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여행기

송기석교수의 조각관을 돌아보고(처음처럼作)

오토산 2016. 12. 22. 03:56

 

 

 

 

 

 

 

 

 

 

 

오랜 친구였으나 처음 만난다.

무슨 말이냐 할것이다.

 

정말 짝사랑하듯 오래 만나고 살았으나 말못하다가

다 늙어서 처음으로 마음나눌 사석에서 처음 만나

역시 오랫동안 사귀어오던 사람처럼

금세 마음을 나누는 분을 만났으니

그가 송 기석 ( 안동대학교  예,체대학장역임 ) 교수이다.

 

내가 잠깐 몸담았던 교직을 그만둔것이 60 년대 말 이었고

송 교수가 안동교육대학교 미술학과 교수로 부임한것도 그 무렵이었다.

그러니까 교육계에서 서로 엇나가게 오고 간 셈이다.

 

그런데 송 교수의 동료이자 작가이고 제자였던

 이 상무 (안동대학교 미술학과 교수, 조각전공) 교수와 인연이 되어

자주 만나고 연구실을 드나드면서

함께 송 교수도 자주 얼굴을 마주 보고 지냈고,

또 홍익대학교 출신 미술전공 선배, 동기친구들이 몇있어서

마치 동문이나 되는듯 반갑게 만나면서 살았다.

 

안동문화회관에 근무하면서

더더욱 전시회나 행사에서 서로 웃으며 인사하였고

오랫동안 그러니까 수십년을 그렇게 만났었다.

 

그리고 주변사람들로부터 송 교수의 면면을 자주듣게 되고

이곳저곳에서 자주 동정을 듣다보니

마치 함께 동반하는 동료인듯 느끼며 살았었다.

 

앞서 말했듯이 짝사랑하는 혼자만의 느낌이었는지 모른다.

 

며칠전 친구의 주선으로 점심을 함께하고

내 느낌을 고백하고 서로 얘기하다보니

정말 우리가 이런 아주 개인적인 자리가 왜 없었는지

오히려 이상할 정도라는 점에 서로 동의하였다.

 

해서 오늘 점심과 함께 송 교수의 조각관,

그리고 그의 속살을 들여다볼수있도록 초대하여 주었다.

 

임하면 대추월이라 부르는 곳에

폐교된 임하 중학교 바로뒤,  학교 사택부지에

정말 그동안 수많은 이야기를 들어왔던 바로 그

개인 겔러리와 작업실을 들어서게 되었다.

 

사노라면,

이렇게 갑작스레 반가운 일을 만나기도 한다.

정말 듣던대로 정갈하다고 할까 전공교수답다할까

잘 가꾸어진 아담한 집의 안뜰엔 그의 명함과 같은

작품 몇점이 우리를 반기고

들어서는 방에는 와아~  탄성이 저절로 소리질러지는

그동안 보지 못하였던 작품 전시실이 나를 놀라게 한다.

 

작품의 모양새가 눈먼사람이나 다름없는 문외한 나에게도

다 빼어난 솜씨와 정성이 확 느껴지고

그 수백점이나 되는 수량에도 그저 압도 되었다.

이 모든 작품이 그의 손에 탄생하고 생명을 가지고 사랑받다가

여기 이렇게 함께 모여서 살고 있다니 말이다.

 

욕심 같아선 바로 몇점을 훔쳐갈 마음이 생길정도인데

오늘이 성탄 준비한다고 성당에 가서 잘잘못을 고백성사로

혼이 나고 온 처지인지라 금세 고개를 절레절래 젓고 말았다.

 

송 교수는 참 행복한 인생이다.

이곳을 드나드면서 얼마나 행복한 마음일까 ?

 

수천도 높은 열을 받고 쇳물이 녹아내리며 신비로운 모습으로

송 교수의 손길에 태어난 새생명들이

모두가 저 봐달라고 조르며 쳐다보고 있으니

이 보다 더한 기쁨이 어디 있을것인가 ?

 

작년, 올해 안동의 문화계 최대 현안인

안동 미술관 건립과 운영에 대한 논란이

여기 송 교수의 작품들을 보면서 참 부질없고 쓰잘데없는 짓이었던가

그저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차를 한잔 얻어 먹고 돌아본 그의 작업실에서

송 교수가 그 많은 작업도구가운데 망치 하나를 들고

이 망치가 내손에서 수십년을 견뎌주었다면서

마치 애인을 우리에게 소개하듯 하는데

금새 나도 그 망치에 정이 확 느껴진다.

 

동행한 권 본부장 기자님이

송 교수 손좀 보시더 하였고

부끄러운듯 억지로 내어미는 손이

모든 사연을 다 말해 주고 있었다.

 

손마디 마디마다 작품의 숱한 사연을 이야기 하여 주고

반창고를 바른 손가락이 세월을 느끼게 하여주고

스마트폰의 텃치가 잘 되지않는다는 손바닥의 투박함이

그동안 오고가며 만나던 그저 인상좋고 웃음 띈

조각가 교수의 멋진 모습뒤에 숨어 있었구나 하는 감동에

정말 왈칵 껴안아 반가움을 고마와 하고 싶어진다.

 

더더구나 안뜰 한켠에 내외분 얼굴이 새겨진

돌 표시석이 이색적으로 놓여있는데

정말인가 싶을 정도로 놀라운 송 교수의 저승집이란다.

 

얼굴부분을 열면 영면의 공간이 있다하고

아래 흰 띠엔 생몰을 적어넣으면 된다고 웃으며 설명하는데

뒷면에 적힌 두분의 이력을 읽어 보니

정말이구나 싶어진다.

 

오스트리아의 예술인 묘역에서 만나는

이름도 유명한 예술가들의 조각 묘역을 보고 부러웠던

바로 그 인상을 여기서 다시 본다.

 

오늘에사 알겠다.

 

모두 왜 송교수, 송 교수 하는지. . .

 

앞으로 이 수백명 송 교수 분신이 어울려 사는

정다운 이 집에 자주 드나드면서

그의 사는 법을 엿봐야겠다.

 

그리고 허락이 되면 동반도 좋을 것이고. . .

 

 

 

 

 

 

 

 

 

 

 

 

 

우리 사범학교 연못 ( 탄지라 불렀다 )에  놓였던

송 교수 초년 작품인데 오랫만에 여기서 만난다.

 

 

 

 

 

 

 

 

 

 

 

 

 

 

 

 

 

 

 

 

 

 

송 교수도 영락없는 우리들이라

손자들의 솜씨자랑을 이리 보고 지낸다

 

 

 

 

 

송 교수의 저승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