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옥몽(속 금병매) <54>
급고사의 노승은 채태사의 버린 국록을 모아 중생을 위한 공양간을 열고...
스산히 계곡에 흩날리는 낙엽,
혹은 짙은 안개속에 사라지고.
혹은 깊은 수렁 속에 떨어진다.
노비 위청(卫青)은 충성으로 주인을 섬겼으나,
장군 이광(李广)의 전공에도 인정을 못 받도다.
절대 절명 위기마다 기연(奇缘)이 찾아드니,
하늘 이치 무지 인간 어찌 다 헤아리랴.
태평성대 송나라가 절제와 절약을 실천 하지 못하고,
지도부 부터 방종과 사치에 몰두하더니 나라가 온전히 유지 되지 않는 다는 것은
역사 속에서도 얼마든지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러니 끔찍한 업보를 맞이한 것은 당연한 섭리리라.
'수호지'에도 등장하는 간신의 대명사,
채태사 채경과 그의 집사였던 적운봉(翟云峰)이 얼마나 사치와 낭비를 일삼았는지도
잠시 잠시 살펴보고 우리가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황제이기를 포기한 도군 황제, 천하 간신 채경 부자를 손바닥 위의 진주같이
아끼고 믿음을 주니, 채태사의 행태도 기고 만장이었다.
모든 뇌물은 채태사 부자가 알맹이는 먼저 챙긴 뒤에
떡고물만 위와 아래로 밀어 주었으니 부자인 채부자의 욕심이야 천하가 다 아는 일이었다.
한번 그들의 행태를 몇 가지만 살펴보자.
설탕으로 솥을 씻고, 밀납으로 불을때고, 아기 먹일 젖으로 고기를 삶고,
큰 암소 한 마리를 잡아서는 심장이나 갈비등 맛있는 부위 일부만 먹고
나머지는 거름더미에 파묻어 버렸다.한 끼 밥에 금전 은전 안 아끼며 쓰면서도,
젖가락 갈 맛갈스런 반찬 없다 투정을 부렸다니,
배곯는 백성들이나, 동문 밖 거지들이 들었다면 어떤 생각을 했을까?
주인이 이러하니 하인놈들도 주인을 따라하는데 채경의 집사 적운봉은 끼니 마다,
토실토실 살찐 어린 양의 귓때기 스무개를 모아 갖은 양념 다해서
백양확탕이란 희환한 음식을 만들어 먹는데,
국 한그릇을 만들기 위하여 어린양 열마리 씩을 잡아야 되니 웃어야 할 일인가?
울어야 할 일인가?.
귓때기외 고기는 전부 거름으로 버려 버린다니 나라에는 백성이 있어야
나라가 유지 되는데 애시당초 백성이란 안중에도 없으니 나라의 앞날은 불보듯 뻔한 일이었다.
고대 광실 같은 채태사의 집 근처에는 급고사(给孤寺)라는 절이 있었다.
절에는 법명도 알 수 없는 괴짜 노승이 살고 있었다.
노승은 법회를 여는 일도 없고 독경 소리도 들은적도 없으며 심지어 보시도 받지 않았다.
그렇다고 불당에 부처님을 모셔 놓지 않은것은 아니다었다.
어는 절의 법당과도 다르지 않았다.
하는 일이라곤 땅을 일구어 농사를 지어 수확한 곡식들은
배고픈 중생들에게 음식을 만들어 함께 나누어 먹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던 어느날 부터는 농사는 여벌로 하면서 노승은 끼니 때가 되면은
커다란 대나무 통발을 여러개 들고, 어딘가를 갔다 왔다.
돌아 올 때는 통발 가득히 물에 젖은 쌀알을 가져 오는 것이었다.
쌀알을 가져 와서는 우물물에 다시 깨끗이 씻어서 대전 앞 마당에 멍석을 깔고는
쌀알을 말리는 일을 매일 되풀이 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하루는 탁발을 나가는데 채태사의 집을 지나 는데
하수구에서 뿌우연 쌀뜨물 갔은 것이 쏟아져 나와 가만히 보고 있던 스님은
멀쩡한 쌀 알갱이가 수도 없이 흘러 나오는 것이었다.
아까운 마음에 건져 오기 시작한 것이 노스님의 일상으로 바낀 것이다.
쌀알은 이외로 많았다.
고대 광실을 관리 하려면 채태사 식솔들이 수천명은 되겠지만
도대체 밥을 짖는 건지 그냥 버리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많은 양이 흘러 나오는데 뿌연 쌀뜨물이라 잘 보이지 않을 뿐이 었다.
어떤 날은 한끼에 쌀 한 가마니 분량이 건져 지기도 했다.
노스님은 정성을 다하여 깨끗이 씻은 후 말려서는, 가마니에 담았다.
