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지리

이복형제(우받세/해질녁)

오토산 2015. 4. 19. 08:40

 

 

이복형제

 

풍수지리에 통달한 이름난 지관이 산 넘고 물 건너 길을 가다가 날이 저물어 골짜기에 깜박이는 불빛을 찾아 초가삼간 사립문을 두드리자 집주인이 초롱불을 들고 나왔다.

 

 “이 근방에 주막이 어디 있는지 알려 주시오.”
“주막은 30리 밖에 있습니다. 딱하게 되셨군요. 누추하지만 저희 집에서 유하고 떠나십시오.”
지관은 염치 불구하고 그 집으로 들어가 잠만 자고 저녁은 굶을 작정을 했는데, 웬걸 걸쭉한 곰국 저녁상까지 받았다. 저녁상을 물리고 호롱불 아래서 탁배기잔을 나누며 두사람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사십대 초반의 마음 착한 집주인은 직업이 백정이었다.

“뼈가 빠지게 일을 해도 가난의 족쇄를 벗을 길이 없습니다요.”

이튿날 아침상까지 받고 난 지관은 긴 수염을 쓰다듬고 나서 집주인을 앞세워 집주인 선친의 묘소로 갔다. 지관이 보더니 끌끌 혀를 찼다. 묘소에서 내려오며 지관이 말했다.

“어제 저녁 오는 길에 보니 저 산등성 아래가 명당이던데, 거기 이미 무덤이 하나 있습디다. 그 묘는 누구 것이오?”

“우리 고을 천석꾼 부자인 지참봉 선친의 묘입니다.”

지관과 백정은 산비탈에 앉아 한참 동안 얘기를 나누고, 지관은 제 갈 길을 갔다.

며칠 후, 이 고을의 으뜸가는 부자인 지참봉이 하인들을 데리고 선친 산소에 벌초를 하러 갔다. 지참봉은 깜짝 놀랐다. 누군가 말끔하게 벌초를 해 놓은 것이다.

“이상하다. 누가 벌초를 했을까? 누군가 제 조상 묘로 착각한 거 아냐?”

손볼 곳이 없어 궁금증만 안고 하산을 했다. 추석날, 지참봉은 푸짐하게 제물을 장만해서 온 식구를 대동해 산소에 성묘를 하러 갔다. 그런데 이럴 수가! 어떤 일족이 상석이 넘치도록 제물을 차려 놓고 성묘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당신은 누군데 남의 선친 묘소에 차례를 올리는가?

일전에 벌초를 한 것도 당신인가?”
“그러하옵니다.”
제주인 듯한 사십대 초반의 남자가 고개를 숙였다.

그 남자는 지참봉을 끌고 솔밭으로 갔다.

“참봉 어른은 제가 일찍부터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제가 성묘를 하는 연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제 모친은 젊을 때 미색이 고왔는데, 참봉 어른 선친께서 몰래 제 모친과 밀회를 했습니다. 그때 배가 불러 태어난 게 바로 소인입니다. 형님!”

그 남자는 울먹이며 지참봉의 손을 덥석 잡았다.
“자네는 어디 사는 누구인가?”
지참봉의 물음에 그 남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버들골 사는 지도정입니다.”
“버들골에 산다면 자네는 백정 일을 하는가?”
“그러하옵니다.”

 지참봉은 벌레를 씹은 얼굴이 되어 서둘러 하산했다. 참봉 벼슬을 사서 양반 행세를 하는 지참봉 앞에 백정 동생이 나타났으니 보통 일이 아니다. 며칠 후, 지참봉은 선친의 묘를 백정 이복동생이 모르는 먼 곳으로 이장했다.

그날 밤, 백정은 미리 파 뒀던 선친의 유골을 천하명당인 그 자리에 묻었다.

 살림이 불같이 일어나 백정은 부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