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三國志) .. (408)
사마소의 전횡(專橫)과 반발하는 제갈탄 ( 1 )
강유가 큰 패배 이후,
제 스스로 벼슬을 깎고 절치부심(切齒腐心)하는 동안,
위나라에서 등애는 진태와 함께 큰 잔치를 열어
전쟁에서 고생한 삼군에게 넉넉한 상을 내렸다.
진태가 낙양에 표문을 올려 등애의 공을 알리자,
사마소는 등애의 벼슬을 높이고 그의 아들 등충을 정후(亭侯)로 봉했다.
위주 조모는 연호를 정원 3년(256)에서 감로(甘露) 원년으로 고쳤다.
사마소는 황제의 윤허를 받지 않고 스스로가 대도독(大都督)의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어디를 가든 삼천 명에 달하는 효장(驍將)의 호위를 받으며 다녔고,
조정의 모든 정사를 위주 조모에게 아뢰지 않고 자신의 뜻대로 결재해버렸다.
사마소의 마음 속에는 찬역(簒逆)의 싹이 자라나고 있었다.
사마소에게는 그를 따르는 유능한 모사(謀士) 가 있었다.
이름은 가충(賈充), 자는 공려(公閭)로, 죽은 건위장군 가규(建威將軍 賈逵)의 아들이고,
사마소 수하에서 장사(長史)로 있었다.
어느날 가충이 사마소에게 아뢴다.
"주공께서 대권을 잡고 계시지만
아직 전국의 민심이 그것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하오니 은밀하게 민심을 살펴본 후에
천천히 대사를 도모하시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사마소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대가 나를 대신하여 동쪽 지방을 살펴보고 오도록 하라.
명분이 있어야 하니
출정한 군사들을 위로한다는 핑계를 대는 것이 좋겠지.
현지에 있는 장군들의 속마음을 은근히 떠보고 나에게 보고하라."
가충은 사마소의 명을 받고
우선 회남에 있는 진동대장군 제갈탄(鎭東大將軍 諸葛誕)을 만나러 갔다.
제갈탄은 낭야군 남양(琅琊郡 南陽) 출신으로,
제갈양의 친척동생뻘 되는 인물이었다.
줄곧 위나라 조정을 위해 일해왔는데,
제갈양이 촉나라의 승상인 까닭에 한참을 요직(要職)에는
진출하지 못하다가 제갈양이 세상을 떠난 이후에
마침에 중요한 직책 여럿을 거쳐 고평후(高平侯)의 작위를 받고
회남(淮南)과 회북(淮北) 일대의 군마들을 총감독하고 있었다.
가충이 군사들을 위로한다는 명목으로 회남에 이르니,
제갈탄은 그 말을 곧이 곧대로 믿고
가충을 위해 환영연을 열어 융숭하게 대접했다.
환영연의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었을 때,
가충이 지나가는 말처럼 제갈탄에게 묻는다.
"요즘 낙양의 선비들 사이에서는 천자 폐하가 너무 유약하여
군주의 재목이 되지 못한다는 말들이 돌고 있는 모양입니다.
장군은 그 소문을 들어보신 적 있으십니까?"
제갈탄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더니
가충의 말에 대답한다.
"못 들어봤소."
"사마소 장군이 삼대에 걸쳐서 나라를 보필해왔으니
그 공이 하늘까지 닿아 위의 대통을 이어받기에 적임자라는 소문도 돌고 있는데
그 또한 못 들어보셨겠습니다.
귀공께서는 소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갈탄은 대번에 버럭 화를 내며 가충을 쏘아본다.
"그대는 대대로 위나라의 국록을 먹고 살았는데
어찌 감히 그런 불경한 소리를 입에 담는단 말이오!
그런 말은 입에 올리지도 마시오!"
가충은 멋쩍은 웃음을 웃으며 대답한다.
"그저 세상사람들이 하는 말을 전한 것일 뿐,
다른 뜻은 없습니다."
"조정에 어려움이 닥치면 우리 같은 신하들은
목숨을 마쳐 나라의 은혜에 보답해야 하는 것이오."
제갈탄의 말을 들으면서 가충은 더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음날,
가충은 제갈탄과 작별하고 낙양으로 돌아가
사마소에게 제갈탄과의 일을 그대로 고했다.
사마소는 발끈하며 호통을 친다.
"쥐새끼 같은 놈!
감히!"
화를 내는 사마소에게 가충이 말한다.
"제갈탄은 회남땅에서 민심을 크게 얻고 있습니다.
