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병매/금옥몽

청명절을 맞아 금계도 오랫만에 나들이를

오토산 2021. 4. 14. 20:57

금옥명(속 금병매) <100>
청명절을 맞아 금계도 오랫만에 나들이를 나섰다.

하늘 하늘 아지랭이 산들산들 부는 바람
따사로운 봄 기운에 가벼운 나비 옷차림
봄길 나선 여인네들 간밤의 비도 그치고
길가엔 유람객 발길 늘어진 버들가지 사이
창공을 오르는 옥치마 사냥 소리게 높이뜨자
숲 가에 일어나는 함성 장기 바둑에 공을 차고
술잔 들고 비파 뜯는데 경성의 봄 나들이 객들.

여금계는 이팔청춘의 봄날에

마음만 설레이지 여기저기 쏘다니는 뭇 사람들이 부럽고 샘이났다.
강가에 늘어진 수양버들의 막 피어나는 새싹과 연분홍 복사꽃 속에

예뿐 비단옷 입고 화려하게 장식한 마차를 타고 쏘다니는 아낙들을 볼때마다,
아! 내님은 어디 계시는가 하고 의문을 가져 본다.

 

옛날에 정혼 해 놓았다는 그이는 어디 있길레 소식도 없는가?
부잣집 자제라는 그이만 있어도 이좋은 봄날에 때때옷 뻬어입고 함께 나들이 갔을텐데,

부모가 짝지어준 얼굴 한번 본적 없는 그이가 원망 스러울 뿐이다.
다른 여인네 들에게는 봄을 즐기는 상춘(赏春)이지만

가여운 금계에게는 봄이 슬프고 야속한 상춘(伤春) 이었다.

새봄을 맞은 제비는 지지배배 신이나서 새 둥우리 만드는데,

흐느러진 해당화는 동풍(东风)을 시샘한다.

밤마다 가슴 조이며 소록소록 님 생각에,

원망스런 버들가지 어이 저리 화창할까?

붉디 붉은 복사 꽃은 향기롭되 가엽구나,
님 그리는 이 내마음 망사 창가에 그려보네.

싱숭생숭 봄바람에 마음이 들뜬 금계는 사춘기 소녀의 심정이라 이해 하지만,

마흔이 넘은 그의 애미의 마음도 어딘가 마음속에 구멍이 뚤린듯 허전한 것은 마찮가지였다.
이수비 장군에게 개가를 한지도 벌써 일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남들이

여씨댁이라 불러 주는 것을 더 좋아했다.

 

죽은 남편 여지휘와 지낼때는

생할의 어려움도 없었지만 동네 아낙들에게 잉꼬 부부로 소문이 나서

함께 어울릴 때에도 얼마나 즐거운 행복한 시절이었던가?
헌칠하게 잘 생긴 얼굴에 밤마다 넘쳐 흐르는 정력으로 끝

없이 구름을 타게 하였던 그 남자였다.

 

그런데 무슨 날벼락에 야속한 황천길로 먼저 떠나버리고,

생각지도 않던 쭈그렁 방탱이 칠십 늙은이에게 시집와서

이 아까운 중년의 인생을 즐기지는 못할망정 고생 바가지를 뒤집어쓰고

하루하루를 늙어가며 세월을 보내고 있자니 봄날의 옛 생각에

새까맣게 속이 타고 한숨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수비 영감탱이는 해주는 저녁만 쳐먹으면

바로 침대로 가서 덜렁 자빠져 코를 드르릉거리며 자버리니,

한참 그 맛에 재미들린 사십대의 물오른 여인의 달아오른 몸뚱이를 주체하지 못하고

흔들어 깨워보지만 모르는척 하고 자고 있으니 그녀는 오장육부가 비틀어지는 일이었다.

 

그것도 애걸하다시피 하여 가물에 콩나듯이 한달에 한 두번 방사를 치루는데, 성

문을 활짝 열고 이제나 들어올까 저제나 들어올까 아무리 기다려봐도 함흥차사라

두눈 뜨고 살펴보니 언제와서 실례를 했는지 문전만 더렵혀 놓았다.

 

그리고 물건이란 것은 삼복더위에 축 늘어진 개 혓바닥 꼬락서니를 하고있으니

열불이 난 그녀는 손가락으로 툭 건더려 보지만 그놈의 영감탱이는  할일 했으니

귀찮다는듯 돌아 누워 버린다.

 

애가탄 여씨댁이 영감의 배때기에 올라타서 주무르고 쓰다듬고 육봉피리까지 불어 보지만

도무지 깨어 날 줄 모르니 복장이 터진 여씨댁 가슴치고 성을내며 영감탱이 몸을

들들 볶기만 하다 제풀에 지쳐버리고 마는 일상이었다.

화창한 청명절이지만 옛생각에 한숨만 길게 내쉬던 여씨댁은

양귀비 보다 더 예쁜 딸 자식이지만 먼산을 바라보는 우울한 모습에서

마음이 안쓰러워 어미로서 달래준다.

" 얘야,

너무 상심 말거라.
비록 이 애미가 못난 탓에 좋은 배필을 찾아 시집을 못 보내주고는 있다만,

너의 고운 심성과 어여쁜 용모는 곧 좋은 신랑감이 떡 하고 너앞에 나타 날 것이니

걱정하지마라." 하고

입으로 딸을 위로해 주지만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핑도는것은 마음이 아리기 때문이었다.

여씨댁의 바로 옆은 전당포 오은장(吳银匠)의 집이었다.
열 두세살 먹은 딸아이가 금계와 가끔 말 동무가 되어 주었다.