그
리고는 '채태사가 남긴쌀'이라고 쓴 표식을 붙여 절 창고에 차곡차곡 쌓아 놓았다.
일년이 지나자 일천가마니 정도나 모아졌다.
하수구에서는 쌀알 말고도 음식 재료로 쓰고 남은 멀쩡한 것들도 많았다.
아마 맛있는 부위를 잘라내고 버리는 것 같았다.
죽순, 버섯종류, 각종 채소류, 생선 토마, 심지어 제비집 같은 귀한 것도 가끔씩 흘려 나왔다.
노스님은 쌀과 마찬 가지로 정성을 다하여 깨끗이 씻은 후 말려 창고 한편에 보관 해 놓는다.
노스님은 먹다 남은 밥도 바구니에 담긴 채로 흘러 내려올때가 있어
가지고 와서는 깨끗이 손을 보아 배고픈 사람들과 나누어 먹었다.
금나라 오랑캐가 쳐들어와서 정국 수습이 어렵게 되자 충신들의 상소로
사치와 낭비를 일 삼던 채경 부자는 탄핵되어 유배를 가는 도중 백성들에 맞아 죽었다는둥,
돌림병에 걸려 유배지 까지도 가지 못하고 객사하였다는 둥,
하늘의 징벌인지 비참한 최후를 맞은 것은 분명 하였다.
채경의 가솔들은 전재산을 나라에 몰수 당하고,
궁중에서 운영하는 양제원(养济院)에서 나누어 주는 배급의 양식으로 근근히 연명하였으나,
휘종.흠정 두 부자 황제가 금나라에 인질로 잡혀가 버리자
국정이 사실상 마비되어 그것 마져도 끊기고 말았다.
채노부인은 졸지에 구걸하는 거렁뱅이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렇게 많던 하인들도 뿔뿔이 떠나 버리고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는
매일 같이 노구를 지팡이에 의지하고는 집집마다 기웃거렸다.
겨우 대나무 바구니에 음식을 얻어 하루 하루를 연명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사정을 아는 사람들이 딱하고 가련한 생각에 도와 주기도 하였지만
날이 갈수록 문전 박대 당하는 신세가 되었다.
권문세가에 개가 죽으면 문상객이 줄을 잇고, 정승이 죽으면 찾아 오는 이가 없다더니,
권세 떨어 지니 문전 박대를 당하는 것은 당연하였으나,
평소에 보시하고 못된 짖만 하지 않았어도 거지살이는 힘들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세상사의 한 단면인 인과응보의 관계일 것이다.
채노부인은 그날도 구걸을 하며 이집 저집으로 문밖을 서성이는데
대문도 열어 주지 않으니 너무 서글퍼 져서 눈물이 앞을 가렸다.
그래서 채부인은 이제는 옛날 살던 내 집이나 먼 발치에서라도 한번 보고
목숨을 끊을 요랑으로 옛 집을 찾아 가는 길이었다.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지팡이에 몸을 의지해 있는 힘을 다해
걸어 가고 있는데 왠 거지떼들이 긴 줄을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채노부인이 고개를 들고 줄서있는 앞머리를 보니, 아담한 절이 보였다.
그래서 뒤에 서있는 사람에게 연유를 물어보니 그가 말했다.
"나두 처음이라, 잘 몰라유
그런데 여기서 먹을것을 나누어 준다는 구먼요?"
채노부인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염치 불구하고 줄을 섰다.
채노부인 차례가 되자 앞에서 죽을 나누어 주는 노스님에게
합장을 하며 공손하게 말하였다.
"죄송 합니다,
여기서 먹을것을 준다길래..."
노스님이 여인을 바라보니 처음 대하는 얼굴이었다.
몰골은 분명 거지이나 말의 무게나 뗏국 속 얼굴이지만
범접할 수 없는 얼굴이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시주께서는처음 보는 얼굴인데 어디서 오셨나요?
"여기서 가까운데 살았던 사람입니다."
" 그런데 한번도 뵙지 못했는데.
무얼 하던 분이 신가요?"
"휴우, 허!
자식을 잘못키워 나라를 이지경으로 만들어 놓았는데
참 부끄럽습니다."
"그러면 혹 채태사네 노마님 되시나요?"
"맞아요,
채경이 바로 내 자식이라오,
내가 잘못 가르켜 천하 만백성에 죄를 지었습니다."
노스님은 천하를 호령하던 채경의 어미가 상거지 꼬라지니
말 문이 막혀서 한숨을 크게 쉬고는, 승방으로 모셨다.
그리고는 따끈한 차 한잔을 대접하고는 밥상을 차려 내 왔다.
음식이 변변치 못합니다만 좀 들어 보세요 하면서, 죽 한대접과 무우 절임 반찬을 내어 놓았다.
노부인은 쑥스러워 하면서도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남김없이 다 비워 버렸다.
