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한지

초한지 (楚漢誌) 《우야 우야 이를 어쩔 것이냐 》

오토산 2020. 6. 18. 17:00



초한지 (楚漢誌) (123)

우야 우야 이를 어쩔 것이냐 (虞兮虞兮 可奈何 : 우혜 우혜 가내하)

항우는 밤 사이에 이변(異變)이 일어난 줄도 모르고 우미인과 함께 잠을 자다가 문득 잠결에 들으니

사방에서 초나라의 노랫소리가 아득하게 들려오고 있지 않은가 ?

 

"아니, 이게 웬 초나라 노랫소리냐 ?

내가 지금 고향에 돌아왔더란  말이냐 ?"

 

항우는 소스라치게 놀라 잠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그러나 아무리 둘러 보아도 잠을 깬 곳은 틀림없는 군영(軍營) 막사가 아니던가 ? 

 

그리하여 항우는,
"밖에 누구 없느냐 !"하고 큰소리로 사람을 불렀다.
그러자 주란과 환초가 부리나케 달려와 울면서 아뢴다.

 

"폐하 !

한신이란 놈이 간밤에 산상에서 퉁소로 초나라 노래를 불러대는 바람에,

우리 군사들이 산란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모두 고향으로 달아나 버렸습니다.

8천여 명에 달하던 병사들은 물론, 계포와 종이매조차도 달아나 버려서,

이제 남은 군사는 우리 두 사람과 8백여 명의 결사 대원들뿐이옵니다."
항우는 그 말을 듣고 기절 초풍을 할 듯이 놀랐다.

 

"뭐야 .... ?

계포와 종이매까지 달아나 버렸다구 ? "

 

"그러하옵니다.

폐하. 모두 달아나 버려서 이제는 적을 막아낼 수가 없사오니,

폐하께서도 몸을 피하셔야 하옵니다."
항우는 그 말을 듣고 몸을 사시나무처럼 떨며 하늘을 우러러 탄식한다.

 

"세상에 이럴 수가 ! 세상에 이럴 수가 ....!

오오, 하늘이 정녕 나를 버리신다는 말인가 ?"
그 탄식성이 너무도 비통하여 계포와 종이매조차 흐느껴 울기까지 하였다.

우미인은 너무도 놀라운 사실을 항우와 함께 듣고,

눈만 동그랗게 뜬 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온 몸을 떨고만 있었다.

 

항우는 그러한 우미인을 돌아보며,
"내가 당신과 함께 창검과 화살이 난무하는 적의 포위망을 뚫고 무사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 당신은 내가 적의 포위망을 뚫고 싸움을 하는 틈을 보아서 허술한 곳으로 스스로 도망을 쳐라.

이제 내가 당신과 헤어져 어디론가 도망을 갈 수밖에 없게 되었으니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구나.

당신과 더불어 부부의 정을 나눠 온지가 이러구러 7,8년. 천군 만마의 진중에서도

떨어지지 않았던 우리였건만 이제 기약없는 이별을 하려니 가슴이 메어 오는구나 !"
하고 말하며 땅을 치며 통곡하는 것이었다.

항우에게는 나라가 망하게 된 목전의 위기도 슬픈 일이었지만,

내 몸같이 사랑하는 아내와 영원히 헤어진다는 것은 더 한층 슬픈 일이었던 것이다.
우미인은 아무런 대답도 못 하고 땅에 쓰러져 울기만 하였다.
숨막히는 슬픔이 계속되자, 항우는 아내의 어깨를 두드려 주면서 말한다.

 

"나는 이미 죽음을 각오한 몸. 당신은 속히 일어나 살 길을 찾아가거라 ! "
우미인은 정신없이 흐느껴 울다가,

문득 얼굴을 고즈녁이 들어 남편을 원망스럽게 바라보며 나무라듯 말한다.

 

"폐하 !

지어미가 지아비를 내버리고 어디로 가라고 신첩더러 도망을 가라고 하시옵니까 !

신첩은 폐하의 말씀이 너무도 원망스럽사옵니다 ! "
항우는 복받쳐 오르는 슬픔을 씹어 삼키며 냉정한 어조로 아내를 달래듯이 말한다.

