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값진 소금장수 이야기
옛날 전라도 전주땅에 길례라는 이름의
어여쁜 처녀가 살았습니다.
이목구비가 반듯하고, 피부가 박 속같이 희어
중국의 양귀비나 서시 같은 미녀들이 울고 갈 만큼
아름다웠습니다.
길례의 미모가 얼마나 대단했는가 하면
동구 밖에 서있는 천하대장군 장승이
나들이 나선 그녀의 자태에 홀려 곁눈질을 치다가
짝꿍인 지하여장군에게 혼찌검을 당했다는
쑥덕공론이 삼이웃에 왁자지껄할 정도였습니다.
일찍이 영국의 정치가 체스터필드가
“여인의 아름다움은 남성의 기지와 마찬가지로
소유자의 운명을 결정한다”
적절히 지적한 것처럼 길례 또한 전주부 내에서
손 꼽히는 명문가의
자제와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인연은 불행했습니다.
왜냐하면 길례의 아버지는 백정이나 갓바치
등과 더불어 천하의 상것으로 취급받는소금장수인 데다
고린전 한 푼 손에 쥔 것 없는 가난뱅이였기 때문입니다.
반상의 차별이 엄격해서 위계질서를 무너뜨리는 혼사를
국법으로 막던 시대였던지라
상사병 앓는 아들을 차마 몰라라 할 수 없어
막상 결혼을 시키긴 했지만
시부모들이 며느리를 보는 눈과 대하는 태도는
얼음장처럼 차가웠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아들은 과거준비를 핑계로
사랑방에 독선생 붙여 가두다싶이 해놓고,
미운털 박힌 며느리는
안채에서 감시하기 쉬운 행랑에 처박아 두고는
종 부리듯 혹독한 시집살이를 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장닭이 첫홰를 치는 꼭두새벽부터 쇠죽끓이기로 시작되는
길례의 일과는 자정 이슥한
오밤중의 다듬이질까지 잠시도 허리 펼 짬없는
중노동의 연속이었고, 한 식경도 꾸지람이며
지청구 멎을 순간이 없는 고통의 나날이었습니다.
그래도 길례는 참고 견뎠습니다.
시댁에서 반대하는 결혼을 한 이상
당연히 겪어야 할 통과의례이자
분수를 지키지 못한 당연한 죄갚음이라 여기고
비인간적인 온갖 모욕과 탄압을 달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신랑의 변함없는 사랑이었습니다.
가끔 독선생의 삼엄한 눈길을 피해
사랑채를 빠져 나온 신랑은 몰라보게
야윈 길례의 볼을 떨리는 손길로 어루만지며
반드시 과거에 급제해서 분가나 한양에서 편히
살게 해주겠노라 굳게 다짐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뜨거운 눈물이 용솟음쳐 올라 왔지만
길례는 피나도록 입술을 깨물어
그 슬픔을 꾸욱 눌러 참은 채
“아무 걱정말고 공부에만 전념하라”
고 오히려 신랑을 다독여 사랑채로 되돌려 보냈습니다.
길례가 시부모로부터 부당한 구박을 받으며
고추 당추보다 매운 시집살이에 시달리고 있다는
소식은 얼마 지나지 않아 성밖 친정에까지 전해졌습니다.
비록 집안 형편이 어려워 호강은 시키지 못했지만
쥐면 꺼질세라,
불면 날아갈세라 애지중지 키운 무남독녀 외동딸을
부잣집 양반댁으로 시집보낸 뒤에 하루도
마음 편한 날 없이 조마조마 가슴 졸이며 지내던
소금장수 부부는 마치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절망감에 사로잡혀 고민에 휩싸였습니다.
몇날 며칠을 식음을 전폐한 채 천갈래 만갈래 흩어지는 생각을
곱씹던 소금장수가 무릎을 탁-치며 아내를 바라보았습니다.
“여보, 좋은 생각이 떠올랐소.
우리가 아무리 끼니 때거리를 걱정할 만큼
가난하게 살망정 사돈댁 초대해 대접을 양주로 한 번 해봅시다.”
소금장수의 말을 들은 아내가 심란한 표정으로
남편의 얼굴을 돌아 보았습니다.
“무슨 대접을 얼마나 해야 길례의 시집살이가 달라질까요?
공연히 사돈댁의 우세나 사지 않을까 걱정되네요.”
“진인사 대천명이라 하지 않았소?
되든 안되든 성패는 하늘에 맡기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 믿고 이렇게 해봅시다.”
