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곧 죽을 것 같던 사마의가

오토산 2022. 5. 2. 06:59

삼국지(三國志) .. (401)
곧 죽을 것 같던 사마의가

이승이 조상에게 사마의의 소식을 전하기 위해 가고 있는 시각에

 사마의는 이승이 돌아간 것을 확인하고 침상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두 아들을 불러서 말한다.

 

"이승이 돌아가서 조상에게 보고했을 것이다.

내가 중병에 걸렸다는 소식에 조상은 마음을 푹 놓겠지.
조상이 성 밖으로 사냥을 떠나면 그때 뒤쫓아서 처치해버리자.

준비를 서둘러라!"

사마의가 이승에게 보여준 모습은

모두 조상을 속이기 위한 계략(計略)에 불과했다.

사마의는 십 년이라는 시간을 은둔하면서 조상의 허점(虛點)을 노리고 있었는데,
마침 좋은 기회가 왔던 것이다.

사마의가 모략을 꾸미고 있는 동안,
조상은 위주 조방에게 선제 조예의 무덤인

고평릉(高平陵)에 제사를 지내러 가자고 청했다.
사실 선제에 대한 제사는 요긴한 핑계거리 일 뿐,

조상의 실제 목적은 사냥이었다. 

황제의 허가가 떨어지고, 천자가 거동을 하자니

대소관원들이 모두 나와 어가를 모시고 성밖으로 나가게 되었다.
조상은 세 아우와 하안, 등양을 데리고 어림군의 호위를 받으며 길을 나섰다.
황제와 조상의 행렬을 본 대사농 환범이 조상의 말고삐를 잡으며 말했다.

 

"주공,

금위군(禁衛軍, 궁궐을 지키는 군사)을 모두 이끌고 가시면 안 됩니다.
궁이 빈 사이에 무슨 변고라도 생기면 어쩐단 말입니까?"

 

"어떤 놈이 간 크게 변을 일으킨다는 말이냐?

허튼 소리 집어치워라!"

 

만류하는 환범의 말은 타당한 것이었지만

조상은 환범의 말을 무시하고 가던 길을 재촉했다.
조상이 황제와 함께 궁궐을 비웠다는 소식에

사마의의 마음 속에는 기쁨이 차올랐다.

 

즉시 지난날 전쟁터에서 활약했던

심복 장수들을 불러 모아 두 아들과 함께 집을 나섰다. 
사마의는 우선 중서성으로 말고삐를 당겼다.

그리고 사도 고유(司徒 高柔)에게 임시로 절월(節鉞, 임명장)을 주어

대장군(大將軍)의 지위를 맡기고 조상의 진지를 점거하도록 했다.

 

또, 태복 왕관(太僕 王觀)에게는
중령군(中領軍)직을 맡겨서 조희의 진지를 점거하도록 했다. 
자신은 옛 관리들을 모두 모아 궁중으로 들어가서 곽태후(郭太后)에게 아뢰었다.

 

"조상이 선제께서 탁고하신 은혜를 잊고

간사한 무리들과 나라를 어지럽히고 있사옵니다.
마땅히 조상의 관직을 폐해야 할 것입니다.

신이 조상 일당의 죄를 다스리도록 윤허하여 주시옵소서."

 

갑작스럽게 찾아온 사마의의 입에서

조상을 몰아내야 한다는 소리가 나오자 곽태후는 깜짝 놀란다.

 

"허나,

지금 황제께서는 밖에 나가 계시오.
이 노릇은 어찌하면 좋겠소?"
곽태후가 염려의 말을 하자 사마의는 답한다.

 

"신이 황제께 표문으로 상황을 알리고

간신들을 없앨 계획을 다 가지고 있으니 태후께서는 심려치 않으셔도 되옵니다."

 

태후는 두려움에 떨며 사마의의 말을 따르기로 한다.
사마의는 곽태후의 허락을 얻자마자
태위 장제(太尉 蔣濟)와 상서령 사마부(常書令 司馬孚)를 시켜

표문을 작성하도록 하고,

 

그것을 환관에게 주어 즉시 사냥터에 있는 황제께 바치도록 명했다.