 

"당신은 아직도 젊은 몸이니, 어디를 간들 살 길이 없겠는가 ?

나를 생각지 말고 빨리 이곳을 떠나도록 하거라."
우미인은 탄식하듯 말한다.

 

"신첩은 오랫동안 폐하의 은총을 입어 오면서,

언제든지 폐하와 생사를 같이할 결심을 해왔사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혼자만 살 길을 찾아가라고 하시니,

그 무슨 무정한 말씀이시옵니까."
항우는 가슴이 메어 와서 옷소매로 눈물을 훔치며 말한다.

 

"나라가 망했으니, 나는 어쩔 수 없이 죽어야 할 몸이다.

그러나 앞길이 구만 리 같은 당신까지 나를 따라서 죽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

항우는 그 한 마디를 씹어 던지고 부랴부랴 갑옷을 추스려 입고

밖으로 달려 나가 애마(愛馬) 오추의 등에 올라타며 박차를 가했다.

아내를 내버려둔 채 자기만이 죽을 길을 찾아 나서려는 것이었다.
항우가 우미인을 내버려두고 혼자 적진을 향해 돌파하려는 것은

어쩌면 우미인을 진심으로 사랑했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러나 항우가 말 위에 올라 아무리 박차를 가해도,

오추는 웬일인지 그 자리에 선채로 꼼짝도 하지 않았다.
바로 그때, 우미인이 허둥지둥 쫒아 나와 항우의 옷소매를 움켜 잡으며 애원하듯 말한다.

 

"폐하 !

아무리 떠나시더라도 신첩의 이별주(離別酒)를 한 잔 드시고 떠나셔야 할 것이 아니옵니까 ?"

 

"오오, 당신이 주는 이별주라면 내 어찌 마다 하겠는가.

어서 술을 가져오거라."
우미인은 몸소 술상을 들고 나와 마상의 항우에게 이별주를 따라 올리며 말한다.

 

"폐하께서는 신첩의 선녀무(仙女舞)를 무척 좋아하셨으니,

마지막으로 선녀무를 한 가락 추어 올리겠나이다."

그리고 우미인은 눈물을 하염없이 흘려 가며 아리따운 몸매로 선녀무를 너울너울 추기 시작하였다.
우미인의 선녀무는 그야말로 천하의 일품이었다.

그녀의 사뿐사뿐 옮기는 발걸음에서는 삼현 육각(三炫六角)이 소리 없이 울려 퍼지는 것 같았고,

기나긴 옷소매를 허공에 높이 치켜 올릴 때에는 선녀가 바야흐로 우화등선(羽化登仙) 하려는 것 같아서

그지없이 아름다웠다.

 

그러면서도 그 춤에서는 슬픔이 안개처럼 솟아올라 보여서,

손에 술잔을 든 채 우미인의 선녀무를 정신없이 바라보고 있는 

항우의 눈에서는 구슬 같은 눈물이 연실 흘러 내렸다.
항우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려가며 춤을 추고 있는 우미인(虞美人)을

정신없이 바라보다가 문득 자기도 모르게 그녀의 춤사위에 맞추어 즉흥시를 읊기 시작하였다.
           ...

힘은 산을 뽑고 기개는 천하를 덮건만 力拔山兮 氣蓋世 ( 역발산혜 기개세 )
시세가 불리함에 말조차 나가지 않네   時不利兮 추弗逝 (시불리혜 추불서)
말이 나가지 않으니 이를 어쩔 것이냐  추弗逝兮 可奈何 (추불서혜 가내하)
우야 우야 이를 어쩔 것이냐              虞兮虞兮 可奈何 (우혜우혜 가내하)
우야 우야 이를 어쩔 것이냐              虞兮虞兮 可奈何 (우혜우혜 가내하)
          ...
항우가 즉흥시를 슬프게 읊고 나자,

우미인은 춤을 추어 가며 화답(和答)을 한다.

한나라 군사가 쳐오면서 사방은 노래뿐이고

漢兵巳略 四方楚歌聲 (한병사략 사방초가성)
대왕께서 의기를 잃었으니 신첩인들 어찌 살기를 바라리오
大王意氣盡 賤妾何聊生 (대왕의기진 천첩하료생)
            ...
항우와 우미인은 이별이 서러워 노래를 주고 받으며 언제까지나 헤어질 줄을 몰랐다.
부부의 애절한 이별을 눈물로 지켜 보던 주란과 환초는

먼 동이 터오는 하늘을 손으로 가르키며 항우에게 아뢴다.

