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교실

퇴계선생의 성리학과 경(이면동)

오토산 2015. 2. 24. 22:18

 

 

퇴계 이황 선생이 찾아낸 조선 성리학의 핵심, 경(敬)

 

1) 조선성리학의 출발점
성학십도의 탄생

혹시 여러분은 ‘낮 퇴계 다르고, 밤 퇴계 다르다’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흔히 대낮의 근엄한 학자로서의 퇴계의 모습과 달리 장가를 두 번이나 갔고,

그것도 모자라 단양 군수 시절에는 30세 연하의 기생 두향이와 로맨스에 빠졌던

 인간 이황의 모습을 비꼬아서 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말은 달리 해석해 본다면 오히려 매력적인 요소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만약 뻣뻣하고 원리 원칙만 따지는 퇴계만 있고, 가족을 챙기고 자연을 참예하는

 시를 쓰고, 사랑에 푹빠지는 그런 이황이 없다면 그 책읽는 것이 얼마나 무미건조

 했을까요?

 

이제부터 낮 퇴계의 모습,

즉. 꼿꼿한 선비로서 왕에게 상소를 올려 정치를 바로 잡으려는

공인으로서의 퇴계의 모습과 밤 퇴계,

즉 인간 이황의 퇴계의 모습을 살펴보겠습니다.

그에 앞서 퇴계 이황의 생애에 대해 짧게 말씀드리면 퇴계는

1501년 경상도 예안 온계리(현재 경북 안동군 도산)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 이치는 진사시험까지 합격한 그 지역의 엘리트였는데, 아쉽게도

 이황을 낳고 7개월 만에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이후 이황 형제들은 억척 같은 어머니 박씨의 헌신과 숙부 이우의 가르침 속에

성장하였는데, 숙부 이우는 문장이 뛰어나고, 시를 특히 잘 짓는 문학가였습니다.

그는 길을 가다가 빼어난 경치를 만나면 발을 멈추고 술을 따르게 하고,

시를 읊고 했다고 하는데 퇴계의 타고난 시작 능력은 숙부의 영향을 받은 듯 합니다.

 

퇴계의 생애는 작고하신 이상은 선생께서 잘 정리해 놓으셨는데,

크게 3개의 시대로 나뉘어 집니다.

태어나서 34살까지 문과에 급제하기까지의 수학시기, 몇 번의 낙방 끝의 1534년의

 34살의 나이에 문과에 합격해 승문원의 관리를 시작으로 1549년 49살 때

경상도의 풍기군수를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갈 때까지 본격적으로

 벼슬살이를 하던 출사의 시기,

그리고 그 이후 1570년 선조 3년에 70세의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제자들을 가르치고 저술 활동을 하던 은퇴 강학시기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 세 번째의 은퇴 강학시기에 그의 대부분의 저술들이 이루어졌습니다.

그가 쓴 시 2천 여수와 제자들에게 보낸 편지글, 그가 왕들에게 올린 상소글들을

 모아 제자들이 사망 후 29년 만인 1599년에 퇴계집으로 간행하였습니다.

말하자면 그가 만약 40대를 마무리 짓는 1549년에 벼슬길을 은퇴하고, 요즘 흔히

말하는 인생 이모작을 하지 않았더라면 당대의 조선학계는 물론이고,

그 당시 일본과 현대 중국에 까지 큰 영향을 미친 퇴계의 대사상도 태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퇴계는 매력적이지 않은 인물입니다. 율곡 이이처럼

논리정연하고 잘 짜여진 국가경영의 교과서를 쓴 것도 아니고,

남명 조식처럼 호탕한 사대부의 호연지기를 보여주는 것도 아닌 그저 책만 붙들고

앉아 맨날 제자들만 가르치는 샌님 같은 이미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가 제자를 가르치는 태도를 알게 되고, 선비로서 올곧은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가 죽을 때 마지막으로 한 말이 “화분에 심은 매화에

물 좀 주어라.”라고 한 말을 보면 퇴계 이황은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매력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과연 어떻게 살면 마지막 순간에 그토록 편안하고 초연한 임종을 맞을 수 있을

 것인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퇴계의 시 중에 [바람과 대나무]가 있습니다. 

바람이 오면 대가 우니 둘 사이가 빈 것이 아니다.

바람이 자면 소리도 잦아져 고요 속에 잠긴다.

마침내 어느 것에 말미암아 소리가 나는가?

바람이 다시 대를 울리고 대가 또 바람을 울린다.

 

- [퇴계집] 中 별집

바람과 대나무잎 사이의 섬세한 소리와 침묵의 흐름에 귀를 기울이는

 퇴계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마지막 구절인 [바람이 다시 대를 울리고 대가 또 바람을 울린다]를 보면 그의 몸과 마음이 이미 자연과 혼연일체가 되어 있음을 느끼게 합니다.

이처럼 감수성 있고, 멋을 아는 선비였기에 단양 군수로 있을 때 두향이라는

젊은 기생이 그를 연모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지 모릅니다.

이는 먼저 인간이 좋아야 그가 그려낸 철학도 좋고, 그래야 그와 같은

매력적인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럼 퇴계가 그려낸 조선 철학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낮 퇴계 이황이 그 당시 국왕을 비롯해 그 많은 지식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그가 조선 중기의 시대정신을 이끌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당시 정치와 학문의 정통 패러다임이었던 주자성리학의 다양하고도 심오한

 내용을 집대성한 다음, 그 핵심을 성학십도라는 책에서 정리해 놓았습니다.

