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병매/금옥몽

제왕이 된 유예는 왕비 간택 방을 붙이고

오토산 2021. 4. 26. 15:40

금옥몽(속 금병매) <111>

 

제왕이 된 유예는 왕비 간택 방을 붙이고,

  이교아는 청하현에 속식을 전한다.

오랑캐의 침략질이 구중궁궐 휘몰아쳐,

화사했던 후궁에도 노래가락 멈췄구나.
밀려오는 적군함성 아군병사 도망가네,
대경실색 황상폐하 필기단마 삼십육계.
노략질을 당했으되 금은보화 남아있고,

연못에는봄이오니 다시피는 연꽃송이.
굳게닫힌 대궐문에 가시나무 무성하다,
처량한 바람소리 늙은 소나무를 울린다.

부귀영화는 뜬구름 같은 것 한 나라의 흥망성쇠는 역사 속에서 얼마나 반복 될 것인가!
노루 사슴 뛰어 놀던 궁궐은 잡초만이 무성하고,
아름답던 가인의 혼령은 숲속의 두견새로 변하여서 그리운 님을 향해 슬피운다.

용맹무쌍하던 젊은이는 쭈구렁방탱이 할아범이되었고,
황제의 총애를 한몸에 받던 절세가인은 마굿간의 여편네가 되는구나!

훗날 남송(南宋)시대의 유민(遗民) 조자양(赵子昂)이 또 다른 오랑캐 나라인 원(元)에게 나라를 송두리째 빼앗기고,

옛날 송나라의 궁궐을 돌아보며 지은 시로 그 쓰라린 심정이 잘 나타나 있다.

벽오동의 맺힌 이슬 서리가 자욱히 내린다.
변화없는 다듬이질 소리에 그리움만 싸이네.
오랑캐의 문화 풍습은  예나 제나 매 한가지,
강남으로 건너와서 의관(衣冠)마져 흉내낸다.

푸른 초원마다 뛰노는 오랑캐의 건장한 말들,
중원의 가인을 울리는 오랑캐의 풍악소리.
인생의 부침(浮沈)이 역사속에 흘러가니,
그 시절 어디에 있었는가? 망연(茫然)해 지네.

금나라 오랭캐 군대가 송나라를 침공한 후 두 황제를 포로로 데려가고,

구사일생으로 살아 남은 휘종의 아홉번째 왕자 조구(趙钩)가

남경 응천부(应天府)에서 새로운 황제 고종이 된 후

이십여년이 다 되도록 중원땅은 하루도 편한날아 없었다.

농토는 황폐해서 잡초들로 뒤엉겼고 집집마다 배를 곯아 아사자가 속출하니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을 판이니 힘께나 쓰는 젊은이들은 토적이 되거나 반란군에 가입하였다.
치안이 엉망이 되니 애궂은 백성들만 여기저기 피난을 하며 죽을 고생을 다하는데,

북방이나 남방 모두 안전한 곳이 없으니 살아 간다는 것이 여간 고생길이 아니었다.

그 사이에도  오랑캐들은 개봉에다 유예를 꼭두각시 제왕으로 세워놓고는

남방으로 진격할 군사를 조련하는 전초 기지로 활용하고 있었다.

동한(东汉)이후 오대(五代)와 송조(宋朝)의 도읍지인 개봉에 남아 있는 백성들은

태평성대를 구가하던 송조에서는 백만이 훨씬 넘는 인구 였으나

지금은 이십만 정도에 불과하니 옛 영화와 쓰라린 격세지감을 느끼게 했다.

그러나 텅빈 시가지의 불꺼진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홍등과는 오히려 불야성을 이루며 날로 번창을 더해가고 있었다.

원래부터 시문학과 음률을 장려한 송나라는 동경인 개봉의 문화 풍습은 사치스럽고 음탕했거니와,

전란통에 이사사처럼 오랑캐의 권세를 등에 업고 떼돈을 번 집들도 꽤나 많았다.
그러나 유흥가의 수준은 형편없는 홍등가로 변하고 말았다.

태평성대 시절에는 그래도 조금이라도 풍류를 아는 한량들이 시도 짓고 노래도 부르며

악기를 연주하며 젊잖은 채라도 하였었다.

이제는 유객의 대부분이 시정잡배가 아니면 오랑캐 군사들이라 풍류고 멋이고

그런것은 어디에도 찾아 볼 수 없고, 제일먼저 기생의 치마를 벗겨 음욕을 채우는 이들만 있으니,

기생들도 목구녕이 포도청이라 기예(技艺)를 지닌 기생이라도 치마 벗기를 주저 않으니

기생이라기 보다는 몸을 파는 창부가 더 어울렸다

금나라 황제 오걸매의 명을 받들어 하남(河南)의 꼭두각시 제왕(济王)이 된 유예(刘豫)에게는

원래 양귀비 못지 않은 절세가인인 처가 있었다.

그런데 제남 부윤으로 지내던 시절 오랑캐에게 항복하고 오랑캐를 환영하는 연회를 베풀다가,

적장 올술 왕자가 유예 마누라에 눈독울 들이자 자리를 지키고 권세를 유지하기위하여

올술왕자에게 받치고 말았다,

그래서 그는 지금 홀아비로서 지내고 있었다.

