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三國志) (277)
경기의 난(亂)
한편, 순욱이 자결했다는 소식을 듣자,
백마문에서 순욱을 부축하여 일으킨 바 있던 시중소부(侍中小府) 경기(耿紀)는
평소에 뜻이 맞는 동료인 위황(韋晃),김위(金褘)등을 비롯하여 조조의 손에 죽은
태의 길평(太醫 吉平)의 아들 형제인 길막을 비롯한 길목과 비밀리에 회합을 가지고,
"역적 조조가 천자를 협박하여 왕이 되고,
순대인을 압박해 죽음으로 몰았소.
우리 한(漢)의 신하들이 조조를 없애고 조정을 살립시다 !" 하고,
말하니,
그 자리에 참석한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조조를 죽여,
조정을 살리는데 죽음을 불사 않겠습니다 !"하고,
결연한 의지를 표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경기가,
"여러 형제들 잘 들으시오.
조조가 오늘 밤 오봉루에 묵을 것이오.
그곳은 어림군이 지키는데,
내가 어림군 내부에 손을 써 놓았으니,
오늘밤 여물 창고에 불이 일어나
성내 수비병들이 불을 끄는 혼란한 틈을 이용하여,
우리는 오봉루로 쳐들어가 조조를 없애고,
천자께 달려가서 조조 제거 사실을 고하면,
우리 임무는 끝나게 되오 ! 어떻소 ?
그리되면 정국은 안정되고 우리는 한실의 공신이 되는거요 !"
"좋소 !"
"좋소이다 !"
뜻 있는 젊은이들의 의기 투합은
급기야 이날밤 행동으로 옮겨졌다.
드디어 모두가 잠든 시간,
조조가 묵고있는 오봉루(五鳳樓)가 있는 어림군의
여물 창고에서는 큰 불이 일어났다.
"불이야 ! "
"어서 물을 가져와라 !"
순식간에 건초 창고에서 일어난 불은
쉴새없이 타 올라 계속해 옆으로 번져갔다.
그리하여 어림군의 병사들이 불을 끄느라고 혼비백산한 틈을 노려,
경기를 비롯한 그를 따르는 젊은이들 약 사백여 명이
조조가 묵고있는 오봉루를 급습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들은 조조의 호위군사들에 가로막혀
일대 전투가 벌어지고 말았으니,
잠이 들었다가 소란스런 소리에 잠을 깬 조조가
호신용 단도를 빼들고 밖을 향해 소리친다.
"허저 !
허저는 어딨냐 ?"
"예 ! 전하 !"
허저가 달려 들어온다.
"무슨 일 이냐 ?"
조조는 허저를 보자마자 급히 물었다.
그러자 허저는,
"전하 ! 어림군 창고에 불이 났습니다.
반란군이 있는 듯 하니, 속히 말에 오르십시오.
소장이 호위해 뚫고 나가겠습니다."하고, 말한다.
그러나 조조는 밖의 소리를 귀담아 들으면서,
"서둘지 말라 ! 들어 봐라,
사방에서 함성 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
어느 길이 뚫릴 줄 알고 가겠냐 ?
오봉루만 잘 방어 해라.
어떤 놈이든 접근하기만 하면, 그대로 죽여버려 !"
"예 !"
허저는 명을 수행하기 위해 급히 밖으로 달려 나갔다.
이때쯤,
조조의 아들 조비는 하루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려고 하였다.
그런데 난데없이 집사가 뛰어들여 아뢴다.
"공자, 공자 !
큰일 났습니다 !
궁에 불이나고, 도처에서 구호 소리가 난무하는 등 난리가 났습니다 !"
"구호라니 ?"
"저...
조조 일족(一族)을 몰살하고
한실(漢室)을 바로 잡자는 ..."
"무엇이 ?"
조비는 여기까지 듣고선 반란이 일어난 것을 직감하였다
그리하여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며,
"그렇다면 부왕(父王)께서는 ?..."하고,
물었다.
"오봉루에서 주무셨는데
불은 그쪽에서 났습니다."
"당장 하인들을 깨우고
오봉루로 가자 !"
맹렬한 전투가 벌어지는 동안에 불길은
동화문(東華門)에서 오봉루(五鳳樓)까지 번져와
조조의 호위군은 불은 물론이고 쳐들어 오는 반란군과도 싸워야했다.
그러나 조조의 아들 조비와 조창이
숫적으로 우세한 하인들과 군사를 이끌고
조조를 구하기 위해 오봉루로 급히 달려오니
김위, 위황, 경기 등의 계획이 성공할 희망이 거의 없게 되었다.
태의 길평의 아들 길막 형제는 최후까지 분전하였으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조조의 아들 조창의 창검에 처참하게 죽고 말았다.
밤새껏 계속된 소란은 새벽녘이 되어서야 끝났다.
그제사 돌아보니,
김위와 위황도 전사하였고,
남은 사람은 오로지 경기 뿐이었다.
경기는 달아나려고 성밖으로 나오기는 했으나
채 두 마장도 못가고 조창의 군사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사태가 진압되자 조조는 반란의 주모자 경기를 잡아 올리게 하였다.
"전하 !
반란의 주모자 경기입니다 !"
허저가 결박을 지워 꿇어 앉힌 경기를 지목하며 아뢰었다.
조조가 경기를 내려다 보며 말한다.
"경기 ?
왜 역모를 꾀했나 ?"
그러나 경기는 전혀 주눅이 들지 않은 채로,
조조를 똑바로 올려다 보며 조소로 대답한다.
"헹 ! 조조,
역모는 내가 아니라 네가 한 것이다
나는 다만 역적을 없애려고 한 것이다 !"
"흠, 호기는 있구나.
