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三國志) .. (402)
중원 진출을 노리는 강유
사마의는 눈엣가시였던 조상을 물리친 후,
본인은 물론이고 두 아들까지 모두 나랏일을 맡아보며
위주 조방의 신뢰를 얻고 있으니 남부러울 것이 없어 보였다.
그렇지만 사마의의 마음에는 여전히 불안이 자리하고 있었다.
'조상의 일문을 멸족시켰으나
그 친족이 남아 있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하후패...... 그를 어찌하는 것이 좋을까?'
사마의는
옹주(雍州)에 있는 정서장군 하후패(征西將軍 夏侯霸)가 계속 신경 쓰였다.
그는 조상의 친족이라 혹여 변란이라도 일으키면
골치깨나 썩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사마의는 걱정의 싹을 자르고자
하후패를 불러들여 미리 처치해버리기로 마음 먹었다.
옹주에서 조용히 지내던 하후패는 사마의의 명이 도착하자 깜짝 놀랐다.
그렇지 않아도 대장군 조상의 일족이 멸족된 것에 불안함을 느끼고 있었는데
자신을 서울로 불러들이는 의도가 무엇인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 까닭없이 나를 부르는 것인가......?
틀림없이 나를 제거하려는 음모다!
앉은 자리에서 당할 수는 없지.
난 나와 내 가족의 목숨을 지켜야겠다!'
마침내 하후패는 군사 삼천 명을 이끌고 반란을 일으켰다.
그때 마침 옹주 자사로 있던 사마의 측의 인사 곽회(郭淮)는
하후패의 반역을 알자마자 즉시 군사를 거느리고 출동했다.
곽회는 말을 몰아나가며 하후패에게,
"너는 대위(大魏)의 황족으로
천자께 후한 대접을 받아왔는데 어째서 반역을 일으키느냐!"하고,
소리친다.
하후패도 지지 않고 호통을 친다.
"내 아버지(하후연)께서는
나라에 큰 공을 여러 차례 세우신 몸이다!
그런데 사마의 이놈은 그 공도 모르는 것이냐!
나의 형 조상 일족을 몰살하더니
그것도 모자라 이제 나까지 죽이려는 것이냐?
사마의는 제위를 찬탈하려는 흑심을 품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내가 역적을 치겠다는데 그것이 반역인 것이냐?"
하후패의 말을 듣고
곽회는 크게 노하여 창을 비껴들고 하후패에게 달려든다.
하후패 또한 칼을 뽑아 들고 곽회에게 맞선다.
두 사람이 맞붙은지 십 합도 못 되어 곽회가 패해 달아나기 시작한다.
하후패가 곽회의 뒤를 부지런히 추격하는데,
갑자기 후군 진영에서 커다란 함성이 울린다.
하후패가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말머리를 돌려 되돌아 가려는데,
진태(陳泰)가 앞을 막아 선다.
앞은 진태, 뒤는 곽회가 하후패의 군사를 압박해 온다.
둘의 협공에 하후패는 제대로 된 공격도 하지 못하고 도망친다.
곽회와 진태의 추격을 따돌리고 남은 군사들을 돌아보니
하후패는 한숨밖에 나오지 않았다.
삼천 군사 중 절반 정도만이 남은 것이었다.
궁지에 몰린 하후패는 생각 끝에 한중 땅으로 들어가
촉나라에 투항(投降)하기로 결심하였다.
하후패의 투항 소식은 강유(姜維)에게 보고되었다.
강유는 선뜻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하후패는 위나라의 명장이자 황족 출신이 아닌가,
그런 인물이 어찌하여 적국에 투항을 하는가?'
그래서 하후패에게 바로 성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그리고 사람을 보내 상세한 내막을 알아보게 했다.
사정을 전해들은 강유는 마침내 하후패 일행에게 성문을 열어 주었다.
하후패는 통곡을 하며 강유에게 절을 하고 그간의 일을 세세히 고했다.
강유는 좋은 말로 하후패를 위로한다.
"옛날에 미자(微子)는
주(周)나라로 가서 불후의 명성을 떨치지 않았소?
