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병매/금옥몽

주막에서 퉁소불어 버럭질 하다가

오토산 2021. 4. 12. 23:50

금옥몽(속 금병매) <98>
패륜아 정옥경은 주막에서 퉁소불어 버럭질 하다가,

우연히 서유공을 만나나...

큰 고목 나무에 기대어 새우잠을 자고난 옥경은

잠이 깨자 다시 배가 고파 온 세상이 다 노랗게 보이며 미치고 환장할 지경이었다.
생각끝에 두건에 붙어있던 옥을 떼내어 전당포에서 오십전을 빌러

십전짜리 만두 다섯개를 사서 먹었으나 겨우 허기를 떼우는데 그쳤다.

"애고, 죽겠네.
다음 끼니는 어떻게 해결하지?

오늘 밤은 어디가서 잠을 자고 아아 답답하구나?"

고민끝에 옷 속에서 무언가 짚이는게있어 꺼내보니

오공자가 나두고 간 퉁소였다.

"옳지 그래!
사람이 죽으란 법은 없군,

주막이나 사람이 모인곳에서 이걸 불어주고 동냥을 하면 잔돈푼은 생기겠구나."

옥경은 퉁소가 반짝반짝 빛날때까지 정성을 들여 닦았다.
그리고는 강가에 있는 성문밖 주막집으로 달려갔다.
붉은색과 푸른색 단청을 곱게해 놓은 주막집 대문 위에 걸린

싯귀가 제법 나그네의 술맛은 돋우는 글귀였다.

하늘과 땅은 술취한 나그네를 포용해주고,
말없는 강산은 그대의 근심을 비워준다오.

주막안은 손님들로 발디딜 틈도 없이 바글바글 했다.
말없이 강을 바라보며 난간에 기대어 술잔을 기울이는 나그네.
여럿이 어울려 가위 바위 보로 겨루어 술 내기를 하며 시끌벅쩍한 보부상들,

손님들은 저마다 각양각색이었다.

옥경은 술좌석 중앙에 서서 퉁소를 꺼내어 청승맞고 구슬픈 곡을 불었다.
바로 옆 상좌(上座)에는 나이든 벼슬아치가

젊은 포교와 선비차림의 젊은이와 함께 앉아 음식과 술잔을 돌리고 있었다.

 

청색 도포를 입고 긴 수염을 기른 노인은

부티가 묻어나는 허어멀건 얼굴에 예순정도 되어 보였다.
그는 머리에 관은 썻으나 속옷 차림에 퉁소를 불고 있는 옥경이

극단의 배우같지는 않고 보부상 같지도 않아 보이는지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젊은이는 두건은 썼으나, 도포는 입지 않았고?
보아하니 거지는 아닌것 같은데 어쩌서 퉁소를 불며 구걸을 하는가?
무슨 말못 할 사연이 있어 보이는데?"
옥경은 허리를 굽혀 예를 표하고는 간단히 대답했다.

"친척을 찾아 여기로 오는 중에 배안에서 강도를 만나,

가지고 있던 노잣돈을 다 뺏기어,

우선 숙식이라도 해결 하고자 잠시 하는 짓입니다.
친척을 만나게 되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말을 마친 옥경은 스스로의 처지가 한없이 처량하여 갑자기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
그런데 이 말 몇 마디가 옥경을 절망의 구덩이에서 건져주는 계기가 되었다.

"아, 쯧쯧 참 안돼었네,

그래 찾는 친척의 존함이 어찌되는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 분인가?"

"네

 제 이종 사촌 형님께서는 함자를 서유공(徐有功)이라 하며,

자(字)는 진우(震宇) 라고 합니다.
개봉에 근무 하실때는 관직이 천호(千户)였는데,

지금은 진강수영(镇江水营)에서 파총(把总) 벼슬을 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난리통에 무사히 지내시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개봉을 떠난 지도 십오년이나 지났으니 당장 뵈온다 하여도 알아 뵐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그때 제가 겨우 대여섯살 되었으나,

그 어르신이 강남(江南)으로 가게 되었다며

검과 활등을 챙기시던걸 아직도 생생히 기억 하고 있습니다.
다른일은 크게 기억나는게 없군요?"

그러자 이야기를 듣고 있던 노인이 깜짝 놀라며

마주 않은 포교에게 하는 말이 뜻밖이었다.

"아니,

듣자하니 자네 춘부장의 이야기이네?

이런 일이!"
젊은 포교가 벌떡 일어 나며 다시 묻는다.

"그럼 댁의 성함이 혹!
'옥' 자 '경' 자 되십니까?"

"네,

그렇습니다만...?"

포교가 앞으로 나서며

정중하게 옥경에게 배례를 하며 일행을 소대한다.

"숙부님!
소질(小侄)인사올립니다.
여기 계신 이 어르신은 소질의 빙장 이신 이차교(李次桥)어른이시고, 

이 젊은 선비는 소질의 처남인 이앙지(李仰之)입니다.
서로 사돈지간이니 이런곳에서 우연히 만나는 것도 모두 하늘이 돕는 인연이군요?"