그리고 자신은 군사들을 이끌고 황궁 어림군의 무기고(武器庫)를 점령했다.

이 사실은 바로 조상의 집으로 전해졌다.

조상의 아내 유씨(劉氏)는 화들짝 놀라며

황급히 저택 수문장 반거(潘擧)를 불러다 물었다.

 

"주공께서 성 밖에 나가 계신데,

중달이 군사를 일으켰다니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일까?
대체 어찌 된 일이오?"

 

"제가 곧 알아보고 올 테니

너무 염려 마시고 기다려 주십시오."

 

반거는 실상을 파악하기 위해

궁노수(弓弩手) 수십을 이끌고 문루(門樓)에 올라 밖을 내다보았다.
때마침 군사를 이끌고 지나가는 사마의의 모습이 보였다.
반거는 즉시 사마의의 군사들을 향해 활을 쏘도록 지시했다. 
화살이 어지러이 날아다니는 통에 사마의는 더이상 전진할 수가 없었다.
이때 뒤에 있던 편장 손겸(偏將孫謙)이 앞으로 나와서 반거를 향해 크게 외쳤다.

 

"활을 멈춰라!
태부께써는 국가대사를 살피러 나오신 것이다! 멈춰라!"

 

손겸이 세 차례나 소리를 친 끝에,

반거는 궁노수들에게 활을 내리도록 지시했다.
사마소는 아버지 사마의를 호위하며 그 앞을 지나서 성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리고 군사들로 하여금 낙하(洛河)에 주둔하게 하고, 부교(浮橋)를 굳게 지켰다.

조상의 수하에 있는 사마 노지(司馬 魯芝)는 성 안에서 변란이 일어난 것을 확인하고

대책을 상의하기 위해 급하게 참군 신창(參軍 辛敞)을 찾았다.

 

"중달이 변란을 일으켰다고 하오.

어찌해야겠소?"
노지의 물음에 신창이 답한다.

 

"군사들을 이끌고 성밖으로 나가서 천자께 아룁시다."

 

"좋소.

그러면 내가 군영으로 가서 채비를 하겠소."

 

노지는 신창의 제안을 따르기로 하고 돌아갔다.

노지가 떠나고 신창은 허둥대며 후당으로 달려들어갔다.

 

"무슨 일이 있는데 수선인게냐?"
서두르는 동생의 모습을 보고 신창의 누이 신헌영(辛憲英)이 묻는다.

 

"황제께서 성밖에 나가 계신데 태부 중달이 성문을 닫아건 것을 보니,

역모를 꾸미고 있는 것이 틀림없소."
동생의 말을 듣자마자 누이는 고개를 가로 젓고 바로 말한다.

 

"아니다. 아니다.

태위는 역모를 꾸미는 것이 아니라

그저 조상 대장군이나 죽이려는 것이지."
신창은 누이의 말에 깜짝 놀라며 묻는다.

 

"그걸 어찌 아오?

결말이 어떻게 될지는 알 수가 없소."
신헌영은 또 고개를 좌우로 흔들더니,

 

"모르는 소리 하는구나.

조 대장군이 사마 공의 적수가 될 것 같으냐?

조 장군은 반드시 패할 것이다."

 

"사마 노지와 황제를 찾아 뵙기로 했는데

그러면 어떻게 해야 좋을지......"
동생이 고민하는 기색을 보이자 누이가 말한다.

 

"제 직분을 지키는 것이 사람으로서의 도리다.

모르는 사람이 어려움에 처해도 구해주는 것이 사람된 도리인데,

하물며 섬기던 사람을 외면하면 쓰겠느냐?
도리를 지켜라."

 

신헌영은 조상이 패할 것을 예상하면서도

동생에게는 의리를 지켜 조상을 도우라는 말을 한다.
신창은 누이의 조언을 따르기로 했다.
노지와 함께 기병 수십 명을 이끌고 성문을 빠져나갔다.

사마의는 조상 측 인사인 신창과 노지가 성밖으로 나가

황제에게 향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대사농 환범마저 달아날까 염려스러웠다.
그리하여 즉시 전령을 보내 환범을 불러들이고자 했다.
환범은 고민했다.