(미자는 상(商)나라 주왕의 형으로,
아우인 주왕의 포악함을 간했으나,
아우가 말을 듣지 않자 상나라를 떠나,
후에 상나라를 멸망시킨 주(周)나라의 작위를 받았다)
이제 하후 공께서도 한실(漢室)을 다시 일으키게 되었으니
옛사람에게 부끄럽지 않은 인물이 될 것이오."
강유는 하후패를 환영하는 잔치를 베풀어 후하게 대접해 주었다.
술자리에서 강유가 하후패에게 늘상 궁금했던 것을 슬며시 묻는다.
"사마의 부자 손에 권력이 모두 들어갔는데
혹시 우리 촉을 넘보고 있는 것은 아니오?"
"그 늙은 도적놈은
지금 반역할 방도를 궁리하느라
다른 일에 신경쓸 여력이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위나라에는 새로운 인재 두 사람이 있는데,
이들이 군사를 거느리게 된다면 촉과 오에 위협이 될 수도 있겠지요."
위나라에 새로운 인재가 등장했다는 소식에
강유가 들고 있던 술잔을 내려 놓으며 묻는다.
"새로운 인재의 등장이라......
그 두 사람은 어떤 인물들이오?"
"한 사람은 현재 비서랑(秘書郞)을 지내는 종회(鍾會)입니다.
자(字)는 사계(士季)인데,
선제(先帝) 당시에 태부(太傅)를 지낸 종요(鍾繇)의 아들로,
어릴 때부터 담력과 지혜가 뛰어나서 문제 조비에게 총애를 받고 자랐습니다.
병서를 두루 읽어 병법에도 밝아서 사마의와 장제가
그의 능력을 인정해주고 있습니다.
또 다른 인물 하나는 현재 인리(掾吏) 일을 보고 있는 등애(鄧艾)입니다.
자는 사재(士載)이고, 어려서 아버지를 잃어 천하를 떠돌아 다니며
독학으로 용별술을 익혔습니다.
그래서 지형에 아주 밝아,
어디를 가든 공격할 곳과 수비할 곳,
매복할 곳을 기가 막히게 찾아냅니다.
그 역시 사마의에게 인정을 받고 있으니
그가 군사에 중요한 인물로 쓰이는 것은 머지 않은 일입니다."
하후패의 말을 듣고 강유가 피식 웃는다.
"하후 공 같은 명장이
그럴 젖비린내 나는 것들을 염려하시는 것이오?
그까짓 어린 애들이 뭐가 무섭겠소?"
하후패의 의중과 위나라의 현재 상황을 모두 알아본 강유는
마침내 하후패를 데리고 성도로 들어가서 후주를 뵙게 했다.
강유가 후주에게 아뢴다.
"사마의가 조상 일문을 멸족시키고,
이제 그 친척인 하후패마저 죽이려고 하여
하후패가 우리에게 투항해왔사옵니다.
위나라는 지금 사마의 부자가 정권을 장악하고 있고,
위주 조방은 나이가 어리고 나약하여
위나라의 미래가 위태로워 보입니다
신은 그동안 한중에서 여러 해 동안 군사들을 훈련시키고,
군량을 넉넉하게 비축하였으니,
이제 하후패를 향도관(嚮導官, 길을 안내하는 사람)으로 삼아
중원을 취하고 한실을 중흥함으로써 폐하의 넓으신 은혜에 보답하고자 하오며,
제갈 승상의 유지(遺志)를 마무리 지을까 하옵니다."
강유의 말에 후주는 대답이 없고
곁에 있던 상서령 비위(尙書令 費褘)가 나서서 말을 한다.
"근자에 장완(蔣琬), 동윤(董允)과 같은 중신이
세상을 떠나서 내정을 다스릴 인재가 없소.
백약(伯約: 강유의 자(字))께서는 함부로 움직이지 마시고
때를 기다리심이 좋을 것이오."
강유가 말한다.
"그렇지 않소.
인생은 금방이오.
이대로 세월을 흘려보냈다가는 어느 세월에 중원을 회복하겠소?"
