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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약수터에서 김삿갓계곡으로
7월25일 어제저녁은 열대야가 찾아오고 오늘아침에는 폭염주의보라 하고
내일은 태풍12호 할룰라가 찾아온다고 하여 더위를 피하여 오전약수터로 떠났다.
오전약수터에서 닭불고기와 닭백숙으로 점심을 먹고나서 주실령을 넘어 서벽리를
돌아 우구치계곡을 지나 내리계곡의 아름다움을 구경하며 김삿갓계곡을로 향했다.
서벽리를 지나가니 30년전 직장동료 5명이 포니승용차를 타고 병을 고치겠다고
하천변 자갈길에 먼지가 앞을 가리면서 찾아와 오두막집에 들어서니 앉은뱅이
나무책상에서 침과 약을 내놓고 치료를 하고는 반창고 대신에 문풍지를 붙여주던
추억이 생각난다. 그시절 그사람들도 몇명이 하늘로 가셔버렸네...
우구치(牛口峙)는 골짜기 모양이 소의 입을 닮았다고 해서 우구치라 하며 일제시대에
금정광업소가 문을 열면서 사람들이 붐비던곳 이었으나 지금은 한적한시골로 변했고
조제마을은 경상도와 강원도가 한부락을 이루고 있으며 봉화에서 소공원을 조성하고
휴게소 주변에는 캠핑객들이 휴가를 즐기고 있었다.
영월군 하동면에서 김삿갓면으로 바뀌어진 내리마을 내리천변에도 시원한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더위를 식히는 가족단위 휴가객들이 계곡을 알록달록 물들이고 있었다.
내리천을 지나서 김삿갓이 무릉이라 칭하였던 김삿갓계곡에 들어서니 민화박물관입구
계곡에도 물놀이객을 볼수있었고 김삿갓 묘소가 있는 노루목부근에도 사람들이 들었다.
김삿갓은 본명은 병연, 호는 난고로 1807년(순조7) 경기도 양주군회동면에서 출생했고
아버지는 安根, 어머니 함평이씨의 2남이었으며 1811년(순조11) '홍경래의난'이 일어날
당시 선천부사이었던 그의 조부 김익순이 홍경래에게 항복해 역적으로 몰려 폐족처분
받아 여러곳을 떠돌다 영월에서 은둔생활을 하면서 모친이 자식들에게 조부의 사연을
숨긴채 공부시켜 김삿갓이 20세되던해 영월 동헌에서 개최되었던 백일장에 응시하여
선천부사 김익순을 비판하는 글로 장원이 되었으나 조부인것을 알고 자책과 통한을
이기지 못하여 22세때 집을나서 방황생활을 하면서 서민들의 애환을 시로 읊어 조선
서민문화의 큰틀을 마련하고 1863년 전남화순에서 작고하여 3년후 현위치로 옮겼다.
수년전에 몇차례 들른곳이었지만 주변의 환경이 많이 달라졌고 시설도 늘어났다.
김삿갓묘소앞에는 정자가 들어서서 선비가 글을 쓰고 있었으며 조각상도
많이 늘어나고 김삿갓문학관 광장에도 관광버스들이 찾아와 북적이고 있었다.
우리는 간단히 참을 먹은후 남대리로 향하여 출발하였다.
세상사 한마디
김삿갓의 시 한수를 옮겨봤습니다
明川明川人不明(명천명천인불명) 밝다 밝다 하면서도 사람은 밝지 못하고
漁佃漁佃食無魚(어전어전식무어) 어물전 어물전 하면서도 어느한집 식탁에
생선은 앖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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