 

아들과 상의 끝에,

황제의 어가를 따라 가는 것이 좋겠다고 결론 짓고 평창문(平昌門)으로 내달렸다.
하지만 성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수문장이 누구인지 보니, 지난날 자신의 부하였던 사번(司蕃)이다.
환범은 즉시 좋은 생각이 떠오른다.

 

그래서 소매 춤에서

죽판(竹版, 조서를 쓴 대나무판)을 꺼내들고 사번에게 소리친다.

 

"태후께서 내리신 조칙이다!
어서 성문을 열어라!"
그러자 사번이 말한다.

 

"제가 조서를 확인해야겠습니다."
환범은 속으로 크게 당황한 마음을 숨기려고 큰소리를 친다.

 

"이놈!

무례하게 상관(上官)에게 무슨 짓이냐?"

 

사번은 환범의 고함에 기가 눌려 성문을 열어 준다.
환범은 말고삐를 기운차게 당기며 성문을 빠져 나간다.
그리고 사번을 향해 뒤돌아 보며,

 

"사마 태부가 반역을 일으켰다!
너도 속히 나를 따르거라!"하고,

외친다.
사번은 그제서야 자기가 환범에게 속았다는 것을 알았지만

뒤쫓기에는 이미 늦어버렸다.

환범이 탈출한 소식을 듣고

사마의는 손바닥으로 머리를 짚으며 탄식했다.

 

"조상의 꾀주머니가 달아났다.
이를 어쩌면 좋은가?"

 

"노둔한 말은 고작 외양간 콩에 연연하느라

꾀주머니가 곁에 있어도 알아보지 못할 겁니다."

 

곁에 있던 태위 장제가 사마의를 위로했다.
여기서 노둔한 말은 조상을 빗댄 것이라는 건 말할 필요도 없다.
사마의는 허윤(許允)과 진태(陳泰)를 불러들였다.

 

"너희들은 조상에게 가서 내 말을 전하라.
나 사마의는 다른 뜻은 없고,

오직 조상 형제들의 병권만 거두어 가려고 할 뿐이라고."

 

사마의의 명을 받은 허윤과 진태가 떠나고

사마의는 장제에게 조상에게 전달할 편지를 한 통 쓰도록 했다.
그리고 전중교위 윤대목(殿中校尉 尹大目)으로 하여금

그 편지를 조상하게 전달하도록 했다.
사마의는 윤대목에게 편지를 건네며,

 

"그대가 조상과 교분이 두터워

이 소임을 그대에게 맡기는 것이다.
조상을 만나면 나와 장제가 낙수(落水)의 강물을 두고 맹세하는 바,

내가 필요한 것은 오직 병권일 뿐, 그것만 내주면 다른 일은 없을 것이라고 전하라."하고,

말했다. 

한편,

사냥터에서는 조상이 한창 사냥개를 몰고 매를 날리면서 사냥에 열중하고 있었다. 
신나게 즐기고 있는 와중에 성 안에서 변란이 일어났다는 급보와 함께

태부 사마의가 황제께 표문을 올렸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전혀 예상하지도 못했던 일에 조상은 하마터면 마상(馬上)에서 떨어질 뻔했다.
조상은 말고삐를 간신히 잡으며 생각했다.

 

'아니,

분명 사마의는 곧 죽을 것이라 하였는데......!
다 죽어 가는 자가 표문을?
어서 진상을 알아야겠다!'

 

그리고 황급히 황제에게로 달려갔다.
때마침 환관이 황제에게 표문을 바치고 있었다.
조상은 그것을 잡아 채어 가까이 있는 신하에게 소리내어 읽게 했다.

정서대도독 태부(征西大都督 太傅) 신(臣) 사마의는

실로 황공한 마음으로 머리를 조아려 삼가 표문을 올리나이다.