"손자병법에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 백 번 이긴다(知彼知己百戰百勝)'고
하지 않았소?
승상도 중원을 회복하지 못하였는데
재주가 승상보다 훨씬 못한 우리가 무슨 수로 중원을 회복하겠소?"
간곡한 비위의 만류에 강유는 단호하게 대답한다.
"나는 농상(隴上) 땅에서 오래 살았소.
그래서 강족(羌族) 사람들의 마음을 잘 알고 있소.
우리가 강인들과 동맹을 맺는다면
설령 중원을 회복하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농서(隴西) 땅은 쉽게 차지할 수 있을 것이오."
강유와 비위의 토론을 잠자코 듣고만 있던 후주 유선은
결단을 내리고 강유에게 말한다.
"경이 위나라를 정벌하기로 마음을 먹었으니,
충성과 힘을 다하시오.
반드시 군사의 사기를 떨어뜨리지 말고
짐의 기대를 저버리지 마시오."
"알겠사옵니다!"
강유는 결의의 찬 대답을 한 후,
조칙을 받들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하후패를 데리고 한중으로 돌아간 강유는
제장들을 불러모아 위를 칠 대략적인 계획을 설명했다.
"우선 강족에 사자를 보내서 동맹을 맺고
서평(西平)으로 나아가서 옹주(雍州)에 접근하기로 합시다.
선발대가 먼저 국산(麴山) 기슭에 성을 두 군데 쌓아
서로 지원 태세를 갖추도록 한 후,
본대는 군량과 마초를 천구(川口)로 수송하여
제갈 승상의 옛 전법대로 진군하겠소."
강유의 계획은 그해 팔 월에 시작되었다.
강유는 먼저 장수 구안(句安)과 이흠(李歆)을 국산에 선발대로 보냈다.
각각은 만오천의 군사를 이끌고 동과 서로 나뉘어 성을 쌓고 지키게 되었다.
촉군의 동향은
위나라의 정탐꾼에 의해 옹주 자사 곽회에게 금세 알려졌다.
곽회는 이 사실을 곧바로 낙양에 보고하고,
부장 진태에게 오만 군사를 주어 국산의 촉군과 맞서게 했다.
진태가 이끄는 위군이 공격해오자
성 안에 있던 구안과 이흠도 군사를 거느리고 나와 맞서 싸웠다.
하지만 워낙 군사의 수가 열세인지라 위군을 당해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구안과 이흠은 할 수 없이 군사를 거두어 성 안으로 들어가
방어에만 힘쓸 수밖에 없었다.
진태는 기세를 몰아서 구안과 이흠의 성을 에워싸고 공격하면서
한중으로 통하는 촉군의 보급로를 끊어 버렸다.
구안과 이흠은 성 안에 갇혀서 군량 부족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
진태에 이어 곽회도 직접 군사를 거느리고 국산에 도착했다.
곽회가 국산의 지형을 훑어 보더니,
"저 성들은 높은 산 위에 있으니 필시 물이 부족할 것이네.
우리가 골짜기 상류를 막으면 성 밖으로 물을 길러 나와야겠지.
저렇게 성을 지키고 있다가는 촉병들이 모두 목이 타서 죽을 것이야."하고,
말하고는 군사들을 시켜 상류에 둑을 쌓아 물길을 끊어버렸다.
곽회의 예상대로 성 안은 물이 말라 버렸다.
참다 못한 이흠이 먼저 물을 구하러 성문을 열고 나왔으나
곽회의 군사들이 적군들을 가만히 둘 리가 없었다.
이흠도 죽기를 각오하고 달려들어 싸웠으나
곽회군의 포위망을 뚫지 못하고 성 안으로 쫓겨 들어갔다.
구안의 성도 물이 부족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구안과 이흠이 병사들을 하나로 합쳐
일제히 위군의 포위망을 뚫어 보려고도 하였으나,
군사의 수적 열세가 갑자기 극복될 리가 없었다.
오랜 격전으로 힘만 빼고 다시 성으로 쫓겨 들어갔다.
