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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산서원에서 인문독서아카데미를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주관하고 병산서원관리위원회가 수행하는
2017인문독서아카데미가 7.8~9.16 매주 토.일요일 14~16시까지 지역민들과
관광객들을 상대로 '유교와 선비정신'등을 내용으로 병산서원 만대루에서 열린다.
7.8. 고유제에 이어 류한욱 별유사의 '서원의 역사와 병산서원' 강의가 있었고
7.9일부터 이동수 철학박사가 '유교와 선비정신' 강의로 '병산서원 유적이해'
'세계문화유산 하회마을' '한국문화의 진수 태극과 삼태극' '유학경전공부'
'대학선독'등으로 5강이 있을 계획이고
8월에는 해명 류동학박사의 강의도 있을 계획이라고 한다.
屛山書院은 임진왜란 당시 국가존망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西厓 柳成龍선생을
제향하는 서원으로 고려말부터 풍산에 있던 풍산류씨 豊岳書堂을 서애선생이 이곳
병산으로 옮겨 후진양성을 하면서 주자와 퇴계의 도통을 계승함을 선언하였고
1613년 서애선생 서세후 문인 정경세가 존덕사를 짓고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
1620년 유림공의 로 서애선생 위패를 廬江書院으로 옮겼고
1629년 서애선생 위패를 존덕사에 별도 봉안하고 아들 修巖 柳袗공을 추가 배향,
1863년 병산서원으로 승격 사액되었고 尊德祠, 神門, 典祠廳등 제향공간과
입교당, 동측실 명성재, 서측실 경의재, 동재 동직재, 서재 정허재, 장판각,
만대루, 복례문, 주사등 강학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晩對樓는 아래층은 휘어진 굵은기둥, 위층은 잘 다듬은 둥근기둥으로 세우고
우물마루, 계지닌긴을 이룬 누마루로 정면 7칸 측면 2칸의 2층 루각으로서
안동에서 유일하게 현존하는 서원누각이며 우뚝하여 서원의 위상을 높여주며
사방이 튀여진 누마루에 앉으면 앞에 펼쳐진 푸르른 병산과 쉼없이 흘러가는
낙동강 맑은물에 빠져 세속에 찌든 사람들의 심신을 맑고 깨끗하게 씻어주며
唐나라 시인 杜甫가 三國誌 劉備가 최후를 맞은 백제성절벽위 누대를 보며
지은 시(白帝城樓) 聚屛宜晩對(푸른절벽은 오후 늦게 대할만 하다)에서
누각명칭이 지었다고 하며 풍광이 수려하고 건축학적으로 가치가 있어
건축가들과 관광객이 많이 찾고 있다.
사당입구에 그려진 팔괘그림은 당시의 시대상황을 말과 글로 나타낼수 없어
4개의 주역괘로 나타낸 주역에 통달한 도학자의 깊은 뜻이 숨겨져 있으며
동쪽으로부터 임진왜란 전후상황부터 광해조의 혼란상황까지 표현하고 있다.
군주와 신하의 마음이 서로 화합하지 못하여 연산군 이래 네차례의 사화로
혼란을 겪으면서 사회질서가 흔들리고 국방이 헤이해져 왜군이 침입하자
죽음으로 막아야할 관군과 수령들은 도망하기 바쁜 시대상황을 天地否괘로
일본군이 물러가고 전쟁은 종식이 되었지만 피폐해진 백성들의 민심을 잡아
후일을 대비 해야 한다는 시대상황을 水火旣濟괘로
임란당시 정파는 동인.서인으로 동인이 다시 남인.북인으로 북인이 다시
대북과 소북으로 서로 갈라져 왕실인척 유영경이 영의정으로 정권 잡으며
1598년 서애선생은 삭탈관직 당해 고향으로 내려오고 서애가 실각하던날
이순신장군 마저 세상을 떠나고 광해군, 임해군, 영창대군의 후계싸움이
일어나는 형제간의 후계싸움의 시대상황을 雷山小過괘로
1604년 소북의 영수 유영경이 영의정에 오르고 1608년 선조가 갑자기 죽고
광해군이 즉위하자 대북파 정인홍과 이이첨이 영창대군을 옹립하여 반역을
도모해 소북세력을 몰아내고 남인과 서인을 조정에서 완전축출 국론분열과
조정불안을 가져온 시대상황을澤風大過괘로 표현하고 있다고 한다.
오늘 만대루 누마루에는 대구에서 오신분을 포함하여 30여명이 참석하여
병산서원의 유래와 각각 현판의 설명과 동측실과 동재의 이름은 양으로
서측실과 서재의 이름은 음으로 지어졌다는 음양의 원리,
사당입구의 주역괘상에 대한 설명등을 들으며
루마루 앞에 펼쳐진 병산과 낙동강의 산수화를 감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행사를 수행하신 병산서원관리위원회와 함께 하신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세상사 한마디
덧없이 흘러가는 세월속에 잠시 머물다가 가는 인생
남의 것 탐내지 말고 부질없는 욕심도 부리지 말고
내 것 아니면 버리고 남에게 줄 것 있으면 나누면서
시원한 생수 한컵으로 웃음을 나누는 하루를~~~
누마루에서 먹는 기지떡과 수박도 맛있었어요!!!
평상시에는 누마루 출입이 통제되나
이번 강좌를 위해 개방하여 누마루에서 좋은 구경도 할수가 있었다.
시대상황을 표현한 사당앞의 주역괘
진흙돌담의 시작부분이 끝부분에 가리도록 둥글게 감아 세워
출입문을 달아 놓지 않아도 안의 사람이 보이지 않고
지붕이 없어 하늘이 열려 있는 서원밖의 화장싥로
유생들 뒷바라지를 하던일꾼들이 사용하던 "달팽이 뒷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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