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장 수(隨) [ㅡ, 澤雷隨] 나서기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난세를 헤쳐 나가는 신민들의 처세술
앞에 나서지 않고 묵묵히 따르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본시 허물이 없다.
그러나 세상은 점점 복잡하고 혼란스러워져서
펑범한 사람들조차 허물없이 살아가기가 쉽지 않다.
자신의 위치를 지키면서 평화롭게 세상을 살고자 하는가?
그렇다면 시대를 관찰하고 믿을 만한 사람을 가려 사귀며 주변을 깨끗이 하라.
隨 元亨利貞 无咎
官 有渝 貞 吉 出門交 有功
係小子 失丈夫
係丈夫 失小子 隨 有求 得 利居貞
隨 有獲 貞 凶 有孚 在道 以明 何咎
孚于嘉 吉
拘係之 乃從維之 王用亨于西山
앞에 나서지 않고 뒤다르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허물이 없다.
직위에 큰 변화가 있을 때에는 마지막까지 자기 자리를 잘 지켜야 하며,
모든 사람을 공개적으로 만나 일을 처리해야 功이 있다.
작은 것에 매이면 큰 것을 잃는다.
큰 것에 매이고 작은 것을 멀리해야 중요한 시기에 자신을 지킬 수 있다.
사사로운 욕심을 내면 결국 흉해지지만,
소신과 청렴으로 질서있게 일을 처리하면 어찌 허물이 있겠는가.
아름다운 믿음으로 합쳐진 사람과 함께 일하면 길하다.
정치적인 입지가 불안해지더라도 인민이 그를 따른다면,
왕도 서산에 올라 제사를 지낸다.
隨 元亨利貞 无咎 (수 원형리정 무구)
수(隨)는 언제나(元亨利貞) 허물이 없다(无咎)는 말이니, 나서지 않고 보좌하는 일에 적합한 사람은 정(丁) 맞을 일이 없다는 뜻이다. 직장인이나 공무원 등 월급을 받는 사람으로서, 자기보다 높은 자리의 누군가를 모시는 사람은 모두 이 隨에 해당한다 할 수 있겠다.
官有渝 貞 吉 出門交 有功 (관유투 정 길 출문교 유공)
관유투(官有渝)는 자리(官)에 큰 변화(渝)가 있다(有)는 말이다. 정치적 격동과 사회적 혼란, 기업에서의 커다란 송용돌이가 몰아치는 때를 말한다. 이럴 때 수(隨)의 도를 따르는 사람은 자기 자리를 마지막(貞)까지 잘 지켜야 吉하다. 그러기 위한 첫째 조건이 뒷공론이나 야합이 아닌 공개적이고도 투명한 일처리이다. 출문교(出門交)는 이렇게 난세에 뒤로 달아나거나 다른 모의를 하지 않고, 문(門) 밖으로 나가(出) 사람들을 만나는(交) 공개적이고 투명한 행동을 일컫는다. 그래야 공을 세울 수 있다(有功)는 것이다.
係小子 失丈夫 (계소자 실장부)
난세에는 크고 작은 일이 도처에서 터지고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적이 되기도 하며, 어제까지 일면식도 없던 사람이 친한 친구처럼 나를 찾아오기도 한다. 이럴 때 엉뚱한 인물만 만나고 다니면 진짜 중요한 사람은 잃어버리게 된다. 난세는 이런 일이 누구에게나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시기인 것이다.
계소자(係小子)는 작은 것, 장부(丈夫)가 아닌 사람, 소인배에 집착하고 얽매인다(係)는 말이다. 그러면 실장부(失丈夫), 장부를 잃게 된다. 사람을 가려 만나고 사귀어야 한다는 경계의 가르침이다.
係丈夫 失小子 隨 有求 得 利居貞 (계장부 실소자 수 유구 득 리거정)
소인에 얽매이면 장부를 잃는다는 말의 계속이다. 반대로 장부를 가까이 하고(係丈夫) 소인을 멀리해야(失小子) 한다는 말인데, 그래야 나중에 구원(有求)을 얻을(得) 수 있다고 했다. 리거정(利居貞)은 그렇게 장부를 가까이하여 힘을 길러 두어야 利에서 貞의 시절까지, 오래도록 편안하게 거(居)할 수 있다는 뜻이다.
隨 有獲 貞 凶 有孚 在道 以明 何咎 (수 유획 정 흉 유부 재도 이명 하구)
유획(有獲)은 약탈이요 빼앗음이니 여기서는 특히 직업과 지위를 이용한 약탈과 부정부패를 말한다. 수인(隨人, 隨의 道를 따라야 할 사람)이 이런 약턀을 일삼으니 당연히 그 끝(貞)이 흉(凶)하다.
그렇다면 이런 어려운 시기에 수인(隨人)이 따라야 항 隨의 도는 어떤 것인가? <주역>은 이를 유부(有孚), 재도(在道), 이명(以明)의 세 가지로 나누어서 설명한다. 이 세 가지를 지킨다면 어찌 허물이 있겠느냐(何咎)는 것이다.
우선 유부(有孚)는 믿음이니 이는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믿음이요, 난세가 곧 끝날 것이라는 믿음이다. 재도(在道)는 직업에 있어서의 기술과 능력을 말하는 것이니 이런 능력을 갈고 닦기 위한 쉼 없는 연마를 뜻한다. 이명(以明)은 일 처리에 있어서의 명료함, 투명함, 공개성을 말한다. 사사로이 하지 않고 드러내어 밝게 처리하는 것이다.
孚于嘉 吉 (부우가 길)
위에서 제시한 밀 처리의 3대 원칙 가운데에서 특히 믿음의 문제를 부연한 대목이다. 직역하면 아름다움(于嘉)에 미더워서(孚) 吉하다는 말이니, 다른 사람들과 믿음을 나누면서 서로 의지하여 아름답게 일을 처리해 나가야 길하다는 뜻이다.
拘係之 乃從維之 王用亨于西山 (구계지 내종유지 왕용향우서산)
구계지(拘係之)는 구속되어 얽매인 상태를 말한다. 감시를 받는 상태, 탄핵을 받은 상태, 정치적인 곤경에 처한 상태다. 누군가 도와주지 않으면 목숨이 달아날 수도 있는 상황이다. 내종유지(乃從維之)는 그러나 사람들이 간절히 그의 구원을 바라고 그를 따른다는 말이다. 군사독재 시절, 해외로 추방되고 가택에 연금되었던 야당 지도자의 형국이 이와 유사할 것이다.
하지만 신하들이나 백성들만 이런 곤란한 처지에 처하는 게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임금도 이런 곤란한 상황에 놓일 수 있다. 국회의 탄핵을 받은 대통령의 경우를 회상해 보면 이해 될 것이다. 비록 구속되어 얽매인 처지가 되었지만 아직 백성을 빋음을 잃지 않은 왕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에 대한 해답이 향우서산(享于西山)이다.
왕도 서산에 올라 제사를 지낸다는 말이니, 스스로를 반성하고 상황을 살피면서 하늘의 뜻을 다시 묻는 행위요 절차다. 임금도사정이 어려우면 이처럼 隨의 道를 따라야 한다는 말이요, 어떤 상황에서든 가장 중요한 것은 인민들의 믿음과 지지라는 것을 강조한 구절이다. 탄핵을 받았던 우리의 대통령은 다행이 국민들의 지지를 받아 복권이 되었다. 그런데 그가 서산에 올라 제를 올리는 이런 절차를 참답게 거쳤는지에 대해서는 국민들이 의구심을 갖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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