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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청각에서 국학아카데미 현장수업을
내일은 6.13 지방선거일로 오늘저녁에는 막바지 선거전으로 거리거리에는
로고송이 울려퍼지고 곳곳에는 후보자들이 고개를 숙이며 열을 올리고 있다.
19:00 제10기 국학아카데미 11강으로 울산대학교 역사문화학과 이종서교수가
임청각 군자정에서 현장강의가 있다.
임청각(臨淸閣)은 1519년(중종 14) 형조좌랑을 지냈던 고성이씨 이명(李洺)이
지은집으로 우리나라에서 오래된 민가중의 하나로 독립운동가이며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지낸 석주 이상룡(李相龍李 1858~1932)의 생가이며
그 의 아들 손자 3대에 걸쳐 독립유공자를 배출한 곳으로 用자가 드러누운듯한
평면구성으로 남여와 계층별로 뚜렸한 공감을 이루고 있어 건물의 위계가
분명하였던 것으로 전하고 있다.
군자정(君子亭)은 임청각의 별당형식의 정자로 사랑채 역할을 하였으며
정면이 丁자가 옆으로 누운형태를 하고 있다고 한다.
이 교수는 시작하면서 역사적인 사실은 바르게 알아야 한다면서
고성이씨는 경남고성의 향리가문으로 의종때 무신정변이 발생하여 문벌귀족이
대거 몰락하고 문관직 자리에 향리인물로 채워지면서 중앙정계에 진출한
가문으로 고려시대 향리는 세도가 였다고 하면서
사당의 위패는 석주선생이 중국으로 떠나면서 없앤것이 아니라 동생에게 조상을
모실수있는 재산을 남겨주면서 사당에서 고유를 하고 떠났으나 그 후에 위패가
없어졌다면서 역사사실의 오해를 바로 잡아주었고
임청각은 원래 70여칸으로 추정되나 99칸으로 불리어져 왔으며 중앙선철로로
인해 주된 건물의 파괴는 없었으나 경관과 위엄이 파괴되었다면서
본래의 품격과 위엄을 회복할수 있도록 복원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이 곳은 누구나 들어올수 없었던 공간이었으나 이렇게 자리한것이 영광이라면서
1591년(선조 24) 고흥 고경명이 동래부사직을 마치고 귀경길에 사돈 이갑원의
회갑연에서 이 자리에 참석하기도 하였다면서
'住一日走添一日之恥(일제치하에서 하루를 더 사는것이 하루의 치욕(恥辱)을
더 보태는게 될 뿐이다', '도증형제의 학업은 비록 토지를 팔고 가산을 축소하는
일이 있더라도 중도에 그만두지 말고 가르치도록 하여라'는 유서를 남기고
자결한 이준형1875~1942.9.2)의 사진과
아들 4형제를 먼저 보내고 꿋꿋이 임청각을 지켜오면서 만연에 '아직도 내 귀엔
서간도의 바람소리가'를 기록하여 독립투쟁기의 생활사를 증언하신 석주의 손부
허은(1907~1996 남편 이병화)의 사진에 대한 설명도 하여주시며 그 분들의
독립투쟁사를 알려주기도 하였다.
오늘 강의를 하여주신 교수님께 감사를 드리고 함께하여주신 모든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http://blog.daum.net/uh512/10725>에서 더 많은 내용을 보실수도 있습니다.
세상사 한마디
기분좋은 웃슴은 집안을 밝혀주는 햇볕과 같고
햇볕처럼 화사한 미소는 집안을 들여다 보는 천사와 같다.
오늘도 햇볕과 천사가 함게하는 웃슴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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