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

제23장 박

오토산 2011. 12. 8. 19:51

 

제23장 박(剝)  [ㅡ, 山地剝]   절망의 나락에 빠진자들이여

 

 

  꽉 막힌 시절을 견디는 지혜

 

 

누구에게나 어려운 시기는 있다.

하는 일마다 꼬이고

도와주는 사람 하나 없으며

빚은 눈덩이 글러가듯 불어만 간다.

 

도망갈 방법이라고는 목숨을 버리는 수밖에 없어 보인다.

 

이런 상황이 剝이다.

 

그러나 그동안에도 시간은 흘러가고, 運을 돌고 있다.

그 어려움을 이겨내고 또 언제 그랬냐는 듯

밝은 빛이 비치게 마련이다.

 

 

剝 不利有攸往

剝牀以足 蔑 貞 凶

剝牀以辨 蔑 貞 凶

剝之 无咎

剝牀以膚 凶

貫魚 以宮人寵 无不利

碩果不食 君子得與 小人剝廬

 

박은 나아감에 불리하다.

대화와 교섭 자체가 괴멸하니 흉하다.

교섭은 있으나 해결의 실마리가 끊어지니 끝이 보이지 않는다.

이런 剝은 剝으로 대처하면 허물이 없다.

대화와 교섭 실패의 후유증이 몸에 느껴지니 흉하다.

말린 물고기를 꿰듯 모든 이를 균등하게 총애하면 불리함이 없다.

군자는 종자를 남겨 두어 수레를 얻지만

소인은 오두막마저 깨뜨린다.

 

 

     剝 不利有攸往 (박 불리유유왕)

 

  박(剝)은 기본적으로 나아감(有攸往)에 불리(不利)하다 했다.  박의 기운이 덮치면 앞뒤가 막혀 나아갈 수 없게 된다는 뜻이다.  박은 깍아내는 것이요, 서로 연관된 기운이 막히고 대화의 고리가 끊어지는 상황이다.  극한의 고통이 따르며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

 

  음기(陰氣)가 강맹해져서 양기(陽氣)가 거의 소멸돤 상태다.  국가적으로 보면 간신이 득세하여 충신이 대부분 내몰린 상태다.  개인적으로는 악운이 거듭거듭 몰려오는 시기다.  어려움과 혼란이 닥치고 재난과 파괴가 이어진다.  이로울 것이 없다.

 

  이처럼 절망의 나락에 빠져 있을 때 가장 소중한 것은 희망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아야 한는 것이다.  절망에서 탈출할 구체적인 방법이 생기지 않더라도 절대로 버려서는 안되는 것이 희망의 불씨이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희망의 불씨를 꺼뜨리지 말라는 말인가? 그건 극한의 절망을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이 안이한 충고일 뿐이다.'

 

  물론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는 법이고,  쥐구멍에도 볕들 날은 반드시 온다.  그런 희망으로 견디면 견디지 못할 것이 없고, 시간이 흐르면 운은 바뀌게 마련이다.

 

  사망선고와도 같은 세 번의 암 진단을 이겨내고, 그야말로 인간 승리의 드라마를 써 온 한 여인을 만난 적이 있다.  어떻게 저 여린 몸으로 그 고통과 시련을 이겨내고 정상인도 하기 어렵다는 훌륭한 일들을 그리도 많이 해냈을까 싶은 여인이었다.

 

  그런데 그 여인의 좌우명은 '모든 것은 지나간다'였다. 고통도 지나가고 불행도 지나가며 슬픔도 언젠가는 지나간다.  반대로 행복도 지나가는 것이니 너무 집착하지 말자는 뜻이라고 했다.  그 얘기를 들으면 나는 <주역>으 박(剝)에서 가르치고자 한 교육이 바로 이것이구나 하고 깨달았다.  '거꾸로 매달아도 국방부 시계는 돌아간다'는 군대의 속어 또한 따지고 보면 같은 말일 것이다.

