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병매/금옥몽

인간만사 모든 일이 인과의 응보이니

오토산 2021. 7. 25. 21:42

금옥몽(속 금병매) <187/끝>

*인간만사 모든 일이 인과의 응보이니

신선이 환생한 몽필생이 인간들에게 악행을 금하고 선행을 베풀라 경고를 한다.


염라대왕을 맡은 불사(佛舍)는

당상에서 내려가 향을 피우고 무릅을 꿇고 앉아

책을 받은 뒤 엄숙하게 절을 올리고는 악비에 얽힌 사연를 찾아 보았다.

저승판관이 찾아낸 귀절을 소리높이 읽어내려갔다.
금나라 장수 점한은 송나라 태조(太祖) 조광윤(趙匡胤)이 다시 환생한 것이다.

또 금나라 태자 올술(兀术)은 덕소(德昭)가 다시 환생한 것이며,

금나라 황제 오걸매는 주세충(周世忠)이 환생한 것으로

그가 휘종과 흠종 두 황제를 잡아간 것은

진교(陈桥)를 복위(復位) 시키지 못한데 대한 보복이다.

진회는 주세충을 위해 죽은 충신 한통(韩通)이 다시 환생한 것으로

송나라의 태조가 주선(周禅)의 자리를 찬탈한 데 대한 보복을 하기 위해

宋나라 사직을 교란시킨 것이다.

악비(岳飞)와 그의 부장들은 진교가 군사 정변을 일으켰을 당시

조광윤을 도와 송황제(宋皇帝)로 등극시킨 공신들인지라,

진회(秦桧)와는 불공대천의 원수 사이 이기에 진회가 악비를 죽임으로써 복수한 것이다.

송나라 휘종 조길은 많은 악행을 일삼아

그 국운이 다 하였기에 옥황상제께서는 송나라는 강남(江南)만을 지키고

옛 영토를 수복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러므로 악비는 비록 충신이기는 하지만 하늘의 명을 역행한 군사였다.
진회는 비록 간사한 재상이지만 하늘의 명을 따른 소인(小人)이었다.
그러한 까닭에 충신은 재앙을 맞았고, 소인은 재앙을 피해간 것이다.

그러나  악비는 죽어서 저승의 옥황상제를 보필하는 신장(神将)이 되었고, 

진회는 비록 이승에서는 장수하며 편안한 생활을 하였지만 

지금도 지옥의 아비규환의 고통을 격으면서 아직까지 환생하지 못하고 있다.

크고 작은 인과의 응보는 한치의 어긋남도 없다.
천명에 재앙운(災殃运)이 있는 충신은 순리대로 순직하기에

관음보살과 마찬가지로 바로 천당으로 올라가게 되어 있는 것이다.

저승 판관이 판결문 낭송을 마치자.

장직고(张直古)는 비로서 윤회(轮回)의 대겁(大劫)은 보통사람의 생각과는 다르게

여러 세상일이 얽히고 설켜있어 그렇게 단순하게 선악의 관계를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을

확연히 깨닫게 되었다.

한 치의 어긋남도 없는 인과(因果)의 추상 같은 응보(应报)는

비단 불가(佛家)의 이야기 뿐이 아니다.

오백년의 기니긴 시간을 두고 면면히 연결되는

도가(道家)의 참으로 신기한 이야기도 있다.

동한(东汉)시대 요동(辽东) 삼한(三韩)의 학야현(鹤野县)에

정령위(丁令威)라는 신선이 살았다.

정령위는 늘 도를 배우고서 구름을 타고 멀리까지 놀러 다녔는데

어느날인가 학(鹤)을 타고 날아간 후 다시는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그 뒤 오백년 후 위진(魏晋) 남북조시대(南北朝时代)가 되었다.
큰 전쟁이 일어나 오환(乌桓)이 요동 지방을 점령하여

무차별 백성들을 학살하니 살아있는 사람이 드물 지경이었다.

그런 어느날이었다.
학야현 입구의 여섯장(六丈) 높이의 돌기둥 위에 머리는 빨갛고

몸은 하얀 선학(仙鹤)한마리가 날아와 앉았다.