그대로 두면 후환이 클 것이니 하루 속히 제거해야 할 것입니다."
사마소는 밀서 한 통을 양주 자사 악침(揚州 刺史 樂綝)에게 보내고,
칙사에게 조서를 주어 제갈탄에게 전하도록 했다.
조서에는 제갈탄을 사공(司公)으로 봉할테니
조정으로 상경하라는 내용을 담았다.
조서를 읽어본 제갈탄은
지난번 가충이 자신을 방문했을 때 있었던 일을
사마소에게 일러바쳤음을 직감했다.
조서를 그대로 믿고 상경했다가는 무사하지 못할 것이었다.
그리하여 제갈탄은 조서를 들고 온 칙사를 불러다놓고 심문했다.
엄한 문초를 견디지 못한 칙사가 마침내 진실을 고했다.
"이 일은 양주 자사 악침이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악침이 이 일을 어떻게 안다는 말이냐?"
제갈탄의 호통에 칙사는 순순히 대답한다.
"사마 장군께서
악침에게도 사람을 시켜 밀서를 보냈습니다."
"뭣이야?"
제갈탄은 크게 화를 내며
조서를 가져 온 칙사의 목을 바로 베어버렸다.
그리고 군사 천 명을 거느리고 악침이 있는 양주 땅으로 향했다.
양주성에 당도하고보니 성문은 모두 닫혀있고
조교(弔橋) 또한 올려져 있어서 성 안으로 진입할 수 없는 상태였다.
제갈탄은 성 아래에서 문을 열라고 고함을 쳤다.
그러나 성 위에서는 대답하는 자가 없을 뿐더러,
아무도 없는 듯 고요하기만 했다.
제갈탄은 또 소리를 쳤다.
"악침!
네 이놈!
여봐라!
성을 공격하라!"
제갈탄의 명령에 용감한 군사 십여 명이 해자를 뛰어넘고 몸을 날려
성벽을 타고 올라가 성의 수비군을 죽이고 성문을 활짝 열었다.
제갈탄은 부대를 이끌고 성 안으로 진입하기가 무섭게
곳곳에 불을 지르며 악침의 관가로 쳐들어갔다.
악침이 누각 위로 달려가며 도망치는데
제갈탄은 성난 호랑이 같은 표정으로
손에는 칼을 번뜩이며 누각의 계단을 뛰어 올라간다.
"악침!
네 아비 악진(樂進)은 지난날 나라에 큰 은혜를 입었거늘,
그 자식 된 놈은 어찌하여 그 은혜에 보답할 생각은 않고
역적 사마소를 따른단 말이냐!"
제갈탄은 막다른 길에서 벌벌 떨고 있는 악침의 목을 단칼에 베었다.
그리고 바로 사마소의 죄목을 모조리 적은 표문을 낙양으로 보냈다.
또, 회남과 회북에 주둔하고 있던 십만의 군사와 양주에서
투항한 군사 사만을 집결시키고, 마초와 식량을 확보하여 진군할 준비를 갖추었다.
하지만 사마소의 대군을 감당하기에는 병력이 부족하였으므로, 동오에 도움을 요청하기로 했다.
자신의 아들 제갈정(諸葛瀞)을 볼모로 보내면서 함께 사마소를 토벌하자고 제의할 참이었다.
이무렵 동오는 승상 손준(丞相 孫峻)이 병으로 죽고
그 사촌동생 손침(孫綝)이 나랏일을 보고 있었다.
손침은 성질이 우악스럽고 사나워서
대사마 등윤, 장군 여거, 왕돈 등을 죽이고 대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오주 손량(吳主 孫亮)은 총명한 군주였으나 이미 권력이 손침에게
넘어가 있는 터라 속수무책으로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손침은 제갈탄으로부터 풍성한 뇌물과 인질을 받더니 기꺼이 제갈탄을 돕기로 했다.
대장 전역(全懌)과 전단(全端)을 주장으로 삼고,
우전(于詮)을 후군장으로 삼아 뒤따르게 하고,
주이(朱異)와 당자(唐咨)를 선봉장으로,
문흠(文欽)을 향도관(嚮導官)으로 삼아 모두 합쳐
칠만의 군사를 세 방면으로 나누어 출정시켰다.
한편,
제갈탄의 표문이 비로소 낙양에 도착했다.
조정의 모든 권한이 사마소에게 있으니
그 내용을 사마소가 가장 먼저 알게될 수밖에 없었다.
사마소는 격분하여 당장에 군사를 몰고 가서 제갈탄을 치려는 기세였다.
