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

제13장 동인

오토산 2011. 12. 8. 19:11

 

 

제13장 동인(同人)[ㅡ , 天火同人]  정치인들에게

 

  정치는 누가 해야하는가.

 

 

  무엇을 위해 정치를 하는가.

  권력을 얻은 다음은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떤 정치를 펼치고 싶은가.

  어떤 이상사회를 꿈구는가.

  정치인은 넘쳐나지만 참 정치인은 찾아보기가 어려운 시대에 <주역>이 그대에게 묻는다.

 

 

同人于野 亨 利涉大川 利 君子 貞

同人于門 无咎

同人于宗 吝

伏戎于莽 升其高陵 三歲不興

乘其墉 弗克攻 吉

同人 先號咷而後笑 大師克 相遇

同人于郊 无悔

 

 

  정치는 젊은 시절에 재야(在野)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역경을 이겨내고 뜻을 이룰 수 있다.

  정치인은 문호를 개방해야 허물이 없다.

  혈연이나 지연에만 얽매이면 여렵게 된다.

  비수를 숨기고 높은 자리를 탐하면 삼대가 흥하지 못한다.

  정권을 제압할 능력이 있으면서도 자제하여 공격지 않으니 길하다.

  끊임없이 정적과 싸우고 협상하며, 울다가 웃고 웃다가 우는 것이 정치인의 일상이다.

  정치인은 제도권 내에 있어야 현실에 참여할 수 있다.

  멀리 떠나 있으니 후회는 없겠으나 이룬 것도 없다.

 

 

     同人于野 亨 利涉大川 利 君子 貞 (동인우야 형 이섭대천 리 군자 정)

 

  동인(同人)의 東은 사람들을 한데 끌어모으는 것,  사람들을 하나로 통일시키는 것, 사람들의 마음을 똑같이 만드는 것을 말한다. 가장 쉬운 말로 바꾸면 정치다.

 

  정치는 사람들의 집단인 국가나 정부를 유지. 발전시키는 활동인 동시에 같은 뜻을 가진 동지들을 불러모아 세력을 결집시켜 권력을 잡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  정치의 이 모든 활동과 동인의 의미가 같은 것이다.  동인은 정치라는 말로 치환될 수 있는 용어인 동시에 정치의 본질을 갈파한 말이다.

 

  이 구절을 살펴보면 정치활동과 관련되어 세 가지 때(時)가 언급되고 있다.  형(亨), 리(利), 정(貞)이 그것이다.  형(亨, 젊은이의 시절)은 이때에 정치를 시작하고 고난을 이겨내야 한다는 설명을 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리섭대천(利涉大川)은 큰 강물을 건너는 모험과 고난, 이를 극복한 후의 성공을 표현한 말이다. 젊어서 정치를 시작하고 이런 어려움을 이겨내는 모험심이 있어야 성공적인 정치인, 군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리(利)와 정(貞)은 각각 이 군자의 왕성한 활동 시기를 밝히기 위해 사용되었다.  젊어서 시작해야 장년과 노년에 성공적안 정치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동인우야(同人于野)라, 정치는 또한 들판(野)에서 시작하라고 했다.  지배자나 권력자가 아닌 자리 기득권이 없는 자리, 보호막이 없는 자리, 아직은 가야 할 길이 먼 자리, 여(與)가 아니지만 여를 꿈꾸는 자리가 들판이요, 野다.  예수가 세상에 나서기 전에 들판으로 먼저 나아갔듯이 정치는 그렇게 시작하라는 말이다.  부처가 중생구제에 나서기 전에 왕궁을 버리고 숲 속으로 먼저 나아갔듯이 그렇게 정치를 시작하라는 말이다.

