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남자들은 퇴직 후에
집안 어디에도 아버지의 자리가 없다고 합니다
젊어 열심히 일하고
노년기에 내 자리가 없어
거실도 안방도 편편치 못하여
가족들 눈치를 보게 되는
아버지 자리의 부재
바깥으로 등산 배낭을 메고
산에 오르는 것도 한 달 두 달이면
운동 아닌 고역
그를 위해
제일의 안성맞춤의 방법은
나만의 내밀한 공간을 만들어 두는 것
집안에 방 하나를
책을 둘러친 서재로 꾸며
당당하게 나만의 공간으로 만들 일입니다
당당한 남편의 자리며
아버지의 자리를 차근차근 준비하는 지혜
가족간의 불편과
서로간의 영역을 함부로 넘나드는
좌충우돌의 고난기로 가족간 불협화음에서
눈에 보이는
불만족으로 자꾸만 사사건건 참견하고
점차 좁쌀영감으로 치부되어
가족간에 외톨이화로 치닫는
지극히 평범한
노년기의 고통으로 드는 코스에서
슬몃 비켜앉아
나만의 공간을 갖는다는 것
그곳에서 무한한 정신적 유영을 하면서
바쁜 젊은 날에 겪지 못하였던
독서의 참맛과 그 깊은 곳으로의
깊디 깊어지는 정신적 향유를
알아간다는 것
기나긴 노년기의 고통자리가 될 가능성을
아예 유비무환의 행복자리가 될것임에
세상 하나밖에 없는 나 자신의 자존감을
점차 하늘같이 높여갈 것이다
허면
평소 출근하듯 서재에 들었다가
식사 때를 제외하곤
이곳 저 공간을 왔다 갔다하며
가족들의 불편함에서 비켜앉는다면야
백세시대 긴 노년기에서
이것만큼 친근하고 의미가 깃든
일석이조의 행복자리가
세상 그 어디에 존재할 것이며
스스로 짓는 복이 아니고 또 무엇이겠는가
어머니 가시고
작은 방을 서재로 만들 요량으로
작은 처남에게 책장을 하나 부탁하였더니
일곱 칸으로
짱짱하게 짜서 트럭에 싣고 내려왔습니다
유년의
나날에서 할아버지 계신
사랑방에서 들려오던 시조 읊으시던
낭낭한 소리와 탕건에 갓이 걸려있던
바람벽과 완자무늬 문창살
학생으로 방학이나
사회 초년생으로 休의 시간을 얻으면
바로 고향으로 내려가 할아버지 계신
사랑방에 앉기를 좋아했습니다
할아버지 계시던
그 사랑방의 분위기에
다시 앉았고 싶은 그 한 마음으로
서재를 갖고 싶었습니다
그리곤
책장에다가 방마다 여기 저기 흩어졌던
책들을 모아보니 안성맞춤으로
나만의 내밀한 홀로 공간인
작은 서재가 되었습니다
책장에 진열된 책들은
거의가 낯이 익어
집앞 몇 걸음
도서관에서
대출
책읽기의 즐거움에 드는
나름대로의 三樂에 들곤 합니다
고요로움의 서책
바다같이 넓고 깊어지는 사색
심연으로 젖어드는 음악
이 세 가지를
아무도 모르라고
오롯이 즐기곤 합니다
서재에서의
[樂]
풍류 락이란 뜻 글자
그 의미를 알아가고자 함입니다
연전에 도서관에서
즉석사진을 찍어 발급 받았던
지갑을 열면 첫 칸에 꽂아두면서
신용카드 보다 자리 앞쪽에
제일 소중히 여기는 것이
도서관 회원증입니다
이제는
지차체들에서
도서관 전산화가 완료되어
여기 도서관에 없는 책은 저 회원증으로
전국 도서관의 희귀본까지
온라인으로 집에까지
택배로 받아서 읽고
집앞 도서관에다
반납을 합니다
책을 좋아하는
독서인들에게는 더없이
아주 좋은 국가적 시스템입니다
택배비는 물론 본인 부담입니다
그러니 현금카드의 유용성보다 저에겐
더욱 유용가치가 높은 도서관 회원증입니다
여행을 하다가