어쩜 그 댓가로 지금의 제왕을 하고 있는데 쫌팽이 유예는 부끄러움도 모르고

제왕의 운명을 타고 났다고 자랑하고 있으니 참으로 한심한 작자가 아닐 수 없었다.
유예의 자리가 안정된 것이 보이자, 아부하는 신하와 장수들이 꼬이기 시작했다.

"대왕마마!
낮에는 태양이 있고 밤에는 달이 뜨듯이,

나라에 국모가 없어서야 어찌 채통이 서고 내궁를 다스릴 수 있겠나이까?"

그러하니 왕비도 간택하고 궁녀도 뽑아서 왕실의 위엄을 세워야 한다며,

이참에 옛 송나라 황실 처럼 천여명쯤 뽑아서 절반은 올술왕자의 행궁에 배치해야 한다고 상소를 올렸다.
유예는 자기 입으로 차마 말 할 수 없어 참고 있었는데 신하들이 알아서 말을 꺼내니

너무나 좋아서 입이 귀밑에 달릴 정도로 싱글벙글했다.
몇일이 지나지 않아 궁녀를 뽑는다는 방이 나 붙었다.

"제왕(济王) 유예는  대금제국과 왕실의 채통과 왕실의 전통을 유지하기위하여

올술 태자마마의 행궁과 본왕의 궁궐에서 기거 할 궁녀들을 뽑노라!
무릇 양가집 규수로 나이가 열여섯이 넘었거나,

설흔 미만의 기생들은 한사람도 빠짐없이 궁중에 와서 신고하도록 하라!
그 중 품행과 용모가 단정한자는 본왕의 왕비로 간택하며, 선택되어 뽑힌 자들은 궁녀로 한다."

개봉의 모든 백성은 방문을 보고 놀라움에 걱정이 태산이었다.
과년한 딸이 있는 집안에서는 다락 속에 숨기거나 조기에 결혼시킬 상대자를 찾는둥 야단법석이었다.
하지만 오랑캐 장수 알리부의 첩이되어 개봉에 살고 있던 옛날 서문경의 첩 이교아(李娇兒)는 생각이 달랐다.
뭔가 골돌히 생각하던 그녀는 바로 조카 이명(李铭)을 불렀다.

"얘야,

너 오은아(吳银兒)의 어라버니 오혜(吳惠)란 사람 기억나니?"

"아,

그 친구를 제가 왜 모르겠어요?
저와 단짝이되어 한때 구란리의 유곽을 다녔던 친군데,

그런데 갑자기 오혜는 왜 찾으세요?"

이명과 오혜는 청하현 구란리의 기생마을에서

각각 숙모뻘되는 기생 이교아와 누이 오은아의 집에서 빌붙어 먹고 살던 파락호 들이었다.
그러나 이교아가 서문경의 첩이 되어 시집을 온 후로는 연락이 뜸하다가,

서문경이 죽고 오랑캐가 쳐 들어와 우연찬케 오랑캐 장수 알리부의 첩이 되어

개봉으로 오고난 후에는 완전히 소식이 끊어져 있었다.

그런데 뜬금없이 이교아가 오혜의 얘기를 꺼내니 이명은 무엇 때문에

이야기를 꺼낸 것인지 몰라 눈만 꿈벅이며

다음은 무슨 이야기가 나올까 하고 있었던 것이다.

"네가 그.오혜한테 편지를 써서

누이동생 오은아와 같이 편지를 받는데로 개봉을 다녀가라고 하여라,

어쩜 좋은 일이 생길 수도 있을것 같으니 말이다."

이명은 그제서야 숙모의 속셈을 알아차리고 빙그레 웃으며

즉시 편지를 써서 잘 아는 오랑캐 병졸에게 빨리 전달 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한편 오혜는 청하현 구란리의 기생마을에 누이동생 오은아와 함께 살고있다가

오랑캐가 쳐 들어오자 난리를 피해 여동생을 데리고 시골 구석에 도망가서 지네고 있었다.

그러나 먹을것이 없어 굶어 죽을 쳐지라 할 수 없이 산에서 뜯은 나물과 약초를

시장에가 쌀과 바꾸기 위해 위험한 줄 알면서도 성내로 들어 갔다가

오랑캐의 불심검문에 걸려 수상한자로 분류되어 오랑캐 주둔 부대로 끌려갔다.

산동(山东)의 육부(六府)는 벌써 오랑캐가 점령 통제하고 있었던 것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심문에 솔직히 지낸 이야기를 하자, 그러면 살혀 줄테니

말에게 줄 풀을 베어다가 마굿간에서 말에 먹이 주는 일을 시켰다.

밥은 겨우 허기를 질 만큼만 주어 도망을 치고 싶었지만 만약 잡힌 다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니

확실하게 도망갈 기회가 올때 까지는 그들의 눈밖에 나지않기위해 열심히 여물도 주며 말을 돌보았다.

<sns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