소금장수가 아내의 귓가에 입을 대고 여차저차
귀엣말을 속삭이자 금새 환한 미소를
피워 올린 아내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참으로 좋은 생각이십니다.
그렇게 해서도 말귀를 알아듣지 못한다면
죽은 제갈량이 살아온대도 달리 꾀가 없으니
우리 딸아이의 신세 박복함을 탓할 수 밖에 없겠네요.
서둘러 준비를 할테니 사돈댁에 기별을 보내도록 하세요.”
의논을 끝낸 소금장수 부부는 이튿날
날이 밝기 무섭게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흑산도 홍어에 목포 세발낙지, 영광 굴비에 화순 쇠고기,
해남 참게젓과 영암 전복•
대합 등 호남 각 고을의 산해진미를 힘닿는
데까지 구해다 잔칫상을 마련했습니다.
가뜩이나 버거운 살림살이가 음식치레로 거덜이
날 지경이었지만 사랑하는 딸 아이의 장래를 위한
투자인지라 아까운줄 모르고 있는 돈,
없는 돈 탁탁 털어 상다리가 부러지게 음식을 차려 놓고는
사돈댁으로 사람을 보냈습니다.
처음 몇 번 지체낮고 가난한 사돈의 초대를 콧등으로 날리던
바깥사돈은 소금장수가 직접 예를 갖추어 찾아가자
더이상 거절을 하지 못하고 동부인으로 초대에 응했습니다.
의례적인 수인사가 끝나자 소금장수는 진도에서
구해온 홍주를 잔에 따라 올렸고,
술 좋아하는 바깥사돈이 평소 구경하기
어려운 명주 한 잔을 쭈욱 들이키고는
너비아니 한 조각을 입에 넣었는데 짐짐한게
영 제맛이 나질 않는 것이었습니다.
홍어찜이며 참게젓, 조개탕과 낙지전골 등등 상 위에
즐비하게 차려진 어떤 안주도 순 맹간이어서
목구멍 속으로 넘어가질 않았고,
김치나 나물 종류도 도대체 싱거워서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독한 홍주만 몇 잔 연거푸 들이키던 바깥사돈은 마침내
더이상 참지 못하고 수저를 내려 놓았고,
안사돈도 밥숟가락을 딱 내려 놓고는
저녁 굶은 시어머니 상을 한 채 어서 집에 가자는 듯이
힐끔힐끔 남편을 바라보는 것이었습니다.
“사돈어른, 왜 수저를 놓으십니까?
맛이 없더라도 더 드시지요.”
소금장수가 짐짓 권하자 바깥사돈은 음식이 간이 맞질 않아
도저히 먹을 수가 없노라고 실토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소금장수가 정색을 하고 입을 열었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말입니다만
이 세상에 소금이 없으면
우리가 어찌 하룬들 살아 갈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그 소금을 바닷가에서 날라다 내륙 깊숙히 이고을,
저고을로 공급해주는 저같은 소금장수가 없다면
이 세상이 어떻게 온전히 유지될 수 있겠습니까?
기왕지사 사돈지간으로 소중한 인연을 맺은 사이니
소금장수라고 괄세하지시 말고,
설령 우리 딸아이에게 허물이 있더라도 가르쳐 고쳐 주시고
귀엽게 봐주시면 죽더라도 그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술잔을 만지작거리며 소금장수의 말을 듣고 있던
바깥사돈이 벌떡 일어나더니 다짜고짜 무릎을 꿇었습니다.
“사돈어른의 말씀이 과연 지당하시오.
내가 아무리 만석군 부자이고, 양반일망정
소금이 없으면 한끼라도 밥을 먹고 살 수가 없으니
사돈어른이 아니면 잠시도 생명을 부지하지
못할 하찮은 존재에 지나지 않소.
그동안 우리 부부의 생각이 짧아 며늘아이를 고생시키고
두 분께 커다란 심려를 끼쳤으니 그 죄가 실로 크오.
차후로는 절대 그런 일이 없을 터이니 너그럽게 용서해 주시오.”
황급히 바깥사돈의 팔을 잡아 일으켜 자리에 앉힌
소금장수는 아내에게 새로 음식의 간을 맞춰 내오도록
이르고 즐거운 마음으로 술을 마셨습니다.
소금장수 부부의 지혜와 사돈내외의 의연한 깨달음은
사위와 아들의 장원급제
그리고 첫 손자라는 멋진 선물을 두 집안에 안겨 주었습니다.
지혜와 겸손,
화목과 개심의 미덕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맺어진 결실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겠습니다.
- 받은메일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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