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三國志) (275)
위왕 조조(魏王 曺操)
조조가 허창으로 돌아오자,
그를 영접하는 만조 백관들의 환영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승상께서는 한중을 정벌하시고,
이제 강동의 손권에게 까지 매년 조정에 세공을 바치겠다는 약속을 받아 오셨으니
이는 역사에 길이 남을 공적이옵니다."
조조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아첨배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쳐댔다.
그러면서 이 일을 기회로,
<승상을 위왕(魏王)으로 모셔야 한다>고
공공연히 떠들어 대었다.
이에 조조는 마음이 점점 동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조조는 만조 백관들에게,
"한 사람도 빠짐 없이 명일 조회에 참석 하라."는
엄명을 내렸다.
다음 날,
조조가 허수아비 천자 유협을 전면에 내세우고
실권을 장악하고 있는 허창의 장락궁(長樂宮)앞에는
관복을 정제한 대신들이 조회(朝會)에 참석하기 위하여
줄지어 도열한 채로 천자의 입장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문무 백관들은 폐하의 명을 받들어 모두 안으로 드시오 !"
드디어 황제의 명을 고하는 시종의 고함소리가 들리자,
대신들은 일제히 장락궁 계단을 오르기 시작하였다.
선두에는 순욱과 정욱을 비롯하여 노 대신들이 앞장을 섰고,
그 뒤에는 젊은 대소 신료들이 줄지어 따랐다.
이윽고 궁의 입구에 이르자,
시종들이 일제히 달려와 대신들을 앞에서 허리를 굽혀,
그들이 신고 있는 신발에 손을 대며,
대신들이 신을 벗기 편하도록 부복하였다.
천자가 거주하는 황궁의 법도상
누구든지 장락궁 앞에서는 대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신발을 벗고,
무장을 해제 해야 만이 비로서 입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대소 신료들이 모두 신을 벗고 대청으로 올라간 바로 뒤,
멀리서 승상 조조가 화려한 관복을 입고 칼을 찬 채로,
경호 대장 허저를 비롯한 측근 정예 호위병의 앞에 서서 입장하는 것이 보였다.
황궁의 시종이 조조 일행을 발견하고 큰소리로 외친다.
"승상께서는 신발을 싣고,
검을 차고 입장하는 것을 윤허하신다는 폐하의 명이시니,
승상은 그대로 입장하시오 !"
이윽고 허저를 비롯한 호위병은 단하에서 걸음을 멈추었고,
조조는 검을 찬 채로 계단을 올라,
먼저 입장한 신료들의 신발이 가지런히 놓인 앞을
신을 신은 채로 그대로 지나, 대청 마루로 올라섰다.
"승상, 입장 !"
대청안의 시종이 이렇게 조조의 등장을 알리자,
먼저 입장하여 황제 앞에 가지런히 서있던 신료들이 좌우로 갈라서며
조조앞의 길을 터주는 것이었다.
천자 유협도 자리에서 일어나,
긴장한 채 단하에서 걸어 들어오는 승상 조조를 내려다 보았다.
이윽고 단하에 도달한 조조는,
단상의 황제에게 고개를 끄떡해 보이고 그대로 단상으로 올라 자리에 좌정하니,
그제서야 천자는 자리에 앉는 것이었다.
이어서 신하들이 비로서 무릎을 꿇어 앉으며 합장 배례하며 외친다.
"폐하 ! 만세,
만세, 만만세 !"
"일어나시오 !"
황제의 명이 떨어지자 모든 신하는 ,
"망극하옵니다 !"하고,
일시에 복명하고 일어섰다.
그러자 시중 왕량(侍中 王梁)이
대청 중앙으로 나와 황제에게 고한다.
"폐하께 아룁니다.
지금 까지 수 십년 동안 승상께서는 하늘의 뜻을 받들어
동탁과 여포같은 대역적을 소탕하고, 청주, 기주, 병주를 연이어 수복하였습니다.
뿐만아니라 스스로 황제를 칭하며 조정을 모욕한 원술(袁術)을 멸한 바 있으며,
최근에는 조정의 명을 받들지 아니하던
한중의 장로를 공격하여 바로 항복을 받아 냈음은 물로이고,
강동의 손권에게는 해마다 조정에 공물을 바치도록 하였으니,
이렇듯 조정의 위엄을 드높이고 천하를 안정시킨 것은
오로지 승상의 공로입니다.
승상께서 삼십여 년간 고군분투하며
수많은 공을 세운 것은 천하가 다 아는 사실입니다.
이는 주(周)나라 강태공 조차 따르지 못할 업적입니다.
신이 만백성을 대신해 간절히 청하옵건데,
승상을 위왕(魏王)으로 봉하시어 그 공을 표창해 주십시오."
이어서 대사 원웅(代師 袁雄) 나와 아뢰되,
"동의합니다.
승상을 왕으로 봉하길 청하옵니다 !"하고 청하니,
또 다시 문신 방태현(文臣 龐太賢)이 달려나와
,
"왕으로 봉하는 것은 물론이고,
폐하께서는 황금수레를 하사하시고,
아무런 제약없이 궁을 출입할 수 있도록 윤허하심이
마땅하다고 사료되옵니다."하고,
주청하는 것이다.
이들이 이렇게 승상 조조를 왕으로 봉해달라는 주청을
순욱은 참담한 얼굴로 듣고 있었고,
조조의 아들 조비와 조식을 비롯해 정욱등의 신하들은
마땅히 당연한 얼굴로 고개조차 끄덕이고 있었다.
조조가 위 삼인의 주청이 모두 끝나자
자리에 앉은 채로 천자를 향해 입을 열어 말한다.