그것을 보고 가충이 간한다.
"전에 말씀드렸다시피
주공께서는 부친과 형님의 기업(基業)을 이어받으셨으나,
아직 그 은덕이 천하에 미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하니 천자를 내버려두고 출정하셨다가
조정에 변이라도 일어나면 후회가 크실 것입니다.
그러니 태후와 황제께 주청하여 두 분을 모시고 출정하도록 하십시오."
"그러하겠군.
즉시 궁으로 가야겠다."
사마소는 궁으로 가서 태후에게 아뢴다.
"제갈탄이 모반을 도모하고 있습니다.
신이 문무백관들과 의논하여 막을 방도를 정하였으니
태후께서는 황제와 함께 어가를 타고
친정(親征, 임금이 몸소 전쟁터에 나가 정벌함)하시어
선제의 뜻을 이으소서."
"신의 뜻대로 하시오."
태후는 사마소가 두려운 나머지 순순히 허락했다.
사마소는 이번에는 위주 조모를 찾아가 출정을 청했다.
이에 위주 조모는,
"이미 대장군께서
천하병마를 통솔하고 있는데 짐이 굳이 가야하오?"하고,
묻는다.
사마소는 곧바로 핑곗거리를 찾아 대답한다.
"그렇지 않사옵니다.
무제(武帝, 조조)께서는 천지를 종횡무진하셨고,
문제(文帝, 조비)와 명제(明帝, 조예)께서는
우주를 품는 웅대한 뜻을 지니시고
큰 적과 대적할 때마다 반드시 친정하셨습니다.
폐하께서도 선제의 유지를 계승하여 역적을 물리치셔야 하옵니다."
조모 또한 태후와 마찬가지로
사마소의 기세에 눌려 사마소의 뜻에 따르기로 했다.
사마소는 낙양과 장안의 군사 이십육만 명을 동원하고,
진남장군 왕기(鎭南將軍 王基)를 정선봉(正先鋒)으로,
안동장군 진건(安東將軍 陳騫)을 부선봉으로 삼았다.
그리고 감군 석포(監軍 石包)를 좌군장으로,
연주 자사 주태(兗州 刺史 周太)를 우군장으로 삼아
태후와 황제의 어가를 호위하며 회남을 향해 진격했다.
제갈탄을 도우러 온 동오의 선봉 주이가 처음으로 사마소의 군사와 마주쳤다.
주이가 말을 휘몰아 앞으로 달려나오자
이에 질세라 위군에서는 왕기가 앞으로 나섰다.
둘이 맞붙은지 불과 삼 합만에 주이는 패하여 달아났다.
주이의 뒤를 이어 동오에서는 당자가 달려나와
왕기와 대적하려했으나 당자 역시 삼 합을 넘기지 못하고 크게 패했다.
승세를 몰아 왕기는 전군을 휘몰아 오군을 무차별 공격했다.
결국 오군은 오십 리나 패퇴하여 그곳에 영채를 세우고,
수춘성에 있는 제갈탄에게 패전 소식을 알렸다.
오군의 처참한 패전 소식을 들은 제갈탄은 직접 나서기로 하고
문흠과 그의 두 아들 문앙(文鴦)과 문호(文虎)와
함께 정예병을 이끌고 나갔다.
사마소는 제갈탄이 오군과 결탁하여 싸우러 온다는 소식을 듣고
산기장사 배수(散騎將史 裴秀)와 황문시랑 종회(黃門侍郞 鍾會)를 불러들여
적을 물리칠 계책을 논의했다. 종회가 사마소에게 말한다.
"오군이 제갈탄을 돕는 것은 오직 실리를 얻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더 큰 이익을 제공하여
그들을 유인하면 금방 넘어올 것입니다. 그러면 반드시 승리를 거둘 것입니다."
사마소는 종회의 말이 타당하다고 여겨 즉시 명을 내렸다.
"석포와 주태는 석두성(石頭城)에 가서 매복하고,
왕기와 진건의 정예병은 그 뒤에 대기하도록 하라.
그리고 편장 성쉬(偏將 成倅)는 군사 수만을 이끌고 나아가
적을 유인하고, 진준(陳俊)은 소, 말, 나귀, 노새에 상품(賞品)을 가득 싣고 가다가
적이 습격하면 그 자리에 모조리 버리고 달아나도록 하라."
그날 제갈탄은 오나라 주이를 왼쪽에, 문흠을 오른쪽에 포진 시켰다.
