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병매/금옥몽

효가와 대안을 찾아 개봉으로 향하는데

오토산 2021. 2. 24. 19:55

금옥몽(속 금병매) <58>
월랑과 소옥은 묘취 스님의 도움으로 효가와 대안을 찾아 개봉으로 향하는데...

월랑이 예불을 마치고 나니,

묘취가 말했던 노파가 지팡이에 의지해 승방에서 나왔다.
월랑은 노파에게 인사를 드리고,

효가와 대안의 소식을 전해 들은 것이 있나 하고 물어 보았다.
팔순이 지난듯 한 노파는 가는 귀가 먹었는지,

몇 번이나 큰소리로 말해 주어야 했다.

"으응? 머라구?
내가 귀가 먹어서 그러니 크게 말하라구,

아 그려 이제 듣겨. 말해 보라구?"

"최근에 나이 삼십쯤 되는 다리를 저는 장정하고

일곱살쯤 되는 사람이 여기 들렸었나구요?"

"응 그래,

오기는 비슷한 사람이 오긴 왔었는데,
그게 언제 였드라?
아 맞다 묘취가 쌀 탁발해 온다며 갔을 때이니 어저께 저녁때이구만.
아! 느닷없어 다리저는 놈팽이가 나타나서 이것 저것 묻길래 모른다고 하니까,

그냥 갔어."

월랑은 대안이 확실 하다고 믿고 다시 한번 확인 하기 위해 노파에게 이것저것 다시 물어보자,

노파는 자신이 무슨 잘못을 해서 따지는 줄 알고는 급하게 변명을 한다.

"아니, 나는 잘못한게 없다고,

모르니까 모른다고 한 것 뿐이라고, 왜들 나한테 그려?"

"아니 할머니,

일곱 살쯤 되는 남자 아이는 없이 장정 혼자 였나요?"

"아니, 아무리 내가 나이가 먹어도 사십이 안된 장정 하나야 모르겠어,

혼자였어.
내가 노망 든 걸로 아는 모양인데,

늙은이 한테 그러면 못써, 무슨 동문경인지, 서문경인지 하는 집에 살았다고 하던 것도 기억해!"

월랑은 대안이 찾아왔던 것이 확실해 지자,

효가는 어찌하고 혼자 왔을까 하는 불안감에 또다시 눈물이 볼을타고 주르르 흘러 내렸다.

"할머니,

그 사람 혹시 어디로 간다는 말은 없었나요?"
소옥은 신랑이 일단 살아 있단 소식이니 기쁜 나머지 노파에게 얼른 물어 보았다.

"아, 어디로 가는지는 내가 모르지 어떻게 아나,

그런데 날이 어두우니 자고 가라 그러니 바뿌다며,

아! 동쪽에 있는 개봉인지 소봉인지 하는 절로 간다하면서 황급히 떠났어

그 이상은 나도 몰라 내가 점쟁이가 아니라구."

할머니의 말은 다 맞는 말이었다.
월랑과 소옥을 찾기 위해 꿈속에서 서문경이가 이야기해준

개봉의 급고사를 가는 도중에 준제암의 설고자 스님을 만나면 혹시 소식을 알까 하고 들렸더니,

암자는 황폐화 되어 있고 귀머거리 노파만 있으니 하루밤 묵어봐야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되어 바로 급고사를 향해 출발 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꿈에 영험(灵验)을 굳게 믿고 급고사를 찾아 가는 대안은

월랑 일행이 준제암에 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 턱이 없었다.
더구나 묘취 스님만 탁발을 나가지 않았다면

아마 그간의 서로의 사정을 이야기 하며 하루는 묵어 갔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의 이치와 운명이란 알수 없는 기구한 것이었다.

월랑은 개봉으로 급히 떠난걸 보면 효가를 잃어버리고

무슨 소식을 들어서 개봉으로 간 것이 틀림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아무 연고도 없는 개봉으로 느닷없이 갈 일이 없었다.

" 엊 저녁 일이라면 지금이라도 늦지 안을것 갔아요,

그 사람이 다리가 불편하니까 저희가 부지런히 쫓아가면

임청현 하구(河口) 부둣가에서 따라 잡을 수도 있을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마님!" 하고 소옥이 말하자.

