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三國志) .. (373)
조진(曺眞)은 진창(수렁)에서 살아날 것인가
왕쌍(王雙)은 조진의 계획대로 군사를 끌어 모아
진창성(陳倉城)의 학소(郝昭)를 찾아갔다.
"호위장군(虎威將軍) 왕쌍이 인사드립니다."
왕쌍은 학소를 만나자 수인사를 건넸다.
"무슨 일인가?"
학소의 대답은 지극히 사무적이었다.
"대도독께서 장군에게
거병하여 촉군의 뒤를 치라고 하셨습니다."
"어느 대도독 말인가?"
"그야 물론 조진 대도독이죠."
"그렇다면 명을 받을 수 없네."
"어째서죠?"
"조정에서 나에게 진창을 지키라는 명을 내렸네.
그러니 지금은 병사들을 함부로 움직일 수 없네."
학소의 거부는 똑부러졌다.
그러자 왕쌍은 품 안에서 대도독 병부를 학소 앞에 꺼내 놓았다.
"보십시오.
천자께서 대도독께 내린 병부입니다.
병부는 천자와 같지요.
명을 받지 않으면 제가 장군을 죽이지 않아도
훗날 대도독께서 장군을 죽일 겁니다."
학소는 왕쌍이 내놓은 병부를 보는 순간 얼굴이 굳어졌다.
아니, 외면하고 싶어졌다.
그에 비해 학소를 다그치는 왕쌍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넘쳐났다.
"재고해 주시죠.
현재 군 통솔자는 조진 대도독이란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왕쌍이 다시 한번 학소를 다그치자 ,
"병력 절반을 남겨주면 나는 여기에 남아 이곳을 지킬 것이니
나머지 병력은 장군이 가져가 계획대로 촉군을 추격하게."
학소가 즉석에서 타협책을 제시하였다.
"아니...?"
왕쌍이 학소의 대답에 불만을 갖고 힐난할 자세를 취하자,
곧바로 학소의 대답이 튀어 나온다.
"그게 싫으면 딴 방법도 있지."
"그게 뭡니까?"
"날 죽이는 걸세."
학소가 이렇게 대답하는 순간 학소의 측근 장수들은 일제히
허리에 차고 있는 장도(長刀)를 칼집에서 절반 쯤씩 뽑아 내었다.
여차하여 왕쌍이 대도독 병부를 이용하여 실력행사를 하려 한다면
학소의 진영에서는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항거의 표시였다.
그러자 왕쌍이 대항 차원에서 절반 쯤 뽑았던 칼을 도로 집어 넣으며,
"좋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병력의 절반을 내주십시오."하고,
학소의 타협책을 수락하였다.
이렇게 왕쌍이 진창성을 수비하고 있던 병사의 절반을 빼내
촉군의 뒤를 추격에 나서고 얼마가 지난뒤,
진창성 성주(陳倉城 城主) 학소에게 긴급한 보고가 올라온다.
"장군, 장군!
큰일 났습니다!
촉군이 성으로 들어왔습니다!"
"무엇이?
성문이 닫혀 있는데 촉군이 어찌 들어올 수가 있단 말이냐?"
"적군이 아군의 갑옷을 입고
장군의 깃발을 들고있는 바람에 성문을 열어줬습니다."
"적군이 그것들을 어찌 구했단 말이냐?"
"장군께서 왕쌍에게 병력 절반을 주셨잖습니까!"
보고병이 여기까지 말했을 때,
새로운 보고병이 달려든다.
"장군!
왕쌍이 매복에 걸려들어 위연의 손에 죽었고
병사 십만 명 중 절반을 잃었습니다.
게다가 적장 강유가 성에 들어왔습니다."
"그렇다면 맞서 싸우자!"
"장군,
늦었습니다.
촉군 오만 명이 성안으로 들어왔는데, 아군은 이만이 채 안됩니다.
더구나 각 요지는 이미 무너져 버렸습니다. "
"이...이...잇...!"
보고를 받고 얼굴이 일그러진 학소가
장도(長刀)를 뽑아 책상을 갈랐다.
그리고
"으흐흐흑...!
사마대인, 정말 죄송합니다."하고,
낙양을 향하여 무릎을 꿇고 하늘을 우러러 장탄식을 하였다.
그리고 그때,
문밖에서 적군이 몰려오는 낌새를 알아차린 학소는
그 자리에서 장도를 뽑아, 자신의 목에 돌려대고 말았다.
"어...엇?"
"장군, 장군! "
얼마후 위군 대도독 조진(魏軍 大都督 曺眞)의 군막에는
촉군 추격에 나섰던 조진의 아들 조상(曺相)이 피투성이가 된 채로 나타났다.
"아버님, 아버님...
촉군의 매복에 당해 참패했습니다."
