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매월당기념관을 다녀와서
선교장 답사를 마치고
13:10 인근에 있는 매월당 기념관을 찾았더니
주차장 안내판 옆에 발갛게 익어가고 있는 석류가 우리를 반겼다.
도로에는 '김시습기념관' 안내판과
'이 곳은 한국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를 쓴 매월당 김시습기념관입니다'란
안내판이 있었고 주차장에는 전용주차장 안내판과
강릉김씨 문중에서 세운 夢死老 梅月堂 紀籍碑도 볼 수 있었으며
기념관 입구에는 梅月堂 遺筆詩 비도 볼 수 있었다.
매월당 김시습(梅月堂 金時習 1435~1493)은
자는 열경(悅卿), 호는 매월당. 동봉(東峰), 법호는 설잠(雪岑)으로
강릉김씨 시조 김주원의 23세손으로 아버지 金日省과 어머니 울진 장씨
사이에서 서울 명륜동에서 태어나 8개월만에 글을 쓰고 읽었다고 전하며
5세 세종앞에서 '三角山詩'를 지어 비단 50필을 받고 '五歲童子'라 불렀고
15세 어머니가 돌아가셔 강릉에서 시묘살이를 하였으며
21세 세조가 단종의 왕위를 찬탈하자 입산하여 승려가 되어
생육신의 한사람이 되었다.
24세 '유관서록(遊關西錄)'을 지었고 26세 유관동록(遊關東錄)을 지었으며
29세 유호남록(遊湖南錄)을 지었고 31세 금오신화(金鰲新話)를 지었으며
39세 유금오록후지(遊金鰲錄後志)를 짓고 49세부터 강릉, 양양을 여행하다가
57세 설악산에 입산하였고 59세 부여 무량사(無量寺)에서 입적하였다.
금오신화(金鰲新話)는
기이한 이야기를 쓴 전기체소설(傳奇體小說)의 효시로
만복사저포기, 취유부벽정기, 이생규장전, 남염부주지, 용궁부연록 등
다섯편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기념관을 돌아보고 매월당의 일생과 금오신화를 구경하며
격식없는 자유로운 시와 글을 썼던 문인이자
불교의 철학과 유교의 이상을 결합하려고 고심하였던 철학자,
몸과 생명을 중시하는 수련을 실천한 사상가, 백성들의 삶을 동정한 인도주의자,
우리 국토의 아름다움과 그 속에서 전통미를 찬미한 여행가로서 삶을 사셨고
시대와는 불화하였던 지식인이나 고결한 인품과 굳센 지조를 지켜왔던 인물로
선조는 율곡선생에게 전기를 짓도록 하여 '매월당집'을 발간하였고
정조는 시호를 청간공(淸簡公)으로 하여 그 풍모를 기렸다고 전한다.
우리는 매월당 기념관을 나와서
초당마을에 있는 해운정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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