낯선 지방도시 도서관에서
책을 읽다가는 어느 희귀본 부분에서는
이렇게 삼천원 짜리 복사카드 한 장으로
거의 무한대로 프린트를 하여
책 제본하듯 책을 엮어
책읽기를 합니다
말에는
네 가지 種이 있다고 합니다
▶가장 훌륭한 양마는
채찍을 휘두르는 그림자만 보아도 똑바로 내닫고
▶두 번째 좋은 말은
채찍이 털끝을 스칠 때 달리며
▶세 번째 말은
몸에 채찍이 떨어져 아픔을 느껴야만 달린답니다
▶마지막 말은
아픔이 골수에 사무치도록 모질게 맞아야
비로소 달리기 시작한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도 네 가지 부류가 있다고 합니다
●남들이 병들어 죽음에 이르는 것을 보고
열심히 마음공부하는 사람
●세월이 지남에 따라 점차
무상함을 느끼고 공부하는 사람
또한
●몸과 마음에 병이 들어
그제사 아픔을 느껴야만 공부하려는 사람
그리고
●늙고 병들어 아픔이 골수에 사무쳐
사람의 생 끄트머리에 임박해서야
공부하려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만사에
탄탄한 내공을 하나씩 쌓지 못하고선에
늦게사 허둥지둥 서두르기만 하면
되는 일 절대 없다는 것
마음공부는
거문고 줄을 켜듯
너무 세게 조이지 않고
또한 너무 느슨하게 풀지도 않으면서
평상심으로 적절히 맞추어 나가야만이
제대로 된 진짜배기 마음공부가 되던 것을요
마음공부의 重함은
사람 저마다의 삶에 있어서
반드시 수행해야만 할 숙제와도 같은 것이며
목표와도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조급해 하거나 서두르면
삶을 더 고단하고 바쁘게 만들 뿐이었습니다
무릇 선비란
그 어떤 삶의 채찍도 필요치 않게
자유롭게 저 푸른 초원을
바람처럼 달려 나아갈 일입니다
작은 것에서
행복을 찾아가고
저윽히 하찮게 여기게 되는 것들을
사랑할 줄 알고
그것들에게 세심함으로
관심을 가지면서
그냥 물끄러미 바라만 보아도
그것이 곧 마음공부가 되던 것을요
고요키 그지없는
혼자만의 고즈넉한 서재에 들어
한낮에는
뒷산에서 들려오는
뻐꾸기 소리에 귀를 모으고
밤이 오며는
창 아래 논배미에서
들려오는 개구리 소리 벗삼아
심심파적으로 책을 읽다가
앞날을 대비하는 깊은 공부도 하다가
의자에 머리를 잇대고 눈감아
나른한 오수에 빠져드는
한갓진 일상
이 지극히
소소한 것들의 重함을 알아간다면
세상 이보다 더 좋은 마음공부가 어디 있겠는지요
서재 스탠드 아래
내 마음속 표상으로 곁에 모셔둔
꼿꼿하고도 당당한 선비像
서책을 하다가 잠시 그윽히 바라보면
내가 마치 선비가 되어가는
미니 병풍과 꼿꼿하고도
당당한 저 풍모
옛 선비된 마음공부로
이윽히 바라보면서
즐기는 書冊
풍류의
三樂
고요로움의 서책
바다같이 넓고 깊어지는 사색
심연으로 젖어드는 음악
혹여 이 글이
서재 자랑질로 곡해가 되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요즈음
찔레꽃이 들판이며 밭둑 가장자리로
지천으로 피어납니다
출처/매양이 좋은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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