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병매/금옥몽

월랑은 유학사의 도움으로 이사

오토산 2021. 2. 9. 14:51

금옥몽(속 금병매)<44>
월랑은 유학사의 도움으로 이사는 하였으나...

명도(名都) 회자(淮左)...
그 유명하던 죽서정(竹西亭)에서 말 고삐 잠시 멈춘 초행길의 나그네.
춘풍십리(春风十里)의 화려한 유곽 이라더니,
시퍼런 냉이풀 보리밭 뿐이더냐!

 

양자강 훔쳐 보고간 오랑캐 말발굽에,
황폐한 연못가 키 큰 나무
한맺힌 전란을 아직도 수군거린다.

황혼...
한기(寒气) 내 뿜으며

텅빈 성으로 날아오는 맑은 호각 소리.

그렇게도
이곳 사랑했던 두랑(杜郎)...
아무리 "두구사(豆蔻诃),청루몽(青楼梦)"지은 시재(诗才)라지만,
황폐한 벌판 뿐인 여기에 다시 서면 과연 표현 할 수 있을까?
아! 이 기막힌 심정을.

이십사교(二十四桥) 지금도 남아 있지만,
내 마음은 바람결에 흔들리고 차가운 달빛 말이 없다.
누구를 위해 서인지 년 강가에는 붉은 작약꽃 피네.
-남송(南宋) 강기(姜夔), 양주만(掦州慢) 중에서-

위의 시(诗)는 사성(词圣)중 하나인 남송시대 백석도인(白石道人) 강기(姜夔)가,

오랑케 금나라에 멸망 당한 황폐한 국토 정경을 애닯게 노래한 시다.
천하를 호령하는 제왕에서 부터 그저 열심히 살아가는 미천한 백성들 까지도

자신의 위상에 맞게 살아야 하나, 음란과 사치로 쾌락을 즐기다 보면은

반드시 하늘의 엄청난 재앙을 면치 못할 것이다.

 

제왕의 몸이 지만 요순(堯舜)임금 시대에는 제왕 자신들이 작은 집에 살면서

근검 절약을 실천하니 만 백성들 모두 편안한 태평성대를 누리며

국력 또한 모두 대동단결하여 단단한 국방력을 유지 하였다 한다.
북송 태평성대 시대인 인종(仁宗)은 아무리 배가 고파도 삼경(三更) 이후에는

주방에 음식을 시키지 않았다고 하니, 문무백관이 황제에게 충성하고, 태평가를 부를 수 있었다.

 

그런데 휘종대 부터 사치와 음란이 극에 달하니 충신은 어디가고

간신만 득실대며 권세를 내세워 재산 치부에만 몰두하니 나라가 안 망하고 베길수 있었을까?

옛날 하늘의 천리(天理)를 믿었던 만석꾼 대부호라 할지라도 삼베옷에 미투리를 신고

헤어진 옷을 꿰메어 입었다고 하니 후세 까지 근검절약 하며 길이 길이 가업을 어어 갔다고 한다.
그런데 작금에는 관료들은 수단과 방법을 안가리고 자기 배 채우기 바쁘고

틈만 나면 사치와 색욕 놀음에 빠져 있으니, 흥청망청 놀 수 있는 유곽과

기생들의 음주 가무 소리만 퍼져 울렸다.

 

서민이라도 재물만 조금 있다 하면 분수에 넘치는 비단 옷을 걸치고

상류사회를 흉내내니 이 어찌 나라가 온전 할 것인가?

그 중에서도 송나라 수도 개봉땅은 가히 음란과 사치가 극에 이른 이른봐 광란의 도시 같았다.
나라야 어찌되던 황제나 관료 모두 흥청망청 주색잡기와 엽기적 놀이에 취해 있었으니,

오랑케의 말 발굽에 휘황 찬란하던 도성이 지옥의 불바다로 변해 폐허가 된것은

모두 스스로가 자초한 업보의 한면 이리라!

이제부터는 뭇 중생들에게, 송나라가 멸망하는 비참한 상황과,

서문경이란 사치와 색마의 부족함 없는 생활로, 누렸던 화려함 뒤에 그가 죽고 나자,

그 가족들이 얼마나 가혹한 형벌을 대신 격는지를 기술하고져 한다.
이 모든 것은 음란과 사치 색욕의 대표 화신인 도군황제 휘종과

서문경이 뿌린 업보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황폐화된 넓은 집에서 대안이가 열심히 집을 정리 하지만

남자 혼자의 힘으론 전체 정리는 고사하고 현재 거쳐하는 반금련의 숙소 주위 관리도 빠듯했다.

 

후원에는 잡초가 자라 옛날 정원이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효가는 잡초 사이에 개미집을 보며 작대기로 개미들을 괴롭히며 놀고 있다.
소옥은 잡초 사이로 먹을 만한 풀이 있는지 이곳저곳을 뒤지는 안쓰런 모습이다.
월낭은 황폐한 집안을 돌아 볼때 마다 내가 무슨 죄를 많이 지어

이런 아품이 끝나지 않는지 공연히 눈물이 쏟아져 앞을 가린다.

