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시인 김삿갓/김삿갓 105

김삿갓이 몰랐던 수안댁의 집착

김삿갓 86 - [김삿갓이 몰랐던 수안댁의 집착]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김삿갓이 눈을 떠보니 날은 어느새 환히 밝아 있었다. 그런데 옆에서 자고 있어야 할 수안댁이 보이지 않았다. "응...? 이 사람이 어딜 갔을까?" ​김삿갓은 방안을 두루 살폈으나 마누라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장짓문 너머 윗방에 누군가 숨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무래도 예감이 심상치 않아, 문틈으로 윗방을 옅보다가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 하였다. 수안댁이 바람벽에 산신 탱화를 걸어 놓고 그 앞에 단정히 꿇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그냥 앉아만 있는 것이 아니라, 소반위에 정안수와 촛불까지 밣혀 놓고 두 손을 허공에 벌렸다가 합장하며 큰 절을 올리며 입으로는 알 수 없는 주문을 중얼거리고 있는 ..

무당의 예언 탓인가 사고를 당한 김삿갓

김삿갓 85 - [무당의 예언 탓인가 사고를 당한 김삿갓] ​봄이 되었지만 김삿갓은 별로 할 일이 없었다. 낮에는 친구들 조차 농사일로 모두 들녘에 나가 있으니 허탈감에 빠져있기 일쑤였다. ​그러나 밤이 되면 상황은 조금 달라져 모임방에 나가 음담패설을 듣고 여담을 나누다가, 새벽녘이나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와 수안댁과 정을 나누는 것은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어쩌면 이런 재미라도 붙였기에 천동 마을을 쉽사리 떠나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런 시간들을 보내던 장마철인 어느날, 그날은 김삿갓이 모임방에 모인 친구들에게 술 한 턱을 냈다. 김삿갓이 술을 사게 된 까닭은 마누라 수안댁의 충고 때문이었다. ​"남의 술을 한 번 대접받거든 당신은 두 번씩 술을 사드리세요. 남의 술을 얻어 먹기만 하는 사..

또 다시 꿈틀거리는 김삿갓의 방랑벽

김삿갓 84 - [또 다시 꿈틀거리는 김삿갓의 방랑벽] ​김삿갓과 수안댁의 결혼식은 뒷산에 있는 산신당 앞에서 냉수를 한 그릇 떠놓고, 대동계장 제제의 집전으로 20여 친구들의 축복속에 올렸다. 불교에서는 부부 관계를 三生緣分이라 고 한다. 부부란 아무렇게나 맺어지는 것이 아니라, 前世, 今世, 來世에 걸쳐,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인연이 있어야만 맺어진다는 소리다. ​김삿갓은 아무리 생각해도 수안댁과 자기는 삼세의 인연이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그러나 삼생의 인연이 있고 없고는 별개 문제로, 많은 친구들 앞에서 결혼식을 올렸으니 수안댁과 부부가 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아니던가. ​김삿갓은 결혼식을 올리는 도중에 영월에 있는 본마누라의 얼굴이 불현듯 떠올라 매우 삭막한 기분이 들었다. ​"마..

하늘이 정해 주신 연분

김삿갓 83 - [하늘이 정해 주신 연분] ​휘몰아치는 폭풍이 지나고 나자, 수안댁은 새삼스럽게 불안감에 떨며 호소하듯 속삭인다. ​"나 같은 계집 때문에 삿갓 어른께서 불행해져서는 절대 안 돼요, 오늘 일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으로 할테니, 어서 내 집에서 나가 주세요." 김삿갓은 공포에 떨고 있는 수안댁이 측은해 견딜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넌즈시 달래주는데, ​"자네와 가까이 하는 사내는 모두 죽게 된다니까 겁이 나서 그러는 모양이구먼. 그러나 그런 무당의 허튼수작에 휘둘리지 말고 걱정 말아요. 나는 절대로 죽지 않을테니." ​"아니에요. 할머니 무당의 말씀은 허튼 소리가 아니에요. 그 무당의 예언은 한 번도 빗나간 일이 없는 걸요." ​한번 믿기 시작하면 미신처럼 무서운 것이 없어서, 수안댁의 강..

어쩔 수 없는 운명의 장난

김삿갓 82 - [어쩔 수 없는 운명의 장난] "삿갓 어른! 죄송해요. 제가 왜 재혼을 할 수 없는 팔자인지, 솔직하게 말씀드릴께요." 그리고 수안댁은 여러 사람들 앞에서 술주정을 하듯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공개 하였다. 수안댁은 결혼한 지 5년 만에 남편이 죽자, 삼년상을 깨끗이 치른 뒤에, 재혼을 하려고 망부(亡夫)의 혼백을 달래는 굿을 성대하게 해주었다. 그때, 그 굿을 주관한 무당은 70대의 할머니 무당이었는데, 죽은 남편의 혼백을 불러 놓고 한바탕 칼춤을 추어가며 넋두리를 한참 늘어 놓은 후, 문득 수안댁에게 다음과 같은 몸서리 치는 선언을 하는 것이었다. "네 남편은 독주를 마시고 죽은 게 아니라, 바로 네가 청상살을 타고났기 때문에 죽은 것이로다. 그러므로 너는 재혼을 하더라도, 네가 타고..

