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시인 김삿갓/김삿갓 105

남아하처 불상봉

김삿갓 96 - [남아하처 불상봉 男兒何處 不相逢 남자가 사노라면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이 있으리] ​ 김삿갓은 감자를 먹어 가며 , 주인에게 이런 말도 물어 보았다. "이 깊은 산중에서 날마다 숯만 구우며 살아가려면, 때로는 외로움도 느끼시겠구려." ​지환은 당치 않은 소리라는 듯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대답한다. "산에는 산짐승 친구들도 많은데다, 숯을 굽기에도 눈코 뜰 새 없이 바빠 외로움을 느낄 틈이 없습니다. ​그리고 내가 구워내는 숯이 많은 이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비록 힘이 드는 일이기는 해도 여간 기쁘지 않은걸요." ​ 김삿갓은 숯을 굽는 일을 하고 있을 지라도, 자신이 하는 일에 나름의 사명감을 가지고 즐겁게 해 나가는 지환의 생활상을 듣자, 자기 일에 아무런 사명감도 느끼지 ..

떠도는 구름 흘러가는 물

김삿갓 95 - [떠도는 구름 흘러가는 물] 눈에 보이는 것은 오직 푸른 산 뿐이지만로 산 위에는 하얀 구름이 한가롭게 떠돌고, 골짜기에는 맑은 물이 콸콸 소리를 내며 흐르고 있었다. 눈 앞에 펼쳐지는 절경을 천천히 음미하던 김삿갓, (물은 흘러도 앞을 다투지 않고, 구름은 떠 있어도 서로 뒤지려고 하건만, 어째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세상은 웬놈의 말썽이 그렇게도 많을까.) 수안 고을에서 만난 양상문과 박용택 사이에 벌어진 계쟁(係爭)은 인간의 욕심 때문에 일어났다. 욕심이 없었다면 그와 같은 다툼은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 김삿갓은 풀밭에 네 활개를 쭉펴고 누워 욕심 이라곤 하나도 없는 산과 구름, 골짜기를 지나는 물소리의 자연 그대로를 즐기고 있었다. 그대로 누운채로 자연의 빛과 소리를 즐기던 김..

가짜 암행어사 김삿갓의 명판결

김삿갓 94 - [가짜 암행어사 김삿갓의 명판결] ​ 저희 수안 고을에서는 수 일 전에 산적의 두목놈을 체포했사온데 그 자의 자백에 따르면 귀 고을에 살고 있는 "박용택" 이란 자가, 산적의 일당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산적을 일망 타진 하기 위해서는 박용택 이란 자를 응당 취조해 보아야 하겠사오니 황주 수령께서는 그 점을 깊이 양해하시와 박용택을 체포해 올 수 있도록 특별 배려를 하여 주시옵소서. 수안 고을 군수 백창수 올림. ​ 박용택을 난데없는 "산적"으로 몰아 붙인 것은 그 자가 워낙 지능범으로 판단 되기에 엉뚱한 올가미를 씌워서 범죄 사실을 자기 입으로 실토하게 하려는 김삿갓의 깊은 계교가 숨어 있었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 수사 협조문을 받은 황주 고을 사또는 산적을 잡아가고 싶다는데 허락을 ..

박용택 체포조 출발시켰다

김삿갓 93 - [박용택 체포조 출발시켰다] 그러나 동헌 정문을 지키고 있던 수문장은 김삿갓의 행색을 훝어보더니, 대뜸 코웃음을 친다. "이 미친놈아! 한양에서 내려 왔다고 하면 누가 겁을 낼 줄 아는냐! 사또님이 누구라고 감히 뵙겠다는 것이냐. 경을 치기 전에 썩 물러가거라." 행색이 허술한 것을 보고 사람을 완전히 무시하는 말투였다. 김삿갓은 약간은 멋쩍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후퇴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그래서 이번에는 큰소리를 쳐볼 밖에 없었다. "자네들이 내가 누구란 것을 모르는 모양일쎄, 나는 하옥 대감의 특별 분부를 받들고 내려온 사람일쎄. 사또에게 그 말씀만 전해 주게나. 그러면 사또께서 반갑게 만나 주실 걸세." 아무리 문지기 사령이라도 하옥 대감 이라는 말만 들으면 몸을 떨게 되..

친구와의 돈 거래도 남들 처럼 해야 한다

김삿갓 92 - [친구와의 돈 거래도 남들 처럼 해야 한다] 김삿갓이 산을 내려와 객점(客店)에서 해장술을 마시는데, 안쪽 구석에서는 어떤 시골 사람이 혼자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는 술을 몇 잔 거푸 마시며 한숨까지 몰아 쉬더니 , 한탄어린 소리를 지껄였다. "제길헐 ! 이놈의 세상은 어떻게 되려는지, 사또란 자는 눈앞에 도둑놈 하나를 잡아 주지도 않네 ! "하면서, 사또가 들으면 목이 날아갈 소리를 마구 퍼붓고 있었다. 김삿갓이 건너다 보니, 돈푼이나 있어 보이는 순박한 시골 사람 같은데, 이렇게 사또를 나무라고 있는 것으로 보아 하니, 무척이나 억울한 사정이 있어 보였다. 남의 딱한 사정을 모른척 넘기는 법이 없는 김삿갓, 기어이 술상을 냉큼 들고 그 사람 앞으로 갔다. "노형은 무슨 억울한 사정이..

