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병매/금옥몽

세상만사 모두 인과응보인데

오토산 2021. 7. 25. 21:20

금옥몽(속 금병매) <186>

세상만사 모두 인과응보인데

어리석은 중생들은 '금병매'를 혹세무민의 음서로만 알고있다.

돌고 도는 해와 달 찾아오는 아침 저녘,
수만리 산천에 넘나드는 수만의 세월,
세상 일 얽힌 인과 응보 대대로 이어지니,
망망한 푸른 바다 그 깊이를 모른다네!

《금병매》라는 책은 여색과 재물을 탐하는 음욕의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

뭇 사람들에게 일깨워주는 책 임에도 불구하고,

어리석은 중생들은 《금병매》를 혹세무민의 음서(淫书)로 만들어 버렸다.

이제 금옥몽(金屋梦),

속 금병매(金瓶梅)를 끝맺으며 독자들에게 알려주고자 한다.

 

색즉시공(色即是空)이요. 공즉시색(空即是色)이라!
이름하여 공(空)이 무엇이더냐?

도가에서는 그를 일러 '태극(太极)이라 하고,

유가에서는 이름하여 '천명(天命)이라 말할 수 있다.

탐욕과 음욕의 고해에 빠진 어리석은 중생들이 제 아무리 도적질에 살인을 한다 해도

마침내는 추상 같은 인과응보(因果应报)를

다시말해 전생에 지은 선악에 따라 현재의 행과 불행이 있고,

현세에서의 선악의 결과에 따라 내세에서 행과 불행이 있는 일을 되 받게 되기 마련이다.

이치는 그러한데 송나라 민족의 영웅 악비(岳飞)장군은 어이하여 비명횡사하고,

민족의 반역자 진희(秦桧)는 갖은 부귀영화를 다 누리다 선종(善终)을 하였는지

어찌 의문이 생기지 않을 것인가?

현실이 이러한데 인과응보(因果应报)는

무슨 놈의 얼어죽을 헛소리냐고 생각하는 독자들을 위하여

두 가지의 후일담을 들려주고자 한다.

그러하니 부디 귀를 귀울여 새겨들어 깨달음을 얻었으면 한다.
소주(蘇州)지방에 한 부호가 살았는데 불전에 보시도 많이하고

빈민 구재에 힘쓰며 어려운 일을 보면 그냥 지나침이 없었다.

그러하니 이웃들의 칭송이 자자하였으나 슬하에 자식이 없었다.
그래서 이름난 절을 찾아 부처님에게 천일 기도 끝에 아들을 얻어

이름을 '불사(佛舍)'라 지었다.

그 아이는 어려서 부터 채식을 좋아하고 술과 고기를 멀리했다.
장성해가면서 성품은 충직하고 생활은 소박하여 거짓말이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하는 순박한 아이였다.
이를 지켜보던 옥황상제가 감동하여 어느 날 밤 불사의 꿈에 나타나 말하였다.

"불사야!
네 행실이 갸륵하고 갸륵하니 내가 네게 백일동안 임무를 하나 맡기겠노라?
이제부터는 너는 매일 밤 죽은 귀신을 불러내어 그 잘잘못을 엄히 가려 심판하는

염라대왕의 일을 잠시 맡도록 하여라!"

그로부터 불사에게는 과연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불사 자신은 전혀 느끼지 못하는 가운데,

매일 밤 죽은 사람들의 귀신을 불러놓고 염라대왕이 되기나 한 것처럼

당상 높은 곳에 올라앉아 죽어 끌려온 귀신들을 향하여 호통까지 치면서

판결을 내리곤 하는 것이었다.

잘못을 뉘우치는 귀신들의 호곡소리와 저승사자들의 호통소리가

밤마다 불사의 집에서 들려오자 많은 사람들이 호기심에 구경을 오기 시작했다.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퍼져나가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불사가 심판을 내리는 광경을 지켜보게 되었다.

그 광경을 목격한 이들중에 겁이 많은 사람들은 혼비백산하여 도망을 가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불사를 요망한 요괴가 씌인 재수없는 놈이라고 욕하기도 했다.

그러나 저승세계가 있다고 믿거나 불심이 깊은 사람들은

윤회에 의한 인과응보의 깨달음을 얻는 사람도 있었다.
그 중에는 장직고(张直古)라는 생원(生员)이 있었다.

그는 인과응보는 믿지 않았지만 저승세계는 분명히 있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선(善)과 악(恶)이 한 치도 틀림없이

보응(报应)을 얻게 된다는 논리를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던것이다.
그래서 그는 불사가 판결을 하는 것을 따지고 들었다.