취향정 수안댁의 폭탄선언

김삿갓 81 - [취향정 수안댁의 폭탄선언] 곤혹스럽기는 김삿갓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분위기를 눙치기 위해 너털웃음을 웃어 보였다. ​"아 사람들아! 술은 안 마시고 무슨 장난이 이렇게도 심하단 말인가?" 그러자 조조가 다시 손을 내저으며, "자네는 끼어들 계제가 아니니까, 잠자코 듣기만 하게! 자, 수안댁은 우리들의 질문에 거짓 없이 대답을 하겠노라고 약속해 줄 수 있겠지?" ​수안댁은 잠시 생각해 보다가 "좋아요. 약속할께요." ​"그럼 됐네! 내가 이제부터 중대한 일을 물어 볼 테니, 자네는 똑똑히 들었다가 분명히 대답해주게!" ​"자네는 우리들의 죽마고우인 김삿갓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이 사실이겠지?" 조조가 너무도 진지하게 물어보는 바람에, 방안에는 일순간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리고 뜻밖의 질..

[비장의 술 秋露白

김삿갓 80 - [비장의 술 秋露白] ​우리 집에 남 모르게 비장해 놓은 秋露白 이란 술을 그 김삿갓이란 사람에게 한번 맛 보여주면 얼마나 놀랄까? 추로백이라는 술은 수안댁이 몇 해 전에 어떤 고승으로부터 담그는 비법을 배워서 한 항아리 담가 놓은 것이었다. 양조법을 배우다가 시험삼아 한번 담가 본 것으로 돈을 받고 팔기 위해 담가놓은 술은 아니었다. 그러나 삿갓이라는 사람이 술맛을 그렇게나 잘 알고 있기에, 그 사람에게는 추로백의 맛을 꼭 한번 보여주고 싶었다. 수안댁은 며칠을 두고 망설이다가, 어느 날 마침내 용기를 내어 술 한병을 들고 조조를 일부러 찾아왔다. ​"며칠 전에 우리 집에 들렀던 삿갓이라는 분에게 이 술맛을 보여 주세요. 이 술은 "추로백" 이라고 하는데 술의 진정한 맛을 아는 그 양반..

질긴 인연의 시작

김삿갓 79 - [질긴 인연의 시작] ​해年도 며칠 남지 않은 어느 날 김삿갓은 이날도 이풍헌 댁으로 바둑을 두려고 모임방을 나서려고 하는데, 조조가 술을 한 병 들고 찾아왔다. ​"여보게! 오늘은 어디 가지말고 나하고 술이나 한잔 하세! 이 술은 어떤 여자가 자네한테 보내 온 특별한 술일세!"하고 집을 나서려는 김삿갓의 발길을 잡았다. 술이라면 어떤 술도 마다 할 김삿갓이 아니다. "술이라면 먹세그려. 그런데 어떤 여자 이길래 나한테 술을 보냈단 말인가?" "왜, 궁금해? 그런 사람이 있어. 하하하." 조조는 술상 앞에 앉으면서 소리내어 웃었다. 김삿갓이 물었다. "이 술이 어떤 술이란 말인가? 또 어떤 여자가 보내 준 술이라 고 했는데 그 여자는 또 누구인가?" ​"왜? 여자가 보내 준 술이라니까 궁..

'도루아미타불'의 본뜻

김삿갓 78 - ['도루아미타불'의 본뜻] ​그런 일이 있고 난 뒤부터 세상사람들은 그 경문을 "바라경"이라고 불러 오게 되었다고 일휴 스님이 말하자 좌중은 손뼉을 치며 박장대소를 하였다. 그리고 일휴 스님에게 다시 묻는다. "하하하, 스님은 마치 남의 일처럼 말하고 있지만, 사실은 바라경을 지은 사람은 일휴 스님 자신이 아니오?" ​그러자 일휴 스님은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나는 남녀 관계를 모르지는 않지만 "바라경"을 지은 사람이 나 자신은 아니야." ​"그 말을 누가 믿겠어요?" "바라경을 내가 지었다면 그렇다고 솔직하게 고백할 일이지 왜 거짓말을 하겠나? 불경에 보면 남을 속이는 것도 죄악이라고 했거든." ​이같은 일휴 스님의 태도로 보아 바라경의 작가가 일휴 스님 자신이 아닌 것은 분명해 보였..

'나무아미타불'의 본 뜻

김삿갓 77 - ['나무아미타불'의 본 뜻] ​김삿갓은 천동 마을에 찾아와서 부터는 마음이 편하고 즐겁기 그지 없었다. ​더구나 매일 밤이면 친구들이 모두 김삿갓이 거처하는 모임방으로 몰려와 기나긴 겨울밤을 이야기로 보내는 것은 더욱 즐거운 일이었다. 모임방에서는 어슷비슷 둘러앉아 미투리를 삼거나 새끼를 꼬거나 때로는 덕석이나 멍석등을 짜면서 제각기 제멋대로 늘어놓는 음담패설을 들어 보는 것은 다시없는 즐거움이었다. 밤에 모임방으로 모여드는 사람은 김삿갓의 옛날 친구만은 아니었다. 천동 마을에서 고개 하나를 넘으면 감둔산 동쪽 골짜기에 盤石庵이라는 조그만 암자가 있는데, 그 암자에서 혼자 살고 있는 一休스님도 밤이면 가끔 놀러오는 단골 손님 가운데 하나다. 일휴 스님은 나이가 70이 넘은 대머리 스님이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