"금계 언니!
오늘이 청명절(清明节)인데 우리도 강가로 놀려가자, 응?
별에 별 놀이가 다 있대,
황화구곡(黄河九曲)이란 놀이는 커다란 휘장을 쳐놓고

그 속에 미로의 길을 만들어 놓아 빠져 나오는데 무척 어렵데 재미 있겠지?
수례바퀴같은 것을 빙빙 돌려 하늘 높게 해주는 희한한 그네도 있데,

타는 사람은 줄만 꼭 잡고 있으면 된데요,

어떤이는 겁이나서 오줌을 싸는 사람도 있데.
언니 구경 가자?"

"가고야 싶지만

돈도 없고 이런 옷을 입고 창피해서 어떻게 가"

"언니 그건 걱정 안해도 돼,
내가 알아서 할께,

그리고 돈 안드는 것도 많데,

얘기꾼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도 재미가 그만이래

'팔선과해(八仙过海)'는 신선 여덟명이 바다를 건너가 선녀를 만나는 이야기구,

 동자배관음(童子拜观音)'은 어떤 착한 동자아이가 관세음보살님을 만나 복을 받는다는 이야기구,

'섬궁절계(蟾宫折桂)'는 항아 선녀가 월궁에서 토끼와 계수나무에서 숨박꼭질 하며 노는 이야기구,

가장 인기있는 이야기는 쬐끔 야하지만  당현종과 양귀비(扬贵妃)가 화청지(华清池)에서

목욕하며 재미보다 죽는 장한몽(长恨梦)이 그렇게 재미있데,

금계 언니야 같이 가자 혼자 가면 안보내 준대."

"그러나 옷이 있어야지"

"그건 걱정하지마,

우리집이 전당포잖아,

엄마가 잡힌 옷중에서 언니에게 딱 맞는 걸로 비녀 팔찌 귀걸이 목거리등 장신구까지 다 빌러 주겠대"

"정말이지?
그럼 가야지."

금계가 좋아하며 승락하자,

계집아이가 잠시 기다리라 하더니 곧 보따리를 가지고 와서는 담 너머로 건네 주면서

언니 맘에 드는 옷으로 골라 입으란다.
보따리를 펼쳐보니 비단 옷이 네 벌이나 되고

비녀랑 귀걸이등의 장신구가 든 상자까지 있었다.

"아가야!
잘되었구나.
아침부터 옷이 없어 구경도 못 간다고 울더니,

이제 금계 너무 좋겠다."

여씨댁도 좋아하며 오랫만에 웃음을 보였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오은장의 마누라가 담 넘어로 고개를 빼죽이 내 밀고는 말했다.

"이씨댁도 너무 했수.
오늘같은 청명절에 애가 밖에 나가 놀구 싶지 않겠수?
딸 아이라고 집에만 가두어 두면 답답해서 홧병이 생겨요?
이렇게 이쁜데 자꾸 밖에 내보내 사람들 한테 보여 주어야 중신이 들어오지,

집에 금송아지가 있으면 머하우,

남들 한테 알려야 보물이지 그래야 함부로 깔보지 않지,

가만 있자.
그럴께 아니라 아예 우리도 같이 나갑시다.
오랬만에 세상 구경도 하구,
우리도 아직 예쁘게 따듬고 나가면 할머니 소리야 듣지 않겠지 안그렇수?"
마침 그때 이수비가 들어 와서는 크게 선심이나 쓰듯이 한마디 했다.

" 그러구려.
당신도 한번 바람좀 쐬고 오시오.
내가 집을 지키고 있겠으니."

늙은 영감이 젊은 마누라 욕구를 해소 시켜 주는 것은 자유롭게 쏘다니고

물건도 사고 하는 것인데 일단 허락 해 주는 것 만으로도 즐거운 일이었다.

그렇다고 젊은 마누라를 계속 쏘다니게 할 수는 없었다.
만약 진짜 바람이라도 나면 골치 아픈 일이기 때문이다.

 

이씨 마누라는 서둘러서 딸아이의 머리를 빗겨주고

머리에 장식도 해주고 몸치장을 도왔다.
빌린 옷이지만 워낙 몸매가 좋아서인지 너무나 잘 어울렸다.
과연 옷이 날개라더니 예쁘게 차린 금계는

무산의 선녀도 시샘할 정도로 매혹적이었다.

 

여씨댁도 보라색 비단 치마에 옥색 저고리를 바쳐 입고

머리에 나비 모양의 비취로 좌우에 꽂으니 누가 보아도

매력적인 삼십대 초반의 부잣집 마님 같이 보였다.

여씨 모녀와 오씨 모녀는 함께 다리를 건너 청명절 행사가 열리는 강변을 향해 갔다.
마침 지나가는 길에는 울긋 불긋 하게 화려한 장식을 한 홍등가가 나타났다.
기루에는 짙게 화장을 한 기생들이 문가에 기대서서

지나가는 남정내를 눈 웃음으로 유혹하는 광경이  보였다.

 

어떤 기생은 남자의 두 손을 다정하게 붙잡고 속삭이고 있고,

어떤 기생은 아예 남자의 어께에 기대어 갖은 애교로 유혹하고 있었다.
심지어 이층 누각 위에서는 훤한 대낮에 민망하게도 남자의 품에 껴안겨 있는 기생도 보였다.
난생 처음 이런 광경을 목격한 금계는 자기도 모르게 가슴이 콩닥거리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아무리 외면 하려고 애써도 본능적으로 살짜기 곁눈질을 하게 되었다.
강변에 도착해보니 융단을 펼쳐놓은 듯 파랗게 펼쳐져 있는 잔듸 밭에는

귀공자들이 군데 군데 모여 앉아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즐섭게 놀고 있었다.
금계는 곁눈질로 몰래 훔쳐보면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누군가 자기를 봐 주기를 은근히 기대했으나,

아쉽게도 그들 중에서 아무도 눈 길을 주지 않았다.

 

<sns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