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문화

사도실과 청천서원

오토산 2014. 10. 20. 04:55

 

 

사진이나 동영상이 잘보이지 않으시면 아래주소로 확인해주세요

http://blog.daum.net/uh512/7355

 

사도실(思道谷) 청천서원

 

성주군 대가면칠봉리 사도실마을에 소재한 청천서당은 영조5년(1729) 창건되고

동강 김우옹을 봉향, 회연서원과 함께 성주군의 대표서원으로 사림활동을 하다가 

1868년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어 1883년 복원을 창의 하으나 뜻을 이루지 못해

동강의 12대주손인 김호림(심산의 부)에 의해 청천서당으로 중건되어 오다가

 1992.4.26. 유림과 후손들에 의해 복원하였다.

1910년에는 심산 김창숙이 애국계몽운동 일환으로 청천서당을 사립 성명학교라는

간판을 걸고 교사로 활동하기도 하고 거처하기도한 건물이었다.

 

동강 김우옹선생은 본관은 의성, 자는 숙부, 호는 동강 또는 직봉포의

 삼척부사를 지낸 칠봉 김희상의 넷째아들로 1540년(중종35) 사도실에서 태어났다.

용모가 뛰아나게 잘나 기질이 단아하며 말하는것이나 노는것이 남 달랐다.

남명 조식의 문인으로 심경근사록을 배우고

퇴계의 제자가 되어 높은 학문의 정맥을 이어 받았다.

 

심산 김창숙선생은 1879년(고종16) 사도실에서 김호림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자는 문좌, 호는 심산 또는 벅웅('벽'은 앉은뱅이 벽자로 일제의 고문에 의해

불구의 몸이 되어 붙인호) 본관은 의성으로 동강 김우옹의 13세손이다.

면우 곽종석에게 수학, 1903년(광무7) 星明학교를 세워 후진을 가르쳤으며

1905년(광무9)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자 일진회를 성토한죄로 옥고를 치렀다.

광복후 유도회를 조직하여 성균관대학을 창립해 민족문화 함양에 노력하었다.

 

청천서원은 닫혀진것을 열쇄를 얻어 구경하였으나 청천서당은 성명학교

간판이 걸린채로 닫겨 있었고 심산선생 생가만 돌아보고 돌아왔다.

돌아 오면서 관리가 소홀해져가고 있는 서원이나 종택의 관리문제를

 걱정을 하였다.

 

세상사 한마디

자유는 즐기는것이고 속박은 날려버리는것이며

웃음은 나를 위한것이고 울음은 남을 위한것이다.

기쁨은 행복하고 행복은 바로 내가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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