 

그녀는 아무런 생각도 없이 주저 앉아 있다가 깜박 조는 사이 악몽속을 헤메이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신랑이 비취헌(琵翠轩)쪽에서 조잘데는 금련과 춘매와 함께 걸어 오는 것 같았다.
월랑은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바라본다,

 

그러나 황랑한 잡초만 무성하다.
환몽에서 깨어 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봄이면 짙은 향기를 풍기며 만개하던 모란 꽃들은 모두 말라 죽고,

불에 타서 목단정(牧丹亭)주위를 알아 볼수가 없다.

 

여름이면 집안 사람들이 시원한 포도 나무 그늘로 몰려와 땀을 닦으며

세콤한 포도 한알을 입에 넣고 휴식을 취하던 가림막도 모두 쓸어져 보기 흉하나,

뿌리는 말라 죽지 않았는지 제법 푸른 잎으로 넝쿨져 있다.
연못가 옆에 있던 정자는 앙상한 몰골만 남아 있고 지붕의 기왓장들은 깨어져 너부러져 있다.
잡초는 무성히 자라나 창문틀 높이 까지 자라나 있다.

"월랑은 한숨을 쉬며,

이제 어떡해야하나, 어떻게 살아 가야 하지, 무엇을 해서 먹고 사나?"

장이감(张二监) 말대로 집을 수리하여 가게를 열자니 수중에는 돈이 한푼도 없고,

그렇다고 어디서 빌려 보려 해도 월랑같은 과부만 보고 빌러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누명을 뒤집어 쓰고 모진 고생을 다하며 요행 끝에 석방은 되었으나

남은 돈이라곤 한두달 입에 풀칠 할 푼돈 몇 푼만 남아 있었다.

그렇다고 이 황폐한 흉가를 사겠다고 나서는 사람도 없고,

어쩌다 물어 오는 이가 있어도 궁핍한 과부에게서 헐값에 거져 가질까 하는 놈들 뿐이 었다.
월랑 자신도 저녁만 되면 귀신이 쫒아 들어올 것 같은 이곳에서 도저히 살아 나갈 자신이 없었다.

 

생각하면 할 수록 머리는 더 무겁고 막막하기만 하다.
또 서러움에 눈물이 쭈르르 흘러내린다.
눈물 샘이 터진 것인지 무슨 생각만 하면 눈물이 앞선다.

"아이구,

마님 여기 계셨군요?"

월랑이 집에 오고 이틀 만에 다시 돌아온 풍씨 할멈의 목소리였다.
월랑은 얼른 소매 끝으로 눈물을 훔쳐 내었다.

"아이구 마님!

또 울고 계셨구려, 쯧쯧."
풍할매도 같이 눈시울을 붉힌다.

"그나저나,

이난리 통에 사방에서 귀신들이 튀어 나올것 같은 이런 폐가에서

모자 단둘이 어떻게 산다우, 집이 좁기나 한가?
차라리 아담하고 작은 집으로 옮기면 어떻습니까?
관리도 쉬워 힘도 덜 부치고,, 그럴텐데."

"아휴, 그런 마음에 드는 집이 어디 있겠는가?
이 집이 팔리지 않으니 집값 치룰 돈도 없구..."

월랑이 관심을 보이자,
사실은 말이유

"마님 옥살이 할 때 상소를 올려 도움을 주셨던 그 유생 의 빈 집이 있는데

한 번 가 보시고 결정 하시지요?" 한다.

유생이라면 유체인을 말하는데,

월랑도 석방되고 나서야 과거 남편이 그를 도와준 보은(报恩) 덕택에

그가 주동이 되어 소청서를 올리고 항의하고 했다는 것을 알고는

마음 속으로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은인의 조그마한 집이 있다니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했을까!" 하며

풍 노파에 묻는다?

"그 생원 말씀이 넓고 황폐한 본가 보다는 자신의 조그마한 초가가 한채 비워 있는데

좀 좁아 불편은 하겠지만 그곳에 와 사셔도 좋다고 하셨어요.

그러면서 마님께 여쭈어 보라고 해서요?"
전에 성찰관(省察官) 유(俞)씨 어르신이 살던 집이라고 하는 구만요?

"그럼 월세도 꽤 주어야 할텐데?"

"아이구, 별 걱정 다 하시네요,

유생원이 자기가 미리 제안 했는데 마님 형편을 다 아는데 비싸게 받겠어요,

저보고 그냥 와서 사시라 하면 마님이 불편해 하실까봐 월 한냥만 달라는 구만요.
아무리 집이 작아도 한 냥이면 거져네,

바로 대안이를 불러서 그 집을 가 보고 마음에 들면

유학사 어른을 찾아가 계약서를 쓰고 오라고 말한다.

대안이에게 없는 돈이지만 열량을 꺼내 준다.
집은 방이 세개에 뜨락에는 우물도 있고 아주 단촐하지만 깨끗했다.
마음에 든 대안은 유학사를 찾아가 계약을 하고 돌아 왔다.
대안은 싱글벙글 거리며 돌아와서는,

"마님,

집이 아주 깨끗하고 잘 정돈되어 있어 살기에 불편 함이 없을 듯 하여 계약을 하고 돌아 왔습니다.

