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옥몽(속 금병매) <99>
여금계 모녀는 생할고에 늙은이수비 장군에게 재가 하고
개봉으로 귀향한다.
구름타고 논다고 다 신선일까? 발밑에 있는 티끌 먼지가 아냐.
버들 잎은 저절로 비취빛 눈썹, 복숭아 꽃 처음부터 죽은 입술.
해골속 물도 목 마르면 감로수, 비출 거울도 없었는데 왠 티끌.
전생에서 끊을래야 끊어질 수 없는 반금련과 춘매의 인연의 연줄은 후세 생에서도 끊임없이 이어지니,
금련은 여지휘(黎指挥)의 집에 환생하여 금계(金桂)라고 이름지었고,
춘매는 이웃집에 사는 무관 공천호(孔千户)의 딸 매옥(梅玉)으로 환생했다.
우리 인간들이 이승과 저승의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모르고 살아서 그렇치
주위에서 태어나고 죽고 하는 모든 것들은 어떤 우주의 법칙 속에서
한치의 착오없이 반복 되고 있을 것이다.
세상사가 이러하니 별도의 마을 무관마을 단영(团营)에 어울러 사는 무관들 칠십여명은
나라가 태평성대라 치안보다는 끼리끼리 즐길거리에 더 열심이었다.
그러다 보니 모두 형 아우고, 그들의 여편네 또한 계를 하며 형님 동생으로 지냈다.
평소부터 죽이 맞아 어울려 지내던 여지휘와 공천호의 아낙들도 태기(胎气)가 있자마자 혼약을 맺었는데,
태어난 것은 모두 딸이라 하는 수 없이 다른 집안과 혼약을 맺을 수 밖에 없었다.
그 당시 소위 권세가문의 풍속은 서너살 아이들은 부모들이 앞장서서 정혼을 하는것이 유행하였다.
그래서 같은 단영의 무관인 유지휘의 아들과 금계가, 왕천호의 아들과는 춘매가 정혼을 하였다.
그런데 평화롭던 양가에 사단이 벌어지게 된것은 금나라 오랑캐가 송나라를 침공하니
장수가 부족해 무관인 여지휘와 공천호 두 집안도 황명에 의하여 변방으로 배치되어 떠날 수 밖에 없었다.
여지휘는 산서땅 거용관(居庸关)의 참장으로,
공천호는 진정(真定)땅의 유격부(游击府)의 장수로 임명되어 수천만리를 떨어져 지내야 하는 현실이 되었다.
금계와 매옥은 태어나서는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친자매 처럼 살았으니
두 집안과 두 자매는 청천벽력이 아닐 수 없었다.
여기까지는 독자들도 다 알고 있는 이야기를 정리 한 것이다.
정강(靖康)육년이 되자,
오랑캐 장수 알리부는 아예 개봉의 관문인 변량하에 주둔하고는
인근 지역을 계속 넓혀 점령해갔다.
태평성대로 국방은 안중에도 없던 송나라 황실이니
그나물에 그밥이라 군대가 제대로 훈련을 했을 턱이 없다.
기강이 빠질되로 빠진 관군은
오랑캐가 군대가 쳐 들어 온다는 소식만 전해지면 도망가기에 바빴다.
무관직을 세습하여 물려받은 여지휘도 그 중의 하나였다.
선황제들이 송나라를 태평성대의 반석위에 올려놓으니
휘종은 국사를 간신들에게 일임한채 방탕한 생활을 일삼으니 나라의 정사가 잘 굴러 갈 수가 없었다.
그러하니 국방이야 한마디로 엉망이었다.
송나라 장수치고 무예를 제대로 익혀 관직에 오른 사람은 백에 하나도 찾기 어려운 형편이었다.
그러하니 대부분의 장수라야 권문세가의 추천에 의하거나 세습 또는 매관매직에 의해 장수가 되었으니,
기껏 무예를 할 줄 안다는 것이 활로 쏘아 장끼나 까투리를 잡는 것이 아니라
솔개를 날려 하는 사냥 수준이니 군대의 핵심인 전술은 백지 수준이었다.
그저 잘 하는 것이라곤 어울려 다니며 술마시고 기방 출입하는 일에나 통달 하였다.
그러하니 병사들의 무예나 전술능력은 불보듯 뻔하였다.
하니 오랑캐가 쳐들어 온다는 말만 들어도 삼십육계 줄행랑을 친다는 것은 무리가 아니었다.
장수가 그 모양이니 병사들이야 말할 필요도 없었다.
거용관을 지키고 있던 여지휘는 어느날 아침 일어나 보니
적은 코앞까지 닥쳤는데 지례겁을 먹고는 모두 도망치고 늙은 병사 몇 명과 병든 병사 뿐이라 기가 막혔다.
거용관이라면 북쪽의 오랑캐를 막는, 글자 그대로 평범한 병사가 지키기만 해도 절대 점령 할수없는
난공불락의 요새인데 병사들이 도망가고 없으니,
여지휘는 미리 대비하지 못한 자책감에 스스로 자결하고 말았다.
상황은 진정부를 지키고 있던 공천호 유격도 별 다르지 않았다.
평소 대비없이 세월을 보내다가 오랑캐가 코밑까지 와서야 병사들을 독려해보니
늙고 병든 병졸 천여명에 불과하여 연경에서 출발한 오랑캐 기마부대와
잘 훈련된 날쌘 병사 오만명이 노도와 같이 진격해 오니,
첫 전투에서 변변히 싸워 보지도 못하고 그만 항복해 버리고 말았다.
그러다가 반여년 후 흠종이 금나라에 항복을 하자 오랑캐는 물러 갔으나
전력을 다하여 전투를 하지 않고 항복하였다 하여
국기를 문란캐 하였다는 이유로 참수를 당하고 말았다.
