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

제18장 고

오토산 2011. 12. 8. 19:31

 

 

제18장 고(蠱) [ㅡ, 山風蠱]  존경받지 못하는 부자들에게

 

            

         홀로 즐기는 부귀영화의 뒤안길

 

 

            蠱는 재물이요 권력이되, 칭송받지 못하는 재물이요 존경받지 못하는 권력이다.

            그 안에 빠져 부귀영화를 누린다고 믿지만 실은 본인도 망가지고 타인도 망가뜨릴 수 있는 毒이다.

            정상적인 재물이나 권력과는 어떻게 다르고, 고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蠱 元亨 利涉大川 先甲三日 後甲三日

  幹父之蠱 有子 考 无咎 厲 終吉

  幹母之蠱 不可貞

  幹父之蠱 小有悔 无大咎

  幹父之蠱 用譽

  不事王侯 高尙其事

 

  고(蠱)는 타고나는 것으로, 어린 시절부터의 노력도 요구된다.

  이를 얻기 위해서는 큰 강을 건너는 위험한 모험도 불사해야 한다.

  하지만 이는 만인에게 고통을 주고 자신도 망가뜨릴 수 있는 위험한 것이다.

  아버지가 蠱의 세계에 있더라도 아들이 청하여 물리치면 허물이 없다.

  과정은 어렵고 험하여도 결국은 길하다.

  어머니가 蠱에 집착하면 끝까지 고치지 못한다.

  蠱의 세계에 있더라도 작은 뉘우침이 있으면 큰 허물은 없다.

  속으로 蠱에 집착하면 궁색해 진다.

  어떤 이는 蠱에 집착하면서도 때때로 자신을 자로잡는 일에도 힘쓴다.

  蠱의 유혹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애초에 왕후의 직을 마다하고 더 높은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  

 

 

   蠱 元亨 利涉大川 先甲三日 後甲三日 (고 원형 이섭대천 선갑삼일 후갑삼일)

 

  고(蠱)는 다분히 부정적인 어감을 내포하는 부귀영화이다.  하지만 바란다고 해서 아무나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쓰겠다는 사람은 많아도, 막상 개같이 벌지도 못하는 사람이 태반인 것과 같다.  그래서 <주역>은 蠱가 元과 亨의 시절에 결정되고, 큰 내를 건너는 위험천만한 모험(涉大川)의 과정을 거쳐 달성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고는 타고난 것이고, 어렸을 때부터 엄청난 고생과 모험을 거쳐야만 비로서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여기까지의 설명에만 따르면 고는 당연히 칭송되고 권장되어야 할 재물이고 권력이다.  그럼에도 이것이 毒을 의미하는 蠱인 것은 왜인가?

 

  선갑삼일(先甲三日)과 후갑삼일(後甲三日)의 성격을 동시에 갖고 있기 때문이다.  두 어구에 나오는 甲은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甲乙丙丁戊己庚辛壬癸, 十干)의 그 갑이다.  先甲三日은 '갑의 앞 세 번째 글자'인 신(辛)을, 後甲三日은 '갑의 뒤 세 번째 글자인 정(丁)'을 각각 의미하는 일종의 비의적 표현이다.  여기서 日이라는 글자를 사용한 것은 십간의 용어들이 기본적으로 날짜와 시간을 나타내는 데 사용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辛과 丁은 또 무엇을 상징하는가?

 

  신(辛)은 맵고 괴롭다는 말이니,  고(蠱)가 성취되는 과정이 그만큼 힘들고 고통스럽다는 뜻이다.  정(丁)은 폭력과 힘, 무기를 상징하는 말이니, 이로써 만인이 상처를 입을 수 있고 본인 또한 화를 입을 수 있다는 뜻이다.  죽음을 무릅쓰고 어렵게 이룩한 재물과 권력이지만, 이를 남용하면 오히려 다시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성을 여전히 간직한 재물과 권력이 바로 고라는 의미다.  목숨을 걸고 얻었는데, 그 결과로 다시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부와 권력의 아이러니컬한 상황, 이를 극명하게 대비시켜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표현이 바로 선갑삼일(先甲三日), 후갑삼일(後甲三日)이다. 

 

 

   幹父之蠱 有子 考 无咎 厲 終吉 (간부지고 유자 고 무구 려 종길)   

 

  고(蠱)가 지닌 가장 큰 위험은 일종의 독성이다.  돈과 권력의 맛을 흔히 마약에 비유하거니와 이를 가장 강조하여 보여주는 예가 <주역>에 설명하는 고의 경우이다.  <주역>에 따르면 고는 절대로 쉽게 포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최상의 탈출법은 아예 발을 들여놓지 않는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우선 이 구절의 뜻을 보면, 시작 부분이라서 그런지 성공적인 경우를 먼저 소개하고 있다.  간부지고(幹父之蠱)는 그 아비(父)가 고(蠱)의 기둥(幹)이 된 경우이다.  즉 아비가 고에 집착하는 경우이다. 하지만 고는 쉽게 끊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다행히 아들(子)이 있어(有) 아비에게 이를 고(考)한다고 했다.  고(考)는 깊은 생각을 거쳐 아비의 잘못을 고한다는 말이고, 그 노력이 헛되지 않다는 뜻도 내포하고 있다. 그래서 아비가 생각을 고쳐먹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허물이 없다(无咎)고 했다.