알겠지만 이 시각 이후로 네 구족(九族)을 멸할 것이다. "
"널 죽이지 못한 것이
한스러울 뿐이다 !"
경기는 조조에게 발악발악 대들며 곧장 대답했다.
그러자 허저가 썩 나서며 말한다.
"이자식이 !
혀를 잘라 버릴까 보다 !"
"아니, 놔 둬라..
욕이나 실컷 하고 죽으라고 해 !
내가 욕을 들은지가 좀 됐거든..."
조조는 이렇게 말한 뒤에,
의외로 반란의 주모자 경기에게 공손한 어조로 묻는다.
"경 대인(耿 大人) !
한실 영제 이후,
조정은 점차 부패하여 갔다.
그리하여 황제가 관직을 팔고,
관리가 폭정을 일삼자,
황건적의 난이 전국을 휩쓸었고,
세상은 온통 내 발 밑에 폐허로 변해버렸다.
그때 내가 분연히 일어나 오늘 날까지
피땀 흘려 강산을 재건하고 나서야 탐관 오리들이 척결되고,
오늘날 백성들이 밥을 먹고 살만해 졌다.
아는가 ?
내 생각엔 나도 할 만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헌데, 왜 이렇게 나를 미워하고 죽이려 하는가 ?
한실이 폐허가 되려는 것을 다시 보고 싶어서 그러는 것인가 ?"
"충성은 만사의 근본이다.
나는 살아서 성인(聖人)의 책을 읽고, 그것을 행(行)할 뿐이다 !"
"성인의 도(道)가 쓸모 있었다면
벌써 천하가 통일되고 안정됐겠지,
네 행동은 현실을 모르는 어리석은 충성이야 !
나는 탐관 오리도 싫고 아둔한 군주도 싫지만,
너 같은 어리석은 충신은 더욱 싫다 !"
"조아만 ! (曺阿瞞: 조조의 兒名으로 조롱할 때 부르는 이름)
이승에서는 너를 못 죽였지만
저승에서도 너를 죽이려고 혼신의 힘을 다하겠다 !"
"그래 ?
그렇다면 나를 똑똑히 봐둬라,
저승에 가서도 나를 잊지말고 기억해 둬 !
너같은 쥐새끼들이 이승에서 내 적수가 못 되는데,
저승에 간다고 달라질 줄 아느냐 ! "
조조는 경기의 상투를 잡아 흔들어 말한 뒤에
뒤를 향하여 손을 들어 보인다.
그러자 허저가,
"끌어내 !"하고,
호통을 질렀고,
우악한 병사들에게 결박을 지운 경기는 끌려나간다.
"조아만 !
내 죽어서 절대 용서치 않겠다 !"
경기는 끌려나가면서도
조조를 향한 원망의 소리를 하늘 높이 질러댔다.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
절대 !...."
날이 밝자 사마의가 조조의 아들 조비에게 허둥지둥 달려왔다.
얼마나 급히 달려오던지 조비를 만나자 그 앞에 발을 헛디디며 엎어진다.
"선생 ?"
"공자 !"
조비가 사마의를 일으키며 빙그레 웃는다.
그것은 조비가 알고 있는 현인(賢人) 사마의가
허둥대는 모습이 우습기 짝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어른이 엎어졌으니,
의례 말로,
"괜찮으십니까 ?"하고,
형식적인 어투로 물었다.
그러나 사마의는 조비의 얼굴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보면서,
"괜찮으십니까 ?
공자 때문에 걱정했습니다 !"하고,
묻는 것이 아닌가 ?
그러자 조비는 사마의의 묻는 말의 의도가 궁금했다.
그리하여 자신 얼굴에 뭍은 피를 가리키며,
"이것 때문에 그러십니까 ?
이건 내 피가 아니라 남의 것입니다.
선생,
부왕께서 오봉루에서 반란군에 포위되셨는데,
제가 가장 먼저 부왕을 구하러 달려갔습니다."
"공자가 가셨단 말입니까 ?"
사마의의 반문에는 다분히 의혹에 싸여 있었다.
"예 !
그런데요 ?..."
조비는 사마의의 반문 태도가 궁금했다.
"조식 공자는 왔습니까 ?"
"아뇨 ?...
어젯 밤에 글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취해서 ...."
"아 !..."
사마의가 그자리에 주저 앉으며 한숨은 쉰다.
"...."
그러면서 조비가 들으란 소리로,
"이번에는 공자와 조창이 지고,
조식 공자가 이겼소.
아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조비는 그 말을 듣자,
의문의 눈길을 가지고 사마의 옆으로 허리를 굽히며
걱정스런 어조로 물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
"아버님이 보통 분이 아니잖습니까 ?
의심할 겁니다.
위왕을 구하러 간 자도 많지만,
공적(共敵)을 도우러 간 자도 많습니다.
어림군 내에도 내통한 자가 있는데
그 안에 첩자가 있는지 누가 압니까 ?"
"에,엥 ?"
"더구나 두 분 공자님이 싸우러 왔는지 도우러 왔는지,
위왕께서는 공자 두 분까지 의심할꺼요 !"
"어,엇 ?"
조비는 그 말을
저도 모르게 놀라 뒤로 주저앉았다.
"위왕께서 가장 믿고 있는 조식이 안 갔으니,
반역의 의도는 없다고 여기겠죠. !"
사마의는 넘어져 있는 조비에게 다가와
이렇게 말한 뒤에 그대로 나가버리는 것이었다.
조비는 사마의의 말을 듣자,
그 자리에서 일어나지 아니하고 앞으로의 일을 골똘히 생각하였다.
부왕을 구하기 위해 오봉루로 하인을 이끌고 급히 달려갔지만,
의심이 많은 아버지에게 진정성을 시험받을 일이 눈 앞에 어른거렸기 때문이다.
278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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