틀림없이 승리할 기회라고 여기고 보낸 추격군이
촉군에게 참패를 당했다는 어이없는 소식을 듣자,
조진은 넋을 잃고 말이 없었다.
그렇게 잠시 침묵의 시간이 지난 뒤 조진이 무거운 입을 열었다.
"아들아,
이 아비 때문에 고생했구나.
왕쌍은? 왕쌍은 어찌 되었느냐?"
조진은 아들의 패전소식을 듣자,
나머지 희망을 걸어 볼 소식이라곤 왕쌍의 승전보 뿐이었다.
그리하여 아들을 격려하는 말중에 왕쌍의 소식만은 격한 어조로 급히 물었다.
조상이 고개를 흔들며 대답한다.
"왕쌍은 매복에 걸려 위연과 싸우다 전사했고,
십여만 병력중 절반을 잃었습니다.
흐흐흑!"
"끝났군...!
끝났어..."
조진은 무대 위의 배우가 독백을 하듯 혼자서 중얼거렸다.
그러면서,
"아, 아!
이제 무슨 낯으로 폐하를 뵙는단 말이냐..."하고,
이어서 중얼거리자
조상이,
"진창성으로 갈까요?
거기는 학소가 잘 지키고 있지 않았습니까?"하고,
말하니,
"얘야,
진창인들 무사했겠느냐...?"하고,
조진이 대꾸하는 중에 부도독 곽회가 달려 들어오며 보고한다.
"대도독, 대도독!
촉군이 아군의 깃발을 들고 진창성으로 들어갔습니다.
진창을 잃자 학소는 자결했다 합니다."
연이어 절망적인 보고를 받은 조진은
마치 자신이 그 말들을 잘못 들었다는 듯이 눈을 감은 채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 보였다.
그리고 이내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을 인정했다.
"그럴 줄 알았다...
이미 예상한 일이야.
이젠 촉군은 군량 걱정없이...
완전히 대세가 기울었구나.
대세가 기울었어..."
이렇게 조진이 처절한 패배를 뇌는 가운데
아들 조상이 분연한 어조로 말한다.
"아버님,
아직 남은 병력이 좀 있으니
잘 막아낸다면 만회할 수 있을 겁니다."
"아니야. 아니다.
얘야. 아들아,
이 애비는 대도독이 되어 전쟁에 나설 때마다 번번히 패전했다.
그래도 내가 숙부이기에 폐하께서는 날 어쩌지 못하셨지...
허나 이번에는 다르다. 진창을 잃었으니
옹양이 위험하고 옹양마저 잃으면 이 나라는 끝인데...
폐하께서 어찌 날 용서하겠느냐...!
애야,
아비는 이렇게 처음으로 참수당하는 대도독이 될 것이다.
으흐흐흑!"
이렇게 말하는 조진의 절망감은 극도에 달했다.
"고정하십시오."
장군 곽회가 조진을 진정시키며 앞으로 나섰다.
그러면서,
"아직은 만회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하고,
입을 여니 조진의 눈이 반짝 빛났다.
그리하여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곽회,
무슨 방법이 있는가?"하고,
반색을 하며 물었다.
그러면서,
"나를 이 위기에서 구해주면 ..
내가 가진 모든 것 중에..."라고,
말하면서 무엇이든지 좋은 것이 눈에 띄기라도 하면
곽회에게 줄 듯이 두리번 거렸다.
곽회의 말이 이어진다.
"폐하께 갑자기 병이 났다고 상소를 올리고
사마의에게 제갈양을 상대하게 하십시오."
"병권을 넘기라고?"
조진이 못마땅한 얼굴이 된다.
"대도독!
지금이 어느 때인데 병권에 연연해 하십니까?
사마의가 간악한다 한들 위의 신하입니다.
허나 제갈양이 중원을 차지하면 우리 위나라는 멸망하고 말 겁니다."
"멸망한다고?
그래. 그렇군.
그 생각을 못했어...
허나 나는 십만 여명의 군사를 잃었으니
폐하의 처벌을 면하기는 어려울 것이네."
"그건 염려 마십시오."
"어째서?"
"보십시오.
공자께서 제갈양과 싸우다가 팔이 부러지고 피투성이가 되었습니다.
지금 이 상태 그대로 상소문을 가지고 낙양으로 가서 폐하를 뵙도록 하십시오.
폐하께서는 피투성이가 된 공자를 보고 대도독을 처벌하지 못할 것입니다."
곽회는 전투로 부상을 당하여 몰골이 말이 아닌
조상과 조진을 번갈아 보며 말하였다.
"그래, 그래...
곽회의 말을 듣고 보니,
이 아비를 살릴 사람은 너 뿐이구나!"
조진은 눈물 젖은 눈으로 아들을 건너다 보며
수렁(진창)에서 빠져나온 얼굴이 되었다.
374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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