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

진정한 겸손

오토산 2011. 12. 8. 19:21

 

 

◆ 진정한 겸손은 어떤 것인가?

 

 

  謙은 謙遜이요 謙讓이니, 군자라면 반드시 갖추어야 할 최고 덕목 가운데 하나이다. <예기(禮紀)>에서도 군자를  '널리 들어 잘 알고 있으면서고 겸양할 줄 알고 선을 돈독하개 행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 사람' 이라고 정의 하여 겸양을 군자의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앞세웠다.

 

  이처럼 겸양은 군자의 덕목 중 가장 중요한 것일 뿐만 아니라 일반인이 가장 이루기 어려운 덕목이기도 한다.  그래서 <주역>은 군자가 되기 위해서는 어려서부터 겸양의 도를 수행하여야 하고, 그렇게 하더라도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완성할 수 있다고 했다.

  그만큼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다.  잘 익은 벼일수록 고개를 숙이듯이 잘 수행한 군자만이 진정한 겸손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했다.

 

  한편 겸손은 무지나 나태, 혹은 안일에서 비롯되는 무조건적인 수용과는 다르다.  <주역>에 따르면 불합리한 것을 받아들이고 정의가 아닌 것을 용서하는 것은 겸손이 아니라고 했다.  

 

  무조건적인 사랑과 자비를 가르치는 것이 종교라면, <주역>은 확실히 종교와는 거리가 한참 먼 실천적인 교훈을 전하는 경전이다.  그래서 <주역>은 사리사욕이나 불합리, 도가 아닌 것에 대해서는 분연히 나서서 공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진정한 겸손이란 어떤 것인가?  이에 대해 <주역>은 겸손을 네 가지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타고난 근기(根氣)에 따라 도달할 수 있는 겸손의 경지가 다르고, 현실 정치의 와중에서 떨쳐 보일 수 있는 겸손이 또한 별도로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종교인의 겸손과 정치인의 겸손이 서로 다르고, 도를 닦는 사람의 겸손과 학문을 하는 사람의 겸손이 또한 다르며,  초월을 꿈꾸는 사람의 겸손과 일반 생활인의 겸손이 가르다는 것이다.

 

  우선 겸겸(謙謙)은 '겸'이 두 번이나 겹친, 겸손 자체에 대해서마저 겸손하게 된 성현 군자의 겸손함이다.  이 경지에 이른 군자라면 이미 매사에 하늘의 섭리와 땅의 도리를 펼치지 않음이 없을 것이요, 그러니 이루지 못하는 일도 없다.  하지만 이 경지는 태어나기 이전부터 덕을 갖춘 하늘이 내린 사람만이 도달할 수 있다.  당연히 겸손 가운데서도 최고의 경지에 해당한다.

 

  로겸(勞謙)은 보통 사람이 노력으로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겸손이다.  부단한 자기 수양에 의해 보통의 군자들이 도달할 수 있는 최후의 경지이며 이 경지에 도달한 사람의 삶은 그 마지막이 길할 수밖에 없다.

 

  휘겸(撝謙)은 어떤 면에서 사람이 도달할 수 있는 겸손의 경지가 아니다.  생과 사를 초월해 세상살이에 아무런 걸림이 없는 사람의 겸손이 휘겸인데, 이는 차라리 산에 사는 신선의 경지에 가깝다.  따라서 정치 등의 현실 생활에는 알맞지 않은 겸손이다.

 

  현실 정치에 필요한 겸손이 바로 명겸(鳴謙)이다. 이 경지에 이른 사람은 인간관계를 잘 이끌어 나가는 능력이 탁월하여 만사를 잘 헤쳐 나갈 수 있다.  <주역>에서는 이를 치자(治者)가 가져야 할 능력으로 본다.  목적을 위하여 잠시 후퇴하거나 적에게 거짓으로 굴복하는 것도 명겸에는 어긋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현실 정치에서는 가장 바람직한 겸양의 형태라는 것이다.  

 

  조선시대에 과도한 명분론 대신 이런 실리적이고 현실적인 겸양의 도가 더 많은 선비들에게 숭상되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될 때가 더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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