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교실

정도전이 찾아낸 위임과 비움의 방법(이면동)

오토산 2015. 1. 15. 05:19

 

 

2. 정도전이 찾아낸 위임과 비움의 방법

1) 민본(民本) 사상...

그럼 정도전 사상의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한 마디로 민본사상입니다.
그 동안 교과서에서 하도 많이 들어서 다소 식상하기까지 들리는 민본사상이야말로
정도전을 비롯한 세종대왕, 조광조, 이이, 정약용, 그리고 개항기의 서재필에

이르기까지 조선조 정치가들의 저술 속에 일관되게 흐르고 있는

 ‘한국형 정치의 제1원리’입니다.
이 민본이 리더로써 조직원들에게 행할 수 있는 비움과 위임의 방법이 되는 것입니다.

민본이라는 말은 원래
‘민유방본(民惟邦本)’
즉,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다라는 뜻으로 사서삼경의 하나인 서경에서 나온 말입니다.
서경의 우(寓) 임금이 “백성을 가까이 생각해야 하며, 얕잡아봐서는 안된다.
백성이야말로 나라의 근본이니 근본이 튼튼해야 나라가 편안한 법이다.
내가 천하를 둘러보니 우부우부들도 모두가 나보다 훌륭한 사람들이었다.” 라고

말한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말은 어리석고 못 배운 백성들이라 하더라도

나보다 나은 사람이었다는 것으로 지도자의 핵심 덕목이

 이른바 백성들을 위한다는 ‘위민’에 있는 것이 아니고,
그 백성들의 나은 점은 공경하고 또한 두려워하는 마음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경외’인 민본의 낮은 자세입니다.

실제로 정도전은 [조선경국전]의
“첫 페이지에서 임금의 자리는 높기로 말하면 높고, 귀하기로 말하면 귀한 것이지만 백성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크게 염려할 일이 생긴다”면서

 그 이유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하층백성들은 지극히 약하지만 힘으로 위협할 수 없고,
지극히 어리석지만 꾀로써 속일 수 없는 존재이다. 임금의 그들의 마음을 얻으면

 복종하게 되지만 마음을 얻지 못하면,
돌아서서 뒤집게 된다. 백성들이 복종하는 것과 뒤엎는 것 사이의 간격은

 털끝만큼의 차이도 나지 않는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럼 임금 또는 지도자는 어떻게 백성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백성들의 비위를 맞추거나 홀로 스스로를 높인다고 되지 않는 다는 것이

 정도전의 생각이었습니다.

천지 자연처럼 지도자는 백성들이 스스로 잘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락생(樂生)하도록 보살피고 북돋아주면, 백성들은 자연히 지도자를 부모처럼 따르고 존경하여 결코 나라를 뒤엎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게 정도전의 생각이었습니다.

백성을 근본으로 삼지 않는 정치는 어디에서도 설 자리가 없다는 경국의 조건은

 정도전이 설계한 궁궐의 구조를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즉 성밖에 깊은 해자와 겹겹히 쌓인 높인 성곽들로 만들어진 일본 에도성이나

 중국 자금성과 달리 경복궁이나 창덕궁은 궁궐 안 세력과 연계만 된다면 의외로

 쉽게 넘어갈 수 있는 낮은 담장으로 둘러쳐져 있습니다.

신민들의 지지를 얻지 못하는 왕은 여차하면 제거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내가 이 나라의 참 된 뿌리이기 때문에 상대가 비록 왕이나 대통령이라

 할 지라도 언제나 잘못한 점을 꾸짖을 수 있다는 한국인들의 강한 비판 정신은

이러한 역사적 경험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600년 전의 인물 정도전은 말합니다.
국가와 회사를 살리기도 하고, 뒤집을 수도 있는 사람은 대통령이나 사장이 아니고

바로 국민이고 회사원들이라는 엄연한 사실이라는 점.
그리고 한국인들의 마음 속에 깊이 뿌리 박혀 있는 민본의식, 즉, 내가 이 나라

 이 기업의 주인이라는 생각을 살려내서 거기에 힘을 실어 줄 수 있다면

그야말로 온 국민과 모든 직장인들이 정말로 신바람나게 일할 것이라고,
혹시 부하직원을 그저 일꾼으로만 인식하는 CEO가 있다면 정도전의 민본의식을

 생각해봐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리더는 이러한 민본의 방법,
즉, 백성들로부터 국가가 무엇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지를 듣고 깨달을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2) 마음을 얻기 위한 기초 ‘인(仁)’
그럼 이러한 민본사상은 선비사상에서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바로 ‘인(仁)’입니다.

