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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게 물려주었던 해월헌
문향울진은 다사지향으로 퇴계학풍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나 조선후기에
송시열의 학풍이 들어와서 서원 9개소중 2개서원에 송시열이 배향되어 있다.
한국국학진흥원 ,제6기 시민을 위한 국학아카데미>에서 해월헌을 답사했다.
海月軒은 공조참의를 지내고 이조참판에 추증된 해월 황혀일(1566~1622)의
별구로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간 해월이 명황제의 오해를 풀고 황제의 질문에
'조선은 3천리 밖에 안되지만 저의 집앞에는 만리 창해가 보입니다'라고
답한후 귀국하여 급히 마악산 아래 바다가 보이는곳에 해월헌 옆에 정침을
지었으나 불에타 없어지고 1588(선조21)건립, 1847(현종13)에 현위치 이축
아계 이산해가 유배를 오면서 '태백산 줄기가 끝나는 곳에는 반듯이 정기가
뭉쳐진 길지가 있다. 이 해월헌 터가 바로 내가 찾던 곳이다'라 했고
'봉황이 알을 품은 형국'이라 아늑하게 감싸 안은 기풍이 서린 적송과
왕대숲이 고가와 잘어울리며 이산해.한석봉등 20여명의 현판이 있다.
옛날부터 강릉 이남의 길지로 이 기운을 이어가려면 딸에게 집을 물려주어야
한다고 해서 정선군수를 지낸 권조가 살다가 사위인 홍천군수 이명유에게
물려주고 이명유는 사위 정창국에게 주었고 정창국은 사위 황응징에게 주었다.
황응징은 해월의 부친으로 외아들인 해월에게 물려주고 그후로는 장자에게
물려주고 있다.
요즘은 뒷산을 '대게형국'이라는 이야기도 있으며 종택의 양쪽산이 대게의
집게발 모양을 하고 있는것 같았고 종택에서는 특색있는 굴뚝을 볼수있었고
튓마루에는 엿기름을 말리고 있고 대문앞에는 토란뿌리도 있었으며
마을입구에는 고무물통에 조경수가 있었고 콘크리트 풒륨관으로 만든
텃밭도 이채로 왔다.
해월헌을 뒤로한 우리는 망양휴게소에서 잠시 휴식을 하였다.
휴게소에서 '사진 잘나왔지요?'하니 "사진까지도 잘나왔다'고 대화한다
사람도 아름답고 경치도 아름답고 사진도 함께 아름답다는 표현이다.
이렇게 재미있는 대화를 나누며 즐거운 여행을 하였다.
세상사 한마디
마음과 마음을 영결시켜주는 말 "사랑합니다"
사랑에서 제일 중요한것 "조금씩 천천히 가까워지는것
그리고 신뢰와 믿음"
해월헌뒷편의 대나무숲
해월헌둣편의 적송
해월헌의 현판
집게발혀태로 생긴 해월헌옆의 산줄기
망양휴게소에서
이채로운 굴뚝과 엿기름
풀륨관 텃밭과 망양휴게소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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