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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간선생의 오작당과 양진당을 다녀와서
오후 첫 답사로 검간 조정선생의 구당인 오작동(悟昨堂)과
연거소(燕居所)인 양진당(養眞堂)을 찾았다.
오작당(悟昨堂)은 양진당보다 25년 앞서 양진당 자리에 세웠던 것을 이 곳으로
옮겨놓은 건물로 검간의 손자 입제공 대윤의 종택이며 조목수(趙沐洙)가
선업을 성실히 있고 가풍을 진작시키려는 마음으로 구당이라 하였으며
1601년(선조34) 검간선생이 요포(현 양진당자리)에 선조를 추모할 목적으로
지었다가 1661년(현종 2) 입재공이 은천의 새터(新基)로 이전하여
현재는 안채, 사랑채, 사당이 남아 있다.
처음 이건한 입재(立齋) 조대윤 (趙大胤)선생은 문명(文名)을 얻은 선비로 일가의
친목을 도모하려 목인(睦婣)이란 계를 조직하여 가문의 흥창을 도모한 선비이다.
오작당을 들어서니 종손이 돌아가신 상가로 여막이 설치되어 있었으며
차종손이 검간선생의 둘째집이라며 인사를 하시었고
삼촌분은 묘사라서 찾아왔다며 '아담하고 작은 선비집이 있더라고 알아달라'며
검양을 표현하기도 하였다.
이 건물은 상주에사 가장 오래된 건물이며 현재 고택체험을 하고 있다고 한다.
양진당(養眞堂)은 양오진(養吾眞)의 뜻을 취하였고 다습지역의 주거형인
고상형으로 기둥은 통채로 하층부분은 방형으로, 상층부분은 원형으로 다듬었고
지붕은 정침의 튓마루 상부만 겹처마, 나머지는 홑처마로 하였는데
겸처마의 서까래를 네모지게 다듬어 부연과 같은 모습을 취하게 했으며
상량문에서 1626년(인조 4)에 지었음이 발견되었다.
종손과 종회장님은 풍양조씨는 본관은 예천풍양이 아니고 경기도 풍양이니
오해하시지 말라며 건물은 맛배지붕이나 밖에서 보면 팔작지붕 같기도 하고
굴뚝이 낮은것은 가난한 이웃에 연기를 보이지 않기 위함도 있지만
연기가 구둘에 장시간 머물러 보온의 효과를 높이기 위한것
다락방입구의 돌출보는 균형을 잡기위해서 이며
겹집구조로 방안에 방을 설치하는 임진란이전의 건축양식을 나타내었으며
한국전쟁후에 교실로 사용되기도 하였다고 하였다.
상세한 설명을하여주신 종손분과 문중의 어르신들께 감사인사를 드리고
우리는 장천서원을 찾아갔다.
세상사 한마디
노동(勞動)없는 부(富), 양심(良心)없는 쾌락(快樂)
인격(人格)없는 교육(敎育), 희생(犧牲)없는 종교(宗敎)
이것이 지금 우리사회의 자화상이란 사람들도 있다
어디서부터 바꾸어 나가야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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