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옥몽(속 금병매) <110>
개봉성은 오랑캐에 점령당해 아수라장이 되고
꼭두각시 소인배 유예가 제왕의 배역을 맡는데...
오랑캐군은 종택 장군에 이어 개봉을 지키는 악비 장군의 활약으로
수차례에 걸쳐 치루어진 하남 유역 전투에서 계속 패하여 개봉은 감히 직접 공략하지 못하고
산동으로 우회하여 제남(济南)일대에서 온갖 행패를 다 부리고 있었다.
올술 왕자는 남방 깊숙히 밀어 붙여 통일을 하고 싶었지만
허리부분에 해당되는 개봉부가 눈에 거슬러 매우 초조해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올술이 지휘하는 오랑캐군에게 모든 협조를 아끼지 않고 있는
제남지부(济南知府) 유예(刘豫)를 불러 개봉을 공략할 수 있는 묘책을 상이했다.
원래 동경 개봉에서 감생(监生)이라는 말단 벼슬을 하던 생원출신 유예는
전쟁이 일어나 어수선해진 틈을 타서 뇌물을 바치고 하북성에서 지현(知县)자리를 얻어
여기저기 전전하다가 전쟁으로 관리가 부족하자 운좋게 제남지부란 관직을 하게된 자였다.
이 소인배는 오랑캐 올술의 군대가 제남으로 진군하자,
오랑캐에게 투항 말단 관리를 하던 사촌 동생 유안(刘安)과 연락이 되어
싸움없이 투항하면 높은 직위를 준다는 약조를 받고는 성문을 활짝 열어 항복을 하고 말았다.
그리고는 오랑캐의 말을 익혀서는 갖은 아부를 다 떨어 올술왕자에게 꽤나 인정을 받고 있었다.
"대금제국(大金帝国)의 군사들이 산동에 진군하자마자
모두들 두 손을 높이 들고 항복하고는 백성들까지 환영을 해준다는 것은
하늘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지요?
그러니 개봉땅도 역시 손아귀에 있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요즘 소식을 알아보니 종택 장군이 죽고 곡단(曲端) 장군이 지키고 있었는데
내분으로 장준(张浚)에게 살해되고는 지금은 젊은 애송이 악비가 지키고 있는데,
새로 유수가 된 두충이란 위인이 관리로서 자질이 부족해
악비가 오히려 백성들에게 신뢰를 받는다고 생각해서 질투를 느끼며 무척 미워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두 사람 사이에 이간질을 시켜버린다면 쉽게 점령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개봉이 지금은 비록 다 허물어진 도성이지만
역대 제왕들의 이백여년의 도읍지였고 백성들의 자긍심이 대단하답니다.
또한 개봉 외곽은 태행산(太行山)이라는 천혜의 요새가
천리나 이어지며 감싸고 있으며 인구도 백만이 넘습니다.
두충이 삼군을 데리고 남방으로 떠났다는 정보가 있어 사실이라면
개봉을 점령 하기란 식은 죽먹기 만큼이나 쉽겠지만
지키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왕자님께서는 알으셔야 합니다.
만약 송나라 문화를 잘모르는 사람들이 단지 무력으로만 위엄을 세우며 백성들을 다룬다면,
겉으로는 순종하는 척 하지만 조그만 틈만 생긴다면 반항해 올 것입니다.
왕자님의 군사가 막강하다고는 하나 고향을 떠난지가 오래되어 향수에 젖어 있을 것이고
자주 주둔지를 이동한 탓에 지쳐도 있으며, 현재 강남을 공략하느라 전력을 집중하고 있는 까닭에
군사를 두패로 나누어 공략하고 후방을 지키기위하여 남방전선을 소홀하게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송나라는 송나라 사람이 통치하게 한다면 백성의 마음과 문화를 알고 있으니
큰 마찰이 없을 것입니다.
왕자마마께서는 개봉에 행궁을 세우시고 일부 군대를 주둔 시킨다면
오랜기간 문제없이 통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왕자님께 드릴 수 있는 가장 좋은 계책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올술 왕자는 유예의 이야기를 모두 듣고는 너무 기뻤다.
즉시 금나라 황제 오걸매에게 상소를 올리고 유예를 제왕(济王)으로 봉해서
점한의 군대와 함께 황하를 건너 하남(河南)을 탈취한 후 임시로 그 땅을 다스리도록 했다.
시(诗) 한수가 그때 일을 증명하고 유예의 제왕 임명을 비꼬고 있다.
초야에 파묻혔던 서생이라 깔보지 마소,
두터운 성은(圣恩)이 졸지에 내렸도다.
송나라 사람이 오랑캐 말 배우더니,
오랑캐 대신하여 송나라를 욕하누나!
오랑캐 장수 점한(点罕)은 동경(东京)인 개봉을 탈취했던 경험도 있고,
또 휘종과 훔종을 포로로 잡아 금나라로 끌고 갔던 적이 있는지라,
개봉 근방의 지리도 잘 파악하고 있고 매우 익숙했다.
그리하니 길을 안내하는 향도관도 없이 직접 연경의 십만 대군을 이끌고
강동으로 진격한다는 정보를 세작을 보내 퍼뜨려놓고는 실제론 몰래 길을 바꾸어
밤낮으로 삼백리길을 달려 개봉에 진격했다.