구안과 이흠의 군사들은 모두 기근과 기갈에 견딜 수 없어했다.
구안이 이흠에게 말했다.
"강도독의 본대가
아직까지 도착하지 않으니 무슨 일인지 모르겠소."
고통에 시달리는 군사들을 보다 못한 이흠은
구안의 말을 듣더니 벌떡 일어나서 말한다.
"안되겠소!
내가 목숨을 걸고라도 나가서 구원병을 청하고 와야겠소."
뾰족한 수가 없기 때문에 구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흠은 기병 수십 명만을 이끌고 성 밖으로 돌진해 나갔다.
위군들이 일제히 달려 들었으나
이흠 또한 사생결단으로 나아가서 간신히 포위망을 벗어났다.
하지만 간신히 위군의 틈을 빠져나온 이흠의 몸은 만신창이었다.
함께 나왔던 군사 수십 명은 전멸했다.
당장이라도 치료를 받지 않으면 목숨이 위태로울 상황이었지만
함께 성 밖으로 나왔다가 목숨을 잃은 군사들을 생각하면
이흠의 의지는 더 불타올랐다.
서둘러 말의 고삐를 틀어쥐고
서산 샛길을 따라 강유의 본대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이흠이 구원병을 청하기 위해 혼자서 고군분투하는 사이에
갑작스럽게 폭설이 내렸다.
굶주림과 목마름에 넋을 놓고 있던 성 안의 군사들은
내리는 눈을 받아 먹으며 기뻐했다.
눈을 녹여서 물을 만들어 갈증을 풀고, 밥도 지어 먹었다.
이흠은 이틀이나 길에서 헤맨 끝에 마침내 강유의 본대를 만났다.
이흠은 거의 말에서 굴러떨어지듯이 내려서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강유에게 아뢴다.
"국산에 있는 두 성은 위군에게 둘러싸여 물길과 보급로가 끊어진지 오래입니다.
다행이 엊그제 큰 눈이 내려 아마 고통받던 군사들이 간신히 갈증을 풀었을 것입니다.
하루하루 버티고만 있는 실정이니 심히 위급한 상황이라 하겠습니다."
강유가 피투성이가 된 이흠을 바라보며 한탄을 하고 말한다.
"내가 그대들을 급히 지원하려고 했으나,
강족의 응원군이 도착하지 않아서 나아가지 못했다."
강유는 이흠을 후방으로 보내 즉시 치료를 받도록 한 후,
하후패와 전략을 상의한다.
"강병(姜兵)이 아직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위군이 국산의 두 성을 포위하고 있다니 큰일이오.
이 위급한 상황을 모면할 계책이 없겠소?"
하후패가 대답한다.
"강병이 오기만을 기다렸다가는
국산의 성들이 함락 당하고 말 것입니다.
곽회가 옹주 군사들을 모두 이끌고 나온 것 같으니 필시 옹주성은 텅 비어 있겠지요.
강장군은 국산으로 갈 것이 아니라 우두산(牛頭山)을 가로 질러
옹주성 뒤로 가서 습격하면 곽회와 진태는 옹주를 구하려고 군사를 돌릴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국산의 포위망은 자연히 풀립니다."
"좋은 생각이오.
지금으로써는 그게 최선책인 것 같소."
강유는 하후패의 전략을 듣고 무릎을 치며 기뻐한다.
그리고 즉시 군사들을 꾸려서 우두산으로 출발한다.
한편,
국산에서는 이흠이 포위망을 뚫고 달아나자
진태가 곽회에게 바로 그 사실을 보고했다.
"이흠이 강유에게 도착하여 상황을 알리면
강유는 우리 군이 모두 국산에 있는 것을 알고 우두산으로 가서
우리의 배후를 기습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니 장군께서는 조수(洮水)를 점령하여 촉군의 보급로를 끊어 놓으십시오.
저는 남은 군사들로 우두산에 가서 강유 군을 격파하겠습니다.
적들은 보급로가 끊긴 것을 알면 알아서 물러갈 것입니다."
곽회는 진태의 계획을 바로 실행하도록 했다.
