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교실

19세기 영남학파의 종장 정재 류치명

오토산 2015. 3. 12. 23:33

 

 

사진이나 동영상이 잘보이지 않으시면 아래주소로 확인해주세요

http://blog.daum.net/uh512/7967

 

19세기 영남학파의 종장 정재 류치명

3월 12일 저녁시간 경상북도 유교문화회관에서 있었던 유교아카데미에서

한국국학진흥원 권진호박사 "정재 류치명의 삶과 생각"에 대한 강의가 있었다.

 

19세기 영남학파의 종장으로 불리우는 정재 류치명(柳致明1777~1861)선생은

자가 誠伯이고 호는 定齋이며 본관은 전주로서 외가인 안동시 일직소호리에서

아버지류회문(柳晦文)과 한산이씨 이완(李琬)의 딸인 어머니 사이 출생하여

만우정(晩愚亭)에서 돌아가셨다.

 

태어나면서 부터 전주류씨 본가와 한산이씨 외가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고

5세때 외증조부 대산 이상정이 돌아가시고 동암 류장원에게 학문을 배웠으며

17세때 선산김씨에 장가들어 남한조 문인인 처남 김익호와 학문을 논하였고

20세때 스승 류장원이 돌아가시고 21세대 손재 남한조를 가르침을 받았으며

22세 부인 김씨가 죽어 '나의 좋은벗(良輔)을 잃었다'고 곡을 하였다.

 

29세 문과급제 48년 벼슬살이 인연을 맺었으며 63세 초산도호부사로 임명

65세 대사간으로 임명되었고 이듬해 사임하고 고향으로 돌아왔으나

초산 부민들이 그의 선정을 기려 그에게 알리지도 않고 초상화를 그려

사당을 세우고 산사람을 제사를 지내는 진풍경이 벌어진적도 있었으니

그들에게 정재는 부모같은 존재였고 우러러 받드는 영원한 스승이었다.

 

77세때 병조 참판을 사직하며 올린 소장에는 관인으로서의 삶의 자세와

현실인식이 집약된 삼강십목(三綱十目)의 정치철학을 분명하게 제시했다

세가지 큰줄기는 일에 앞서 먼저 경계해야 할것(先事之戒)와 나라를

다스리는 근본(爲治之本)과 가장 시급히 해야 할 일(急先之務)이다.

먼저경계해야 할것으로는 안일함을 경계하고(戒逸豫),

재화를 경계하고(戒貨財), 아첨을 경계함(戒諂녕)을 들었다.

 나라를 다스리는 근본으로는 하늘의 뜻을 체찰하고(體天意), 성황을

스승으로 삼고 (師聖王), 학문을 부지런히 하는 것(勤學問)을 들었다.

시급히 해야할일로는 백성들의 고통을 구휼해 주고(恤民隱), 군정을 정비

하고(修軍政), 공도를 넓히고(恢公道), 언로를 넓히는 것(廣言路)이라 했다.

 

정재가 제시한 정치철학은 군주가 경(敬)을 통해 도리를 닦아 인을

펼쳐내는 마음을 갖춘다면 초목들이 팔다리처럼 유기적으로 작용해

나라의 활력을 만들어 낼것이다. 경이야말로 성학의 근본인 것이다. 

 

 임종시 문인들에게 '착실히 공부할것'과 '평상적인것에 묘처가 있다'는

소박하면서 절실한 가르침을 남기고 떠나신 류치명선생의 가르침은

오늘날까지 영남학파의 맥을 이어오고 있다.

 

세상사 한마디

여자는 출가와 출산의 어려움을 통하여 두번의 철이 든다고 하나

남자는 그런 고통을 격지 않으므로 없는사람 더 많다.

그러나 철 없는 남자들은 현명한 아내를 만나 세상을 살아간다.

 

등산복과 골프웨어등으로 의복문화가 발전되면서

남성복중 제일 싼옷이 정장이 되어버리고

신발중에서 제일 싼 신발이 구두가 되어버린 세월에

정장차림에 넥타이를 메고 구두를 신어야 신사라고

고집을 부리는 남자는 없는 사람 아닌지??

편한 복장으로 편한생활을 하는것이 철이든 삶 아닌지??

 

 

 

 

 

 

 

 

 

 

 

 

 

 

 

 

 

2015.3.13.눈내리는 아침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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