그 전까지는 종택 장군과 악비 장군의 위세에 겁을 먹고 개봉 근처에도 오지 못했다.
오랑캐 장수 점한은 두충이 삼군을 이끌고 남방으로 출동했다는 정보를 입수 했으나
혹시 악비 장군의 계략일지 모른다는 의구심으로 신중했던 것이다.
그런데 실제 개봉에 와보니 아무 저항없이 입성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적장 점한 조차 도저히 이해 할 수 없는 일이라고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개봉은 아수라장이었다.
통치하는 이가 없으니 백성들은 우왕좌왕 했다.
성안 사람들은 성밖으로 피난을 떠나고 있는가 하면
성밖 사람들은 성안이 더 안전한가 하고 밀려들어 오기도 하였다.
무혈 입성한 오랑캐 군사들은 황궁을 뒤져 값나가는 것은 모두 가져가고
심지어 황릉까지 파 해쳐 온갖 값진 골동품과 금은 장신구들을 약탈하고 불태워 버리기도 했다.
그리고는 기생이나 양가집 규수를 막론하고 눈에 보이는 여인들은
닥치는데로 끌고가 욕심을 채우고 반항을 하면 죽여버리기까지 하였다.
심지어 집안까지 뒤져 반반한 아녀자들은 모두 끌고가 음욕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 화려했던 문화와 예술을 자랑했던 도성은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아수라장의 장터가 되어 있었다.
유예는 점한이 개봉을 점령한 후에야 통치를 한다는 명목으로 들어와
황궁을 돌아보니 황제가 살았던 궁궐의 자태라곤 한 곳도 남아 있는 곳이 없었다.
옛날 그렇게 정성을 들여 가꾸었던 정원의 기화요초와 온갖 기이한 수석(水石)들로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무릉도원 같은 풍광은 어디에도 찾아 볼 수 없고
나이든 내시들 몇명만이 지키고 있어 옛 황궁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유예는 오랑케에 의하여 꼭두각시 황제로 지명된 장방창이
강남에서 고종이 즉위하자 살아 남기 위하여 황궁에 있던 보물과 궁녀와 내시들을
백여척의 배에 싣고 갔던 사실을 모르고 있으니
많은 금은 보화가 남아 있을 것으로 생각했었다.
남아 있는 것이라곤 돌이나 대리석으로 만든 황제의 침상과 의자 탁자들로
무거워 옮길 수 없는 것 뿐이었다.
유예는 자신이 어지러운 송나라를 통치하는 왕이라고 하며
백성들은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하는 것을 돕겠다는 방문을 써 붙이고는
궁궐을 수리하고 성곽을 보수 하였다.
투항한 관리들은 옛 직책에 그대로 기용하여 우선 치안과 민심의 동요를 막았다.
점한은 오랑캐 군사 삼만을 남겨 유예를 보좌하게 한 다음
남방의 항주로 고종을 치기 위하여 출병하였다.
유예는 금나라 황제 오걸매의 뜻을 받들어 금나라 황실 복장을 흉내내어 모자를 쓰고,
옥을 박아 넣은 요대를 차고, 비단을 두른 사슴가죽 전투하를 신고서 곤룡포를 입었다.
위엄을 보인다고 모자는 일부러 약간 앞쪽으로 삐딱하게 썼다.
그리고는 길일을 택하여 수백명의 문무백관과 감옥에 갇혀 있던 좀도둑들을 회유하여
내시로 분장시켜 성대한 조례를 거행 실제 제왕이 되었다고 선포를 한 것이다.
배우를 왕으로 분장시켜 무대에 올려도 사람들은 진짜로 여긴다고 하더니
유예의 제왕 선포도 그런 꼴이었다.
금나라는 평민으로 한 평생 사는 것보다 왕으로 하루를 살아 보고 싶다는 사람들의 심리를 이용
유예를 꼭두각시 왕으로 전면에 내세워 송나라를 통치하는 교활한 수법이었다.
어쩠던 유예는 졸지에 제왕이 되어 평민으로서는 상상도 활 수 없는
부귀영화와 권세를 누려보니 그의 사주팔자는 타고난 것인지 운명인지는 알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는 권세와 부귀영화의 맛에 빠져 자신이 제왕노릇을 하는
오랑캐들의 한마당 연극 속 배역인 줄 모르고, 그 배역을 유지하기 위하여
마누라와 딸 자식까지 오랑캐 장수의 밤 놀이개로 바쳐 권세를 유지하지만
결국은 자신의 목숨까지 바쳐야 했다.
소인배 두충이란 놈도 송나라 북부의 유일한 개봉성의 확고한 방패막이를
악비장군을 시샘하여 종택 장군이 애써 수복하여 놓은 하남땅을 송두리째 오랑캐에 내어주니
나라의 절반이 오랑캐의 수중에 고스란히 떨어져 결국은 송나라가 멸망하고 마는 단초가 되었다.
그러하니 예나 지금이나 당연히 통치자도 덕망을 갖추어야 하지만
적재적소에 신망있는 훌륭한 인재를 써야 백성이 고통받지 않는다는 것은 불멸의 진리이다.
<sns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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