할 수 있다.

​弱質羞低首 (약질수저수)     
어린 몸 수줍은 듯 고개 수그려

​秋波不肯回 (추파불긍회)
추파를 보내도 받아들이지 못하네

​空聞波濤曲 (공문파도곡)
마음은 부질없이 설레건만

​未夢雲雨臺 (미몽운우대)
운우의 정은 풀지 못했네.

​爾長名應檀 (이장명응단)
너는 자라서 이름을 떨칠 것이나

​吾衰闔己閉 (오쇠합기폐)
나는 너무도 늙어 사내가 아니로다

​國香無定主 (국향무정주)
미인에게는 정한 임자가 없는 법

​零落可憐哉 (영락가련재)
장래에 영락할 것이 가련하구나

​노쇠한 선비와 앳된 동기와의 맺어질 수 없는 사랑은 애간장이 타는 일이었을 것이다.
​율곡은 동기 유지를 두고 이렇게도 한탄 하기도 하였다.

​天姿綽約一仙兒 (천자작약 일선아)
타고난 그 자태 선녀처럼 아름다워

​十載相知意能多 (십재상지 의능다)
사귄지 십 년에 사연도 많았는데

​不是吾兒腸木石 (불시오아 장목석)
너도 나도 목석은 아니건만

​只緣衰弱謝芬華 (지연쇠약 사분화)
다만 몸이 쇠해 사양했을 뿐이로다.

​이렇게 율곡이 유지를  지극히 사랑을 하면서도,

 자신의 몸이 약해 가까이 하지 못한 것은

사내로써는 너무나도 지독한 비극이었던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