 

  정치는 기본적으로 변화와 개혁, 발전과 미래를 위해 필요한 것이다.  현재에 안주하고 기득권에만 매달리는 정치인은 정치인으로서의 기존적인 자질이 없는 사람이다.  그러니 정치 신인이 여가 아닌 야로 가야하는 것은 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는 어렵고도 험난한 길임이 또한 분명하다.  예수가 겪은 사막의 악천후와 사탄의 유혹을 물리쳐야 한다.  부처가 겪은 주림과 가난, 마귀의 공포도 이겨내야 한다.

 

  40대나 50대의 정치 신인이 들판에서 이런 고난과  역경을 이겨낼 수 있겠는가?  그러니 젊어서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큰 내를 건너는 위험천만하지만 거대한 모험에 뛰어들어 반드시 성공을 거두어야 한다.  이 또한 젊은이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리섭대천(利涉大川)은 이렇게 큰 내를 건너 성공을 쟁취한다는 말이다.

 

     

   同人于門 无咎 (동인우문 무구 동인우종 린)

 

  정치인의 가장 큰 딜레마 중 하나는, 만인을 똑같이 위하는 정치를 펼쳐야 하지만, 만인이 똑같이 나를 지지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을 생각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당연히 이들은 특정 집단이나 지역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이들 개인을 지지하고, 이들에게 표를 몰아주는 특정 집단이나 지역의 사람들인 경우가 태반이다.  게다가 정치인은 기본적으로 파벌을 짓고 파당을 만들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이런 집단적 힘이 뒷받침되지 않는 정치인 개인은, 설령 권력을 쥐게 된다 하더라도 이를 유지할 수 없다. 

 

  문제는 이런 패거리를 만드는 일에 있어서 사람을 어떻게 등용할 것인가로 모아진다.  이 인재 등용의 문제는 모든 정치사에 있어서 항상 가장 큰 고민 거리이자 이로부터 수많은 말썽이 빚어진 중대한 골칫거리가 아닐 수 없다.  

 

  이에 대한 <주역>의 가르침은 간단명료하다.  문호를 활짝열고(于門), 혈연이나 지연(于宗)에 얽매이지 말라는 것이다.  문을 열라는 의미는 단순히 인재 등용으 문제에만 국한되는 것은아니다.  백성들이 쉽게 드나들 수 있도록 문을 개방하라는 뜻으로 읽으면 인민에 대한 끝없는 사랑과 언로 개방으로 해석될 수있고, 정치인 자신의 모든 것을 감추지 말고 만천하에 진솔하게 공개하라는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사업가는 그럴 필요가 없겠지만, 정치적으로 성공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그래야 한다.

공직자 재산공개가 왜 법적으로 규정되었겠는가?  정치인은 누구보다도 투명하고 개방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이와같은 강요는 문을 열라는 <주역>의 가름침과 다를 바 없다.

 

  혈연이나 지연에 기반을 둔 정치의 폐해는 우리 현대사를 통해 누구나 지긋지긋하게 경험하고 있는 것이라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없는 가르침이다.

 

  <주역>은 이렇게 열린 문에 서서(于門) 정치를 하면 허물이 없지만(无咎), 혈연이나 지연에 얽매이면(于宗) 옹색하고 어려워 진다(吝)고 경계했다.  정치인이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부분이 바로 이것이다.

 

 

      伏戎于莽 升其高陵 三歲不興 (복융우망 승기고릉 삼세불흥)   

 

  정치인은 또한 바르고 정직한 정치를 펼쳐야 한다.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 간계를 사용하고, 정적을 몰아내기 위해 술수를 부린다면 참다운 정치인이라 할 수 없다.  <주역>은 이런 정치인은 실패한다는 선에서 멈추지 않고, 아예 삼대가 망한다고 못 박는다.

 

  복융우망(伏戎于莽)의 망(莽)은 우거진 풀숲이고, 복융(伏戎)은 여기에 병장기를 몰래 숨긴다는 말이다.  전쟁상황이 아니라 정치판에서 이렇게 하는 것은 치졸한 계략이요 술수다.