두 집안은 수천만리 떨어져 있었지만
집안의 가장을 잃고 생계가 막막해진것은 똑 같았다.
하는 수 없이 남은 모녀가 삯 바느질로 연명은 했지만
전란 속에 세끼 끼니 때우기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하니 도움을 받을 이 없는 타관 땅에서 지내기는 너무 외롭고 힘든 날이라,
가능한한 빨리 고향땅으로 돌아 가고자 했지만
전쟁으로 인한 아녀들만의 이동도 쉽지 않았다.
이러하니 한숨만 쉬며 지내는데 금계와 매옥이는 어느덧 장성하여 어엿한 아가씨가 되었건만,
혼약을 맺었던 상대방 집안은 소식도 하나 없으니 어디서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었다.
두집 모두 딸들 시집도 못 보내고 청상과부가 되겠구나 하는 두 어미 과부의 심정도 알 만 하였다.
건염(建炎)이년이 되었다.
마침내 종택(宗泽) 장군이 태행산(太行山)에 진을 치고 있던 산적 두목 왕선(王善)을 감화시켜
그의 부하 십만을 관군에 편입시켜 개봉을 수복하니,
그때부터 피난갔던 수많은 사람들이 다시 개봉으로 몰려들기 시작 했다.
한편 여지휘의 마누라는 전란속에 금계와 둘이서 살아간다는 것이 힘들어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가고 있었다.
금계는 삶이 어려우니 초라한 옷에 그 흔해빠진 분(纷)한번 발라보지 못했지만,
워낙 타고난 자태가 고운지라 누구든지 한번 보기만 하면 얼이 빠질 정도로 예뻤다.
전족을 한 작고 예쁜 발로 머리에 이름모를 꽃이라도 한송이 꽂고서 사뿐사뿐 걸어가는 모습은
누더기 옷을 입었을 망정 숨길수 없는 아름다운 여인의 얼굴과 맵시(花容月态)에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여지휘의 마누라는 딸을 위해서라도 생활이 좀 풍족해져야 하는데 속만 타 들어갔다.
그러는 중에 우연히 나이가 칠십이 넘은 이수비(李守备)라는 장수의 청혼을 받고 망설였으나
고향이 같은 동향(同乡)사람에다가 그녀 역시 이제는 마흔을 넘긴 나이라 살기가 어려우니
금계의 앞날을 위해서도 같이 의지하고픈 마음에 청혼을 받아들였다.
검지도 희지도 않게 알맞게 건강한 피부색,
살찌지도 마르지도 않은 늘씬한 몸매.
생기발랄 빨간 입술 향기가 묻어나고,
영롱한 눈동자 깜박이는 추파 애간장 찢는구나.
천하제일 미녀 누더기 옷 심금을 울리는데,
거울을 비쳐보면 호수에 뜬 맑은 보름달.
사시사철 가슴안에 품어봐도 싫증날리 만무하다!
퇴역한 이수비 장군도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꿀뚝 같았으나
개봉의 치안이 엉망이라는 말에 망설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종택 대원수가 개봉을 수복 치안을 회복 하였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마차 두대를 마련해서는 새 마누라와 금계 그리고 전처 소생의 열두살 짜리 바보 아들을 데리고
간단한 세간 살이를 챙겨서 수천리 여정을 천신만고 끝에 옛날 살던 집까지 찾아 왔다.
그러나 전에 살던 집은 관에서 징발하여 투구를 만드는 군수품 공장이 되어 있었다.
하나있는 조카를 찾아 보았지만 그 또한 소식을 알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강변 쪽 화원영리(花园营里)의 허름한 집을 빌려 살게 되었다.
이수비는 생할비를 벌기위하여 하인 이소을을 시켜 집 바깥채에 주막집을 차려 관리하게 하고
자신은 탁자하나를 갖다놓고 관리를 하였다.
여금계 모녀는 나름대로 삯바느질로 용돈을 보태어 근근히 생활을 하고 지넸다.
한편 개봉은 종택 장군이 수복한 후에는 점점 치안이 확보되고
백성들이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할수 있게 되었다.
성곽도 보수가 되고, 군대도 정비 보급품도 풍족해졌으며,
세번이나 패한 오랑캐들은 삼백여리 밖으로 후퇴해서 주둔하며
감히 하북은 쉽게 침공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계속 북진을 주장하는 상소를 올리는 종택 장군에 대하여
화평론자인 간신들이 정권을 장악하고 있으니 종택 장군을 못 마땅 하게 생각 하고 있었는데
답답한 종택 장군이 스스로 울화병이 도져 죽어 버리고 나자
다시 개봉은 민심이 흉흉해지며 치안이 불안 해 졌다.
그나마 다행으로 백성의 신망을 얻고 있는 의병장 악비가 고군 분투 하며
백성들을 안심 시키고 있어 치안이 유지 되고 있었다.
건염 삼년의 청명절이 되었다.
개봉은 워낙 번화하고 사치스런 도성이었으니,
명절이 되니 비록 전란 중이 었지만 마음만은 옛 그대로 였다.
수많은 인파가 강가로 몰려 나와서는 말 달리기와 활 쏘기를 하며 즐기고 있었으며,
일부는 편을 갈라 축구놀이를 하고, 뱃놀이에 가무를 즐기기도 하였다.
어떤이들은 광대 놀이에 정신을 팔려
갈채를 보내기도 하지만 대부분 끼리끼리 모여 노래와 가무를 즐겼다.
어떤 이들은 안근의 절로 가서 자신들의 앞날에 대한 행운을 빌기도 하었다.
<sns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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