인격완성을 위한 ‘인의예지’의 출발점이며
기초인 ‘인(仁)’은 모든 사람을 긍휼히 여기는 행동입니다.

‘인(仁)’은 서양철학에서는 ‘사랑’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에로스적 사랑이 아니라 아가페적 사랑을 말하는 것입니다.
맹자는 이를 ‘측은지심’이라고 하여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인’을 본성으로 갖는다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사람은 ‘인’의 본성을 마음에 담아 둘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실천적 행위로

다 써야 하는 것입니다.

3) 최선의 결정을 이끌어 낸 정도전의 상향리더십

시대의 만남
함경도의 일개 무장이던 이성계가 조선왕조의 창업군주가 되고,

충북 단양의 삼봉근처에서 도전,
즉, ‘길에서 우연히 얻은 아이’가 조선왕조 최고의 재상으로 일약 출세한 이야기는

드라마보다 더 흥미진진합니다.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개인, 조직, 국가의 명운까지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이들의 만남은 잘 보여줍니다.
그럼 삼봉 정도전이 태조 이성계와의 관계 속에서 발휘한 상향리더십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상향리더십(Leading Up)의 정의]
상향리더십은
“모든 사람의 본성에 존재하는 최선을 이끌어 내기 위한 하나의 요청이다.
(펜실바니아大 마이클 어셈교수가 첫 소개)”라고 정의됩니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Best,
즉, 최선이라는 단어인데,
이 최선의 결정을 이끌어내기 위해 아랫사람이 상사에게 발휘하는
‘도움의 리더십’ 이 그 핵심입니다.

도움의 리더십은 어셈교수 훨씬 이전부터 존재해 왔고,
특히 정도전이야말로 이 상향리더십을 잘 발휘한 인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정도전이 말하는 상향리더십]
정도전에 따르면 “임금이 재상을 논함에 제 뜻에 맞추는 것만 원하고,

자기를 바로잡아 주는 것을 구하지 않으면,
이미 직분을 잃은 자이고, 재상이 자기 몸이나 돌보고 은총 키우는 것만을

능사로 삼는다면 그 역시 직분을 잃는 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정도전의 상향리더십은 윗사람, 아랫사람 모두의 의무요 직분이라는 것이

정도전의 신념이었습니다.

[어떻게 발휘되었을까]
그럼 실제로 정도전의 상향리더십은 조선의 건국 과정에서 어떻게 발휘되었을까요?
국역 태조실록에서 이름을 검색해보면
정도전(119건) > 조준(101건-건국의 동지) > 이방원(36건-실록편찬의 집권자)

 순입니다.

‘건국에 있어 그의 비중을 알 수 있습니다.
정도전의 상향리더십이 가장 빛난 던 사건은 이성계가 비방과 참소에

시달렸을 때입니다.

1389년 공양왕 때 이성계가 주축이 되어 전제개혁을 추진하였는데, 뜻밖에도

공양왕은 눈물을 흘리며 반대를 표하자 반(反) 이성계파들은

사전혁파로 큰 손실을 입은 구가세족들과 연합해 반격을 시작했습니다.

[백척난간에서 떨어진 이성계]
이즈음 이성계는 해주에서 사냥을 하다 말에서 떨어져 다치는 사고를 당했는데,

 천하의 명장 이성계가 낙마했다는 사실은 그야말로 "원숭이가 나무에서 떨어졌다.", "백척난간에 오르다 실족했다"라고 하며
정적 정몽주 등은 조준을 탄핵하고 정도전을 국문에 넘겨 이성계가 왕이 되려 한다는 자백을 받으려 했습니다.
아예 역모죄를 씌워 재기불능의 상태로 만들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믿었던 정몽주가 반기를 들고, 동지들이 궁지에 몰리자 이성계는

뒤로 물러서려고 합니다.
그러자 이성계는 "죽고 사는 것은 운명이니 다만 순리대로 받아들일 뿐이다"며

귀향을 준비하는 자포자기의 모습을 보였습니다.
무인 특유의 단순함과 수동성을 드러낸 것입니다.