 

  그러고도 승기고릉(升其高陵), 즉 높은 언덕(高陵, 높은 지위)에 오르려(升)한다.  하지만 될 일이 아니다.  옛날식으로 말하자면 역적모의를 하다가 들통이 나는 꼴이다.  그러니 삼대(三歲)가 일어서지 못한다(不興)고 하였다.      

 

 

    乘其墉 弗克攻 吉  (승기용 불극공 길)

 

  정치인은 또한 함부로 권력을 남용하거나 정권을 찬탈해서는 안된다.  적치적인 논리로 민심을 얻어 권력을 잡는 것은 좋지만, 힘을 동원하여 정치판에 띠어 들어서는 안된다.

 

  승기용(乘其墉)은 높은 성벽(墉)을 타고 오를(乘)스 있다는 말인데, 여기서는 정권을 찬탈할 정도의 힘과 능력이 있음을 말한다.  군사력으로 해석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힘과 능력이 있더라도 불극공(不克攻), 공격하여(攻) 넘어뜨리지(克) 않아야(不) 吉하다고 했다.  정치는 한 국가나 공동체를 유지. 발전시키기 위한 전쟁이나 혁명이 아니다.  군인들이 정치인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무력으로 정권을 찬탈한 아픈 현대사가 바로 엊그제 일이다.  그런 힘과 공포의 정치에 대한 경책을 말씀이다.

 

 

     同人 先號咷而後笑 大師克 相遇 (동인 선호도이후소 대사극 상우)

 

  정치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정치인의 삶은 일반인들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것이어서,  이를 좋아하거나 극복할 수 있는 사람만이 성공할 수 있다.  무엇이 어떻게 다른가?  나쁘게 표현하면 술수와 야합, 음모와 배신이 판을 치는 동네가 바로 정치판이고, 여기서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만이 정치를 할 수 있다는 <주역>의 가르침이다.

 

  다른 사람 앞에는 크게 부르짖고 울지만(先號咷), 뒤에 가서는 웃는(後笑) 사람이 정치인이다.  이런 이중적인 모습, 이율배반적인 행위에 익숙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가 하면 정치는 기본적으로 누군가와의 대결을 전제로 한다.  이 대결에서 민심을 얻어 당선되면 크게 성공하지만, 민심을 잃어 낙선되면 그렇게 비참할 수 밖에 없는 것이 또한 정치활동이다.

 

  대사극(大師克)은 이렇게 서로 크게(大) 싸우고(師) 대립하는(克) 일이 정치의 본질 가운데 하나임을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치는 또한 타협과 협상의 예술이기도 하다.  끝이 보일 것 같지 않은 싸움의 와중에 두 정치인 만나서 절묘한 타협안을 내놓을 수 있어야 저잋가 발전한다.  이렇게 서로 만나서 협상하고 타협하는 일이 상우(相遇)이다.

 

  이상에서 묘사한 정치인의 삶은 그야말로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도저히 권장하기 어려운, 도무지 흉내낼 수 없는 그런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니 아무나 정치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同人于郊 无悔 (동인우교 무회)

 

  정치인은 제도권 안에 있어야 현실에 참여할 수 있다.  그런데 <동인(同人)>의 마지막 구절에 나오는 정치인은 제도권 밖에(于郊) 있다.  말하자면 정치적 망명자일 수 있고, 일찌감치 은퇴한 사람일 수도 있겠다.  이렇게 떨어져 있으니 후회할 일이 생기지 않는다(无悔).

 

  하지만 이는 <주역>이 적극적으로 정치 참여를 만류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후회할 일이 없다는 소극적 표현도 그렇고(흉하다는 말과는 어감이 다르다), 다른 장들에서 너무나 중요하고도 빈번한게 정치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도 그렇다.  <주역>은 그만큼 정치의 역할을 중시하고, 정치인의 자질에 대해 여러 곳에서 가르침을 주고 있다.  따라서 이 대목은 자격이나 의지가 부족한 사람이라면 정치에 굳이 참여하지 않아도 좋다는 정도로 이해하면 충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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