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三國志) (7)
유비의 귀향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후,
유비는 석양 무렵에 누상촌 자기 집으로 돌아왔다.
유비는 사립문 안으로 들어서며 큰소리로 어머니를 불렀다.
"어머니 !
어머니, 제가 왔습니다.
어디 계세요 ! "
그러나 방안에서는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뿐만아니라 어머니의 시중을 들기로 약속했던 주랑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유비는 얼른 방문을 열고 방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방안에도 어머니는 계시지 않는 것이 아닌가 ?
(웬일일까 ?
모두들 어디로 갔을까 ?)
유비는 다시 밖으로 나와,
후원으로 돌아가 보았다.
유비네 집 후원에는 조그만 복숭아 밭이 있었다.
유비의 노모는 그때,
그 복숭아 밭 가운데 칠성단을 모셔 놓고,
정화수를 떠놓고 꿇어앉아서, 아들의 무사 귀환을 빌고 있었다.
유비는 자신의 무사 귀환을 빌고 있는 노모의 초췌한 뒷모습을 보자,
눈시울이 화끈 달아올랐다.
그리하여 잠시 그 자리에 멈춰 서서 흥분을 가라앉히며 어머니의 축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어머니 !
제가 돌아왔습니다."하고 말했다.
늙은 어머니는 뒤를 돌아다보다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오오,
내 아들이 이제야 돌아왔느냐 ?"
어머니는 다가온 아들을 부등켜안고 등허리를 쓰다듬으며
기쁨에 찬 음성으로 말했다.
"어머니 !
주랑이는 어디로 가고 어머니 혼자 계시는거예요 ?"
"그 애는 네가 떠난 지 사흘만에 관군에 뽑혀서 나갔단다."
"그래요 ?
그러면 어머니는 그동안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겠어요.
저는 그런 줄도 모르고, 너무 늦게 돌아와서 죄송하네요."
"먼길 다녀 오느라고 고생했다.
어서 집으로 들어가자.
그래 그동안 객지에서 얼마나 고생이 많았겠느냐 ?"
어머니와 아들은 방으로 들어와 오래간만에 정답게 마주 앉았다.
어머니는 호롱불 밑에서 아들의 얼굴을 요모조모로 살펴보더니,
"네가 수척해 진 것을 보니,
그동안 고생을 많이 한 모양이로구나.
그래, 세상 구경은 많이 했느냐 ?"
"네,
오가는 여정에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나 저나 마을에는 별일이 없었습니까 ?"
"아이구,
마을 애기는 말도 말아라. 네가 떠난 직후부터 난데없이
우리 마을에 황건적이라는 도둑떼가 들이닥쳐서
가가호호로 드나들며 재물이란 재물은 모조리 빼앗아 갔단다."
이렇게 말하는 어머니는 눈쌀을 찌푸리며 한숨까지 쉬는 것이었다.
"네 ?
그놈들이 우리 마을에까지 습격을 해 왔다구요 ?"
유비는 설마 황건적들이 누상촌 산골까지 나타날 줄은 생각지 못했다.
그리고 황건적이란 말만 들어도 이가 갈리고 치가 떨려왔다.
"그놈들이 몇차례 다녀갔으니,
이제부터라도 오지 않으면 좋으련만..."
"세상이 제대로 되려면 먼저 그놈들부터 모두 없애 버려야만 할 거예요."
유비는 그렇게 말하고 나서,
"어머니...
제가 어머니를 드리려고 좋은 선물을 하나 사왔습니다."하고
말하며 품속에서 낙양차를 꺼내 놓았다.
"이게 뭐냐 ?"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찹니다.
이것은 낙양차 중에서도 최상품이에요."
"오오, 내 아들아 !
네가 나를 위해 이런 귀한 물건을 구해 오다니,
네 효성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구나."
노모는 차통을 두 손으로 받들고 어쩔 줄 모르고 기뻐한다.
"어머니는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제가 애써 먼 곳에서 구해 온 것이니,
지금 곧 끓여 드릴까요 ?"
"네가 이렇게도 귀한 물건을 구해 왔는데,
내가 어찌 조상님께 알리지도 않고 함부로 입에 대겠니."
어머니는 그렇게 말하더니,
조상님들의 신주를 모셔 놓은 사당방으로 올라가,
제상위에 차통을 올려 놓고 배례를 하는 것이었다.
그러고 난 뒤 다시 안방으로 돌아와,
"이제는 조상님도 흠향(歆饗)하셨으니,
나도 차 맛을 봐야 하겠다.
향기만 맡아도 정신이 맑아지는 것 같구나."
어머니는 차를 달이려고 화로 위에 물주전자를 올려 놓았다.
"어머니가 이 차를 잡수시고 몸이 건강해지신다면
저는 그 이상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유비는 이렇게 말하면서,
옷을 갈아 입으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어머니는 아들을 올려다 보다말고 깜짝 놀란다.
"아니,
네가 집을 떠날 때 허리에 차고 갔던 검이 보이지 않으니 대체 웬일이냐 ?"
"어머니 !
그 검은 제가 어떤 이유로 인해,
은혜를 갚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주었습니다."
"뭣이 ? ....
그 검이 어떤 검인데,
그런 보물을 남에게 주었다는 말이냐 ?"