월랑은 한시가 급하다는 생각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지금 바로 출발하자고 한다.
묘취가 부억에서 저녁상을 차리다가 월랑의 출발 하자는 소리를 듣고는 들어와서 말한다.

"보살님!
지금이 어느때인데 그러세요,

한시진만 지나면 캄캄해 질텐데 길도 잘 모르느 여인네 들이 야밤에 어떻게 할려구요,

오늘 밤은 여기서 주무시고 내일 아침 일찍 떠나시는게 낫지요
그렇게 하세요." 한다.

월랑이 바깥을 내다보니 아닌게 아니라 벌써 바깥은 땅거미가 내려 앉기 시작하였다.
지난번 오랑캐에 쫒겨 야밤에 사경을 헤메던 생각이 나자 그자리에 풀석 주져 앉고 말았다.

묘취 스님이 저녁상을 차려 왔다,

식사는 희멀건 풀죽에 무우절임 뿐이지만 모두 아침 식사후 처음 대하는 곡기라 맛있게 먹었다.

다만 월랑만 먹는둥 마는둥 했다.
추국은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 다,

함께 자고 내일 떠나라고 하자,

남편에게 오늘 돌아 간다고 하였다며 아마 마중을 오고 있을 거라고 했다.

그날 저녁 월랑과 소옥, 그리고 묘취 스님까지 내일 부터 먼길을 떠날 이야기를 상의 한다.
월랑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효가가 개봉까지 먼길을 가서 대안이가 그를 찾아 갔을까?
오랑캐 한테 잡혀 갔을까? 마음이 심란한게 안절부절 하며 어쩔줄을 몰라하자.
소옥이가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생각을 이야기 한다.

"이 전란 속 세상에 남정네 없이

여자들만 몇 백리가 넘는 개봉까지 간다는 것은 너무 위험해요.
또한 갔다구 해도 어디가서 대안이나 효가를 찾을거유,

이건 사막에서 잃어버린 바늘을 찾는 격이예요,

더군더나 길도 잘 모르고 지난번 같이 길을 잃어버린다면 어떡해요?

차라리 빨리 임청현 하구로 앞질러가 그이를 만난 다음,

도련님을 함께 찾아 나셔요, 그개 좋을 것 같아요."

자기 신랑을 먼저 찾자고 말을 하자니 쑥스러웠던지 얼굴이 빨갔게 물들었다.
월랑은 소옥의 말이 옳은지라 그렇게 하자고 고개를 끄덕인다.

"만약 효가 도련님을 찾아 개봉으로 가 보실 마음이 있으시다면

저도 동행을 하면 안될까요?
저도 어차피 묘풍 스님을 찾아 그쪽으로 가야 하니까." 하며

묘취 스님이 끼여 들었다.

"좋아요,

묘취 스님도 함께 해주시면 우리는 힘이 되지요,

내일 새벽 일찍 임청 하구로 가서 대안을 찾아보죠,

그리고 거기서 대안을 찾지 못한다면 개봉으로 쫒아가 보기로 해요,

그런데 문제는 노잣돈이 없으니 가는 도중 식사와 잠을 어디서 해결해야 될지 걱정이네요?"

소옥이 허리춤에서 은비녀 세개를 꺼내 보이며 몇 일은 해결 되겠지요 하자,

월랑이 그걸 믿고 수십날이 걸리는 길을 떠났다가는 굶어 죽고 말 거예요.
그러자 묘취 스님이 말한다.

"보살님들 별 걱정을 다 하시네요.
개봉가는 길에 비구니 암자가 한 두개뿐이 겠어요?
아녀자 들이 주막집에서 묵는것 보다,

암자를 찾아 숙식을 해결한다면 노잣돈도 안들고 잠자리도 안전 할 거구요 "

 

그리고 바랑에서 목탁을 꺼내서 한두번 두두리며

"도중에 식사는 이걸루 해결 하면 되구유,

이거들고 대문 앞에서 두두리며 독경을 하면은 탁발을 안해줄 수 있겠어요?"

아마 배를 고는 일은 없을 겁니다.
모두들 한바탄 웃음을 터뜨렸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웃음 소리였다.