이로써 조선 지식인들이 갖고 있던 중국철학에 대한 뿌리깊은 열등의식을

극복하게 했습니다.

중국으로부터 지속적으로 파편화되어 흘러들어오는 주자성리학을 드디어

제대로 이해했다는 안도감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후 율곡 이이가 우리 현실에 맞는 조선성리학이라는 문을 열 수 있었던 것도

바로 퇴계 이황의 그러한 집대성 작업의 효과 덕분이었습니다.

성학십도는 퇴계가 선조의 간청으로 몇 번의 경연에 나갔으나,

선조가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는 다시 물러나기로 작정한

대신, 간절한 충정을 담아 그가 68살이 되던 1568년 갓 즉위한 선조에게 자신의

 70년 공부가 집약된 성합십도를 올린 책입니다.

이 책은 인간의 목표인 성인이 되기 위한 성리학으 문법이고 설계도입니다.

열 폭의 도해(圖解) 안에 이황은 10개의 그림을 그려 놓았는데,

제 1의 태극도에서 시작해서 제 10의 숙흥야매잠도까지의 성학에 관한 10개의

 그림 10도가 퇴계 평생의 학문적 성취가 압축되어 있었습니다.

 

2) 경의 태도
퇴계가 이해한 주자성리학의 핵심은 경(敬)이라는 한 글자로 대표됩니다.

퇴계는 선조에게 성학십도를 올리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전하께서 이 책을
일상에서 늘 마음에 두시고서
적절히 음미하고 반성해 나가다 보면
체득되는 바가 있을 것인데,

그것은 바로 경이라는 것이
제왕학의 시작이요, 끝이라는 사실입니다.”

라는 퇴계의 말이 그것입니다.

이는 지도자가 좋은 정치를 하려면 경의 태도,

즉 바깥의 사물에 흔들리지 않는 평정심,

즉, 부동심을 획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학십도에 나타난 퇴계의 모습은 자연철학자의 모습입니다.

 

서양 철학에서 소크라테스 이전의 많은 철학자들이 우주자연 속에 존재하는

 근본원리를 탐구하고, 그 질서를 발견하려 했는데, 퇴계 역시 인간은 거대한

우주 자연의 일부임을 인식하고, 그 자연의 리듬에 맞춰 조율해가는 것이

곧 군자요, 성인이라고 본 것입니다.

그가 태극을 이야기하고, 인간의 심성을 이야기하는 것은 바로 그 조율의 기준음과

 대상 악기들 사이의 관계를 얘기한 것입니다.

그가 보기에 그 조화로움을 가장 잘 설명한 사람은 송나라의 주자였고, 따라서

 그는 주자를 스승 삼았고, 주자를 늘 닮고자 했습니다.

성리학에서 마음은 본래 밝은 바탕으로 비록 마음이 한순간 어둠에 갇히는 경우라도 어느 순간 스친 빛처럼 각성이 있게 되면 순식간에 본체가 환하게 드러난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성리학은 이 어둠 속을 뚫고 나온 빛을 따라가라고 가르칩니다.

그 빛을 보듬고 닦고 키우는 과정에서 인심은 교정되고 마음의 마비는 풀려서 하늘의 사명이 자신을 이끄는 것을 볼 수 있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자신의 본성을 찾는 것을 경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경은 자기 속에서 끊임없이 발견해야 하며, 나쁜 것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감시를 게을리 하지 않도록

‘자신을 놓치지 말고, 자기의식의 끈을 다잡도록’ 강조하고 있습니다 자기의식의

 끈이 느슨해질 때나 한 순간 방심할 때 평정심과 본성을 잃어버리는

우를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앞서 확인한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남에게는 관대하였던 이황의 태도는

 바로 경(敬)을 위한 부단한 노력에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대인 관계는 물론이고 자연을 비롯한 모든 존재에 대한

 상관관계를 창조적이고 협력적이고 상승적으로 이끌어 내기 위한

선비리더십의 관계 덕목인 ‘효충경신’ 중 경(敬)은 모든 사람에 대한

 존중과 배려입니다.

 

즉, 이해, 배려, 존중을 바탕으로 함을 의미합니다. 개인의 인격을 완성한 사람이

 관계덕목을 발휘할 때,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고 배려하고 존중하는 것이

체득되면 그 사람은 공경심을 갖게 됩니다.

즉, 자신의 본성을 밝히고, 타인의 본성을 존중하여, 남을 이해하고,

섬기는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공경심을 가진 사람이 겸손한 리더가 되는 것입니다.

퇴계 이황은 [성학십도]와 제자들을 가르치는 활동들을 통하여

이를 적극적으로 실천하였던 것입니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어렵게 자란 퇴계 이황, 여러 번 과거 시험에 낙방하며

 좌절감을 맛보았던 퇴계 이황,

그는 자신이 정말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게 진정 학문의 세상에 있음을 깨닫고,

 49살의 나이에 과감히 벼슬을 물러나 인생이모작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비록 관직에서는 물러났지만 인생의 참 목표를 위해서는

성큼 나아간 결단력있는 지도자였습니다.

그는 고향에 돌아가 자연을 섬세하게 관찰하면서 그 안에 진리가 있고,

풍류가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시대 정신을 제시한 통찰력 있는 지적인 리더이면서

 동시에 따뜻한 가슴을 안고 있었던 멋진 인간으로 그는 한국인들이

마음속에 꿈꾸는 참선비의 길을 걸어간 멋진 인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