어느새 백발이

김삿갓 91 - [어느새 백발이] 김삿갓은 술이 거나하게 취해 오자, 수안댁 생각이 새삼스럽게 간절해졌다. "여보게 주모!" "왜 그러세요?" "나, 술 좀 더 갖다 주게." "그렇게 많이 드셔도 괜챦으시겠어요?" "술값 못 받을까 봐 걱정이 되나?" "엉뚱한 오해는 마세요. 술값 못 받을까 봐 손님에게 술 안드리도록 쩨쩨한 여자는 아니에요." 주모가 술을 갖다 주자 김삿갓은 연달아 술을 마셔댔다. 깨끗이 잊으려고 마음을 굳힐수록 수안댁에 대한 슬픔이 새삼 가슴을 파고 들었기 때문이다. "손님은 웬 술을 그렇게도 잡수세요? 사람이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마치 술이 사람을 마시는 것만 같네요." 주모는 김삿갓의 술 마시는 모습을 보고 뼈 있는 질책을 했다. 그러자 김삿갓은 취중에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는 ..

다시 떠나는 방랑길

김삿갓 90 - [다시 떠나는 방랑길] 천동 마을을 떠나 다시 방랑길에 오른 김삿갓은 지나간 만 일 년간의 일로 오만가지 감회가 무량했다. 애당초 방랑에 나서게 된 것은 인간사로 구애를 받지 않고 허공을 떠도는 한조각 구름처럼 자유자재로 살아가자는데 있었다. 처자식과의 인연조차 끊어 버리고 표연히 방랑 길로 나선 것도 그 때문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세상일은 결코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서, 지난 일년 동안은 수안댁과 생각치도 못한 결혼 생활을 해오지 않았던가. 이제와서 지난 일을 돌이켜 보면 수안댁과 결혼을 했던 일도 꿈만 같았고, 그런 생활이 일 년 남짓하게 계속되다가 갑자기 사별(死別)을 하게 된 것도 꿈만 같았다. 인생이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죽음을 면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남은 모든 것과의 헤..

김삿갓이 몰랐던 수안댁의 감춰진 비밀

김삿갓 89 - [김삿갓이 몰랐던 수안댁의 감춰진 비밀] ​"요새 젊은 사람들은 잘 모르고 있겠지만, 실상인즉 수안댁은 3대째 내려오는 무당의 딸이었다네. 수안댁이 하필이면 산신당 나무에 목을 매고 죽은 것도 따지고 보면 어머니, 할머니가 모두 산신령을 추앙하며 모셨던 것과 관련이 있는지도 모를 일이야." ​수안댁이 3대 무당의 딸이었다는 새로운 사실에 제제도, 김삿갓도 놀랐다. 모두가 처음 들어 보는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어르신! 수안댁이 무당의 딸이었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조조가 놀라면서 노인에게 물었다. ​"이 사람아! 내가 죽은 사람에 대해 왜 거짓말을 하겠나? 지금은 모두 세상을 떠나 버려서 아는 사람이 거의 없지만, 틀림없이 할머니도 어머니도 무당이었다네." ​김삿갓은 그 말을 듣자, 내..

김삿갓에게 닥친 불행

김삿갓 88 - [김삿갓에게 닥친 불행] ​그로부터 며칠 지난 비 오는 날 밤, 김삿갓은 잠자리에 들기 전에 소변을 보려고 요강을 찾았다. "여보게! 요강이 어디 있지?" 수안댁은 그 말을 듣기 무섭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어마, 내 정신 좀 봐! 요강을 우물가에 그냥 내버려두었네요. 지금 곧 가져올께요." ​김삿갓은 비가 오는데 심부름을 시키기가 안되 보여서 "자네는 그냥 앉아 있게. 내가 나갔다 옴세." ​"아니에요. 남자가 요강을 들고 다니는 것을 보면, 남들이 뭐라 하겠어요." "쓸데없는 소리! 남자가 요강을 들고 다니면 안된다는 법이라도 있나! 내가 갔다 올테니까 당신은 그냥 있어요." ​김삿갓은 마누라를 억지로 못 나오게 막았다. 마누라의 수고와 마음을 위로하고 싶은 심정에서 자기가 요..

금반삭립봉천첩

김삿갓 87 - [금반삭립봉천첩金盤削立峰千疊] (소반위에 나란이 빚어 놓은 송편은 수많은 산봉우리가 첩첩히 겹쳐 있는 것 같다.) ​김삿갓은 혼비백산하여 마누라를 잡아 일으키려 하였다. 그러나 수안댁은 인사불성이 되어 있었다. ​"여보게 정신 차리라구!" 얼굴에 냉수를 끼얹고 인정人定을 비벼주고 하여 한바탕 소란을 떤 뒤에 수안댁은 간신히 숨을 돌렸다. ​"여보게! 정신이 좀 드는가? 자네, 별안간 왜 이러는가?" 수안댁은 남편의 얼굴을 얼빠진 사람 처럼 멀거니 바라 보다가 간신히 입을 열어 말한다. ​"몸도 불편하신 당신에게 이런 꼴을 보여 드려 미안해요. 이젠 아무렇지도 않아요." ​"그래요, 잠시 그대로 누워서 안정을 취하구려." 김삿갓은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내가 무당을 저주한 말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