"폐하 !

동이 터오기 시작하니,

적의 무리가 언제 덤벼올지 모르옵니다.

어서 빨리 떠나셔야 하옵니다."
항우는 그제서야 아내에게 달래듯 말한다.

 

"적들이 몰려오기 전에 나는 어디론가 떠나가야만 하겠다.

당신도 속히 피신하여 목숨을 보존토록 하라. 우리들의 운명이 다하지 않았다면,

언제 어디선가 다시 만날 날이 있을 것이다."
우미인은 항우의 옷소매를 부등켜잡고 울면서 호소한다.

 

"낭군 혼자만 떠나시면, 저더러 어디로 가라는 말씀이시옵니까 ?"
항우가 대답한다.

 

"당신은 얼굴이 아름다워 유방도 당신만은 결코 죽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죽을 걱정은 하지도 마라."
그러자 우미인은 몸부림을 치며 앙탈하듯 외친다.

 

"신첩은 폐하와 함께 도망을 가다가 적의 손에 붙잡히면 스스로 목숨을 끊을 결심이옵니다.

설사 육신이 진토가 되더도 혼백만은 폐하를 따라서 초나라로 돌아가게 해 주시옵소서."
그러나 항우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것은 안 될 말이다.

아무 죄도 없는 당신을 내 어찌 나와 함께 죽자고 할 수가 있겠는가 ?

나는 도망을 치다 죽을 결심이지만, 당신까지 죽게할 수는 없는 일이다."

 

우미인은 항우의 옷소매를 움켜잡으며 다시금 애원하듯 말한다.

"정말로 그러하시다면 신첩의 마지막 소원을 하나만 들어주시옵소서."

 

항우도 <최후의 간청>만은 거절할 수가 없어서,
"이 판국에 무슨 소원이 있단 말이냐.

그것만은 들어 줄테니, 어서 말해 보아라."하고 재촉하였다.
우미인이 말한다.

 

"바라옵건대 폐하의 보검(寶劍)을 신첩에게 이별의 정표로 내려 주시옵소서.

신첩은 어디로 가나 그 보검을 폐하로 알고 받들어 모시겠사옵니다."

 

눈물겹도록 슬픈 아내의 마지막 간청이었다.
아무려니 항우도 그것만은 거절할 도리가 없었다.
그리하여 허리에 차고 있던 보검을 아낌없이 풀어주면서 말한다.

 

"그런 소원이라면 어찌 들어주지 않겠냐.

어서 받아라."

우미인은 보검을 받아들고 나더니,

비장한 어조로 항우를 힘차게 부른다.

 

"폐하 ! "

 

"무슨 일이냐 ? "

 

"신첩이 폐하를 따라 나서면 폐하는 저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되실 것이옵니다.

그러기에 신첩은 이 자리에서 죽기로 결심하였으니,

폐하께서는 이 순간부터 신첩을 잊으시고 신속히 피신하시옵소서."

우미인은 그 한 마디를 남기고 그자리에서 항우로부터 받아든 보검으로 목숨을 끊어 버리는 것이었다.
우미인이 항우에게 이별의 보검을 달라고 한 것은 스스로 자살을 하기위한 구실이었던 것이었다.
말릴사이도 없이 벌어진 참극을 눈앞에서 당한 항우는 말에서 뛰어내려

우미인의 시체를 부둥켜안고 통곡을 하였다.
       ...

* 글 중간에 붙여.
2019년 4월 5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막을 올린 "패왕별희"에서

초패왕 항우가 그의 아내인 우희와의 안타까운 이별을 맞는 모습을 담은 신문에 실린 사진입니다.
이번 공연은 특별하게도 중국의 전통 경극과 우리의 창극인 판소리를 접목시켜 이를 보는이로하여금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경극과 창극의 신선하고 새로운  접목  만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아쉬운 것은 오는 14일까지 계속되는 공연에 이미 전 회차 전석이 매진되었다는 것입니다.
              ...
그러자 한참을 지켜보던 주란이 다가와 항우를 잡아 흔들며 간한다.
"폐하께서는 이 판국에 천하 대사를 잊고  슬픔에 잠기실 때가 아니옵니다.

