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三國志) .. (368)
육손의 대승,
사마중달의 기사회생(起死回生)
그즈음 양주에 나가 있던 조휴(曺休)가
위제 조예(魏帝 曺叡)에게 표문(表文)을 올렸다.
표문의 내용은 동오(東吳)의 파양 태수 주방(鄱陽 太守 周魴)이
몇 가지 자신이 내세우는 조건을 들어 주면,
조위(曺魏)에 항복하여 동오를 치는데
협력은 물론이고 길잡이가 되겠다는 말이었다.
조예가 대신들을 불러 모아 의견을 물으니,
선제 때부터 원한이 골수에 맺혀 있는 동오를 칠 수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의견이 대세였다.
아닌게 아니라
위는 태조 무황제(武皇帝: 조조)의 시절에 적벽대전에서 대패하여
치욕을 당한 바 있고, 선제(先帝:조비) 때에는 삼십만 대군을 동원하여
정벌에 나섰다가 청년장군 손소에게 허를 찔려 패퇴한 바가 있지 않았던가 ?
그러기에 조예는 절호의 기회를 맞았다고 판단하고
조휴에게 파양 태수 주방의 조건을 모두 들어주라고 명했다.
그리고 십만의 군사를 얹어주며, 대군을 삼로(三路)로 나누어
환성, 동관(東關), 강릉(江陵)을 거쳐 남하하도록 명하였다.
동오(東吳)의 손권(孫權)은 이때에
무창 동관(武昌 東關)에 있었다.
손권이 중신들을 모아 놓고 말한다.
"파양 태수 주방이 지금 밀표(密表)을 보내왔소.
그는 조위가 호시탐탐 우리를 침범해 올 기회를 노리고 있는 터에,
양주 태수 조휴에게 거짓 항복을 제의하여
위군을 유인하는 술책을 썼다고 하오.
그래서 위군은 조휴를 대도독으로
삼로에 걸쳐 십여만 대군으로 짓쳐오고 있다고 하니
이를 어쩌면 좋겠소?"
고옹이 아뢴다.
"이 일은
육손(陸遜) 장군이 아니면 감당하기 어렵겠습니다."
손권은 그 말을 옳게 여겨,
육손을 보국대장군 평북원수(輔國大將軍 平北元帥)로 봉하여,
위군에 맞서게 하였다.
육손은 명을 받자
분위장군 주환(奮威將軍 朱桓)과 유남장군 전종(緌南將軍 全琮)을
좌우 부도독으로 삼고 위군을 맞아 나왔다.
좌군 부도독 주환이 육손에게 간한다.
"조휴는 가문이 좋은 덕택에 대도독의 중책을 맡았으나,
실상은 전쟁 경험도, 지략도 일천한 자입니다.
그가 주방의 속임수에 넘어가
군사를 이끌고 온 것만 보아도 알 수있는 일이 아닙니까?
조휴가 우리에게 패하면 달아날 길이 두 길 뿐인데,
한 길은 동관의 석정(石亭)에 있는 협석도(峽石道:좁고 험한 계곡)요,
다른 한 길은 군사를 돌려 양주로 돌아가는 길일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석정에 매복을 두면
조휴를 힘 안 들이고 사로잡을 수가 있으오리다.
조휴만 사로잡으면 수춘성(壽春城)은 우리 손에 절로 떨어질 것이고,
그때에는 허도(許都)와 낙양(洛陽)도 엿볼 수가 있을 것입니다."
육손은 그 말이 옳다고 생각하고
주환에게 오만의 군사를 주어 주력군을 이끌고 달려오는 조휴를
위장 투항한 주방과 힘을 합쳐 동관에서 무찌르게 하고,
우군 부도독 전종에게는 환성과 강릉으로 쳐들어 오는 적의 방비도
함께 할 것을 명하였다.
조휴가 환성으로 진격해 오자,
주방이 미리 마중을 나와서 그를 맞는다.
"소장이 이미 환성의 성주를 설득하여 귀순토록 하였습니다.
구태여 이곳을 공격할 일이 아니오니
성 안으로 함께 들어가시지요."하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 말을 듣고 조휴가 크게 기뻐하였다.
"본관은 그대의 밀서를 보고 흔연히 이곳으로 달려왔소.
허나, 이렇게 화살 한 대 쏘지 아니하고 환성의 항복을 받아내다니,
귀공은 곧 큰 상과 작위를 받게 될 것이오.
헌데, 남들이 말하길 그대는 꾀가 많은 사람이니
너무 믿지 말라고들 하는데 설마 우리를 속이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이 말을 들은 주방은
억울함을 호소하며 칼을 뽑아 스스로 목을 찌르려 한다.
"소장이 이렇게 의심을 받고 있다니...
차라리 죽음으로써 이 불신을 씻겠습니다!"
조휴는 급히 주방을 만류한다.
그러자 주방은 손에 들고 있는 칼로
자신의 머리칼을 모두 잘라내보이며,
"도독께서 제가 죽기를 만류하신다면
이렇게나마 제 진실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이래도 저를 못 믿으시겠습니까?"하고,
호소한다.