제갈탄이 위군 진영을 바라보니 아직 위의 군마들이 말끔히 정돈되지 않은 상태였다.
이것이 기회라고 판단한 제갈탄은 대군을 휘몰아 일제히 진격했다.
위의 장수 성쉬는 크게 당황한 듯 급히 후퇴하고,
위병들은 끌고가던 소와 말 등을 그대로 두고 달아나버렸다.
위군이 버리고 간 소와 말, 나귀에는 귀한 재물이 가득했다.
제갈탄을 돕기 위해 온 오군들은 그것을 보더니
서로 손에 넣으려고 바빠서 싸움에는 관심을 전혀 두지 않았다.
군사들이 사방으로 흩어지고 어수선한데 갑작스럽게 어디선가 포소리가 터졌다.
그러더니 좌측에서는 석포의 군사들이, 우측에서는 주태의 군사들이 쏟아져나왔다.
제갈탄이 급히 군사들을 수습하여 퇴각을 하려는데
다시 왕기와 진건의 정예병이 엄습해 오는 바람에 대패하고 말았다.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곧이어 사마소가 군사를 이끌고 들이닥치자
제갈탄은 황급히 패잔병들을 데리고 수춘성으로 달아났다.
그리고 성문을 꼭 걸어잠그고 말았다.
사마소는 천자의 어가를 항성(項城)으로 보내놓고,
자신은 제갈탄이 있는 수춘성으로 향했다.
수춘성을 사방으로 에워싸고 공격을 퍼부으면서도
마음 한 편에서는 오군의 역습을 걱정하고 있었다.
오군이 안풍(安豊)으로 물러나 주둔하면서 배후를 노릴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종회가 사마소에게 말한다.
"제갈탄이 비록 패하여 수춘성 안으로 달아났다고는 하지만
수춘성 안에는 식량과 마초가 아직 많이 있을 것이고,
오군은 안풍에 주둔하고 있으니
기각지세(掎角之勢)를 이루고 있다 하겠습니다.
또 우리 군은 수춘성을 포위하고 공격하고 있는데
제갈탄이 지구전을 쓰겠다하면 굳게 지킬 것이나,
다급해지면 결사적으로 싸우러 나올 것입니다.
혹시나 저들이 우리와 싸우러 나왔을 때
오군이 협공을 해오면 상황은 우리에게 아주 불리하게 돌아갑니다.
그러니 주공께서는 삼면만 공격하시고,
남문의 큰 길 하나는 터놓으셔서 적이 스스로 달아날 길을 열어주십시오.
적들이 달아날 때 그 뒤를 치면 완승은 문제 없습니다."
사마소는 오군의 기습이 여전히 불안하여 종회에게 묻는다.
"오군이 배후를 습격해오면 어떻게 하나?"
"오군은 원정길을 왔으므로 군량 수급이 원활하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날랜 기병들을 데리고 뒤를 교란하기만 해도
저들은 퇴로가 끊길까 두려워 스스로 물러갈 것입니다."
사마소는 종회의 어깨를 다독이며 흐뭇해했다.
"그대는 과연 내 장자방(張子房, 한고조 때의 뛰어난 모사 장량의 자)이로다!"
그리고 즉시 왕기에게 남문을 공격하던 군사들을 철수시킬 것을 명하였다.
안풍에 주둔하고 있는 오나라의 손침은
선봉장 주이를 불러다 놓고 문책을 했다.
"수춘성 하나도 얻지 못하면서 장차 중원을 어찌 도모하려고 하느냐?
또 패전했을 때에는 네 목이 제자리에 붙어 있지 못할 것이다."
주이는 본채로 돌아와 장수들을 불러모으고 손침의 말을 전했다.
그리고 대책을 상의했다.
후군장 우전이 먼저 계책을 내놓는다.
"수춘성 남문의 포위가 열려 있으니
제가 군사들을 거느리고 성으로 들어가서 제갈탄을 돕겠습니다.
장군이 위군에게 싸움을 걸어 접전 중일 때
우리가 달려나가 협공하면 사마소의 군사들을 무찌를 수 있습니다."
"음...... 좋은 계책이오.
허나......"
주이가 망설이자 전역, 전단, 문흠이 주이가 걱정하는 바를 알겠다는 듯
우전과 함께 수춘성에 들어가 싸우겠다고 자원하였다.
그리하여 우전과 세 장수는 군사 일만을 이끌고
수춘성 남문을 통해 성으로 진입했다.
그 모습을 지켜 본 위군은 즉시 사마소가 있는 본영에 그 사실을 보고했다.