"에이,

인과응보라는게 괜히 하는 소리지,

정말 다 그대로 보응을 받게 된다는게 말이나 되는 소리요?
나도 옛날에는 그게 정말이라 생각했지만 이젠 점점더 그런 얘기를 믿을 수가 없게 됩디다.

아,

옛날 춘추시대 도척(盗拓)에게는 국법이 없었다

 

자신이 공자의 오도(五道)를 빗대어,

남의 재물을 미리 훔쳐낼 것을 알아내는 일을 성(圣)이요,

도둑질을 할 집에 남보다 먼저 들어가는 일을 용(勇)이며,

도둑질을 다하고 도망칠때 맨 뒤에 서는일을 의(义)이며,

도둑을 할 알맞은 때를 아는 것을 지(智)이고,

도둑질한 재물을 공평하게 나누는 일을 인(仁)이라 한다는

회괴한 논리로 갖은 만행을 저질렀지만

여든 살까지 부귀영화를 누리고 잘만 살다가 뒈지지 않았소?

그런데 공자님의 수제자 안회(颜回)는 그렇게 어질고 덕행이 높았지만

찢어지게 가난하게 살다가 요절 했으니 무슨 응보가 있단 말이요,

이게 말이나 되는 얘기요?

가만히 보면 충신(忠臣) 열사(烈士) 일 수록 고생바가지만 하다 비명에 죽어가고,

오장육부를 갈아 먹어도 시원찮은 놈들은 오래오래 잘만 살다가 뒈집디다.
정말로 인과응보가 있다면 왜 그들은 보응을 못 받수?

우리 민족의 영웅으로 만백성에 칭송받는악비(岳飞)장군만 해도 그렇지

한참 젊은 나이에 억울하게 죽어가고,

간을 꺼내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진회(秦桧)란 반역자 놈은

이십년이 넘게 온갖 권세 다 휘두르며 재상으로 지내다가

말년에는 왕작(王爵)까지 받고 죽었지 않소?
이게 대체 어떻게 된일이오?

당신이 마침 염라대왕 노릇을 하며 귀신들을 불러와서 심판을 한다하니,

어디 한번 진회놈도 불러내어 심판을 다시 해줄 수 없겠수?"

"그렇게해보지요.
그런데 저는 밤에는 내 정신이 아니라 내맘대로 통제가 안되고 기억을 못하니,

당신이 진회의 일을 종이에 적어서 주시면

제가 잊지 않고 어찌된 영문인지 알아 보도록 하지요."

장직고는 악비의 억울한 죽음과 진회가 암무 탈없이 편히 살다 죽은 것을 비교하여 따지면서

그러니 인과응보란 그리 믿을 바가 못된다는 내용의 쪽지를 적어 불사의 소매속에 넣어 주었다.

그날 밤이었다.
소문을 듣고는 진회의 일에 대한 염라대왕의 판결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한 사람들이 구름같이 몰려 들었다.

삼경이되자,

염라대왕인 불사는 전과 같이 당상위에 올라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아래쪽에는 저승판관들이 양쪽으로 도열해 있었다.

불사는 몇 가지 사안을 심사하여 죄를 지은 인귀(人鬼)들을 심판하였으나,

소매속에 넣어둔 종이 쪽지는 깜박 잊고 있었다.

이윽고 사경이 거의 다 되어 파장이 될 무렵 옷을 추스리던 불사는

소메속에서 떨어진 종이를 보고서야 비로서 장직고의 부탁이 생각났다.
불사가 그 똑지를 저승 판관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이 사건은

선악(善恶)의 응보(应报)가 불분명하니 어떻게 된 일이오?"

"이 사건은 송나라때 일어난 가장 큰 사건으로써

옥황상제께서 명하시길 지장보살(地藏菩萨)께서 직접 처리하시라 하셨나이다.

왜냐하면 제왕(帝王)과 고관들은 그 겁운(劫运)과 명수(命数)가 보통 사람과는 다르게

그 인과가 여러 세상에 얽켜 있기 때문에 내용이 너무나 방대하여

잔일이 많은 염라대왕이 심판하지않고 특별히 지장보살께서 모든 것을 관장 하십니다.

만약 반드시 그 인과 관계를 알고 싶으시다면,

지장보살께서 판결한

'주천겁수대책(周天劫数大书)을 빌러다 찾아보면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있습니다."

염라대왕이 된 불사가 그 책을 빌러오라고 명했다.
얼마지나지 않아서 저승 판관을 앞세운 옥졸귀 세네명이

방대한 분량의 책을 짊어지고 들어왔다.

책 위에는

'원회겁은책(元会劫运书)'과

'주천인과책(周天因果书)'이라고 적혀 있었다.
노란 끈으로 묶어놓은 책들은 모두 붉은 도장이 찍혀 있었다.

 

<sns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