결백함을 증명하고자 하는 주방의 행동에
조휴는 주연을 베풀어 주방의 노여움을 풀어 주고자 하였다.
주연이 끝나고 주방이 물러가자, 건위장군 가규(建威將軍 賈逵)가 조휴에게 간한다.
"아무래도 주방이 영 수상합니다.
도독은 섣불리 전선에 나가지 마시고,
제가 나가 오군을 물리치고 오겠습니다."
가규의 말에 조휴는 벌컥 화를 낸다.
"나는 뒷방에 앉아만 있고,
공은 너 혼자 세우겠다는 것이냐?
내가 네 흑심을 모를 줄 아느냐!
내가 적을 물리칠테니 넌 후방이나 지키고 있어라!"
조휴는 가규를 후방에 억류해두고 자신이 동관으로 나왔다.
조휴는 주방과 함께 일선으로 나와 전선을 돌아보며 묻는다.
"어디다 진을 치는 것이 좋겠소?"
"저기 보이는 곳을 석정(石亭)이라 합니다.
그곳에 둔병(屯兵)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조휴는 주방의 말을 믿고,
석정에 대군을 주둔케 하였다.
그로부터 이틀이 지난 아침이었다.
위군이 아침을 지어 먹기도 전에 탐마가 달려와 아뢴다.
"도독! 큰일 났습니다.
전면으로부터 오군(吳軍)이
구름떼 처럼 몰려오고 있습니다."
조휴가 크게 놀라며 소리친다.
"뭐야?
주방의 말로는
이 부근에는 적병이 없다고 했는데, 무슨소리냐?
빨리 주방을 불러라!"
병사가 급히 달려나갔다가 다시 돌아와 보고한다.
"주방이
어젯밤 어디론가 종적을 감춰 버렸다 합니다."
"뭐?
주방이 도망을 쳤다고?
내가 그놈에게 속았단 말이냐?"
조휴는 얼른 정신을 수습하며 명했다.
"그놈에게 속았기로 무슨 대수냐,
대장 장보(大將 張普)가 나가 적을 깨쳐라!"
장보는 명을 받고는
곧 수천의 군사를 거느리고 오군에 맞서려고 출동하였다.
그러나 몰려오는 오군의 숫자는 가히 삼만이 넘지 않던가.
게다가 오의 대장은 맹장으로 이름이 높은 서성(徐盛)이었다.
장보는 아침도 못 먹은 채 굶주린 병사들을 데리고
한참을 싸우다가 크게 패하여 본진으로 돌아왔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오군은 오늘의 전투를 위해
새벽같이 밥을 지어먹고 힘이 넘치는 군사들을 몰고 나왔던 것이었다.
장보가 돌아와 전황을 보고하니,
조휴가 자신만만한 어조로 말한다.
"염려 마라!
내가 나가 철기병을 부리면 제깟 놈들이 무슨 힘을 쓰겠냐!
내일 새벽에 장보는 병사들에게 일찍 밥을 해먹이고,
이만을 이끌고 석정 남쪽에 매복해 있으라.
그리고 장군 설교(薛蕎)는 역시 이만 군을 거느리고
석정 동쪽에 매복해 있으라!
그러면 내가 내일 아침
수천 기를 이끌고 나가 싸우는 척을 하다가
적을 북산 앞까지 유인해 올 것이니,
좌우군은 그때 후방을 차단하고 적을 사정없이 깨치라!
그리하면 적장 서성을 틀림없이 사로잡게 될 것이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이 오기도 전에
그날 밤 위군은 오군에게 야간 기습을 당하여 장보는 전사를 하고,
조휴는 크게 패하여 도주하였다.
조휴는 본국으로 돌아와서 죽은 듯 지내다가
이듬해 가을, 병을 얻어 정말로 죽게 되었다.
이렇게 육손은 크게 승리하였다.
대고를 울리며 건업으로 돌아와서
손권과 문무백관을 비롯한 도성의 백성들의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으며,
주방은 공로를 인정받아 관내후(關內侯)의 자리에 올랐다.
조휴의 패전 소식으로
조위(曹魏)의 조정은 벌집을 쑤신듯이 시끄러웠다.
그리하여 중신의 여론은 사마중달의 재등장으로 귀결되었다.
천자 조예는 자신의 수레를 주어 낙양에서 칩거중인 사마의를 불러오게 하였다.
절치부심(切齒腐心) 재기의 그날을 기다리던 사마의는 천자의 수레를 타고,
비밀 전용도로를 따라 황궁에 들어왔다.
사마의는 궁중의 중상시(中常侍)의 영접을 받으며 도착하였다.
"사마 대인, 결국 오셨군요.
어서 내리십시오."
사마의는 중상시의 극진한 영접을 받으며 수레에서 내렸다.
중상시가 앞서가며 말한다.
"과거 그 어떤 대신도 황상께서 다니시는 옥계단을 오른 적이 없었는데,
그 은총을 사마 대인께서 받으셨습니다."
그러면서 황궁 내실로 직통 하는
황제 전용 통로로 안내하는 것이었다.
그 계단은 전담 호위병에 의해 삼엄하게 지켜지고 있었다.