월랑은 밤새 이런 저런 걱정으로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세웠다.
먼동이 터 오자, 바깥으로 나와 시냇물에 정성스럽게 세수를 하고 머리를 빗은 후,

지장보살님께 간절히 기도를 올린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부처님 저희 모자 다시 만날 수 있게 도와주세요,
저의 간절한 소원을 이루어 지게 해 주세요."

묘취스님도 예불을 간단히 마친 후 아침 상을 차려 왔다.
식사를 마친 후 월랑과 소옥이도 머리는 빡뻑 밀 수 없으나 수건으로 머리를 동여 메고,

비구니 스님으로 옷을 갈아 입었다.
생필품은 바랑에 넣고 염주 까지 꿰어 목에 걸고, 가사 까지 걸치니 영락없는 대처승의 모습이었다.
묘취 스님은 흰색 가사를 벗어 놓고 시주 하기에 편안한 남루한 가사로 바꿔 걸쳤다.
소옥은 설고자가 짚고 다니던 선장(禅杖)까지 들었다.

 

세 비구니 스님은 지장 보살에게 먼 길을 무사히 다녀 오고

모자와 지어비를 만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한 후 길을 떠났다.
묘취 스님은 승방에 들어가 할머니에게 암자를 잘 지켜 달라고 부탁하고는

목탁 두개를 더 챙겨서 나왔다.
전란 전에는 원소절이나 청명절에 불공을 드리는 일 외에는

오월랑은 깊은 규중을 한 번도 떠난 적이 없었으나,

전란 후에는 모진 고생 다 겪으며, 이젠 모자까지 생이별 하고

기약도 없이 찾아 다시 먼 길을 떠나는 앞길은 어떤 시련이 기다리고 있을까?

근심것정 모르는 규중의 양처,
매년봄 누각 올라 햇볕 즐기네.
아침마다 연지 곤지 집어주는 낭군에게 눈 웃음 주고,

저녁이면 쪽머리 올려주는 하녀들을 닥달한다.
어지럽게 흩날리는 만추의 낙엽,
맴도는 소용돌이 물 속에 빨려드네.
끝없는 허허 벌판 눈물 흘러 강이되고,
황량한 언덕 지친다리 지팡이 친구되네.

월랑 일행은 쉬지도 않고 줄다름 치다싶이하여 이틀 만에 임청현 하구에 도착하였다.
하구는 배를 타려는 수많은 인파로 북적였다.
묘취는 하구 언덕에 암자가 보여 그곳에 가서

잠시 휴식과 공양을 하기로 하고 암자를 찿아갔다.

"아니, 이게 누구야?
묘취 스님 아니세요?"
중년의 비구니 스님이 묘취를 알아보고 반갑게 맞아준다.
스님은 우선 차나 한잔 하시라며 따뜻한 차를 따라준다.
월랑은 급한 마음에 차 마실 생각은 하지않고 물어본다.

"혹사 일곱살쯤 되는 길잃은 아이를 못 보셨나요?
남색 솜옷에 청색 바지를 입었는데."

"아아, 애를 잃어버리신게로군요,

이 난리통에 부모잃은 애들이 임청땅에 지천으로 깔렸다우,

어떻게 분간을 한답니까?"

"그럼 혹시 서른살 정도 된 남정네가 방금 말한 그런 아이를 찾는것은 못 보셨나요?
청색 솜 옷을 입고 다리를 절룩거리는 데." 하고 소옥이 끼어 들었다.

하루에도 수천 수만 명이 나다니는데,

암자에만 쳐 박혀있는 비구니가 어떻게 알겠어요,

자꾸 말을 시키자 귀찮아진 비구니는

"아, 그런 사람 본 것 같아요,

개봉가는 배편을 물었어요?"

옆에서 듣고 있던 월랑은 준제암 노파의 말과 일치하는것으로 봐서

대안이가 개봉으로 간것은 확실한 것 같았다.
걸어 가다가는 어느 천년에 갈지 몰라 암자에서 묵으며, 개봉 가는 배편을 알아 보기로 했다.
월랑은 배삯이 없어 걱정을 하자, 묘취가 의견을 내놓았다.

