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장 예(豫) [ㅡ, 雷地豫] 큰일을 계획하는 사람들에게
계획, 어떻게 세우고 지켜야 하나
남들과 다른 성공의 이면에는 항상 남들과 다른 계획이 있다.
남들과 똑같이 계획하고 실행하는 사람에게는 남들과 다른 성취를 이룰 여지가 없다.
어제와 다른 오늘, 올해와 다른 내년,
남다른 인샌을 위해 어떤 계획을 어떻게 세워야 하는가?
豫 利 建侯 行師
鳴豫 凶
介于石 不終日 貞吉
盰豫 悔 遲 有悔
由豫 大有得 勿疑 朋 盍簪
貞疾 恒 不死
冥豫 成 有渝 无咎
나라를 세우거나 군대를 일으키는 큰일에는 반드시 철저한 사전준비와 계획이 있어야 한다.
계획은 미리 발설하면 흉하다.
돌 같은 맹서(盟誓)를 매일, 종일 지켜 가면 끝내 길하다.
계획을 세울 때는 자기 한계를 먼저 고려해야 한다.
지나치게 높은 계획에는 후회가 따르고, 일이 늦어질수록 후회는 가중된다.
큰일의 계획을 위임받아 대유(大有)를 얻은 사람이 친구를 의심치 않으면 계획을 질서 있게 추진해 나갈 수 있다.
큰 계획을 세워 일을 진행하다가 막판에 질환이 생기면 낫지도 죽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어리석은 계획으로도 성공하는 경우가 있다. 돌이켜 후회하고 반성한다면 허물이 되지 않는다.
豫 利 建侯 行師 (예 리 건후 행사)
건후(建侯)와 행사(行師)에는 豫가 이롭다(利)는 말이다. 제후를 봉하여 나라를 세우는 큰일(建侯), 군대를 움직이는 중대한 일(行師)에는 반드시 계획(豫)이 있어야 이롭다(利)는 뜻이다.
鳴豫 凶 (명예 흉)
계획을 미리 발설함(鳴豫)은 凶하다는 말이다. 오늘날에도 정치인이나 관료들이 함부로 정부의 계획을 발설했다가 물의를 빚는 경우가 허다하다. 천기누설(天氣漏泄)은 지극히 흉하다.
介于石 不終日 貞吉 (개우석 부종일 정길)
개우석(介于石)은 돌(石)에 새겨(介) 맹서(盟誓)한다는 말이다. 대만 총통이었던 장개석(蔣介石)의 본명은 중정(中正)이었는데, 대만으로 물러나면서 본토 수복의 맹서를 새삼 다지기 위해 이름을 개석(介石)으로 바꿨다고 한다. 개우석(介于石)은 그런 돌 같은 맹서를 상징한다. <주역>은 이런 맹서를 매일(日, 종일) 멈추지(終) 않으면(不), 吉하다고 했다. 계획과 더불어 그 실천의지를 다지는 마음자세가 중요하고 일이 끝날 때까지 이를 유지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가르침이다. '작심삼일'의 안일한 자세로는 큰일을 이룰 수 없음이다.
盰豫 悔 遲 有悔 (우예 회 지 유회)
우예(盰豫)는 턱을 치켜들고 올려다보아야 하는 높은 계획, 분에 넘치는 계획이다. 요즘 말로 눈높이가 맞지 않는 계획이다. 자신의 분수와 여건을 고려하지 않은 욕심에 경도된 비현실적인 계획이다. 그러나 나중에 후회하게(悔) 된다고 하였다.
게다가 이런 과도한 계획은 실행이 어려워 진행이 더뎌지게(遲) 마련이고, 그러면 더욱 후회할 일(悔)만 있게(有)되는 것은 당연하다. 개인이든 국가든 현재 처한 여건을 잘 고려하고 숙고하고 계획을 세워야 실패하지 않는다는 가르침이겠다.
由豫 大有得 勿疑 朋 盍簪 (유예 대유득 물의 붕 합잠)
그렇게 조심해서 세운 계획이라 하더라도,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주역>은 계획의 실행과정에서 몇 가지 유의사항들을 설명했다. 그 첫째가 함께 계획을 실행해 나가는 동료를 의심하지 말라는 것이다. 신뢰와 믿음에 대한 강조다.
유예(由豫)는 '예로 말미암아'라는 말이니, '계획의 실행에 있어서'정도의 뜻이겠다. 대유득(大有得)은 대유(大有, 큰 권력이나 재물)를 얻은(得) 사람이라는 말이니, 어떤 큰 사업을 할 때 주도권을 쥐고 일을 추진해 나가는 사람이다. 계획의 입안 및 실행자 자신이 아니라, 이를 위임받아 처리하는 실무 총책임자 정도를 생각하면 된다. 대통령의 일을 맡은 장관, 회사 총수가 구상한 특별사업을 비밀리에 추진하는 책임자 같은 사람들이 이에 해당한다.
계획의 실행을 책임지는 이 사람들이 명심해야 할 첫 번째 교훈이 바로 동료(朋)를 의심(疑)하지 말라(勿)는 것이다. 그래야 합장(盍簪)에 이를 수 있다고 했다.
합장은 머리를 잘 손질한 후에 마지막으로 비녀(簪)를 꽂는(盒) 것을 말한다. 몸을 씻고 옷을 입은 후에 거울 앞에 앉아 화장을 한 여인이 마지막으로 머리를 손질하여 비녀를 꽂는 것, 이는 여인의 치장이 마무리 되는 최종 단계이자 그야말로 정점이다. 친구를 의심하지 말고 일을 추진해야 이렇게 아름답고 정돈된 최종 결과에 도달할 수 있음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참으로 아름다운 비유의 말이 합잠이다.
貞疾 恒 不死 (정질 항 불사)
계획을 세워 일을 추진하다가 막판에(貞) 병(疾)이 생기면, 병이 낫는 것도 아니고(恒) 그렇다고 아예 죽는 것도 아닌(不死)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는 말이니, 일의 마무리 단계에서 실패하면 실패도 아니고 성공도 아닌 애매한 결과에 머무르게 된다는 뜻이다. 그만큼 어떤 일의 계획을 세웠으면 끝까지 방심하지 말고 최종 목표에 도달해야 의미가 있다는 가르침이다.
冥豫 成 有渝 无咎 (명예 성 유투 무구)
명예(冥豫)는 어두운(冥) 계획(豫), 무지한 계획이다. 계획은 계획일 뿐이어서, 현명한 계획이라고 반드시 성공하고, 어두운 계획이라고 반드시 실패하는 것만은 아니다. 비록 어두운 계획이었다고 하더라도 얼마든지 성공(成)할 수 있다. 이렇게 성공한 사람이라도 성공 자체에 도취되지 않고 자신을 반성하고 바꾸어 변신하면(有渝), 허물이 없다(无咎). 계획을 세웠으면 반드시 성공시켜야 하고, 계획이 비록 잘못되었다 하더라도 결과가 좋으면 나중에 다시 반성하고 돌이킬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