 

 

    

     剝牀以足 蔑 貞 凶 (박상이족 멸 정 흉)  

 

 

  다리(足)가 부러져(剝) 협상테이블(牀) 자체가 괴멸하니(蔑) 끝내(貞) 凶하다는 말이다.  대화와 교섭자체가 중단된 상황이다.   <주역>은 개인과 국가를 막론하고 어떤 일이 벌러졌을 때 대화와 협상이 중요하다는 점을 여러 번 강고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 비추어 해석하자면 협상 자체의 결렬만은 막아야 한다는 경고로 읽을 수 있겠다.

 

 

   剝牀以辨 蔑 貞 凶 (박상이변 멸 정 흉) 

 

  박상이변(剝牀以辨)은 교섭과 대화는 하지만, 서로 합의될 수 없는 주장이나 의제로 협상이 결렬되는 상황이다. 박상이족(剝牀以足)보다는 나은 경우이겠지만 역시 凶할 수밖에 없다.

 

 

 

   剝之 无咎  (박지 무구)

 

  '剝 剝之 无咎'를 줄인 말이다.  직역하자면 剝은 剝으로 대해야 허물이 없다는 말이니, 어려운 때에는 오히려 모든 것을 다 벗어버리면 박의 기운을 이겨낼 수 있다는 말이 된다.  눈에눈 눈, 이에는 이로 대처하라는 말이 아니라, 박의 기운에 순응하면서 미래를 보고 고통을 인내하라는 뜻이다.  모든 것이 파괴되는 와중에 가진 것을 지키려 하고 더 큰 욕심을 부린다면 지키지도 못할 뿐 아니라 몸과 맘이 상해 후일을 도모하지 못하게 된다.  욕심을 버리는 것이 박을 이겨내는 유일한 방법이다.

 

 

   

    剝牀以膚 凶  (박상이부 흉) 

 

  박상이부(剝牀以膚)는 협상이 깨어져 그 결과를 피부(膚)로, 몸으로 감당해야 하는 시절을 암시한다.  교섭과 대화를 위한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고, 剝의 물결만 천지에 진동한다.  그러니 凶할 수 밖에 없다.  나라가 무너지고 개인은 파산하는 시절이기도 하다.

 

 

    貫魚 以宮人寵 无不利 (관어 이궁인총 무불리)

 

  그렇다면 이런 고통과 절망의 시간을 어떻게 견디고 이겨내야 하는가?  이런 상황에서는 당연히 적극적인 타개책을 모색할 수도 없다.  그저 견디고 감내하는 수밖에 특별한 수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문제를 키우고 상황을 불리하게 만드는 일만 피할 수 있어도 다행이다.  그래서 <주역> 역시 불리하지 않은(无不利) 정도의 기본 자세만을 강조한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기본 자세인가?

 

  관어(貫魚)는 물고기를 말리려고 꼬챙이에 주욱 꿰어 놓은 것을 말하고, 이궁인총(以宮人寵)은 그와 같이 한 집(宮) 안에 있는 사람(人)을 모두 똑 같이 사랑(寵)하라는 말이다.

 

  剝의 시기에는 서로 헐뜯고 싸우는 일이 잦다.  이럴 때 아랫 사람을 모두 평등하게 사랑하면, 서로 미워하는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화합을 이끌어낼 수 있다.  소인이든 군자든, 간인(奸人)이든 충인(忠人)이든, 가리지 말고 다 같이 사랑하면 마음을 얻어 서로 화합함으로써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다는 가르침이다.

 

 

    碩果不食 君子得與 小人剝廬 (석과불식 군자득여 소인박려)  

 

  종자(種子=碩果를 먹지 않고(不食) 남겨둔 군자(君子)는 수레를 얻지만(得輿), 소인(小人)은 오두막(廬) 마저 깨뜨린다(剝)는 말이다.

 

  剝의 기운이 넘치면 흉년. 기근. 전쟁 등이 일어나게 마련이고, 누구나 당장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도 몹시도 어려워진다.  그러나 그렇게 어려운 시기에도 훗날을 위해 종자만은 먹어 없애지 말고 아껴두어야 한다.  그래야 나중에 다시 큰일을 도모할 수 있다.  군자가 수레를 얻었다 함은 이런 剝의 고통을 마침내 이겨내고 利의 시절로 들어 섰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소인은 순간의 어려움을 참지 못해 종자마저 없애니 훗날의 희망마저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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