강유와 하후패가 의논한 계책을 진태와 곽회 또한 생각한 것이었다.
강유의 군대가 우두산에 이르렀다.
갑자기 선두에 선 군사들 사이에서 큰 함성이 인다.
전령이 급히 달려와서 보고하기를,
"위군이 앞길을 가로막고 있습니다!"하는 것이었다.
강유는 당황했다.
급히 말을 몰아 직접 선두로 가서 살펴 보니
과연 위군 무리가 길을 막고 버티고 있다.
위군 진영에서는 강유가 앞으로 등장하는 것을 본 진태가
고함을 치며 뛰쳐나온다.
"네가 감히 주제도 모르고 우리 옹주성을 습격하려고 하느냐?
난 너희들이 여기로 올 것을 알고 이곳에서 기다린지 오래다!"
강유는 진태의 말에 격분하며
창을 비껴잡고 곧장 진태에게 돌격한다.
진태 또한 칼을 휘두르며 맞선다.
하지만 맞붙은지 채 삼 합도 안 되어
진태가 말머리를 돌려 달아나기 시작한다.
강유는 군사들을 휘몰아서 진태의 군대를 바짝 추격한다.
진태의 옹주군은 산머리로 달아나서 그곳에 진을 쳤다.
강유는 추격을 멈추고 우두산 기슭에 진을 쳤다.
그리고 날마다 군사를 이끌고 나가
옹주군과 격돌하였으나 좀처럼 승부가 나지 않았다.
상황을 지켜보던 하후패가 강유에게 말한다.
"여기는 오래 머물만한 곳이 못 됩니다.
매일 싸우는데 승부가 나지 않으니,
이것은 틀림없이 진태가
유병지계(誘兵之計, 군사를 유인하여 못박아 두는 계책)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저들에게 또 다른 계책이 있을지 모르니 잠시 후퇴했다가
새로운 계책을 마련하여 공격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강유가 하후패의 의견에 미처 대답도 하기 전에 급한 보고가 올라왔다.
곽회가 조수 지역의 군량 보급로를 끊어버렸다는 내용이었다.
강유가 계획했던 모든 것들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
보급로까지 끊긴 이상 하후패의 의견대로 실행해야만 했다.
큰 실망을 안고 강유는 하후패의 군대를 먼저 후퇴시키고
자신의 군대는 위군의 추격을 끊으면서 천천히 퇴각하도록 했다.
촉군이 퇴각한다는 소식을 들은 진태는
군사를 다섯 갈래로 나누어 촉군을 향해 쳐들어왔다.
강유는 혼자서 다섯 갈래의 군사들을 막아 싸우며 물러났다.
진태는 군사들을 산으로 보내서 위에서 아래로 화살과 돌을 쏟아 붓게 했다.
강유의 군대가 조수까지 퇴각했을 때,
이번에는 곽회가 군사들을 몰고 나타나 강유를 놀라게 했다.
강유는 군사들을 다독여가며 맹공을 퍼부었지만
퇴로를 막아서서 철통 같은 방어를 하고 있는 옹주군을 뚫고 나가기는 어려웠다.
강유는 사력을 다해 싸워 가까스로 옹주군의 방어를 뚫고 나왔다.
강유 자신은 살아서 나오긴 하였으나 군사의 절반 이상이 꺾인 후였다.
얼마 남지 않은 촉군은 양평관(陽平關)을 향해 후퇴했다.
촉군이 퇴각의 발걸음을 빨리하고 있는데
문득 앞에서 한 무리의 위군이 길을 막는다.
선두에 선 대장 하나가 칼을 휘두르며 기세 좋게 달려 나온다.
둥근 얼굴에 큼지막한 귀, 네모난 입에 입술이 두터우며,
왼쪽 눈 아래에 수십개의 검은 털이 난 사마귀가 자리잡고 있는 그는
바로 사마의의 맏아들 표기장군 사마사(驃騎將軍 司馬師)였다.
강유는 사마사임을 확인하고 크게 노하여 사마사를 향해 외친다.
"애송이가 감히 내 갈 길을 막는단 말이냐!"
