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경대학에서 하계마을을 다녀와서
도산서원 답사를 마친 우리는
퇴계선생의 묘소가 있는 하계마을로 이동을 하였다.
비가 내려서 퇴계선생의 묘소 참배는 하지 못 하였으나
묘소아래 하계마을독립운동기적비 앞에서 이동신 강사의 설명을 들었다.
下溪마을은 퇴계선생의 손자 東巖 李詠道(1669~1637)선생이 터를 열어
450년 동안 수 많은 문인 학자와 관료가 배출되어 영남문화를 주도했던
마을로
1895년 선성(예안)의병에 이어 자정순국자가 잇달았고
예안만세운동과 파리장서운동, 만주독립운동 지원 등 광복운동으로
나라를 되찾았으며 마을에서 문과출신자 15명, 독립운동가 25명이
배출하기도 하였으나 마을의 역사와 삶의 애환은 안동댐건설로 사라지고
2004년 10월 7일 세워진 독립운동기적비가 마을을 지키고 있다.
우리는 마을 동쪽 강가로 가서 도산국민학교 옛터를 찾았다.
옛터에는 학교건물은 사라지고 은행나무와 교적비만 남겨져 있었고
사택으로 쓰이던 건물은 주택으로 변하여 사용되고 있었다.
陶山國民學校舊基라 적힌 교적비에는
1909년 보문의숙 개설, 1918. 4. 1 도산공립보통학교 설립인가
1918. 9. 28 개교, 1947. 9. 13 학구변경으로 2학급 온혜교 편입,
1975. 10. 10 안동호 축조, 단천동 신축교사 준공, 1976. 3. 1 신교사 이전
1993. 2. 28 아동수 감소 폐교(재학생 온혜교편입 졸업생 총 74회 3,161명) 등
학교 연혁이 기재되어 있었다.
우리는 다시 마을입구로 와서 수졸당을 찾았다.
수졸당(守拙堂)은 동암의 아들 기(岐 1591~1654)의 구장(舊庄)으로
동암선생이 분가할때(17세기) 살림집으로 지어진 'ㅁ'자형 본채와
정자, 사당으로 이루어져 있고 동암종택으로도 불리며
오른쪽 후손들이 제사를 지내기 위한 재사는
18세기 지어져 대문채와 몸채가 'ㅁ'자로 배치되어 있으며
뒷산의 퇴계와 앞산의 동암의 묘제 지낼때 사용되고 있고
이 건물들은 안동댐 건설로 현위치로 이전(100m)하였다고 한다.
16:00경 하계마을의 답사를 끝으로 오늘의 답사를 마치고
안내와 설명을 하여주신 강사님들께 감사를 드리며
안동으로 돌아왔다.
단비를 맞으며 시작한 거경대학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가믐에 단비처럼 유익한 과정이 되고
함께하신 모든분들이 올해도 더 건강하신 한해가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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