식사를 마친 노부인이 감사 하다며 합장을 하며 일어 날 때였다.
노스님이 항급히 다가와서는 합장을 하면서,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소승이 시주님께 꼭 보여 드릴께 있습니다." 하고는
법당 옆 창고로 데리고 갔다.
아무런 영문도 모른채 노스님을 따라간 노부인은
창고에 가득 쌓인 수만 가마니의 쌀을 보는데
가마니마다 붙어 있는 '채부여량(蔡府余粮)' 이란 쪽지를 보는 순간 깜짝 놀라는 것이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네, 바로 시주댁의 쌀과 채소 입니다.
다만 매끼 쌀을 씻을때 하수도로 흘러내려 가는것을 소승이 건져 말리어 보관 하고 있는것 뿐입니다.
모두 쌀 팔십 삼만 오천 가마, 말린 채소 쉰다섯 광주리랍니다."
노스님의 이야기를 듣고는 노부인은 어찌할 봐를 모르며
눈물을 글썽글썽하며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나무아미타불, 모두가 제 탓입니다.
에미가 되어 자식을 잘못 가르친 죄로,
하늘 무서운 줄도 모르고 이 많은 쌀과 음식을 버렸으니 어찌 업보를 받지 않겠습니까?"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
하고는 끝네 눈물을 펑펑 쏟았다.
노스님은 옆에서 눈을 지긋이 감고서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만 암송한다.
노스님은 노부인이 울음을 멈추자 말을 이어갔다.
" 이 절 뒷편에,
병들고 배고픈 중생들을 위해 접대 하던 연수당(延寿堂) 이란 요사채가 한동 있는데,
전란으로 인하여 현재는 비워있어,
마침 시주께서 마땅히 가실 곳도 없을 듯 한데 그곳에 머무시면 어떠실런지요?"
노부인은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너무 좋은듯 어린아이 같이 어쩌할 줄을 몰라한다.
노스님은 또다시 쌓여있는 쌀가마를 가르키며,
"이 쌀은 원래채태사 께서 국록(国禄)으로 받은 것이니 마땅히 시주께 돌려 드리는 것이 도리이나,
시주 께서는 혼자 일년에 다섯 가마니만 하여도 먹고 생활 하는데는 부족함이 없을듯하니
열 가마 외에는 불쌍한 중생들을 위하여 보시하시는 것이 어떨런지요?" 하고 말하자,
노부인은 저야 스님에게 감사할 따름이지 어떻게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스님 좋으실 데로 하세요 하고 승락 아닌 승락을 하고 말았다.
그러면서 노스님 때문에 내 아들이 지은 죄도 일부분 백성들에게 갚을 수 있게 되어 그저 감사 할 따름입니다.
매일 밤 꿈속에서 아들은 저승에도 못가고 구천에서 맴돌았는데
이제는 마음 편히 저승으로 갈 것 같습니다 하며 한번 더 눈물을 펑펑 쏟았다.
그 뒷날 노스님은 연수당을 깨끗이 치우고 노부인이 기거 할 수 있게 하였다.
때마침 구걸 하려온 젊은 과부가 있어 그녀를 노부인과 함께 살도록 하자,
혼자 외롭고 적적하던 차에 모녀 같이 서로 만족해 하였다.
그러면서 절간의 살림을 도와 달라고 하자 너무 좋아 하였다.
언제 부터인가 급고사(给孤寺) 절문 앞에는
배고푼 중생들에게 쌀밥을 나누어 준다는 '시미패(施米牌)'가 걸렸다.
처음에는 한가마니 정도의 밥을 해서 불공을 드리기 위해 찾아오는 불자나
공양을 위해 오는 거지들에게 나누어 주었으나,
점차 입소문을 타고 찾아오는 사람들로,
어떤 날은 십여 가마 이상의 밥을 짖기도 했다.
절 앞 마당에는 천막도 쳐 지고 폐가에서 가져온
길다란 의자와 탁자도 갖추고 나니 공양간으론 손색이 없었다.
노부인과 과부의 일 손으론 감당 하기가 어려워지자 구걸 하려온 자 중에서
오갈데 없는 노파나 과부들이 자진 해서 일 손을 도와 연수당 식구가 되니,
절간도 좋고 그들은 배고품과 잠자리가 해결되어, 모두에게 누이좋고 매부 좋은 격이 되었다.
급고사의 선행 소식이 온 사방으로 퍼저 나가자 이웃에서도 도움의 손길로
곡식이나 채소류, 약념감, 땔감등의 물품들을 보시 해 와서
급고사의 공양간 규모는 절의 규모에 비해 꽤나 비대해 졌다.
공양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면 전국에서 모여든 천여명이 한번에 공양을 하였으며
모두 질서를 잘지켜 소란한번 일어 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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