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최부자의 자취를 돌아보며
교촌마을에서 한반도의 노믈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최부자집의
자취를 찾아보았다.
교동 최씨고택은 경주최씨의 종가로 1700년경에 월성을 끼고 흐르는 남천변
양지바른 곳에 자리잡고 집을 지었는데 유림들의 반대가 심하여 그 뜻을 수용
향교보다 낮게 터를 깍아내어 지었다고 하며 원래 99칸으로 지어졌다고 하나
사랑채와 별당은 1970년 불타 없어졌던것을 최근에 큰사랑채는 복원하였고
작은사랑채는 주춧돌만 남아 있으며 안채는 'ㅁ'자, 대문채는 '_'자 모양이다.
경주 내남면이조리에서 교동으로 정착한것은 조선중기 무렵이고
여기서 12대동안 만석지기 재산을 지켰고 9대에 걸쳐 진사를 배출하였으며
1947년 경주최부자 12대손 최준선생이 기증하여 계림대학과 대구대학을
설립하였고 현재 학교법인 영남학원 소유로 입구에는 영남대학교총장의
방문안내판이 게시되어 있었다.
교동법주는 최부자댁에 전해오는 비주(秘酒)로 조선 숙종때 궁중에서
음식을 관장하던 관직에 있던 최국선이 고향으로 내려와 최초로 빚은것으로
궁중에서 유래된 술로 밑술로 밀누룩과 찹쌀을 쓰고 덧술로 찹쌀밥을 넣어
100일간 숙성시킨 교동법주는 외관이 맑고 투명한 미황색을 띄며
특유한 향기와 감미를 내는 부드러운 술로서
현재 최국선의 10세손 최경이 기능보유자라 한다.
최씨고택은 신라요석궁자리로 최진립장군(최치원선생17세손,경주최부자1대)
독립운동가 최준선생까지 12대만석지기를 유지하여 오다가 해방직후
1947년 모든재산을 기증하여 계림대학과 대구대학을 설립하였다고 하며
항상 많은 손님들이 머물던 사랑채, 흉년에 굶주린 백성들에게 열었던 창고등
자취를 볼수 있었고 인근에 독립유공자 최완선생 생가도 볼수있었다.
세상사 한마디
최부자집의 六然(여섯가지 修身)
★ 자처초연(自處超然) : 혼자있을때 초연하게 지내라
★ 대인애연(對人靄然) : 다른사람을 온화하게 대하라
★ 무사징연(無事澄然) : 일이 없을때 맑게지내라
★ 유사감연(有事敢然) : 유사시에는 과감하게 대처하라
★ 득의담연(득의담연) : 뜻을 얻었을때 담담히 행동하라
★ 실의태연(실의태연) : 실의에 빠져도 태연하게 행동하라
흉년에 굶주린 주민들에게 열었다는 곶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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