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시인 김삿갓/김삿갓

부처님 같은 김삿갓, 보살 같은 주모

오토산 2022. 2. 6. 06:40

김삿갓 99 -
[부처님 같은 김삿갓, 보살 같은 주모]

​김삿갓과 주모는 그 말을 듣자 배꼽을 움켜잡고 웃었다.

 

"하하하,

두 마누라를 한 집에서 거느린다는 것은 보통 예삿일이 아닌가 보구려."
​주모도 웃어가며 덩달아 말한다.

 

"호호호,

이왕이면 공평 무사하게 큰마누라도 죽여 주지 그랬어요?"

​"에이 여보시오,

내가 물개인 줄 아시오?"

 

그 소리에 방안에는 또다시 웃음판이 벌어졌다.
​김삿갓이 백종원에게 물었다.

 

"그래, 작은 마누라 배 위에 엎어져 있던 노형의 뒷 덜미를 낚아 채

자기 먼저 죽여 달라는 큰마누라는 어찌 하셨소?"
​그러자 백종원은 손을 휘휘 내 저으며 대답한다.

 

"다 늙어빠진 마누라를 무슨 재미로 죽여 주오?

큰마누라한테 도대체 흥미가 없어,

부득이 작은마누라를 얻어 오게 된걸요."
​그러자 주모가 정색을 하며 백종원을 나무란다.

 

"그건 너무 하시우.

작은마누라만 죽여 주고 큰마누라는 돌아보지도 않게 되면

큰마누라가 얼마나 원통 하겠어요?"

​"워낙 많이 써먹어서 온통 닳고 닳아

더는 못 쓰게 되어 버린 걸 어떡하냐는 말이오."
​주모가 화를 내며 말한다.

 

"모르는 소리 그만 하시오.

여자는 화로와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해요.

​화로는 평소에는 냉랭하지만 숯불을 활짝 피워 주기만 하면

언제든지 뜨겁게 달아 오르는 법이에요."
​김삿갓은 주모의 말을 듣고 손뼉을 치며 웃었다.

 

"하하하, 주모!..

남자가 화로와 같다는 소리는 들어 보았으나,

여자가 화로 같다는 말은 생전 처음 듣는 말이오."
​그러자 주모와 백종원이 거의 동시에 김삿갓에게 물었다.

 

"남자를 어떻게 화로에 비교한다는 말이오?"
​김삿갓은 빙글빙글 웃으며 대답했다.

 

"지금 부터 내가 남자의 性情을

 연령별로 불에 비유해 볼 테니 잘 들어 보시오."
​그러면서 김삿갓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20대 남자는,

"장작불" 경험이 많지 않아 빨리 타고 쉽게 꺼진다.

​30대 남자는,

"연탄불" 경험도 적당히 쌓여서 제법 오래 탄다.

​40대 남자는, "담뱃불"
불은 불인데, "쪽쪽" 빨아 줘야 겨우 불 같이 보인다.

​50대 남자는, "화롯불"
속을 헤쳐서 찾아 보아야 겨우, 불을 발견 할 수 있다.

​60대 남자는, "번갯불"
불은 불인데, 쓸 수 없는 불 이다.

​70대 남자는, "반딧불"
불도 아닌 것이 불 인 척 한다.

​"하하하하...

호호호호..."

 

김삿갓의 말이 끝나자 백종원은 대굴대룰 구르며 배를 움켜 잡았다.
주모 또한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허리를 굽혀 배꼽을 잡았다.

"노형도 대단하시오!

자! 내 술 한 잔 받으시오."

 

백종원은 기분 좋게 웃으며 김삿갓에게  술잔을 내밀었다.
​이렇게 잡담을 한없이 주고 받다 보니 어느덧 날이 저물었다.

잠자리가 걱정 된 김삿갓이 주모에게 부탁을 했다.

 

"주모!

나 오늘밤 이 집에서 좀 자고 갈 수 없겠소?"
​그러자 주모가 대답한다.

 

"방은 하나밖에 없어서 안 되겠고,

술청이라도 괜찮다면 자고 가시구료."
​김삿갓은 좋은 방 나쁜 방을 가릴 형편이 못된다.

 

"술청이라도 좋으니 재워 주기만 하시오.

그런데 술값은 얼마죠?

우선 술값부터 치루고 봅시다."

김삿갓은 주모의 말대로 전대 속에서 돈을 꺼내 주었다.
​백종원은 김삿갓의 전대 속에 돈이 두둑이 들어 있는 것을 보는 순간,
눈 빛이 이상하게 희번덕 거렸다.
​그러나 김삿갓은 그런 눈치를 채지 못하고 백종원에게 말을 건넨다.

 

"노형도 집에 돌아가 보았자 어느 마누라도 환영해 줄 것 같지 않으니,

오늘밤은 차라리 여기서 나하고 같이 자는 것이 어떻겠소?"
​백종원은 그 말을 듣기 무섭게 뒤로 훌렁 자빠져 버린다.

 

"아닌게 아니라,

마누라 등쌀에 나도 갈 데가 없는 몸이오."