사태가 위급하오니 속히 이 자리를 떠나셔야 하옵니다."

 

항우는 눈물로써 우미인의 시체와 작별 하고,

8백여 기의 부하들과 함께 울면서 도망길에 올랐다.
얼마를 앞으로 가니, 한군의 포위망이 보이는 것이었다.

그러자 항우는 일행을 두 패로 나눠, 항우가 먼저 포위망을 뚫고 나가는데.

한나라 대장 관영이 많은 군사들로 앞길을 막아선다.

 

항우가 폭풍처럼 달려 나가 관영과 싸우기를 10여 합,

관영이 힘에 부쳐 도망을 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항우는 추격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자기 길만 달려나갔다.
이때 번쾌가 산상에서 이 광경을 보고 붉은 깃발은 사방으로 휘두르니,

이번에는 한나라 군사들이 사면 팔방에서 일시에 들고일어나는 것이었다.

한편, 주란과 환초도 항우의 뒤를 따르고 있었는데,

한장(漢將) 조참이 유가,왕수,주종,이봉 등의 네 부장들과 함께 총공격을 퍼부어 오는 것이었다.
주란과 환초는  결사적으로 싸워 적들을 가까스로 물러가게 하고 뒤를 돌아 보니,

이제는 남아 있는 병사라고 해 보아야 고작해야 20여 기만 남았을 뿐이 아닌가 ?

 

"이제 앞으로도 적군을 수없이 만나게 될 터인데, 20여 기로서야 어찌 그들을 막아낼 수가 있을 것인가 ?

그렇다면 적의 손에 처참하게 죽느니 차라리 내 손으로 죽어 버리자 ! "

 

주란과 환초는 하늘을 우러러 탄식해 마지 않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 버리니,

나머지 20여 명의 친위대의 남은 군사들도 두 사람을 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항우는 주란과 환초가 자결한 사실도 모르고,

1백여 기의 부하들과 함께 한군의 포위망을 뚫고 앞으로 앞으로만 달려 나갔다.
그리하여 회하(淮河)에 당도하니, 마침 물가에 나룻배 한 척이 있었다.

 

"모두들 이 배를 타고 강을 건너자 ! "
몇 번의 나룻배 행보로 항우를 비롯한 남은 백여 명의 친위대는 무사히 강을 건널 수 있었다.

그러나 거기서 10여 리를 더 달려 음릉(陰陵)이라는 곳에 당도하니,

산길은 두 갈래로 갈려져 있어서, 어느 길이 강동으로 가는 길인지 알 수가 없었다.
사방을 둘러보니 마침 늙은 농부 하나가 밭에서 농사일을 하고 있었다.

항우는 농부 곁으로 달려가 다급하게 물었다.

 

"여보게 ! 

강동으로 가려면 어느 길로 가야 하는가 ?"

 

"....."

농부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항우를 멀거니 바라보기만 하였다.

그리고는 마음 속으로,
(이 사람이 비단 전포(戰袍)에 황금 투구를 쓴 것으로 보아, 보통 사람이 아닌게로다 !

그렇다면 초패왕이 아니런가 ?

초패왕이라면 우리네 백성들을 무던히도 괴롭혀 온 인물이니,

이런 자를 구해주었다가는 천벌을 받게 되리라...)
늙은 농부는 이런 생각이 들어, 대답을 아니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항우는 다급한 어조로 다시 묻는다.

 

"이 사람아 !

나는 초패왕일쎄. 한나라 군사들에게  쫒겨 강동으로 피신하는 길이니,

길을 빨리 알려 주게 ! " 
농부는 상대방이 항우라는 것을 확신하자,

 

"강동으로 가는 길은 왼쪽 길이옵니다."하고

일부러 엉뚱한 길을 가리켜 보였다.

항우는 농부의 말을 믿고 그 길로 달려 가다가 깊은 수렁에 빠져 무진 애를 먹었다.
가까스로 수렁에서 빠져나와 얼마를 더 달려가다가 우연하게도

그 지방 태수(太守)인 양희(楊喜)를 만나게 되었다.
양희는 한 무리의 군사를 몰고 급히 달려오고 있었던 것이었다.
항우는 크게 기뻐하며 양희에게 애원하듯 말했다.