 

지난 날, 신이 요동에서 돌아왔을 때,

선제께서는 어린 폐하, 진왕(秦王) 및 신을 부르시고 신의 손을 잡으며

후사를 당부하셨므로 신은 선제의 탁고하신 뜻을 뼛속 깊이 새겨두고 있었사옵니다.
하지만 지금 대장군 조상은 선제 폐하의 부탁을 저버리고

국법을 문란하게 하고 있으며, 안으로는 참월(攙越)하고,
밖으로는 위엄과 권세를 마음대로 휘두르고 있사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황제의 자리를 노리기 위해

환관 장당을 도감(都監)으로 삼아 궁중을 드나들며 폐하를 감시하게 하며,

이궁(二宮, 황제와 곽태후)을 이간하여 골육애(骨肉愛)를 상하게 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들로 인하여 천하 민심이 흉흉해지고 백성들은 두려움에 떨고 있으니,
이는 선제께서 바라시던 바가 아니옵니다.

신이 이제 비록 늙고 우매하지만 선제께서 남기신 말씀만은 잊지 않고 있사옵니다. 
보다 못하여 태위 장제와 상서령 사마부 등은

폐하를 제대로 모시지 않고 있는 조상 형제가

병권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리하여 신은 영녕궁(永寧宮) 황태후께

이러한 사실을 아뢰고 황제 폐하께 표문을 올리옵니다. 
부디 조상, 조희, 조훈 형제의 병권을 삭탈하고

거처로 물러가 근신하라 명하여 주시옵소서.

아울러 조상이 폐하의 어가를 억류하는 일이 있으면

군법으로 엄히 다스리고자 하오니 속히 환궁하시옵소서.
신은 병을 무릅쓰고 낙수 부교에 군대를 주둔하여

비상사태에 대비하고 있사옵니다. 

 

삼가 이러한 사실을 아뢰오니,

들어주시옵기를 엎드려 바라나이다.
 
심각한 표정으로 표문을 듣던 위주 조방은

표문 낭독이 끝나자 조상에게 고개를 돌려 묻는다.

 

"태부의 말이 이러한데,

경은 어찌하실 것이오?"

 

조상은 사마의에게 속은 것이 분하지만 
어찌할 방도가 떠오르지 않아 그 자리에 꼼짝 않고 서 있다가,

두 아우를 돌아본다.
그리고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어쩌면 좋겠느냐?"하고,

두 아우에게 묻는다.
조희가 조상에게 속삭이듯 말한다.

 

"제가 형님께 여러 차례 간하지 않았습니까

. 그런데도 듣지 않으시더니 결국 오늘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사마의의 속임수는 천하의 제갈양도 당해내지 못하였는데,

우리가 무슨 수로 대적을 하겠습니까?
차라리 항복해서 목숨이나 부지하느니만 못할 것입니다."
조상은 아우의 말에 후회가 밀려온다.

 

이때,

성을 탈출했던 참군 신창과 사마 노지가 도착한다.
그리고 곧장 성의 소식을 알린다.

 

"도성 안에는 도처에서 군사들이 철통같이 방비를 하고 있고,

태부는 낙수 부교에 주둔하며 지키고 있으니 다시 돌아가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속히 결단을 내리시어 대책을 세우셔야 합니다."

 

대화를 마치기도 전에

이번에는 대사농 환범이 말을 타고 달려온다.
말에서 내리자마자,

 

"태부가 변란을 일으켰습니다!
대장군께서는 속히 천자 폐하를 모시고

허도(許都)로 피신하시고 지방군을 동원하여 사마의를 치십시오!"하고,

급하게 말한다.
환범의 말에 조상은 버럭 화를 낸다.

 

"내 가족이 모두 성안에 남아있다.
그런데 어딜 간단 말이냐!
또 설령 간들 어디서 응원군을 내주겠나?"
환범은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조상의 말에 답한다.

 

"한낱 필부일지라도 난을 당하면 살기 위해 몸부림을 칩니다.
제 발로 사지(死地)에 들어갈 필요가 있겠습니까?
주공께서는 천자 폐하를 모시고

천하를 호령하는 막중한 권세를 지니셨는데
감히 누가 주공을 따르지 않겠습니까?"

 

꾀주머니 환범이 대책을 술술 말해주는데도

조상은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눈물만 흘리고 있다. 
그런 꼴을 보고 있자니 환범은 자신이 애가 타서 조상을 재촉한다.

 

"여기서 허도까지는 불과 반 나절 거리입니다.