하며 유학사 나리께서 열냥의 보증금을 안받겠다고 하다가,

그러면 마님이 체면을 봐서 닷냥만 받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유학사 부인께서 싸주었다며,

아직도 따끈따끈한 밥과, 반찬들, 심지어 술까지 싼 보따리를 내어 놓았다.
월랑은 순간 콧등이 시큰 해졌다.

 

아직도 세상에 모든 사람들이 다 야박하고 모진 인심만 가지고 있지 않구나 하고 생가되어,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살아서 효가가 장성하면 다시 서문가를 일으켜야 되겠다고 마음 먹었다.

길일로 택한 시월 십삼 일, 이삿날이 밝았다.
월랑은 어쨌든 황폐화된 집이지만 정든곳을 떠나려니 마음이 착찹했다.
언젠가는 다시 와야지 하며 마음을 다 잡는다.

 

별로 이사 할 물건도 많지 않지만 낡았으나 필요한 것만 챙겼는 데도 꽤 짐이 되었다.
소 달구지 하나를 빌러 침대 네개 붉은 옷칠 된 탁자, 걸상 두 개, 옷 궤짝 하나, 이불,

자질 구레한 주방기구 등은 달구지에 싣고 사람들은 걸어 가야만 했다.

 

효가는 소옥이가 업고,

몇 안되는 식구들이 지만 걸어서 꽤 먼곳에 이사 할 집이 있어 새집에 도착 하니 한 밤 중이 되었다.
월랑은 등불을 들고 집을 돌아보니 또렷하게 보이지 않지만 깨끗하고 아담해 그런데로 마음이 흡족했다.

 

모두 허기진 몸이라 기진맥진 해 있지만,

소옥은 식구들을 위해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저녁을 할 준비를 마쳤을 때였다.
유학사 하녀가 따끈한 쌀밥과 반찬, 돼지고기 두근, 암닭 두마리,

쌀과 밀가루 한두 되빡이나 보내왔다.
모두 감격의 눈물을 글썽였다.

이사 오고 또 한해를 버텼다.
월랑은 소옥과 대안을 부부로 짝지어 주었다.
다섯 식구를 대안이가 거의 책임을 지고 있는거나 마찬 가지였다.
산에가서 나무를 해서는 성내에 가서 팔거나 먹을 것을 바꾸어 오기도 하였다.

 

대안이는 겨울이 오자 날이 추워져,

없는 죄를 밝히라면서 주리를 틀었던 다리가 다시 부어 올라 상처가 도지자 일은 고사하고,

꼼짝 못하고 드러누워서 지내야만 했다.

 

쌀독은 바닥이 나고,

땔깜도 떨어져 밤새 내려 쌓인 눈 때문에 잔 나무 가지도 주으려 산에 갈 수 없었다.
월랑과 소옥은 한척이 넘게 쌓인 눈을 치우며 옆집 욱씨(郁氏)네 집에 가서

땔깜이라도 얻어 봐야 되겠네 하며, 욱씨집과 길을 트는데

함께 눈을 치우던 욱씨 마누라와 마주쳤다.

"자네 땔깜 좀 여유 있으면 빌러 주시게

날이 좋아지면 갚겠네..." 하자.

욱씨네가
"아이구,

나도 얼마 안남아 쪼메 빌러 볼까 했는데 하며 에이 텃뿌렸네" 한다.

하기야 이런 난세에 어느 집인들 풍족한 생활을 할 수 있으랴?
방안으로 들어가니, 효가가 불꺼진 화로가에서 추위에 떨며 울고 있었다.
월낭은 입고 있던 낡은 솜옷을 벗어 소옥에게,

이거라도 전당포에 마끼고 쌀과 땔깜을 사오라고 하자,

"아니,

그럼 마님은 추워서 어떡해요 하며 거절 한다."

그럼 앉아 굶어 죽을순 없지 않느냐, 우선 해결해 놓고 보자하니,

아무 말 없이 옷을 받아서는 성내로 들어간다.
한시진이 지나서야 힘없는 모습으로 불만인 얼굴을 해가지고는

손에 든 것을 내려 놓는데 겨우 쌀 반 되빡과, 목탄 다섯 묶음,

그리고 마른 빵 네조각이 전부였다.
그러면서 한 냥도 쳐 주지 않지 뭐예요! 하며 불만이다.
월랑은 기가 막혔지만 소옥을 위로 하며,

"수고 했구나

, 이거라도 얻었으니 오늘은 무사히 넘길 수 있잔니,

내일은 내일 생각해 보자꾸나 또 해결 방법이 있겠지!"

하면서 또 눈물이 핑그르 돌아 얼른 돌아서서 목탄을 하로에 올리고 불을 붙인다.
철없는 효가는 금방 생글거리며 막 불이 붙는 하로로

쪼로르가서 앉자마자 마른 빵을 구워 달라고 졸라된다.

 

<sns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