"일단 부딪쳐 보아야죠,

제가 배편을 알아 보겠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 때마침 개봉으로 가는 배를 탈 수 있었다.
배안은 밥도 해먹고, 용변도 볼 수 있어 몇날을 가더라도 큰 문제는 없었다.
순박하게 생긴 뱃사공 부부는 오십대 쯤 되어 보였으며,

삼십년을 다녀 개봉까지의 항로를 손바닥 보듯이 훤하다며 걱정은 안해도 된다는 말까지 했다.
묘취가 배삯과, 식대는 도착하면 준다하니 선 뜻 그러라고 했다.
아마 스님들이 거짓말을 할까 하고 생각한 것 같았다.
어찌되었든 월랑은 묘취 스님 덕분에 편안한 여행을 하게 되었다.

한편, 토적 두령질을 하며 왕 같이 살아 보겠다며 세력을 넓혀가며 노략질을 하던 까불이 한이는

금나라 군대에 눈에 가시가 되었다,

선수를 토적에게 뺏긴 금나라 장수 알리부는 군대에게 토적 소탕령을 내렸다.
토적의 본부를 급습당한 한이와 졸개들은 일망 타진되어 형장으로 끌려 갔다.

 

그런데 알리부의 애첩이 되어있던 애랑(애저의 개명)이 잡혀온 토적 중에서

까불이 한이 삼촌을 발견 하고는 알리부에 사정을 하여,

오랑캐 병사로 충원 되었을 뿐만 아니라 천총(千总) 벼슬까지 하사 받아

귀순한 토적들을 지휘하는 장령(将领)이 되어,

올술 왕자를 만나로 개봉으로 가는 알리부를 호위하여 배를 함께타고 개봉으로 가게 되었다.

 

애랑은 오랑캐가 동경에 쳐 들어와 책겸의 씨받이 부인으로

열다섯에 시집을 가 있다가 아이도 가져 보지 못하고 전란이 일어 우연히 알리부의 애첩이 된 것이었다.
토적 중에 한이 삼촌을 발견 하고는 처음에는 엄마와 불륜 관계 때문에

모른척 할까 하는 생각도 있었으나 아버지도 죽고 없는 지금에는

그래도 같은 피가 흐르는 삼촌을 구해야 되겠다고 생각 했던 것이다.

개봉으로 가는 알리부 배는 두 척으로 알리부가 타고 있는 관선(官船)과

다른 한 척은 청하현에서 붙잡아 첩을 삼은 여인들을 태운 배였다.
그런데 참 공교롭게도 한도국의 처 왕육아도 알리부의 첩이 되어 있는데

애랑과 왕육아가 모녀 지간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으며 여인들 중에서 특히 두 모녀를 총애 했다.

 

애랑은 썩잘 생긴 얼굴은 아니나 애교가 철철넘쳐 알리부는몸이 야들야들 하고

가루지기 옥문을 하고 있는 애랑이 밤일을 할때는 육봉에 쫄깃쫄깃한 맛이 느껴져서

밤새 사랑을 하고 나면은 코피를 쏟기도 했다.
그래서 애랑에게는 소부인이라는 칭호를 내리고

값비싼 비취목걸이, 금비녀, 옥비녀, 고급 비단옷으로 치장을 시킬 정도로 총애 했다.

왕육아는 사십이 넘은 몸이 지만 타고난 육감적인 몸매가 나이를 무색하게 하였다.
금병매를 읽은 독자들은 다 알겠지만
한도국의 처로 있을시에는 현모양처로 살았으나

시동생 한이와 불륜을 저지르고 나서는 남편에게 느끼지 못했던 색욕에 눈을 떠,

감옥에서 서문경의 권세에 눌려 어쩔 수 없이 몸을 맡겼으나,

난봉꾼 서문경의 사랑 기술을 터특하고는 매일 밤

남자가 없이는 잠을 못 잘 정도로 색부가 되어 있었다.

 

이러하니 알리부가 사랑을 할려고 그녀를 찾으면 뇌쇄적인 알몸으로 저돌적인 사랑을 하니

삼십대의 왕성한 알리부도 왕육아의 사랑 노리개에 불과 하다고 할 수 있었다.
왕육아로서는 알리부가 사랑을 해주지 않아도 한이와의

사랑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게 되어 있어 딸 애랑과 다툴 일도 없었다.

 

<sns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