하루종일 그 자리에 앉아 있기에

많은 사람들이 신귀한 학을 구경하기 위해 몰려 들었다.
그러나 그 학은 여전히 날아가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어느 몇 사람이 돌을 던지며 해꼬지를 하였으나

그래도 그 학은 태연자약하게 앉아 있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모두 신선(神仙)이 학(鹤)으로 변하여

그들을 구원하려 온 것이라 믿기 시작했다.

 

팔월 한가위 날이 되었다 .
둥근 보름달이 쟁반같이 크게 떠오르자,

그제서야 그 학(鹤)은  큰 소리를 내어 울더니

신선으로 변하여 청아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한마리의 학이 날아가노라!
정령위는 오백년 세월 후에 나타났다
떠나 가누나?

성곽은 옛과 의구하나 사람들은 다르구나,
선인(仙人)을 배우지 않으니 무덤만이 즐비하다!
오백년 뒤 서호(西湖)에 다시 나타나서 다시 한번 살펴 보리다.

다시 오백년이 지나가 남송(南宋) 효종(孝宗)때의 일이다.
임안(临安)의 서호 근처에

쇠를 다루는 정야학(丁野鹤)이라는 대장장이가 살았다.
정야학은 예순이 가까워서야 집을 나와 수행을 시작하였다.

어느덧 그의 나이 예순 셋이되어 오산(吳山) 꼭대기에 초가집을 짓고

자양도인암(紫阳道人庵)이라 이름을 붙이고는 그곳에서 수행을 하는데

암자의 문밖에 학(鹤) 한마리를 쇠로 만들어 놓았다.

오산을 찾았다가 그것을 본 사람들은 말년에

집을 나와 수행한다는 정야학을 조롱하듯이 말을 하였다.

"아아!

수행하여 저걸 타고 하늘을 날아 다닐건가봐?"
그래야 진짜 신선이라 할 수 있을거야!"
그러자 그 소리를 들은 정야학이 웃으며 말하였다.

"하하하!
그렇다면 내가 이 학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 보지,

먼저 이 철학이 혼자 날아보게 한 후에 내가 타고 가겠노라."하고

말하고는 쇠 학을 향하여 손를 한번 흔들자,

그 철학(铁鹤)은 서서히 날개짖을 하더니 공중으로 날아올라 춤을 추기 시작하였다.

그 광경을 목격한 사람들은 그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정야학은 집안으로 들어가 목욕재계하고 붓을 들어 시(诗)한수를 썼다.

이러구러 지나간 예순 세해 세월이여!
천명을 순응하고 천명을 거스르니,
인간만사 무었인가 아무도 모른다네.
유유한 세월속에 적막하다 허공(虚空)이여!

정야학은 시를 다 쓴 뒤에 정좌한 채 숨을 거두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정야학이 그 철학(铁鹤)을 타고

호수를 건너가는 것을 보았다고도 하였다.

지금도  임안 서호 근처에 있는 자양암(紫阳庵)에는

정야학이 철학을 타고 날아가는 조각상이 남아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암자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고 한다.

"오백년 후에는

또 하나의 정야학(丁野鹤)이 나오리라!"

다시 오백년의 세월이 흘렀다.
과연 동해(东海) 지방에 이름이 같은

정야학(丁野鹤)이란 위인이 나와 자칭 "몽필생(梦笔生)"이라 칭했는데

그가 바로 이 사람인지는 알 수 없으나

 

清나라 시대에 정야학이란 사람이 나타나

[금병매(金瓶梅)]에서 황음무도한 사람들의 선악을

[금옥몽(金屋梦)] 이란 속편을 통해 세상 사람들에 인과(因果)는

이렇게 면면히 이어지니 악행(恶行)을 금하고

선행(善行)에 힘쓰라고 꾸짖고 있는 것이 아닐까?

-끝-

*금옥몽(金屋梦) 속 금병매(续 金瓶梅)는

전편의 주인공들을 중심으로 선악(善恶)의 인과(因果)가 면면히 이어져

응보(应报)의 결과를 낳는다는 인간들에게 충고하여

선행을 유도하는 글이라고 할 수 있으며 금병매의 완결편이라고 할 수 있겠다.
끝까지 읽어 주어 감사드립니다.

부운 유순조(浮云 俞顺朝)

<sns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