그제서야 옥경의 얼굴이 가뭄끝에 단비를 만난 모양 환하게 밝아졌다.
이차교는 옥경에게 의자를 당겨 앉으라고 하고는

아직까지 식사를 못한 것을 알아차리고 국수와 만두를 꼽백이로 시켰다.
옥경은 며칠만에 먹어보는 식사라 그야말로 게눈 감추듯 먹어 치웠다.

 

그러자 이번에는 술과 안주를 추가로 시켜서 함께 술잔을 채워 건배를 하였다.
그리고는 술집을 나온 그들은 큰 길을 몇개 지난뒤 한 골목안으로 들어가

조그마하고 아담한 집으로 들어갔다.

 

옥경과는 사촌지간의 형인 서유공이 나와 문을 열고는

처음 대하는 옥경을 보자 같이온 일행을 둘러보며 의아해 한다.

"사돈어른의 사촌 동생되시는 분이라오.
우연히 성밖에 있는 주막집에서 만나 얘기를 나누다 알게된 것이오,

세상에 이런 기막힌 우연이 어디 있답니까?
하마터면 이 양반 천리먼 타향 땅에서 크게 낭패를 볼 뿐했어요?
다행히 이 늙은이가 주책을 떨다보니 만나게 되었다오.

 

참! 하늘이 내린 복이지요.
사돈어른이 크게 한턱 내야 겠어요,

허허허!"

서유공은 그제서야 집안으로 들어가 옥경으로부터 절을 받고는

그간의 집안 소식을 이것저것 물어본다.

 

개봉의 부호였던 옥경의 부친과 서유공의 누이 서씨가 세상을 뜨자 어린 옥경이 잘 못해

그 많던 재산을 사기 당해 모두 잃어버렸다는 말에는 모두 아무 말도 못하고 숙연해 졌다.
실제는 옥경이 자신의 잔재주만 믿고 한량으로 오입질과 노름으로 다 날렸다는 이야기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서유공은 우선 옥경에게 편안하게 지내라며 목욕물을 준비하라고 시키고

옥경에게 보라빛 나는 새옷을 갈아 입으라고 내놓았다.
저녁 준비가 끝나자 그간의 세상 이야기로 시끌벅적하다.
북쪽 개봉은 오랑캐의 칩입으로 그들의 수중이나 이곳은

다행히 송나라의 수중이라 비교적 평안하였다.

 

못다한 그간의 이야기가 끝나자 모두들 돌아갔다.
옥경은 자그마하지만  깨끗이 청소된 바깥채에서 기거하도록 해주어

오랬만에 가족간의 우애를 물씬 느꼈다.

몇일이 지난 후 서유공은 옥경을 불러 마냥 놀 수 만은 없으니
집앞에 조그만 가게를 열어 옥경에게 관리하도록 하였다.

 

아찔한 천길 낭떠러지에서 떨어진 옥경은

천만다행으로 절벽 사이의 나뭇가지에 걸려 목숨을 건지고,

만리타향에서 사촌형의 구원을 받았으면 이제라도 분수를 알고

착하게 세상을 살았더라면 평범한 사람으로 아무 걱정없이 세상을 살아 갔을텐데,

제버릇 개 못주고 슬금슬금 잡놈의 기질이 나오기 시작했다.

큰 수입은 안되어도 차린 장사가 그런대로 번창하여 수입이 나기 시작하자

개봉의 하류계에서 뺀질뺀질하게 몸에 밴 버릇이 슬슬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이핑게 저핑게 대며 사촌 형님 눈속여서 삥탕친 돈으로

아직 다 배우지 못한 풍악의 기예를 연마 한다는 핑계로 유곽을 드나들며 기생들과 어울리더니,

훤칠하게 생긴 용모를 이용 가게에 오는 아낙들도 꼬셔내어 오입질을 하는가 하면,

몇몇 한량들과도 친분을 쌓아 오만 잡짖을 다하며 하류 건달생활에 또 다시 빠져 들었다.

무인출신 답지않게 순박하고 사람좋은 서유공은 친척도 많지 않운데다가

가장 좋아했던 누이의 아들이니 애처러운 마음에 믿고 맡겼는데

멀쩡하게 생긴 허우대와는 달리 알고보니 잡놈이란 것을 알고는

분통이 터져서 어쩔줄을 몰라했다.

 

옛말에 신의가 없는 사람은 가까이 하지 말고,

열매를 맺지않는 꽃은 애당초 심지를 말라는 말이 있듯이,

정에 엮어 결정한 일이 먼 훗 날 어떻게 되어갈까?

 

잡놈 이야기만 하다 보면 성질만 북북 치밀어 오르니

반금련이와 춘매가 개봉 치안담당 무관 공천호와 여지휘의 자식인

여금계와 공매옥으로  환생하여 뱃속에서 부터 부부의 연을 맺었으나

모두 여자 아이로 태어났다는 사실은 독자 모두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자매같이 그렇게 다정하던 그두 여인들의 이야기는

옥경이 같은 잡놈 이야기 보다 무언가 더 재미있게 펼쳐질 것 같아 그들을 만나로 가 보자

 

<sns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