​"마누라가 둘씩이나 있으면서 갈 데가 없다니,

그야말로 졸지에 처량한 신세가 되었구료."

​"그러니까

나도 여기서 자고 가야 되겠소."

"잘 생각하셨소.

서방 귀한 줄을 알게 하려면 가끔 외박도 필요한 것이라오."

 

​김삿갓은 그런 농담까지 해가며 등잔을 끄고 누워 버렸다.
새벽 어스름한 시각에 김삿갓은 웬지 몸이 서늘해 오는 기분이 들어 눈을 떠보니,

옆에서 자고 있던 백종원이 보이지 않았다.

​"응?

이 사람이 어딜 갔을까?"

이상한 예감이 들어 허리를 만져 보니,

간밤에 분명히 허리에 차고 있던 전대가 없어졌다.

 

(앗! 이 사람이 돈을 훔쳐 가지고 달아났단 말인가?)

​그러나 김삿갓은 백종원이라는 친구가

전대를 훔쳐 갔으리라고는 믿고 싶지 않았다.

(어젯밤 술까지 나눠 먹은 그 친구가

설마 돈을 훔쳐 가기야 했을라구!)

 

김삿갓은 그런 생각이 들어 이 구석 저 구석으로 전대를 찾아 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도 전대는 보이지 않았다. 더우기 의심스러운 것은

백종원이 새벽에 감쪽같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제 알고 보니 ,

그 친구는 아주 몹쓸 사람이구나.)
혼잣말로 투덜거리고  있노라니, 주모가 방문을 열고 내다 보며 묻는다.

​"손님은 아까부터 무엇을 찾고 있어요?
무언가 없어진 게 있어요?"

​"허리에 차고 있던 전대가

간밤에 감쪽같이 없어졌군요."
그 소리에 주모는 깜짝 놀라며,

 

"에구머니 !

전대가 없어지다뇨?"
​그리고 사방을 두루 둘러보다

 

"같이 자던 백씨라는 사람은 어디 갔어요?"하고

묻는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없어졌군요."

"옛?

그렇다면 전대는 그 사람이 훔쳐 간 것이 분명해요.

​어쩐지 인상이 좋지 않은데다,

큰마누라가  어쩌니 작은마누라가 어쩌니 하면서

씨가 먹히지 않는 허풍을 떠는 것이 수상하다 싶더니

역시 그 놈이 도둑놈이었군요.

그런 놈을 내 집에서 재웠으니 아이 무서워라."하면서

주모는  몸서리 조차 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이러나 저러나 돈을 몽땅 도둑맞았으니 어떡하죠?"하고

걱정의 말을한다.

​"돈 좀 없다고 죽기야 하겠어요.

본디 사람이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인생일진데,

그 친구가 그런 것을 모르고 인정머리 없이 도둑질을 했으니

나는 잃어 버린 돈이 아쉽다기 보다도

인정을 배반한 그 친구의 소행이 슬프기만 할 뿐이오."

"​돈을 몽땅 잃어버리고 나서도 부처님 같은 소리만 하고 계시네요..

빨리 관가에 가서 고발을 하세요

. 그런 놈은 당장에 잡아다가 물고를 내야 해요."

​"고발을 한다고 그 친구가 쉽게 잡히리오?

또, 잡아서 물고를 내게 한들 뭐 하겠소?"
​그러자 주모가 한마디 더하는데

 

"관가에 고발도 안 하겠다.

돈은 한 푼도 없겠다.

앞으로 어떡하실 생각이에요?"

​"어떡하긴 무얼 어떡하오.

그 돈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그 친구였어요.

그러니까 그 친구가 가져가 버린 것이 아니겠어요?"

​"이 양반 듣자 하니,

계속 부처님 같은 소리만 하고 있네!"

 

주모가 은근히 비아냥거리는 소리를 한다.
​김삿갓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부처님 이고 보살님이고 간에,

주모에게 부탁이 하나 있소이다."

​"무슨 부탁인데요?"

"내가 돈은 없어도 길을 떠나기 전에 아침을 먹어야 하겠소.

도와주는 셈치고 아침이나 한 그릇 공짜로 먹여 주시오."

​"손님은 참말로 딱한 양반이시네.

내 집에서 자고 난 손님을 설마 굶겨서 보낼까 봐 걱정이세요?

곧 아침을 지어 올 테니 편히 앉아 기다리세요."

​이렇게 아침을 얻어먹은 김삿갓이 다시 길을 떠나게 되자,

주모가 얼마간의 돈을 내밀며 말한다.

​"이거 몇 푼 되지 않지만 가지고 떠나세요.

길을 떠나려면 돈이 전혀 없어서는 안되는 것이에요."

​김삿갓은 주모의 인정에 눈시울이 후끈 달아올랐다.

남의 돈을 훔쳐간 친구에 비하면 얼마나 고마운 인정인가.
김삿갓은 감격어린 어조로 이렇게 말을 하였다.

 

"돈은 못 받겠고,

보살같은 아주머니의 인정만은 고맙게 받아 가지고 떠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