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기하기 어려운 부귀영화
돈과 권력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만인의 목숨을 살리는 돈과 권력이 있고, 만인의 목숨을 죽이는 돈과 권력도 있으며, 지극히 개인적인 돈과 권력도 있다. 깨끗한 돈과 권력도 있고, 더러운 돈과 권력도 있으며, 깨끗하지도 않고 더럽지도 않은 돈과 권력도 있다. 물론 깨끗하기도 하고 동시에 더럽기도 한 돈과 권력도 있고, 깨끗함과 더러움이 뒤죽박죽으로 뒤섞인 돈과 권력도 있다.
그만큼 다양하고 복잡하여 판단하기 어려운 것이 또한 돈과 권력이다.
고(蠱)는 직역하면 독(毒)이다. 나쁜 돈과 권력이다. 하지만 반드시 더럽다고만 할 수는 없고, 법을 동원해 처벌할 수 있는 악도 아니다. 다만 도덕적으로 권장할 수 없는 자연의 도리에 어긋나는 그런 정도의 나쁜 돈과 권력인 것이다.
蠱는 이웃과 나눌 줄 모르는 사리사욕에 바탕을 둔 것이기에 나쁜 재물이지만, 부당한 방법으로 갈취하거나 빼앗은 재물은 아니다. 타고난 기질을 바탕으로 죽을 고비를 넘겨 가면서 어렵게 얻은 재물인 것이다. 그 축재의 과정에는 오늘날의 자본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 당연히 권장하고 장려해야 할 측면이다.
蠱는 또한 남의 아픔을 돌아보지 않는 권력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나쁜 것이지만, 전쟁에 나가 공을 세워서 어렵게 얻은 권력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비판만 할 수도 없는 것이다. 한마디로 고 그 자체를 처벌하거나 탓하기는 어렵다. 다만 고에 대한 과도한 집착과 잘못된 활용에 대해서만 비판할 수 있을 뿐이다.
이런 사정으로 <주역>의 저자 역시 蠱의 문제에 대해 길하거나 흉하다는 이분법의 명쾌한 답을 내리기보다, 고의 성격과 여러가지 폐해를 지적하면서 이에서 탈출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앞에서 부자들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언급한 바 있거니와 그 연장선에서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반드시 깨우치는 바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