 

  하지만 생각을 돌이켜도 고를 완전히 끊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그 과정이 심란하고 위태롭다(厲). 하지만 그렇게 해야 끝(終)이 吉하다고 <주역>은 강조하고 있다.  蠱의 유혹이 강력하기 때문에 아들과 같은 관계가 아니면 考할 수도 없고 심지어 다른 사람이 권유하면 미움을 받기 십상인 경우인 것이다.

 

    

     幹母之蠱 不可貞 (간모지고 불가정) 

 

  주역은 여러 군데에서 다분히 남성중심적인 사고를 내보이는데, 이 구절 또한 그런 비난을 면키 어려운 부분이다.  직역하면 '어미(母)가 고(蠱)에 붙어(幹) 있으면 끝까지(貞) 바로 잡을 수 없다(不)'는 말이다. 앞 구절과 대비되어 남자는 그래도 과감하게 고를 끊을 여지가 있지만 여자는 아예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통상 여자들이 부귀영화에 더 집착함을 갈파한 말이라 할 수 있다.

 

 

    幹父之蠱 小有悔 无大咎 (간부지고 소유회 무대구)

 

  다시 남자의 경우(幹父之蠱)로 돌아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작은 뉘우침이 있는 경우(小有悔)이다.  蠱를 완전히 버린 것은 아니고, 여전히 그 세계에 살면서 때때로 뉘우치고 후회하는 정도의 양심은 있는 사람이다.  이 정도만 되더라도 남에게 크게 못된짓을 저지르지는 않늘 것이다.  그래서 '큰 허물은 없다(无大咎)'라고 했다.

 

 

    裕父之蠱 往 見吝 (유부지고 왕 견린)

 

  유부지고(裕父之蠱)는 간부지고( 幹父之蠱)와 대비하여 읽어야 한다.  간(幹)은 겉으로  드러내어 남에게 티를 내는 고집스러움,  그런 집착이다.  자기가 돈을 벌기 위해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자식들에게 시간 달 때마다 시시콜콜 설교를 늘어 놓는 그런 스타일이라고 이해하면 되겠다.  이에 비해 유부지고의 裕는 드러내지 않고 속으로만 집착하는 형태이다.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악착같이 돈을 모으고 주머니를 동여매는지 남들은 알지도 못한다.  그러니 아들이나 친구가 있어도 충고를 해 줄 수가 없다.  설령 충고를 한다해도 듣는 스타일이 아니다.  '니들이 뭘 알아?' 하고는 혼자 속으로만  고집스럽게 蠱에 집착한다. 

 

  간(幹)이 양(陽)이라면 유(裕)는 음(陰)이다.  그런데 무서운 건 음이다.  그래서 그런 상태로 계속 살아가면(往) 궁색함(吝)을 만나게(見) 된다고 하였다.  

 

 

     幹父之蠱 用譽 (간부지고 용예)

 

  역시 드러내 놓고 고(蠱)에 집착하는 사내의 경우(幹父之蠱)를 예로 들었다.  고에 집착하는 '여자'나 '속으로' 고에 깊이 집착하는 남자와 달리,  아들의 말을 듣기도 하고 때때로 후회할 줄도 아는 사람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이런 사람들 중에 자신의 명예를 중시여기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막무가내의 집착이 아니라 올바른 고의 활용에 대해 고민하는 경우다. 

 

  이미 고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추구해야 할 하나의 현실적인 목표로 제시 한 것이 바로 이 '명예의 추구'라고 할 것이다. 

 

 

      不事王侯 高尙其事 (불사왕후 고상기사)

 

   고(蠱)의 세계에 한번 빠졌던 사람이 명예를 추구한다는 것은 어떻게 한다는 것인가?  왕후(王侯)의 자리를 과감하게 버리고(不事), 더 높고 가치 있는 일(高尙其事)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역>은 말한다.

 

  앞 구절과 연결시키지 않고 이 구절만을 따로 해석해 볼 수도 있다.  바로 앞 구절까지는 蠱에 집착하는 여러 형태를 살펴 본 것이고, 이 구절은 그렇게 헤어나기 어려운 고의 세계에 아예 빠져 들지 않는 방법에 대해 설명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고의 세계에 빠저 들지 않는다는 것인가?

 

  대체로 蠱는 국가의 전쟁 등에서 큰 공을 세우고 보상으로서 받는 재물과 권력에 그 뿌리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애초에 이런 재물과 권력(王侯)을 받지 말고(不事) 더 높고 가치 있는 일(高尙其事)을 추구하면 고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있다.  이렇게 하면 공은 세우더라도 고를 사양하여 더 높은 차원의 가치를 추구하라는 가르침으로도 읽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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