이때 정도전이 나섰다!
바로 그 때 정도전이 이성계를 찾아갑니다.
정도전은 "공의 몸은 종사와 백성에 매여있으니 어찌 경솔하겠습니까!
조정에 남아 현인을 등용시키고, 불초한 사람들을 물리쳐 기강을 진작하면

참소는 저절로 그칠 것입니다.
참소는 불과 같아서 초반에 진화하면 꺼지지만 도망치면 오히려 더 타오릅니다."
이에 이성계는 결심을 바꿔 과전법(토지공개념)을 들고 복귀했습니다.

[한양천도와 정도전]
정도전이 발휘한 상향리더십의 또 다른 사례는 이성계의 뜻을 받들어 한양으로

천도한 것입니다.

고려의 수도 개성에서는 새 국가의 위상을 일신할 수 없음을 판단한 이성계는

즉위 26일만에 도평의사사에 천도를 지시합니다.
그런데 신하들의 반대로 공주계룡산 아래로 천도 하려는 계획이 무산되더니,
지금의 연세대학교 근처인 무악으로 갈지, 경복궁 자리로 가느냐 하는

논쟁만 계속되었습니다.
그러자 정도전이 이 논쟁에 뛰어듭니다.

그는 애초에 천도 문제에 특별한 의견이 없었으나 주군 이성계의 의견을 들어본 결과 천도가 타당하다고 생각해 이성계의 의견에 역사적 사례와 논리를 뒷받침해 줍니다.
그는 천도를 반대하는 자들이 풍수지리를 그 근거로 들고 있는데,
과거 명당이라고 알려진 곳에 천도하였지만 패망한 역사적 사례와 풍수지리가

나쁘다고 하는 곳에 천도하였지만 풍성한 사례를 들어 반대론을 논파합니다.
이어서 그는 천도를 결정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국왕의 정치적 의지라고 말합니다.

모름지기 국가의 치란은 사람하기에 달려있다(人有治亂),
즉, 국왕이 인재를 모아 백성들을 소생시키려는 의지와 역량이 도읍지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주장해 이성계의 뜻을 최종적으로 실현시켰습니다.

[그가 위대한 이유]
하지만 정도전이 이처럼 적시에 충고하고, 주군의 뜻을 보필해 실현시키는 정도에서 그쳤다면, 그는 그저 수많은 재상이나 참모 중에서 한 명에 불과했을 것입니다.
그의 위대성은 아랫사람이 상사를 충고하고 보좌할 뿐만 아니라 나아가 비판과

대안제시까지 가능한 정치체제를 구상하고 실천했다는 것입니다.


바로 조선왕조체제를 장기간 지탱시킨 경국대전체제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것을 쉽게 말하면 사다리 위에 올라가 그림을 거는 사람.
즉, 왕과 재상들에게 사다리 아래에 있는 언관이 기탄없이 말할 수 있도록

면택특권을 부여하고,
특히 유능하고 덕망있는 재상에게 국정의 주요 업무를 위임하되,
왕 자신은 재상이 추구하는 좋은 정책에 힘을 실어주는 그래서 왕의 계승도

안정적으로 이루어지면서 동시에 효율적으로 국가경영도 가능하게 하는

정치체제였습니다.

[경국대전체제]
①언관 : 면책특권을 가지고 재상과 왕을 견제
②재상 : 국정, 주요업무를 위임 받은 자
③왕 : 좋은 정책에 힘을 실어주는 존재
안정적 왕위계승과 효율적 국가경영!

[최고 지도자들의 꿈]
조직의 목표를 효율적으로 달성하면서도 건강하고, 장기 지속하는 나라,

기업을 만드는 것은 모든 지도자들의 공통된 꿈일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도자는 먼저 자신을 비운 채 인재들의 아이디어가 쏟아져

들어오게 하면서 각각의 리더들로 하여금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게 만드는

 비움과 위임의 리더십을 발휘하게 하면 어떨까요?

아울러 정도전이 이성계의 한양천도 목표를 보좌하여 이루어 냈듯이 구성원들도

각각의 위치에서 상향리더십을 헌신적으로 발휘한다면

그 어떤 목표도 이루어 낼 것입니다.

[미련한 청년에서 영혼의 경세가로]
● 미친듯 곧기만 했던 사람이 어떻게 “민본”하는 영혼의 경세가로 거듭났을까?
- 정신병자가 될 만큼 밑바닥을 경험한 것
- 백성들로부터 국가가 무엇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지를 듣고 깨달은 것
- 이성계란 인물을 찾아내 백성이 주인되는 국가의 비전을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