"흠 !
아뢰옵니다.
신은 한나라의 신하로써 나라의 은혜를 입은 몸이옵니다.
약간의 공이 있다 할 지라도 한 황실의 위엄이 서는 것이 먼저입니다.
신이 왕이 되는 것은 합당치 않습니다."
조조는 여기까지 말하며
단하의 대소 신하들의 반응을 살폈다.
순욱은 대단히 못마땅한 표정이었고
나머지 신하들은 묵묵부답으로 순간, 정적이 흘렀다.
황제 유협이 단하를 내려다 보며,
"누가 더 고 할 말이 있소 ?"하고,
일방통행식 주청에 반론이 나오길 기대하는 심정으로 물었다.
그러자 꿇어앉은 대신들 틈에서
노신 순욱(老臣 筍彧)이 청려장(靑藜杖)에 의지해
노구(老軀)를 이끌고 대청 가운데로 나온다.
그리고,
"폐하 !
승상께서 하늘의 뜻을 받들어 대의를 펼치고
한 황실을 보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겸손하게 사양한 것은 극히 옳은 일이라고 사료되옵니다.
고조 황제께서 한나라를 세우시면서 법으로 정하시길,
<유씨 성을 가진 자만이 왕이 될 수있다> 하셨습니다.
헌데 오늘 폐하께서 고조 황제의 뜻을 어기고
승상을 왕에 책봉하시어 문무백관 위에 군림시킨다면,
고조 황제이래 전례가 없던 일로써 백성들의 비난을 받으시게 될 것입니다.
저희는 오랜세월 승상과 함께 한나라를 보좌했으니
몇몇 사람들로 인해 모든 노력이 허사로 돌아갈 수도 있습니다.
승상께서도 이를 잘 알고 계시니,
승상의 진심을 알아주시고 왕으로 봉하는 일은 거두어 주십시오."하고,
아뢰는 것이었다.
그러자,
"당치않소이다 !"
정욱이 즉각 반론을 제기하고 대청 중앙으로 나온다.
그런 뒤 단상의 황제를 바라보며,
"폐하 !
천하의 절반이 안정되었다고 하나,
손권과 유비는 스스로를 영웅이라 칭하며 패권을 노리고 있습니다.
하오니 이런 역적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왕실의 위엄을 드높여야 하옵니다.
승상을 왕으로 봉하신다면 하늘의 뜻에 부합하고 민심을 따르는 것입니다.
구습에 얽매어서 천하 만백성의 바람을 저버리지 말아 주십시오 !"하고,
아뢰는 것이었다.
이에 황제는 조조의 눈치를 살피었다.
그러자 조조는 더이상 사양하지 않았다.
오히려 근엄한 얼굴까지 해보이며 황제의 결정을 기다리는 모양세였다.
황제는 이런 무언의 압박속에,
"짐도, 당연히..
승상을 왕으로 봉하고 싶지만...
승상이 거절했지않소 ?"하고,
입을 열자,
정욱은 즉각,
"폐하 !
승상께서 왕이 되시는 것은 하늘의 뜻인데,
승상께서 사양하신다고 그만두실 겁니까 ?"하고,
위협적인 소리를 내뱉었다.
그때,
조조의 아들 조식이 아무런 말도 없이 대청 중앙으로 나오자
그와 동시에 좌우에 부복하고 있던 신하 모두가 대청으로 몰려나왔다.
그리고 누구랄 것도 없이,
"폐하 !
부디 승상을 왕으로 봉해 주십시오 !"하고,
이구동성으로 외치는 것이었다.
이에 천자 유협은 깜짝 놀라며,
어찌 대답할 바를 몰라하며 쩔쩔매었다.
그 모양을 보고, 앞서 부당함을 역설하였던
노신 순욱이 코웃음을 치며 돌아선다,
"흥 !
흐흐흐흐 흣 !..."
그러면서 조조의 위왕 주청을
엎드려 청하고 있는 대소 신하들을 굽어보며,
"다들 한심하구려, 부끄럽지도 않소?
나라의 은혜를 입고,
나라의 녹을 먹는 자들이 어찌하여 하나같이...
이리 썪은 생각만 가지고 있단 말이오 ?
이젠 충신이 없구나 !
충신이 없어 !...
한나라에는 충신이 없어 !...
한나라에는 충신이 없어....
한나라에는 충신이 사라졌도다...."
순욱은 이렇게 독백하듯이 뇌까리면서
밖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황제 유협은 참담한 심정으로 이같은 소리를 듣고,
입을 열어 말한다.
"시중 왕랑은 들으라."
"예 !"
"지금 곧 성지(聖志)를 작성하여 만천하에 공포하시오.
짐은 그간의 공을 생각하여 승상 조조를 위왕(魏王)에 봉하고
면류관과 여섯 필의 말이 이끄는 황금수레를 하사하고
궁을 출입할 때도 그 어떤 제약도 없이 다닐 수 있도록 한다."
"명을 받들겠사옵니다 !"
왕랑이 천자의 명을 복명하자
조조가 자리에서 일어나 단하로 내려서서
돌아서 나가는 순욱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천자 유협을 향해 돌아섰다.
그리고 두 손을 가볍게 반쯤 올려보이며 고개를 까딱하며,
"성명(聖命)이 이처럼 간곡하시니...
크나 큰 은혜에 감사드리옵니다."하고,
형식적인 대꾸를 하는 것이었다.
이때,
천자 유협은 눈물을 떨구며 생각하였다.
("아, 아 !
사백 년 대업이 짐의 대(代)에 이르러 망하게 되었구나 !...)
276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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