사마소는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오군이
성의 안팎에서 협공을 시도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즉시 왕기와 진건을 불러 명을 내린다.
"그대들은 각자 군사 오천을 거느리고 나가서
주이가 오는 길을 끊고 뒤를 쳐라."
두 장수가 사마소의 명을 받고 출동했다.
주이가 작전을 실행하려고 군사들을 거느리고 진격하는데
갑자기 뒤에서 큰 함성소리가 나더니 왕기와 진건이 군사들을 휘몰아 짓쳐왔다.
왕기와 진건의 엄습에 주이가 이끄는 오군은 또 대패하였다.
주이는 얼마 전 손침이 했던 말이 계속 머리에 맴돌아
한 걱정을 하고 있는데 손침이 주이를 호출했다.
손침은 주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자마자 고함을 쳤다.
"못난 놈!
번번이 패하는 너 같은 놈을 장수라고! 이 놈의 목을 쳐라!"
주이는 대꾸도 하지 못하고 무사들에게 끌려나가 당장에 목이 떨어져 나갔다.
손침은 곧장 주이와 함께 왔던 주장 전단의 아들 전의도 불러들였다.
"또 위군을 물리치지 못하고 대패하는 날에는
너희 부자도 내 얼굴을 두 번 다시 볼 수 없을 것이다!"
장수들을 차례로 책망하고 손침은 건업(建業)으로 돌아갔다.
손침이 건업으로 갔다는 소식을 들은 종회가 사마소에게 말한다.
"손침이 물러갔습니다.
제갈탄은 밖에서 도울 구원병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다시 수춘성의 포위망을 단단히 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사마소는 종회의 말을 따르기로 하고
장병들을 독려하여 수춘성에 쉴 틈 없는 공격을 퍼부었다.
전의가 군사들을 이끌고 제갈탄을 돕기 위해 수춘성에 진입하려 하였으나
위군의 무서운 기세에 눌려 진입을 시도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대로 물러갔다가는 손침의 손에 목이 달아나는
자신의 모습이 눈 앞에 선한지라 사마소 군에 투항을 하기로 했다.
사마소는 투항한 전의를 바로 편장군에 임명했다.
전의는 사마의의 은덕에 감격하여 아버지 전단과 숙부 전역에게
편지를 적은 후 화살에 묶어 수춘성 안으로 쏘아 보냈다.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손침이 패전의 책임을 물어 주이 장군을 죽였습니다.
주이 장군의 목을 치자마자 저를 부르더니
또 다시 패전하는 날에는 저와 더불어 아버지의 목숨까지
남아나지 않을 것이라며 저를 위협하였습니다.
제가 수춘성에 들어가서 아버지와 숙부를 돕고자하였으나
위군의 기세가 드높은지라 망설이다가 마침내 위군에 투항하였습니다.
사마 대도독은 저에게 편장군의 지위를 주고 후하게 대접해주고 있습니다.
아버지와 숙부도 잘 생각하셔서 처신하시기 바랍니다.
전단은 아들의 편지를 받고 고심 끝에 전역과 함께 수천 군사를 이끌고
수춘성 밖으로 나와 사마소 군에 투항했다.
오군이 하나 둘 위군에 투항하자 제갈탄은 성 안에서 걱정의 날을 보내고 있었다.
이때 모사 장반(謨士 蔣班)과 초이(焦彝)가 제갈탄에게 말한다.
"성안에 병력은 많고 식량은 적습니다.
이런 상태로라면 성을 오래 지키는 것은 무리입니다.
차라리 전군을 이끌고 나가서
사마소 군과 결판을 내는 것이 낫겠습니다."
두 모사의 말에 제갈탄은 벼락 같이 화를 낸다.
"내가 지키겠다는데 너희들은 싸울 생각만 하니,
뭔가 다른 뜻을 품고 있는 것 아니냐!
다시 그런 말을 입에 올리는 자가 있으면 참형에 처하겠다!"
사마소의 군대로 이탈하는 군사들이 늘어감에 따라
제갈탄의 불안과 의심을 커져갔다.
그날 밤 이경 무렵,
제갈탄에게 사마소와의 정면 대결을 권했던 장반과 초이는
제갈탄에게는 승산이 없다고 판단하여 성을 넘어가서 사마소에게 항복하고 말았다.
사마소는 앞서 투항했던 전의와 마찬가지로 두 모사들을 무겁게 등용했다.
일이 이렇게 돌아가니 수춘성 안의 장병들은 나가서
싸우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도 그 말을 감히 꺼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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