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

영주 죽계구곡을 다녀와서(2)

오토산 2021. 7. 12. 03:30

영주 죽계구곡을 다녀와서(2)

 

달밭재에서 소나기를 만나 내리막길을 내려오는데

걱정을 많이 하였으나 초암사까지 내려오니 안심이 되었고

초암사에서 배점마을로 내려오면서 이미 옷은 젖었으니

올라갈때 보지 못했던 죽계구곡중 제5곡에서 제9곡을 보기로 하였다.

 

죽계구곡(竹溪九曲)은 국망봉(國望峰)으로 부터 흘러 내리는 여울이

산굽이를 돌때마다 절경을 이루어  풍기군수를 지내신 퇴계선생이

경치에 심취되어 산수를 즐기면서 아홉구비를 헤아려 이름을 붙이고

죽계구곡이라 했다고 전하나 명소마다 명칭은 퇴계선생이 붙였지만

후세 사람들이 암벽에 서각(書刻)하는 과정에서 오류(誤謬)가

있지 않았나 하는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고 한다.

 

제5곡은 청련동애(靑蓮東崖)로 안간교(安干橋)를 세웠던 흔적으로

청련암 동쪽 벼랑에 인위적으로 판 머리만한 홈이 있으며

서쪽에 있어야할 청련암은 찾을수가 없다고 한다.

 

청련동애를 지나서 내려오니 소백산국립공원 깃대종 안내판과

이시화의 '길위에서의 생각'이란 시판이 서 있었으며

시판을 지나서는 탐방로를 따라 개울옆 산길을 따라 걸었다.

 

제6곡 목욕담(沐浴潭)은 선녀가 내려와 몰래 몸을 씻었을 듯한 바위와

숲에 가려진 소(沼)가 있는 곳으로 당장  물속으로 뛰어들고 싶은

충동이 느껴지며 그 맑은 물에 취해 물속에 빠져든 것 처럼

마음마져 씻어준다고 하며 澹齋 姜求律의 六曲 沐浴潭 시판이 있다.

 

제7곡 탁영딤(濯纓潭)은 언제나 맑은 물이 흐르니 갓 끈을 씻을수 있고

세속에 찌들어 살면서 쌓인 마음의 때도 함께 씻을 수 있는 곳으로

탁영(濯纓)은 초나라 굴원이 지은 '어부사(漁父辭)'의 구절에서 인용하였다.

䢢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䢢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창량의 물이 맑거든 창

내 갓 끈을 씻을 수 있고 창량의 물이 흐리거든 내 발을 씻을 수 있으리라)

 

제8곡은 관란대(觀瀾臺)로 근원이 멀고 깊은 물이 빠르게 여울져 흐르는

여울목을 바라보며 본원지수(本源之水)를 생각하게 하는 곳으로

맹자 진심장구 상편에서 觀水有術 必觀其瀾(물을 보는데는 방법이 있나니

반드시 그 여울목을 보아야 하느니라)구절과 觀水之瀾 則知其源之有本矣

(물의 여울목을 보면 곧 그 水源에 근본이 있음을 알게 되니라)라 풀이하며

錦溪 黃俊良의 書竹溪八景後와 四佳 徐居正의 小白山 시판을 볼수 있었다.

 

제8곡을 지나 배점주차장으로 내려오는 도로변에는 거북바위가 있다.

남해 용왕이 왕자에게 낙동강의 상서로운 기운의 근원을 알아 오라며

마을사람들에게 마음을 빼앗기면 큰이이 일어난다고 일렀는데

왕자가 죽계의 아름다운경치에 눈을 팔다가 늙은아버지를 위해

밤늦도록 돌다리를 놓는 효성어린 젊은이에게 감복하여 눈물을 흘리다가 

거북형상의 바위가 되어 국망봉을 바라보며 아직도 눈물 흘리고 있다 하며

이 거북의 눈물을 몰래 훔치면 소원이 이루어 진다고 하여

주민들은 이 바위에 치성을 드린다고 전한다.

 

제9곡 이화동(梨花洞)은 배꽃이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나 지금은 주변이

모두 사과밭이고 옥녀봉(玉女峰0과 二子山)사이로 흐르는 죽계구곡은

이화동까지로 이화동 아래 깊은 소(沼)를 용소(龍沼)라 부르기도 하고

이화동 건너 산기슭은 배순의 대장간이 있었던 곳이라 하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불에 그슬린 돌들만 그 흔적을 알려주고 있다 한다.

霞溪 李家淳의 裵店曲과 전선구의 梨花洞 시판이 서 있었다.

 

비를 맞으며 죽계구곡의 계곡에 흐르는 물줄기들을 보며 내려 오니

산길에는 뚜꺼비와 개구리가 함께 구경할 때도 있었으며

등산화에 비닐우의를 입고 탐방로를 걸어도 바지와 등산화가 다 젖었는데

옛 선비들은 도포자락에 짚신을 신었다면 얼마나 불편하였을까?? 생각하며

내려 오다가 보니 어느 사이 비도그치고 죽계구곡도 끝이 났다.

 

우리는 배점마을주차장에서 잠시 휴식을 하였다가

성혈사를 찾아보기로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