"여보게 양희 장군 !

그대는 과거에 나의 부하가 아니었던가 ?

나는 지금 강동으로 가는 길이니, 그대도 나와 함께 강동으로 가기로 하세.

내가 강동에서 재기(再起)하는 날에는 자네를 만호후(萬戶侯)에 봉해 주기로 하겠네."
양희가 냉소를 하면서 대답한다.

 

"당신은 현사(賢士)들의 충간(忠諫)을 듣지 않았다가 오늘날 이꼴이 된 게 아니오 ?

당신이 강동으로 도망을 간다 한들 어떻게 재기를 할 수 있단 말이오 ?

나는 이미 한왕에게 귀순하여 당신을 잡으러 나온 길이오.

그러나 옛날의 의리를 생각해 당신을 차마 내 손으로 잡아 갈 수는 없구려.

당신도 나처럼 한왕에게 귀순하여 오래도록 부귀와 영화를 누리도록 합시다."

항우는 양희에게 <항복 권고>를 듣는 순간, 모욕감이 열화같이 치밀어 올랐다.

그리하여 장창을 번개같이 휘둘러 양희를 찔러 죽이려고 하니,

양희가 몸을 번개같이 피하며 정면으로 대들었다.

 

두 장수가 무섭게 싸우기를 20여 합,

항우가 양희의 머리 위로 최후의 철퇴를 내려갈기려는 바로 그 순간,

벼락같이 양무,왕익, 여승,여마통 등의 맹장들이 일시에 함성을 울리며 항우에게 덤벼들었다.

 

항우는 그 많은 한군 대장들과 단독으로 싸우기 시작하였다.
생사를 걸고 싸우는 무서운 싸움이었다.

항우의 용맹이 어떻게나 뛰어났던지 7,8명의 맹장들과 싸워도,

오히려 항우가 유리해 보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영포,팽월,왕릉,주발 등이

한꺼번에 몰려와 항우에게 덤벼드는 것이었다.
항우는 그들을 상대로 10여 합을 더 싸우다가 승리할 가망이 없어 보이자

갑자기 말머리를 돌려 동쪽으로 비호같이 달아나기 시작하였다.

 

항우가 타고 있는 <오추>는 천하의 명마인지라, 그를 따라잡을 장수는 아무도 없었다.
항우는 어디가 어디인지도 모르면서 깊은 산길을 한없이 달려 나갔다.

그리하여 5,60리쯤 쫒겨가 뒤를 돌아다보니, 그를 따라오는  부하는 불과 50여 기에 지나지 않았다.
항우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하늘을 올려다 보니, 어느덧 해는 서산너머로 저물어 가는데,

문득 깨닫고 보니, 모두들 배가 고파 견딜 수가 없었다.
부하들이 항우에게 아뢴다.

 

"말도 말이지만, 우선 저희들이 배가 고파 더 이상 달릴 수가 없사옵니다.

적들이 여기까지는 쫒아오지 못할 것이니,

오늘 밤은 가까운 민가(民家)에서 자고 내일 아침에 떠나는 것이 좋을 것 같사옵니다.

야간 행군을 무리하게 계속하다가는 어떤 불상사가 있을 지 염려 되옵니다."

항우는 그 말을 옳게 여겨 사방을 둘러보았다.
저 멀리 아득한 숲속에 가냘픈 불빛이 하나 보였다.

 

"저기에 인가가 있는 모양이니,

저기로 가보자."

 

일행이 말을 끌고 불빛을 찾아가 보니,

그 집은 여염집이 아니라 흥교원(興敎院)이라는 고원(古院)이었다.

그곳은 뜰 앞에 시냇물이 흘러가고 있고, 마당가에는 기암 괴석들이 층층을 이루고 있었다.
안에서는 불빛이 새어 나오건만 인기척은 전혀 없었다.
항우는 바위 위에 털썩 주저앉으며 부하에게 말했다.

 

"칼이 무뎌졌으니,

여기서 내 칼을 좀 갈아 다오 ! "
그러나 부하들은 일어날 생각도 아니 하고 주저앉은 채 대답한다.