어머니의 얼굴에는 일순간 분노의 빛이 넘쳐 흘렀다.
"어머니....
오해하지 마세요.
제가 그 검의 가치를 몰라서 남에게 준 것은 아닙니다.
내 생명을 구해 준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나와는 뜻을 같이할 수 있는 사람 같기에 여러 가지 의미에서 검을 주었던 것입니다."
유비는 어머니의 노여움을 사게 된 것을 미안하게 생각하며 열심히 변명하였다.
그러나 어머니는 이미 아들의 변명이 들리지 않는지,
분노에 찬 얼굴로 입술 조차 파르르 떨면서,
별안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아들의 손목을 와락 움켜잡는다.
"애야 !...
나하고 밖에 좀 나가자 ! "
"어디로 가시려구요 ?"
"어디로 가는지는 따라 오면 알 것이다."
어머니는 그렇게 말하면서 한 손은 아들의 손목을 움켜잡고,
다른 한 손에는 차통을 움켜잡은 채 밖으로 나왔다.
집을 나와서 한참을 걸어가면 마을 앞에 조그만 늪이 있다.
어머니는 그 늪가까지 걸어가더니,
유비를 일단 세워 놓고,
"너같이 정신이 썩어빠진 자식놈에게 차를 얻어 먹는다고 이 에미가 기뻐할 줄 아느냐 ?
이 차는 더러워서 못 먹겠다."하며
그렇게나 보물처럼 여기던 차통을 늪 가운데로 휙 집어던지는 것이 아닌가 ?
"앗 ! 어머니...
왜 이렇게 노여워하십니까 ?"
유비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어머니의 손을 움켜잡았다.
그러나 어머니는 여전히 노여운 음성으로,
"내가 너를 키울 때에는,
시골 구석에서 돗자리나 짜 먹으라고 키운 것은 아니었다.
언젠가도 말한 바 있지만,
너는 한 종실(漢 宗室)의 명예로운 후손이다.
그런 너를 내가 이런 시골 구석에서 데리고 오늘날까지 숨죽이며 살아온 것은
그래도 네가 이미 패망한 한나라 종실을 재흥시켜 주기를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러한 재흥 정신의 상징이라고 볼 수 있는 조상 전래의 검을 남에게 주어 버렸다니,
이제 너 같은 자식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단 말이냐 ?"
추상같은 꾸지람이었다.
유비는 어머니의 그 말을 듣자,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어머니 제가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니 저를 얼마든지 꾸짖고 나무라 주십시오."
"듣기 싫다 !
너 같이 정신이 썩어빠진 놈을 꾸짖으면 뭘하며 나무란다고 될 일이냐 ! "
늙은 어머니는 놀랍도록 큰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유비는 어머니의 말에 머리를 수그린채 오랫동안 침묵에 잠겨 있었다.
그러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어머니,
제가 어머니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듣기 싫다.
정신이 썩어빠진 놈의 말을 무슨 의미로 듣는단 말이냐 ! "
그러나 유비는 어머니의 노여움을 받아 가면서도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 !
조상께서 물려주신 검도 소중하지만,
저는 그 검이 지니고 있는 정신을 이어가기 위해,
뜻을 같이 하는 동지를 얻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참된 동지 한 사람을 만났기에,
그와 더불어 뜻을 같이하려는 생각에서 검을 예물로 주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제가 잘못 생각한 것이 되겠습니까 ?"
어머니는 그 소리를 듣고,
의아해 하는 얼굴이 되었다.
"동지를 얻기 위해 검을 주었다니 그게 무슨 소리냐 ?"
유비는 어머니에게 황건적을 피해 도망을 가다가 장비의 구원을 받아
죽게 되었던 목숨이 살아나게 된 것을 자세히 말씀드린 다음,
"저는 어머니의 바람대로,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 잡아보려는 커다란 뜻을 품고 있었기에
장비 같은 사람을 동지로 삼을 생각에서
그 고귀한 검을 주저하지 않고 그 사람에게 선물로 준 것이었습니다."하고
말하였다.
어머니는 그 소리를 듣고 나더니
별안간 슬픔이 가셔지며 얼굴에 화색이 넘쳐 흐는다.
그리고 미안한 마음에서의 말을 한다.
"오오, 네 말을 듣고 보니,
이 어리석은 어미가 너를 오해하고 있었구나.
한사람의 의사(義士)를 얻기란 나라를 얻기 보다도 어려운 일인데,
네가 그런 사람에게 검을 주었다는 것을 알았다면 이 어미가 왜 너를 나무랐겠느냐 !
역시 너는 나의 위대한 아들이로다 ! "
어머니는 오해를 풀고 유비를 안아주며 어깨를 두드려 주는 것이었다.
유비는 어머니의 따듯한 품안에서 감격의 눈물을 지었다.
실로 모자간에 정이 넘치는 순간이었고,
사방은 이미 어둑해지기 시작하였다.
8회에서~~~
'삼국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장비,관우,유비의 운명적인 삼각 대면 (0) | 2021.09.17 |
---|---|
관운장과 장비의 만남 (0) | 2021.09.17 |
장비와의 만남 (0) | 2021.09.17 |
황건적으로 부터의 탈출 (0) | 2021.09.17 |
황건적들의 악행 (0) | 2021.09.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