강유는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말의 옆구리를 힘껏 차서
사마사에게 돌진하여 창으로 찌르려 한다.
사마사는 몸을 급히 빼내면서 칼을 뽑아 강유의 공격에 맞선다.
하지만 겨우 삼 합만에 사마사는 강유에게 패퇴하고 만다.
강유는 군사들을 다시 정비하여 양평관으로 내달렸다.
양평관을 지키던 군사가 관문을 활짝 열어 강유의 군사들을 맞이했다.
그런데 강유에게 패해 물러난 줄 알았던 사마사가
성 안으로 들어가는 강유군을 뒤쫓았다.
사마사의 군대가 성 바로 밑까지 육박해오자
강유는 크게 소리친다.
"끈질긴 녀석이군! 발사하라!"
강유의 외침과 동시에 성 안쪽에 숨겨놓았던 쇠뇌가
일제히 사마사 군을 향해 발사된다.
그 쇠뇌는 화살 열 대를 한꺼번에 발사할 수 있는 것었다.
이 연노(連弩)는 바로 공명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강유에게 남긴 연노법(連弩法)으로 만든 것이었다.
화살을 한 번에 열 대씩 발사하는 병기가 백여대 늘어져 있으니
화살은 피하려야 피할 수 없는 소나기 같았다.
게다가 화살촉 끝에는 독약이 발라져 있어서
선두에 서 있던 위군은 말들과 함께 몰살하다시피 했다.
사마사는 얼마 남지 않은 군대를 수습하여 정신없이 달아나고 말았다.
퇴각하는 강유군 앞에 사마사가 갑작스럽게 나타난 것은
사마사의 아버지인 사마의의 지시에 의한 것이었다.
강유가 옹주로 진격할 무렵에
곽회가 조정에 급히 사람을 보내어 상황을 알렸고,
사마의는 사마사에게 군사 오만을 주어 옹주에서의 싸움을 돕도록 했다.
옹주로 가는 도중에 사마사는
곽회의 군대가 촉군을 이미 물리쳤다는 소식을 듣고,
촉군의 세력이 약화되었으리라 생각하여 양평관까지 추격할 생각을 했던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사마사는 방심한 나머지 군마의 태반을 잃고 만 것이었다.
한편,
국산성에서 굶주림과 목마름에 시달리며
원군이 오기만을 기다렸던 촉장 구안은
끝내 원군으로부터 아무 소식도 듣지 못했다.
기다리던 끝에 결국 성문을 스스로 열고 위나라에 투항하고 말았다.
강유는 얻은 것 없이 수만 군사를 잃고 패잔병을 수습하여 한중으로 돌아갔다.
위나라 가평(嘉平) 3년(251) 8월, 사마의가 몸져 누웠다.
나이 탓인지 병세는 날로 무거워져갔다.
사마의는 떠날 날이 눈 앞에 닥쳤음을 느꼈다.
그리하여 두 아들을 불러 놓고 조용히 당부의 말을 한다.
"내가 위나라를 오랫동안 섬겨 벼슬이 태부에 이르렀다.
신하로서 더 이상 높은 자리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나를 보고 모두 내가 딴뜻을 품고 있을 것이라 의심을 했지.
의심의 눈초리를 받으며 나는 평생 마음이 편할 날이 없었다......
내가 죽거든 너희 두 형제는 마음을 잘 맞춰서 국정을 살펴라.
열심히 하되, 늘 삼가고 신중하게 행동하거라......"
사마의는 말을 마치고 숨을 거두었다.
그의 나이 72세였다.
맏아들 사마사와 둘째아들 사마소가
위주 조방에게 부친의 죽음을 알렸다.
조방은 성대하게 장례를 치르게 하였다.
그리고 장례를 마치자 사마사를 대장군에 봉하여
상서 기밀대사(尙書 機密大事)를 총감독하게 하고,
사마소는 표기상장군(驃騎上將軍)으로 삼았다.
사마의는 떠났지만 두 아들이 남아 여전히 위나라의 정권은
사마(司馬)가문의 손 안에 있는 것이었다.
403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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