허도성에는 식량도 넉넉해서 수 년은 그 안에서 버틸 수 있습니다.
더구나 주공의 별영군마(別營軍馬)가 가까운 관문 남쪽에 있으니

부르면 금방 달려와서 병력 걱정도 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어서 속히 떠나셔야 합니다!
지체했다가는 만사가 끝장입니다!"
환범의 재촉에도 조상은 머뭇거린다.

 

"나에게도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재촉하지 말아라."

 

잠시후,
이번에는 시중 허윤과 상서 진태가 찾아 온다.

그 둘은 사마의가 조상에게 전하라 했던 말을 꺼낸다.

 

"장군은 속히 성으로 돌아가십시오.

태부께서는 장군의 권력이 지나치게 커졌다고 여겨 그저 병권을 꺾고자 할 뿐,

다른 뜻은 없다고 하십니다."

 

환범의 말에도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허윤과 진태가 찾아와 환범의 의견과 정 반대의 말을 하니,

조상은 머릿 속이 혼란스럽다.

 

미간을 찌푸린 채 묵묵부답으로 서 있는데

이번엔 전중교위 윤대목이 달려온다.

 

"태부가 낙수를 두고 다른 뜻은 전혀 없노라고 맹세했습니다.
장 태위가 장군께 이렇게 다짐하는 서신도 보냈으니

장군은 병권을 내놓고 어서 상부(相府)로 돌아가십시오."

 

여러 사람이 사마의의 말에 따를 것을 권유하니

조상은 약간 마음이 동한 듯 고개를 살짝 끄덕인다.
곁에 있는 환범만 애가 타서 조상에게 소리친다.

 

"장군!

사태가 급박합니다!
남들의 말에 좌지우지 되면 죽고 못 삽니다.

저들의 말만 믿고 사지로 들어가실 작정이십니까?"

 

환범의 다그침에도 조상은 그날 밤이 되도록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칼을 빼들고 한숨만 내쉴 뿐, 잠을 자지도 못하고

마음의 결정을 내리지도 못했다.
날이 밝을 때까지 눈물만 흘리며 있는데,
장막 안으로 환범이 들어온다.

 

"주공께서는 하루 낮밤을 생각하시고도
아직 결정을 하지 못하셨습니까?"
조상은 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칼을 내던진다.

 

"결심했네.

나는 군사를 일으키지 않겠네.

벼슬을 내놓기만 하면 많은 재산으로 한 평생 편안히 살 수 있지 않겠는가?"

 

환범은 조상의 답변에 크게 실망했다.

대성통곡을 하며 장막 밖으로 뛰쳐나간다.

 

"아아......!
지난 날 조자단(曹子丹: 조진, 조상의 아버지)
은 천하가 알아주는 지모로 스스로도 그것을 긍지로 삼았거늘......!
그 아들 삼형제는 개 돼지만도 못하구나!"

 

노둔한 말이 외양간의 콩에 연연하느라

꾀주머니를 알아볼리가 없다는 태위 장제의 말은 결국 사실이 되었다.

조상의 결정을 듣고 시중 허윤과 상서령 진태는

우선 대장군의 인수(印綬)를 사마의에게 보내도록 했다.
조상이 인수를 꺼내어 허윤과 진태에게 내미는 걸 보고,

주부 양종(主簿 楊綜)이 인수를 붙잡고는 통곡하며 말한다.

 

"주공,

병권을 잃고 항복하면 반드시 저잣거리에서 죽음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조상은 모든 것을 포기한 듯 조용히 대답한다.

 

"사마 태부는 신의를 저버릴 분이 아니다."

 

대장군 조상이 병권을 넘기는 모습을 지켜본 이상,

군사들이 조상의 곁에 남고자 할 리가 없었다.
군사들은 모두 뿔뿔히 흩어지고, 조상 수하에는 몇몇 관료들만 남았다.
조상 일행은 항복을 위해 사마의가 있다는 낙수 부교로 향했다.
사마의는 조상 삼형제를 그들의 집으로 돌려보내고

나머지는 모조리 옥에 가두어놓고 황제의 명을 기다리도록 했다.
환범의 모습이 보이자 사마의가 마상에서 채찍을 들어 가리키며 말했다.

 

"환 대부,

어쩌다 이리 되셨소?"

