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경대학에서 월란정사를 다녀와서
이육사문학관을 출발한 버스는
왕모산 아래에 있는 내살미마을로 향하였고
마을에서 월란정사로 가는 들판에는 봄갈이를 모습도 보였고
종자용 무우를 심은 밭도 있었으며 비닐하우스 과수원도 보였다.
월란정사(月瀾精舍)는
내살미에서 삵실로 가는 길 왼쪽 언덕위에 자리하고 있으며
퇴계선생의 제자 의성 사촌의 만취당 김사원(晩翠堂 金士元)선생이
1560년(22세) 도산에 입문하여 간재 이덕홍 선생과 더불어 수학하던
월란암(月瀾庵) 옛터에 사촌김씨 문중에서 지은정사로
1909년 중건하여 동재(隱求齋), 서재(觀善齋), 마루(月暎軒)가 있다.
퇴계선생이 1546년 하계마을 양진암에 거쳐하실때
월란사에 자주 출입을 하셨고
농암선생을 모시고 황준량, 이숙량과 함께 월란대에 올라
상화유산(賞花遊山) 하시기도 하였으며
농암. 퇴계 두 선생을 따르던 후배들이
매년 월란척촉회(月瀾躑躅會)를 가져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고
퇴계선생이 주변의 절승지 열란암칠대에 대한 시(詩)를 지었으나
그 위치를 찾을길이 없어서 1993년 권오봉 박사의 주선으로
월란암칠대기적비(月瀾庵七臺記跡碑)를 세웠다.
월란암칠대기적비 앞에서
권오추 강사님은 기적비의 비문을 읽으시며 해석을 하여 주셨고
이동신 강사님은
지난해 월란정사를 사촌문중으로부터 상계문중에서 인수받았다며
주변 지형설명과 천원짜리 지폐의 뒷면에 있는 계상정거도를 설명하고
청량산 오산당에 대한 질문에 대하여
퇴계선생이 살아 계실때 청량산은 퇴계종가의 소유가 아니었고
퇴계선생이 돌아가신 후 조선 영조때 하사를 받았다고 전하며
퇴계선생이 청량산을 오가산(吾家山)이라고 하신 것은
우리(儒家)들의 산이라는 표현이라고 설명을 하면서
오늘의 답사를 마쳤다.
따뜻한 봄날 잔디언덕에서 뒹굴던 추억을 떠 올리며
댭사를 마치고 내려오는 길옆 바위에는 토종벌통도 보였고
다래넝쿨 아래에는 머위가 돋아나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오늘도 거경대학에서 개강식과 인근지역 답사를 하면서
봄이 찾아오는 농촌의 모습들도 구경하며 즐겁게 보냈다.
안내하신 강사님들과 함께하신 모든분들께 감사를 드리면서
매화꽃과 산수유꽃이 만발한 예술의 전당에 도착하여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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