 

"지금은 한 걸음도 움직일 기운이 없으니,

저녁이나 먹은 후에 칼을 갈아 드리겠습니다."

어명을 거역하는 것은 참형(斬刑)에 해당한다.
그러나 항우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기를 따라온 그들의 충성이 너무도 고마워,

누구 하나라도 벌할 생각이 없었다.

그렇다고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여 칼만은 미리 갈아 두지 않을 수가 없기에,

항우는 몸소 물가로 걸어가 자기 칼을 손수 갈기 시작하였다.

항우는 장군이 된 이후로 자기 손으로 칼을 갈아 보기는 이때가 처음이었다.
항우는 칼을 다 갈고 난 뒤에, 애마 <오추>에게 물도 손수 먹여 주었다.
이렇게 부하 군사들 조차도 꼼짝도 할수 없도록  피곤에 지쳐 있었던 것이다.
항우는 말에게 물까지 먹여 주고 나서 홍교원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후원으로 들어가 보니 4,5명의 호호 백발 노인들이 화롯가에 둘러앉아 한담을 나누고 있었다.

"이 원에는 사람이 이렇게나 적으니 웬일이오 ?"
항우의 질문에 노인들이 대답한다.

 

"이곳의 원생(院生)들이 20여 명이나 있었으나,

전쟁이 일어나는 바람에 모두들 피난을 가버리고, 우리 같은 늙은이들만이 원을 지키고 있다오.

그런데 귀공은 누구시길래 이 밤중에 이곳까지 오셨습니까 ?"
항우가 대답한다.

 

"나는 초패왕이오.

싸움에 져서 몸을 피하며 오다 보니, 이곳까지 오게 되었소."
노인들은 그 말을 듣고 일제히 땅에 엎드리며 말한다.

 

"폐하이신 줄도 모르고 대죄를 지었습니다.

너그럽게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항우는 그들을 일으켜 앉히며 말한다.

 

"그대들은 속히 일어나 밥을 지어 주시오.

우리들은 지금 하루 종일 싸우기만 하였지, 밥을 먹어 보질 못하였소.

그리고 지금 밥을 지어 준다면,

고마움의 표시로 강동에 돌아가는 길로 백 섬의 쌀로써 갚아 드리겠소."
노인들 중에 유식한 노인 한 사람이 땅바닥에 엎드려 머리를 조아리며 말한다.

 

"이곳은 초나라의 경계 안에 있는 땅이옵니다.

저희들이 폐하께 진지를 지어 올렸기로, 어찌 황공하게도 보상을 바랄 수 있으오리까.

진지를 넉넉히 지어 올릴 터이니, 마음껏 드시옵소서."

 

그리고 노인들은 온갖 정성을 다해 저녁상을 차려 왔는데,

식탁에는 온갖 산채(山菜)가 골고루 갖추어져 있었다.

항우와 그 부하들은  노인들 덕택에 여러 날 만에  밥을 배불리 먹고,

그날 밤을 편히 쉴 수 있었다.
이렇게 잠자리에 들게 된 항우는  새벽녘에 있었던 사랑하는 아내,

우미인(虞美人)과의  이별시(詩)의 마지막 구절이 자꾸 되뇌어지어, 좀체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우야 우야 이를 어쩔 것이냐
虞兮 虞兮 可奈何
우혜 우혜 가내하 .....
우혜우혜 가내하 ....
 우혜우혜...
     우..
     虞.


*글 끝에 붙여 ..
소주병은 이 글을 쓰는 순간, 나도 모르게 아내와 사별한 항우의 심정이 되어,

 

글 중간과 끝에는 ..

원문(原文)에는 없는, 사랑하는 아내를 먼저 떠나 보낸 그의 슬픔을  아련하게 표현하였습니다.

보통 가장들은 자신의 아내를 "안사람" (內者)이라고 합니다.
내 안해라고도 합니다. (마이 썬 :  My Sun)
내 안海라고도 합니다. (마이  씨: My Sea)
내 안愛라고도 합니다. (마이러브: My Love)

당신의 아내는 당신에게는 어떤 사람입니까 ?
           ...
<sns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