 

환범은 고개를 푹 숙이고 아무 말 없이 성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마침내 사마의는 황제의 어가를 모시고 낙양성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조상 형제가 집으로 들어가자 집 대문에 커다란 자물쇠를 채우고

이웃에 사는 팔백 명의 백성들로 하여금 저택을 에워싸고 감시하도록 했다. 

 

조상은 그저 목숨만 달려 있을 뿐,

근심으로 인하여 편하게 지낼 수가 없었다.
어느날 동생 조희가 찾아와 말한다.

 

"형님,

양식이 다 떨어졌는데

사마의에게 서신을 보내 양식을 꾸어달라 부탁해보면 어떻겠습니까?
만약 사마의가 우리의 부탁대로 양식을 보내준다면

우리를 해칠 뜻이 없는 것임을 알 수도 있을 것입니다."

 

조상은 조희의 말대로 사마의에게 양식을 청하는 편지를 써서 부쳤다.
사마의는 편지를 받고 곧바로 일백 섬이나 되는 식량을 실어보냈다.
식량을 나르는 군사들의 모습을 보며 조상은 크게 기뻐했다.

 

"사마공은 우리를 해칠 뜻이 전혀 없는 것이 분명하다!
그럴 것이었으면 식량을 보냈겠느냐?"

이 일을 계기로 조상의 근심은 완전히 사라졌다.

이 무렵,

사마의는

조씨 일가와 가까이 지냈던 환관 장당(張當)을 잡아다 문죄하기 시작했다.

장당은 혼자만 잡혀 온 것이 억울하여,

 

"나 혼자 한 짓이 아닙니다.
하안, 등양, 이승, 필궤, 정밀 등 다섯이 작당을 모의했습니다."하고,

술술 말했다.

 

사마의는

장당이 한 말을 문서로 남겨놓고 하안 일당을 잡아다 문초(問招)했다.
그리고 반란을 일으키기로 약조했다는 자백을 받아냈다. 
그 과정에서 환범에게 속았던 수문장 사번이 사마의에게 고했다.

 

"환범이 거짓 조서로 속이고 성을 빠져나가면서

저를 향해 태부께서 반역을 꾀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 사마의는 크게 화를 내며,

 

"무고한 자에게

역적의 누명을 씌운 자는 반좌죄(反坐罪)로 다스려라!"

 

결국 환범까지 옥에 갇혔다. 
이후 사마의는 조상 형제와 더불어

그 일당까지 목을 베고 그들의 삼족까지 멸했다.

그리고 그들의 재산을 몰수해 국고에 넣었다.
사마의가 조상의 무리들의 처단을 마치자 태위 장제가 사마의에게 말했다.

 

"노지와 신창은 관문을 쳐서 성밖으로 나갔던 자들이고,

양종은 조상이 태위께 바치려던 인수를 잡고 놓지 않으려던 자입니다.

이들 역시 그냥 두어서는 안 되지 않겠습니까?"
사마의는 장제의 말에 대답한다.

 

"그들은 각자 제 주인을 위해 일한 것이니 의리가 있는 것이오.
의리있는 인물들은 살려두어야지."

 

그리고 그들을 모두 옛 직책에 복직시켰다.
이 소식을 들은 신창은,

 

"누님 덕분에 대의를 지키면서도

내 목숨을 구할 수 있었구나!"하고,

감격해 마지않았다.

 

사마의는 신창 뿐만 아니라

조상 문하에 있던 빈객들을 모두 사면하고 관직에 있던 자는 모두 복직시켰다.
이로써 군사들과 백성들은 각기 생업을 지키며 평안을 되찾았다.
하안과 등양은 결국 비명에 죽었으니, 관로의 예언이 적중한 셈이었다.

위주 조방은 사마의를 승상(丞相)으로 임명하고,

구석(九錫, 황제가 공로가 있는 신하에게 내리는 아홉가지 물품)의 영예를 내렸으나,

 

사마의는 이를 한사코 사양했다.

하지만 조방은 이때부터 사마의 부자 세 사람으로 하여금

국사를 맡아보게 하여 사마 일가가 국사 전반에 참여하게 되었다.

402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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