계단앞에 이른 사마의는 짐짓,
"나이가 들어서
이젠 발걸음이 무거워..."하고,
너스레를 떨면서 황제만이 다니는 전용 옥계단을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오르기 시작하였다.
황제만이 다닐 수 있는 전용 옥계단,
이제까지 그 어떤 대신도 다닌 적이 없는 옥계단,
말로만 듣던 그 옥계단을 사마의 자신이 지금 밟고 섰다.
사마의는 계단 중간에서 힘에 겨운 듯이
발걸음을 멈추고 주저앉아 숨가쁘게 기침을 해댄다.
그러면서,
"보게.
이젠 옥계단이라도 단번에 못 오르지 못하지 않나?"하고,
말을 하자,
중상시는,
"사마 대인,
날씨 때문에 풍한(風寒)이 들어 그러시니 괴히 염려는 마십시오."하고,
위로의 말을 건넨다.
사마의는 그 말을 듣고서야,
"갑시다."하고,
몸을 일으켰다.
사마의는 천자 조예의 청에 의해
불려오는 위세를 단단히 떨치며 입궁한 것이었다.
한편,
동오와의 전쟁의 후과(後果)를 기록한 보고서를 읽던 천자 조예는
사마의가 중상시의 부축을 받으며 들어오는 것이 보이자
그를 마중하기 위해 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마의가 그의 앞에 이르러 입시를 고한다.
"신, 사마의가 폐하를 뵈옵니다."
천자 조예가 사마의에게 자리에 앉으라 권하고
자기 자리에 돌아가 앉아 침울한 표정으로 입을 연다.
"경(卿),
조휴가 동오의 주방에게 속아 출정한 군사의 절반을 잃었소.
그리하여 이번에는 선제 때부터의 원한을 갚기 위해
짐이 오십만 대군을 일으켜 동오를 치려 한다오."
사마의가 그 말을 듣고 반문한다.
"정말 동오를 치려고 하십니까?"
사마의는 동오를 치려고 한다는 조예의 말이
얼마전 벌어진 동오와의 패전에도 불구하고
천자의 위세를 보이려 꺼낸 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짐짓 모른 척하고 물었던 것이었다.
조예가 잠시 대답을 미루다가,
"그래서 경의 의견을 들어보고 싶어서 불렀소."하고,
애둘러 대답을 회피하였다.
그러자 사마의는 천자 조예의 속셈을 알았다는 듯이 말한다.
"신의 의견을 물어보신다는 것은
폐하께서 동오를 치실 생각이 없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그런 중차대한 일을 어찌 신에게 묻고 결정하신단 말입니까?"
속마음을 들킨 조예가 웃으며,
이것 역시 애둘러 대답한다.
"무슨 일이든 신중히 결정하고 싶었소."
"옳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신중히 고려하셔야 합니다.
외람되오나 우리에게는 동오의 육손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우환은 역시 촉의 제갈양입니다."
"일리 있는 말씀이오."
조예의 대답이 즉각 나왔다.
그러면서 이어서 말한다.
"듣기론 한중으로 물러난 제갈양이 군마를 정비중이며,
군량과 무기를 모은다고 하오."
"보십시오.
제갈양은 위국 정벌의 야심이 살아있으니,
조만간 다시 쳐들어 올 것입니다."
사마의는 조예가 걱정하고
가슴 아파할 문제를 대뜸 거론하였다.
그러자 조예가 이제까지와는 다른,
좀더 진지한 어조로 묻는다.
"경,
촉, 오 양국중에 짐이 어디를 주적(主敵)으로 삼고
어떻게 방어를 해야겠소?
어서 가르침을 주시오."
"감히 가르침이라니요.
신은 사실을 말씀드릴 뿐이지요.
말씀드렸다시피, 촉한은 우리의 천적이옵니다.
동남쪽의 동오는 방어에만 치중하시고
중군은 중앙에 포진하여
언제든 촉한에 맞설 준비를 해야 합니다.
중원 이천 리 중에
요충지는 바로 진창(陳倉)이니,
그곳에 정병을 두십시오."
"진창이 왜 중요한 곳이오?"
"중원의 요충지를 쥐고 있으니
적군과 투쟁을 벌일 곳이지요.
사백여 년 전, 한신(韓信)이
군을 정비하여 그곳에서 출병을 하였습니다."
"경,
짐이 이십만 군사를 내 줄 테니,
옹양 대도독 직을 다시 한번 맡아 진창까지 방어해 주시오."
사마의가 그 말을 듣고,
갑자기 심한 기침을 해댄다.
"음!
켁,켁,켁...!"
그 모습을 본 중상시가
조예를 향해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 보이는데,
사마의가 곧 입을 열었다.
"폐하,
신은 늙고 병들어 전장에 나가고 싶어도
이젠 몸이 따라주지를 않습니다.
가을 공기에 폐병이 찾아온 지라,
각혈이 끊이지를 않습니다.
방금 옥계단을 오를 때에도
내시의 부축이 없었더라면 벌써 넘어졌을 것입니다."
"음,
헉, 헉,
켁, 켁, 켁!"
사마의는 또 다시 발작적인 기침을 해보였다.
369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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