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

안동향교에서 경주 옥산서원을 다녀와서

오토산 2024. 11. 10. 15:44

안동향교에서 경주 옥산서원을 다녀와서

 

2017년 미국대통령 트럼프가 대한민국 국회에서 연설하였던 11월 8일

안동향교 의례보존회원과 장의들이 안동시청앞에서 경주.포항지역으로

유림연친회를 떠났다.

 

안동시청은 고려말에 대설향교로 창건되었던 안동향교가 자리하였던 곳으로

안동향교구지(安東鄕校舊址)비가 庚寅年(1950) 병선(兵燹)으로 완전소실되어

丙寅年(1986) 송천동에 복설하였다는 사실을 전해주고 

1947년 안동사범학교가 설립되어 1963년까지 졸업생 7,806명을 배출하였고

1948년 안동사범학교 병설중학교가 설립되어 졸업생 2,929명을 배출하였으며

1965년 안동교육대학이 설립하여 1978년까지 졸업생 2.478명을 배출하고

1978년 안동초급대학이 설립되어 국립안동대학교로 개편되었다는

교적비가 있었다.

 

08:00 출발한 버스안에서

김숙동 전교님의 감사인사와 김대현 국장님의 일정소개가 있었고

군위영천휴게소에서 잠시휴식하였다가 10:30 옥산서원에 도착하여

역락문과 무변루를 지나 원장님의 소개를 받으며 체인묘에 알묘를 하고

구인당에서 경일대학교 경영대학장을 지내신 회재선생 14세손

李源均 강사님으로 부터 서원현황을 소개 받았다.

 

옥산서원(玉山書院)은

자옥산 아래에 위치하여 옥산이라 하였고 홍살문이 없으며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 1491~1553)선생은 중종때 문신이자 성리학자로

동반오현(정여창, 김굉필, 조광조, 이언적, 이황)의 한사람으로

삼묘(家廟不遷位, 宗廟配享, 文廟從祀)에 배향되어 있으며

1572년(선조 5) 경주부윤 이제민이 지방유림의 듯에 따라 6개월만에 창건하여

이듬해 사액되어 아계 이산해가 쓴 현판이 내측에 걸려 있었고

1438년 구인당이 소실되어 1840년(헌종 6) 구인당을 중건하여 재사액되어

추사 김정희가 쓴 현판이 외부에 걸려 두 개의 현판이 걸려 있었으며

2010년 한국의 역사마을 히회와 양동 일부로, 2019년 한국의 서원으로

2018년 영남유생 복제개혁반대만인소(세로 1.2m, 가로 100.36m. anrp 8.3㎏)가

아시아태평양유네스코기록유산으로 등재되면서 세 번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제향공간인 체인묘(體仁廟)에는

위패 文元公晦齋先生으로 쓰여 성(李)자가 없다고 하며  향사시 통마리돼지를

무변루와 구인당, 체인문 중문을 통해서 운반하는 사다리가 보관되어 있으며

오른쪽에 어서, 어필, 내사본, 퇴계수필 등이 보관된 경각(經閣)과 전사청이 있고

왼쪽에는 1577년(선조 10년) 서원앞 용추계곡에 세워졌다가 1614년에 옮겨진

고봉 기대승이 짓고 아계 이산해가 썼다는 신도비와 비각이 있었다.

 

숲속에 자리한 옥산서원의 강학공간은 

인(仁)을 구하고 실천하는 사람이 되자는 뜻의 구인당(求仁堂 단청있음)에는

명(明)과 성(誠)을 추구하면서 앞으로 전진하자는 양진재(兩進齋 원장실)와

경(敬)과 의(義)를 갖추어 바르게 행동하자는 해립재(偕立齋 교수실) 두 협실이 있었고

정면에는 마음을 넓고 쾌활하게 가져 거리낌없이 살라는 무변루(無邊樓)가 있었으며

민첩하게 잠시도 머무름 없이 인(仁)을 구하라는 민구재(敏救齋 동재)와

드러내지 않는 가운데 날마다 수신하라는 암수재(闇修齋 서재) 등 핵심건물의

처마가 거의 붙어 있고 무변루의 편액이 내부로 향하며 구인당과 무변루의 문이

바깥쪽이 막히고 내부로 향하여 내부지향적인 공간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서원의 출입은 동입동출(東入東黜)로 삼문의 서문에는 계단과 바닥돌이 없었다. 

 

구인당편액의 테두리는 용(龍) 2마리가 태극(仁)을 구하는 모습을 하고 있으며

양진재에 있는 통죽장(通竹帳)은 원장과 아랫사람들이 담배를 피울때

같은 공간에서 휘장으로 가리고 담배를 피우는 배려(配慮)를 하였던 도구라 하고

무변루 계자난간의 풍혈(구름모양)은 자연선풍기 역할을 하였다고 전하며

무변루 앞의 정료대(庭燎臺)는 야간에 횟불로 가로등역할을 하였고

주간에는 해시계의 역할도 하였으며 종쪽지붕에는 명문(銘文)기와도 있으며

동쪽벽에는 원형굴뚝 1개, 서쪽벽에는 네모굴뚝 2개를 설치하여

천원지방(天圓地方)을 표현하였다고 한다.

 

향교는 관리양성을 위해 입신(入身)을 중점으로 도시에 가까운 곳에 있었고

서원은 인격완성을 위해 수신(修身)을 중점으로 자연과 가까운 곳에 있었다는

설명을 들으며 상세하게 설명을 하여주신 강사님께 감사를 드리고 서원을 나와서  

마음을 씻고 자연을 벗삼아 학문을 구하는 세심대(洗心臺)에서

자계천 너럭바위와 퇴계선생이 쓰신 洗心臺와 龍湫 암각글씨를 구경하고

삼국사기 등이 전시된 옥산서원유물관은 다음기회에 보기로 하고

원장님께 감사인사를 드리고 12:10 우리는 포항죽도시장으로 출발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